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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정토회 송현법당]
꾀꼬리 목소리를 가진 윤여영 님의 보살행
오늘의 인터뷰는 저에게 특별합니다. 저도 1년 넘게 송현법당에서 사회 봉사를 했었는데요. 제가 처음 사회를 볼 수 있게 인도를 해준 분과의 인터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윤여영 님은 정토회를 10년 넘게 다니고 지금은 대구경북지부 사회 교육 담당자를 맡고 있습니다. 먼저 정토회를 다니고 있던 서울에 있던 친척 언니의 소개로 <월간정토>를 받아보고 2년 넘게 금강경과 반야심경 테이프를 들었다 합니다. 그리고 딸이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할 무렵, 혼자 어디를 다녀보기 꺼려하던 보살님은 처음으로 2005년 2월에 현재의 대구법당의 전신이 되는 정토법당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 사회 봉사를 하고 있는 윤여영 님
불교대학 다니면서 표준말을 쓴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회를 권유받았지만 남 앞에 나서야한다는 부담감으로 불교대 졸업 후 하겠다 하였는데 어느덧 졸업을 하고 수행법회 사회를 시작으로 이후 불교대학, 경전반 사회를 도맡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지 떨리고 밤새 명상을 할 정도로 긴장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끝까지 권유해준 도반들의 힘이고 인연이 씨앗인 것 같다합니다. 예전에 법륜스님이 직접 대구법당에 내려오셔서 봄 강좌, 가을 강좌를 열 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스님 앞에서도 사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스님 앞에 선다는 게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그 전날 신경안정제 같은 약을 먹을 정도로 떨렸답니다. 하지만 끝나고 나니 자기가 할 수 있는 거 한가지 만이라도 끝까지 해보는 게 중요하고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현재는 대구경북지부 사회 교육 담당자를 맡고 있는데 사회하면서 받은 게 많아서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무변심법사님이 시간 되는대로 무조건 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어디 안 다니는 성격인데 지부 교육 담당을 맡고 있으니 유랑하는 기분이 들고 입재식 때도 잘 못 갔었는데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또 우리 법당의 보살들과 닮은 도반들이 여러 법당에 보석 같이 박혀있다면서 참으로 가족 같다합니다. 그리고 2년 전부터 사시예불을 하고 있는데 오롯이 나 혼자 있는 기도 시간이 감사하고 긴장했던 것, 힘들었던 것이 해소된다합니다. 누구에게나 사시예불을 권하고 싶고 그 공덕은 가히 크지 않을 수 없다고 하네요.
▲ 송현법당 도반들과 함께
최근에 정일사 회향을 하면서 예전의 도반들이 거의 없어서 ‘나 혼자 늦게까지 남아있지 않나, 자리를 양보해야 하지 않나’ 하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정리하는 기분으로 임했는데, 역시나 법사님은 여영 님 생각과 반대되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거친 물살에 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고 내년에 더 거센 물결이 올 텐데 10년의 힘으로 자리를 앞장서서 지켜야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이제는 ‘법당의 엄마가 되어라’ 하면서 양에서 음으로 공양간 같은 일도 좋다고 권하셨답니다. 윤여영 님도 멀리 있는 남편으로 인해 시간의 제약이 있지만 이 과제를 어떻게 잘 풀지 고민 중이라고 하니 왠지 꾀꼬리 목소리를 가진 엄마가 생긴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자이크 붓다 속에서는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쓰인다’면서 열심히 하든 천천히 하든, 놓치지 않고 끝까지 가라고 후배 도반들에게 전하고 싶답니다. 안 되는 속에서 길이 보이고 되는 일이 생긴다 하면서요. 지금은 대구연화회에서 봉사하고 있는데 65세 이상 보살님들이 한 달에 한번 모여서 금강경을 독송하고 당직을 서면서 두북수련원에 반찬 봉사하신다고 합니다. 다른 보살님들보다는 이른 나이에 연화회에 들어갔는데 그 일이 너무나 기쁘고 좋다면서 나이 들어도 이렇게 쓰일 수가 있구나 싶더랍니다. 우리는 필요한가 아닌가를 따지게 되는데 의병장도 의병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며 우리 모두 모자이크 붓다로서 끝까지 같이 가자면서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글_이영란 희망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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