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일산법당
매일 맞절하며 살아요! - 김우진 박정은 부부이야기

올해 초 나란히 불대를 졸업하고 경전반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김우진 박정은 부부. 얼마 전 인천으로 이사해 소속은 바뀌었지만 일산에선 유명한 분들입니다. ‘맑고 유쾌하고’, ‘귀여운’ 부부라는 수많은 증언들, 여기에 불대 졸업공연을 맡아 <무조건>과 <백세인생>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탁월한 예능감의 소유자란 사실을 듣는 순간, 아, 이번 리포트는 바로 이거다, 단박에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법당에 나란히 앉은 박정은 님과 김우진 님. 늘 방긋 웃는 모습입니다.
▲ 법당에 나란히 앉은 박정은 님과 김우진 님. 늘 방긋 웃는 모습입니다.

어떤 분들일까, 가볍게 마음내고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들뜬 마음을 내리며 가볍게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첫 눈에도 밝고 유쾌한 두 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올해 결혼 12년차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알콩달콩 달달한 분위기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리포터 : 전에 안무 같은 거 해보셨나봐요?
박정은 : 아뇨. 전혀 없어요.
리포터 : (!) 그럼... 학생 때 무도장 같은 데 많이 가신 거 아니에요?
박정은 : 저, 몸이 뻣뻣해서요 (웃음) 춤도 못 추고, 술도 못 마시고, 음주가무 이런 데는 전혀 재능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흘끔 옆을 보니 김우진 님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렇담,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무엇이 조신한 정은 님의 숨은 끼를 폭발시킨 것일까? 왠지 심상치 않은 징조를 느끼며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2016 불대 졸업공연 中 <백세인생>에 맞춰 모던한 부채춤 추는 일산법당 불대생들. 앞 줄 가운데가 김우진 박정은 부부.
▲ 2016 불대 졸업공연 中 <백세인생>에 맞춰 모던한 부채춤 추는 일산법당 불대생들. 앞 줄 가운데가 김우진 박정은 부부.

2005년 가을, 부부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우진 님이 멀쩡히 다니던 외국계 컴퓨터 회사를 그만두고 맙니다. 학창 시절에 읽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그 책을 보면 월급쟁이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부자가 되려면 투자나 사업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죠.”

당시 우진 님은 부모님이 거액의 빚을 져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부자가 되는 길을 일러주는 그 책은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월급 제일 많이 주는 직장을 골라 들어갔지만, 여전히 그 책의 메세지를 잊을 순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사시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지는 악운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그 집을 경매로 되산 우진 님은 도리어 꽤 괜찮은 차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 여기 길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경매공부를 시작했죠. 집을 몇 개 사서 팔고 그러다 임대를 놓기 시작했어요.” 우진 님은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떠날 생각을 했고, 정은 님도 이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합니다. 정은 님 역시 회사 일에 지쳐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시는 엄마아빠도 제가 설득을 했죠. 괜찮다고,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제가 좀 겁이 없었나봐요.”

정은 님은 신문사 편집기자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늘 꿈꿔왔던 기자일, 하지만 잠시도 틈을 주지 않는 격무 속에 어느새 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내가 뭘 위해 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회사의 부속품이 된 것 같았어요. 모든 스케줄이 다 회사에만 맞춰지고, 내가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았어요.” 이듬해 초, 정은 님도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싶어서 한 일, 하지만 그때부터 지옥이 펼쳐졌습니다.

 2005년 10월 결혼한 부부. 하지만 격변의 신혼생활이 이어집니다.
▲ 2005년 10월 결혼한 부부. 하지만 격변의 신혼생활이 이어집니다.

김우진 : 이 친구는 제가 집에서 너무 편하게 쉬고 있으니까 배가 아팠는지 (웃음) 자기도 그만 두겠다 했어요. 그래서 1년 반 정도 같이 집에 있는데
박정은 : (웃음) 지옥이었어요.

직장을 그만둔 정은 님에겐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회사 간판을 떼고 나니 남들에게 ‘나는 뭐다’라고 할 게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눈 뜨는 게 무서웠습니다. 눈 떠도 갈 데 없는 자신이 무가치하고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배우 배종옥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습니다. 거기서 ‘정토회’‘깨달음의 장’ ‘발견’했습니다.

“그걸 보자 미친 듯이, ‘나 여기 가야겠다’, 남편에게 ‘나 여기 가야겠다’ 하고 정말 미친 듯이 갔다 왔어요.”

