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기흥법당
쌓인 잿더미 위에서 찾은 윤석훈 님의 행복한 삶

가을불대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환한 웃음을 짓는 윤석훈 님(가운데)
▲ 가을불대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환한 웃음을 짓는 윤석훈 님(가운데)

월요일 법회가 열리는 날, 석훈 님은 언제나 법당에 먼저 나옵니다. 흐트러짐 없이 방석을 깔고 한 분 한 분 오실 때마다 도반들을 가족처럼 맞았습니다. 소임을 나누어 주실 때도 조곤조곤, 점심 공양 때는 어찌나 정성을 다해 준비해 오시는지요.
제 눈엔 완벽한 정토행자로서의 석훈 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100일기도를 같이 참여하게 되면서 그녀가 정토회에 들어오게 된 계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나누기를 같이 공유할까 합니다.


남편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만났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제 심장이 뛰었죠, 내가 좋아하는 음악 시디를 사다 주기도 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5년간 사내 연애를 시작했어요. 빛나던 사람이었고, 언제나 유쾌했던 사람이었어요. 대신 제 마음 한쪽에선 그 사람 앞에서 자꾸 쪼그라드는 느낌이 있었죠.
첫사랑이던 그 남자와 결혼을 했어요. 그 남자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죠.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부도에 맞서 홀연히 삼 남매를 척척 키워 명문대를 졸업시킨 여장부였어요. 나는 이분들과 함께 오순도순 교회 다니며 평화롭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늘 교회 분들이 우리 집에 오면 시어머니는 제게 인사를 시키고 기도를 하셨어요. 착하고 순한 며느리를 주셔서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저는 착하고 순한 며느리는 되었지만, 내 남자의 아내 자리는 없었어요. 어머니와 아들의 사이는 견고했었어요. 나는 착해야 했고, 순해야 했었어요.

매섭고 서러운 나날들. 그 3년을 견디다 못해 결국 아이까지 어머니께 내어주고 나왔어요. 그러던 얼마 후, 10년간 아이를 보겠다고 그 집 근처에 웅크리고 살았어요. 매주 아이를 만나는 날만큼은 10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았죠. 그 아이에게 엄마인 내가 있음을, ‘엄마는 너를 버린 게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인지해주고 싶었어요. 매주 한 번도 안 빠지고 정해진 그 시간만큼은 아이를 만나러 갔습니다.

십 년 동안 의지처였던 친정엄마가 하늘로 떠나고, 몇 년 후, 친정아버지마저 떠났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제 마음속으론 너무 미안했어요. 부족함 없이 잘 자랐는데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잖아요. 엄마는 떠나시기 전까지도 얼마나 제가 마음에 쓰였는지, 그 시어머니의 성미를 알면서도 이제 그만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잿더미가 쌓인 제 삶에 지표를 가리킨 인연을 만났어요. 바로 정토회를 만난 거죠.

백중기도 철이 되면 어느 절이든 꼬박꼬박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올렸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불교가 무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이 절 저 절 돌아다녔지만 제 귀에 딱 들어오는 법문은 없더군요.
그즈음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어머니의 장례식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여러 문제로 조금씩 왕래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이었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어요. 남편이 갑자기 하룻밤 만에 떠나버린 거예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5개월쯤 지나서였던 거 같아요.
그렇게 남은 일을 수습하고 처리했어요. 그리고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을 데려올 수 있었어요. 시어머니가 키우던 내 아들을 이제 오롯이 내 곁에 키울 수 있게 되었는데도 가끔은 그 아들에게서 시어머니의 한 부분이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는 뭐랄까, 몸에 있는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게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랄까? 마치 암흑 속에 내던져진 것처럼 깜깜했어요.

그때 즈음 가끔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오는 법륜스님의 글을 읽었는데, 어느 날 불교대학 모집 글을 읽었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이 마감이더군요. 그날 바로 온라인 신청하고, 입학금까지 수납하고선 불교 공부나 하자고 생각했었죠.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니 어두운 방에서 십 년 만에 바늘만 한 빛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미련해서 이 정도는 거쳐야 이 귀한 법을 들을 수 있었나 봐요.

JTS 봉사 활동 중 도반들과 함께. 둘째 줄 오른쪽 두 번째가 윤석훈 님
▲ JTS 봉사 활동 중 도반들과 함께. 둘째 줄 오른쪽 두 번째가 윤석훈 님

처음 정토회에 와서는 법문 들으면서 펑펑 울기만 했어요.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내 안의 감정들과 정면으로 만났었죠.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 분노했던 마음, 그 응어리들이 108배, 300배, 천 배로 이어지는 절을 하며 숙이는 마음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만날 수 있는 고요함을 경험했어요. 그렇게 귀가 열린 후에는 나누기 때마다 마치 다 쏟아내듯 제 인생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그 이야기 들어 준 도반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합니다.
그 후, 운영하던 식당도 정리하고 정토회만 다녔어요. 불교대학 다니면서 막 불사한 기흥법당으로 옮겨와 수행법회 담당이며, 여러 봉사를 도맡아 하게 되었어요. 경전반 올라가고 불대 담당이 되니까 제가 받은 복을 회향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학교에 갔어요. 상담주간이었거든요. 담임 선생님이 제 아들 칭찬을 아끼지 않는 거예요. 친구들에 대한 배려, 인성, 됨됨이가 너무 잘 형성되었다면서요.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제가 불대 다닐 때부터 참회와 감사기도를 시작했지만, 그날은 더 절절히 기도했었어요.

“심성 착하고 반듯한 우리 아들 종민이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남편과 시어머니께도 감사기도와 참회기도를 했어요. 감사와 참회기도가 깊어질수록 제 삶이 가벼워졌어요.
스님의 법문에 감사드립니다. 수행, 보시, 기도, 봉사로 나를 단단하게 여물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석훈 님.
▲ 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석훈 님.

도반으로서 동지애마저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날이 행복해지는 수행자로서의 그녀가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글_이미정 희망리포터(용인정토회 기흥법당)
편집_전은정(강원경기동부)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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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지각대장인 제가 수행법회를 담당할때도 먼저 오셔서 정성스레 방석 놓아주시고 법회 준비해주신 석훈보살님~~^^ 그 예쁜 모습 마음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줄때 그 모습으로 따라하겠슴당! 마이마이 감사했어요_()_
기흥법당 희망리포터 소임 맡아주신 이미정 보살님~~! LTE급 속도로 정회원이 된 뒷배경~~ 불법을 향한 용광로도 울고갈 열정!! 늘 보고 배울께요~~^^

2016-09-09 13:10:04

이윤숙

석훈 보살님 여여한 수행자로 거듭나심을 축하합니다.깊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수행담 감사합니다. 리포터님께두요~~

2016-08-09 15:43:37

채송화

잔잔한 감동으로 눈시울이 시큰했습니다. 어떤 인연도 아름답고 고마운 인연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느껴집니다.
좋은 기사써주신 리포터님, 감사합니다~

2016-08-08 15: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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