깨장으로 잠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고통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제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본 서초동 정토법당은 왠지 낯설고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분위기가 뭐랄까 좀, 뻘쭘하고,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한 번 법당 나가고는 인연이 안 되더라고요.”

혼자서 지고 가는 ‘깨달음’의 약발은 한 달을 채 못 갔습니다. 다시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남편과 종일 집에서 보내는 하루를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박정은 : 결국 1년 반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갔어요.
리포터 : 남편을 못 견디고 복직하신 거네요?
박정은 : (웃음) 맞아요!
김우진 : (웃음) 맞습니다.
박정은 : 같이 집에 있는데 미치겠더라고요.

다행히 정은 님의 사람됨과 꼼꼼한 일솜씨를 좋게 본 직장 상사가 먼저 복직을 권유했고 정은 님은 다시 편집기자가 되었습니다. 돌아가서, 돌아갈 수 있어서, 잠시 즐거웠지만 그 행복감 역시 반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회사일은 여전히 고됐고 남편은 집안일엔 띄엄띄엄 이었습니다. 자꾸만 불만이 쌓여만 갔습니다.

우진 님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 가까운 서울 한복판에 집을 구하고, 매일 아침 차로 출근도 시켜주고, 나름 열심히 챙겼는데 정은 님은 짜증내고 우울해했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하나같이“니가 너무 잘해주는 거다”입을 모았고 아니야,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음속엔 불만과 상처가 쌓여갔습니다.

“내 가족만큼은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집착’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해도 이 사람을 만족시켜줄 수가 없더라고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
단 하나뿐인 식구인 아내가 ‘행복해야한다’는 집착... 하지만 정은 님 눈에는 우진 님이 모자라 보였습니다.

“자라온 환경의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집은 아빠와 남동생이 저나 엄마가 어디 갈 때 항상 데리고 가고 데려 오고, 이런 게 너무 당연했던 거예요. 그런 걸 부탁해야 한다는 것도 짜증나고, 저는 회사 나가는데 집안일을 부탁해야한다는 것도 너무 싫었어요.”

당연히 같이해야하는 거 아냐,
당신은 시간도 많잖아!
많으니까 당연히 해야지, 아니면
나가서 회사를 다니란 말야!

김우진 : 맞아! 그게 가장 컸다.
박정은 : 집안 일 하기 싫고, 나 데려다 주기 싫으면 회사를 가. 아님 회사를 가기 싫으면 사무실을 내건 뭘 하건 집에서 좀 나가란 말야, 이런 거... (웃음)

어느덧 회사를 그만둔 자신을 노려봤던 시선으로 남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안 나가도 좋으니 어디 번듯한 사무실이라도 내서 출퇴근하는 남편이 갖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남편 뭐하냐 물으면 뭐라고 하나,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에겐 또 뭐라 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마다 집에 있는 남편이 보기 싫어졌습니다. 작고 소소한 일들로 끊임없이 부부싸움이 이어졌습니다. 두 달 간 별거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떡하든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정은 님은 두 번째 퇴직을 결심합니다. 결혼 한지 10년 차인 2014년의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만 둘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었거든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그 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가 더 중요한 내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깐 직장도, 서울에 사는 것도, 별 의미가 없었어요.”

부부는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파주 운정으로 이사했습니다. 복잡하고 바쁜 도심을 벗어나 보니 다른 세상이 보였습니다.

김우진 : 운정 가니까 일단, 아이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박정은 : 젊은 부부도 많고 애 둘, 셋 있는 집이 즐비했어요.
김우진 : 저희가 좀 별나 보였어요. 서울 살 때는 별로 그렇지 않았는데요.

결혼한 지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일. 사는 게 바빠, 싸우는데 지쳐, 부러 생각지 않았던 일. 양가 부모들이 걱정해도 늘 귓등으로 넘기기만 했었는데 부부는 이제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은 님은 자연스럽게 일산 법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보다 남편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김우진 : 그때 저는 법륜스님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그 즈음 집사람이 스님 법문을 많이 들려주더라고요.
박정은 : 즉문즉설도 일부러 틀어놓고, 카톡으로 희망편지도 보내고, 맘에 드는 거 있음 막 읽어주고.. 하여간 자꾸 귀에 들리게 했어요.

정은 님의 은근하고 치밀한 공작(?!)이 주효한 것일까, 남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법륜스님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운정으로 이사한 이듬해인 2015년 봄, 부부는 나란히 일산법당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처음 불대로 남편을 인도했을 때 정은 님의 마음이 그리 순수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니가 변해야 돼, 너 가서 공부 좀 해, 이런 마음으로 남편을 끌고 갔어요. 불대 다니면서 다툴일이 생기면, 너 공부 한다면서 스님이 이렇게 가르쳤어? 너 공부 때려 쳐! 막 이랬거든요. (웃음)’
하지만 불대를 함께 다니면서, 어느 순간 부부는 늘, 서로 나누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둘 만의 나누기를 통해 많은 걸 깨치고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따로 따로 법문을 듣고 오면 한 주제로 얘기하기 힘든데 저희는 같이 수업 듣고 와서 나누기하는 거잖아요. 또 법당에서는 깊은 나누기가 안 될 때가 있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집에서, 둘이 좀 더 깊은 나누기가 되고... 또 도반님들 모습을 보면서 나누기가 되는 거예요. 그 속에서 나를 보고 또 예전 우리 모습을 보고, 그게 참 도움 됐던 것 같아요.”

2015년 불대 입학한 부부. 남편은 사회를 부인은 영상봉사를 맡았습니다. 담당 윤난영 님과 동기 도반들과 함께.
▲ 2015년 불대 입학한 부부. 남편은 사회를 부인은 영상봉사를 맡았습니다. 담당 윤난영 님과 동기 도반들과 함께.

나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스님의 명쾌한 강의와 부부간의 깊은 나누기는 그간 볼 수 없던 것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그치지 않고 싸웠던 둘의 문제를 이제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김우진 : 예전 저희 마음속엔 ‘집안 일 카운터기’ 같은 게 있어요. (웃음)
박정은 : 내가 더 많이 했어!! 하는...
김우진 : 나는 걸레질을 했고, 저 친구는 세탁기를 돌렸고, 그러니 내가 옳다, 니가 그르다 다투고... 그런데 요새는 그보다 믿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친구도 잘하려고 하는 거구나 하는 믿음. 뭘 하더라도 그 마음은 나와 같고 그저 선택이 다를 뿐이구나... 그러니 시비하지 말자, 그저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자, 그런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 기도 시간. 백팔 번 절을 할 때면 부부는 마주 보고 방긋 웃으며 합니다. 정은 보살이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던 무렵, 그 인연으로 알게 된 청견스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청견스님이 절할 때 방긋방긋 웃으며 하라고, 왜 부처님 앞에서 인상 쓰고 있냐고, 절도 방긋방긋, 경전도 방긋방긋 읽으라 하셨어요. 그 말이 너무 와 닿더라고요.”

그때부터 가끔씩 해왔던 거지만 이젠 일주일이면 서너 번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주보고 절하노라면 오래된 서로간의 원망이 녹아내렸습니다. 해묵은 상처가 터지고 아물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저한테 숙여서 절을 해주잖아요, 처음에는 당연하지, 너 나한테 굽혀야 돼, 이런 마음이 들었다가, 어느 정도 마음이 풀리고 나니까, 아 나도 당신한테 미안했어, 당신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했어, 절하면서 진심으로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불대에 입학하고 부부는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문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 불대에 입학하고 부부는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문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졸업이 다가 왔습니다. 법당마다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애초에 그런 문화(?) 활동과는 평생 관계없이 살아온 부부였습니다. 왜 그런 걸 해야 하지? 처음에 우진 님은 반발심이 올라왔다 합니다.

김우진 : 저는 사회 끝내고 화장실 갔다 오던 참이었거든요.
박정은 : 들어오지도 않고 (웃음)
김우진 : 난영 님이 공연 얘기 하시길래, 끝나면 들어가야지 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우진 님이 5인의 공연 준비단 일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근데 너무 투덜대는 거예요. 자기는 이런 거 할 줄도 모르고 어쩌구저쩌구... 제가 너무 머리가 아픈 거예요. 알았다고 내가 대신 대타 뛰어주겠다고...”

두통 대신 선택한 작은 호의가 엄청난 일로 돌아왔습니다. 정은 님이 공연 준비의 총책임을 맡게 된 겁니다. 노래, 춤과 관련해 아무 적성도 경험도 없는 정은 님에겐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괴로워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우진 님의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우진 님이 자진해 시범 조교가 되겠다 했습니다. 도반이 올린 <무조건> 유투브 영상을 함께 보며 열심히 춤과 노래를 익혔습니다. 그렇게 공연은 부부의 손과 마음을 거쳐 졸업 수련장에 올려졌습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꽤 좋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졸업식장에서 공연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 원래 여럿 앞에 나가는 거 못해요. 나가면 심장은 두근거리고 얼굴도 뻘개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한 번 하고 나니까 내가 좀 봐지더라고요. 너무 잘 하려해서 그런 거구나! 욕심이구나! 그래서 두 번째 부탁하셨을 때, 그냥 덥석 물게 된 것 같아요”

맡고 보니 공연 시간도 배로 많고 무대도 컸습니다. 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정은 님은 그 때 그 마음을 도반들에게 털어놓았다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정말 잘하고 싶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많이 도와달라고...

박정은 : 원래는 그런 말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완벽하게 혼자서 어떻게든 해놓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에요. 못하는 모습 남들에게 보여주는 걸 굉장히 자존심 상해하니까... 근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남들에게 보여주니까...
김우진 : 진짜 많이들 도와주셨죠.
박정은 : 어, 정말!
김우진 : 그냥 이 친구가 우는 것 같이 힘들다고, 모르겠다고 얘기했을 뿐인데
박정은 : 너무 많은 분들이 너무 열심히 도와주시는 거예요. 나중에 제가 이런 나누기했어요. 책에 그런 말 있잖아요. 온 우주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 나는 그 말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됐다고. 대체 누가 나를 도와 주냐고! 그런데 이번에 이걸 하면서 내가 눈이 깜깜해 못 봤을 뿐이지, 내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그렇게 졸업식에 노래와 부채춤을 올렸습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습니다.

2016 봄 불교대학 졸업식 공연
▲ 2016 봄 불교대학 졸업식 공연

올 여름, 인천으로 이사 갈 때까지, 일산법당에서 보낸 일 년 반의 시간... 우진 님은 자신에게 참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결정지을 때 지나칠 정도로 고민하고 따지고 계산하던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뭘 좀 하려고 해도, 주저하고 되돌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우진 : 예전에는 입버릇처럼, 싫다, 왜? 이런 표현 많이 했었어요.
박정은 : 이게 장점이자 단점인데요, 뭔가를 선택할 때 최악의 상황까지 다 계산해요. 그러니까 뭘 하려해도 안되는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에요. 깨장도 제가 빌고 빌어서 갔다니까요. (웃음)
김우진 : 일단 하라니까 따라는 하더라도 저는 원망도 잘해요. 거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박정은 :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은 거예요.
김우진 : 내가 이럴 수 있다고 미리 주의를 줬는데 너 이렇게 하다가 이렇게 됐구나.

좋게 보면 신중한 성격, 나쁘게 보면 답답한 꼰대기질. 하지만 이제는 ‘네, 하고 합니다’의 명심문을 따라 가볍게 해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그 성격 탓에, 지난 10년간 새로운 투자 기회만 기다리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지금이 답답하고 미래가 두려워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스님 법문 덕에 현재의 답답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털어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밥 먹었냐고, 저녁에 잘 집 있냐고, 지금 옷은 입고 오지 않았냐고, 그럼 무슨 걱정이냐 하시잖아요. 그렇게 스님이 중심을 잡아주시니깐 많이 편해졌어요. 사실, 돈 많은 친구들이 아이 교육 때문에 이사 다니고, 돈 쓰는 걸 보면, 제가 아직 아이가 없음에도 상당히 압박이 됐었거든요. 근데, 아이에게 먹일 밥 있고 입힐 옷 있고 같이 살 집 있으면, 그럼 된 거잖아요. 그렇게 잘 놀아주면 되잖아요. 공부 잘해서 꼭 좋은 회사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최근 부부에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정은 님이 아이를 가진 것입니다. 서울 생활 정리한 지 2년, 결혼 생활 11년만의 경사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정은 님은 인공수정을 두 번하고 시험관 시술을 두 번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부부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시험관하기 전날 친정엄마가 올라오셨어요. 엄마도 항상 새벽기도를 하시거든요. 잠결에 엄마 기도소리가 들렸어요. 늘 듣던 소린데 그날따라 너무 마음이 짠하고 감사한 거예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잠시 후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제가 절을 하다가 막 대성통곡을 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키우셨을까, 얼마나 고맙고 귀한 사랑인가, 정은 님은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했습니다. 놀라는 남편과 어머니에게 별 일 아니다 안심시키고 계속 절을 이어갔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쉼 없이 부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올라오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명상에 들었을 때 마음에 질문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부모는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지만 자식들은 그 마음을 모르고 도리어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한다. 그럼에도 너, 부모가 되고 싶은가?’ 그때 처음으로 간절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나 부모 되고 싶어요, 정말 간절하게 부모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리곤 부모님에 대한 참회의 마음이 정말 깊어졌어요.”

그날, 시험관 시술로 정은 님은 아이를 가졌습니다. 올 겨울 쌍둥이가 태어날 거라 했습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지만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한다.
그럼에도 너, 부모가 되고 싶은가?
...
그래도 나 부모 되고 싶어요!
정말 간절하게 부모가 되고 싶어요!!

부부가 준비한 아기용품들. 쌍둥이라 모두 두 벌씩입니다.
▲ 부부가 준비한 아기용품들. 쌍둥이라 모두 두 벌씩입니다.

결혼 10년 만에 품은 아이, 얼마나 귀한 인연일까요? 예정일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요즘, 부부의 아파트 베란다에는 벌써 아기 용품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구경해 보니 깨끗이 손질되긴 했지만 ‘반짝’ 거리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지인들이 쓰던 거라 했습니다.

“저도 제 자신이 좀 놀랍긴 하더라고요. 아, 나 쇼핑 완전 잘 할 수 있는데! 그치지 않고 할 수 있는데!! (웃음) 근데 예전에 스님이 그런 법문을 하셨어요. 나는 환경운동 통일운동 안 해도 된다고. 자식이 없으니까. 그런데 당신들은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 아이와 그 아이가 살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요즘 부쩍 정은 님은, 간절한 마음을 품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며칠 전까지 하늘이 완전 파랬잖아요. 근데 어제 오늘은 또 미세 먼지가 가득하고... 그냥 제 아이들이 커서도 저 파란하늘을 계속 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나 하나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조그만 보탬이라도 됐으면 해요.”

제 아이들이 커서도
파란하늘을 봤으면 좋겠어요!!
나 하나로 세상이 바뀌진 않더라고
조그만 보탬이 됐으면 해요.

정은 님은 지난 시간이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하다 말 합니다. 남에게 보이는 모양새가 중요하고 회사 일만 가치 있다 느꼈던 그 시간들 말입니다.

“불대 다니면서도 회사 그만두고 나서도, 밥하는 게 참 힘들었어요. 잘 할 줄도 모르고, 하기도 싫고... 그랬는데 이젠 나와 가족을 위해서 음식 만드는 일이 참 즐겁고 소중한 일이구나 해요. 어떤 계기로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제가 그렇게 변해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장보러가고 음식 만들고, 청소하고, 애기 태어날 준비하고 그렇게 하루가 가는데 그게 하나도 싫지가 않아요. 그 시간이 무의미하다거나, 나는 왜 아무것도 안하지 이런 생각도 전혀 들지 않고... 그냥 매 순간 순간 재밌는 거 같아요.”

올 겨울, 쌍둥이가 태어나고 네 식구가 된 가족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부부가 혼례식에 처음 보듯 방긋방긋 맞절을 하고, 아이들은 올망졸망 따라하는 가족의 아침이 떠올랐습니다. 절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지금 느끼는 이 따뜻함만큼 올겨울 세상의 온도는 올라가리라... 그렇게 우리는 세상의 희망입니다.

글_전우성 희망리포터 (일산정토회_일산법당)
편집_유재숙 (인천경기서부지부)

전체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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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자영

따뜻한 행복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부부에게 감동입니다 글도 어쩜 그리 잘 쓰세요 글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요 나도 예쁘고 따뜻한 사랑 만들어 가야겠다고 내 마음 물들입니다

2016-10-12 19:26:50

세자재김경님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 참 뭉클하네요
둥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실 모습이 그려지며 입가에 웃음꽃이 피네요
거사님! 약속하셨죠?
밤에는 꼭 혼자 조~용히 둥이들 양옆에 끼고 우유 먹이시길~~~ 보살님 옆에서 세상 모르고 새근새근!~^^

2016-10-09 16:19:58

순간

댓글을 달지 않을 수가 없네요..
눈물이 저도 막 나오더라구요..건강하게 순산하시고
행복한 엄마아빠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2016-10-09 11: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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