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서현법당
남다른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법회 담당 이심교 보살님 수행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흔히 '보살'에 비유합니다.
이심교 님의 수행담은 그런 어머니라는 이름의 보살심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엄마가 변해야 한다'
자식을 통해 인생의 빛을 발견한 이심교 님의 수행담을 들어보실까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2012년 가을 무렵, 28개월이 된 큰 아이가 자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저는 둘째 임신 8개월 만삭이었습니다. 혹시 둘째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까지 겹쳐 컴퓨터에 자폐의 ‘자’자만 쳐도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종갓집의 장남인 남편은 누구보다 아들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큰 아이가 태어나서 시댁 식구들은 모두 기뻐했습니다. 그랬었는데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발달 장애 자폐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결혼을 한데다 아픔만 주고 왔기 때문에, 친정 식구들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고도 싶었습니다. 아픈 이야기지만, 지금도 친정아버지는 저의 전화를 받지 않으십니다. 특히 막내인 저를 예뻐했던 큰 오빠는 새끼손가락 하나 잘라낸 셈 친다고 다시는 얼굴 볼 일 없다고 엄포를 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 아이를 데리고 친정집에 갈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사실을 아실까 두려웠고, 그로 인해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친정식구들은 큰 아이가 장애가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전 '친정 식구들 모두에게 준 상처가 고스란히 과보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 두 아이와 함께

어떤 과보든 받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건 너무 가혹하다 싶었습니다. 모든 감각이 둔한 큰 아이의 행동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표현하기 그렇지만, 동물보다 못한 아이였습니다. 차라리 애완견 한 마리 키우는 게 났겠다 싶었습니다. 강아지는 불러도 반응이라도 있고, 쪼르르 오기라도 하지만 큰 아이는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는 목석이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죽을 것 같았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말만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큰 아이를 데리고 죽고 싶었지만, 갓난아이 둘째를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큰 아이가 좋아지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갔습니다. 센터 치료는 물론이고 줄기세포까지, 할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했습니다. 천도제, 산신제, 용왕제, 그리고 스님에게 백일기도를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기대한 것과는 달리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실망과 허무함만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래 내가 하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새벽에 108배를 하겠다고 원을 세웠습니다. 끈기없고 남들에게 의지하려고만 했던 저였습니다. 6시에 기상하여 108배, 천수경, 반야심경을 읽으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로지 큰 아이가 좋아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백일, 또 백일, 또 백일, 여러 차례 기도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부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에서 바른 불교를 알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바른 불교를 알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작년 봄에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나의 집착과 욕심이 큰 아이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와서 아이를 보면 화부터 났습니다. 스님의 <기도> 책을 읽으며, 기도는 내려놓는 것이고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동안 거꾸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불교대학에서 경험한 <수행 맛보기>는 제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배 한 배 절을 할수록 온갖 잡생각이 다 올라왔습니다. 번뇌 망상을 끊어 보려고 관세음보살도 외쳐보고, ‘감사합니다’도 외쳐보고, 부처님 사진을 앞에 두고 기도해보고, 광명 진언을 외우며 절을 해봐도 잡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을 몸부림을 치다가 조금씩 ‘알아차리기-지켜보기-내려놓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하게 눈이 떠지는 것 같았습니다. <수행 맛보기>를 할 때부터 새벽 5시 기상을 하니 잠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큰 아이가 일찍 일어나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불대를 다니면서는 주어지는 것은 무조건 ‘예’하고 봉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지고 뿌듯했습니다. 봉사하면서 내어놓는 것보다 배우고 받는 게 더 많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접수봉사를 하면서, 맨 왼쪽이 이심교 님
▲ 부처님 오신 날 접수봉사를 하면서, 맨 왼쪽이 이심교 님

울산에서 분당으로 이어진 불교대학 공부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마음나누기야말로 저의 숨통을 터주었습니다. 큰 아이와 시어머니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제가 터놓을수록 가벼워졌습니다. 이렇게 불대의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지옥에 있던 저를 건져주었습니다.

조금씩 마음을 잡아가던 작년 6월 무렵, 발달학교와 생의학 공부를 하면서 큰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아이의 행동은 망가진 감각을 복구하고자 하는 자기 노력이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마음을 결정하고 큰 아이를 발달학교에 보내기 위해 작년 10월 초 바로 울산에서 분당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의 두려움과 불안, 두 아들의 육아까지, 남편에 대한 원망과 신세타령을 하면서 처음 제 모습으로 어느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니 두 아이를 독재자처럼 잡고 있는 나를 보았습니다. 큰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부터 안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현 법당으로 전학 신청을 하고 이어서 불교대학 수업과 수요법회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방황하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사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기도는 절대로 빼먹지 않았습니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더 악착같이 일어나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불교대학은 죽어가는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이 너무 좋아 다시 듣고 싶은 욕심에 경전반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봄 불교대학 영상소임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수요법회 담당자 자리가 비어 법회 담당도 맡게 되었습니다. 화요일 불교대학 수업으로 이론을 다지고, 수요법회 즉문즉설로 실생활에 적용하고, 목요일 경전반 수업으로 더 심도 있게 공부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극락이 따로 없습니다.

희망강연 책 판매 부스 봉사를 하면서
▲ 희망강연 책 판매 부스 봉사를 하면서

무던히 기다릴 수 있게 해준 수행의 힘

요즘 큰 아이를 보고 좋아졌다며 발달학교 선생님이 자랑하니 학교 엄마들에게서 뭐해서 좋아졌냐고 묻는 전화가 옵니다. 자기 아이의 문제를 나한테 물으니 안타깝습니다.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누가 어디 다녀서 좋아졌다 하면 자기 아이의 상태를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따라갑니다.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감각에 따라 다 다르므로, 자기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그에 따라서 꾸준히 해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수행의 힘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는 자기 욕심과 생각에 빠져 두세 달 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바로 옮기고, 변화가 없으면 또 옮기기를 반복합니다. 묵묵히 기다리지 못하고 옮기기만 하다가 중요한 시기를 다 놓칩니다. 무던하게 오래 하지 못합니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엄마가 문제입니다.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엄마가 변해야 하고, 엄마가 변하면 아이는 자동으로 변한다고, 아이를 공부시키려 하지 말고 엄마가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불교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큰 아이만 보면 화가 났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면서는 큰 아이에게 참회하기 시작했지만,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는 여전히 화가 났습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이게 다 기도의 힘입니다. 새벽마다 죽을 각오로 한 배 한 배 절하면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 00이는 복덩이입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나의 무의식을 자극하니 큰 아이의 행동에 화가 올라오다가도 입에서 ‘그래 우리 00이는 복덩이지’ 하며 화가 한풀 꺾입니다. ‘와! 나도 되는구나!’ 하고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입으로가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큰 아이를 쓰다듬으며 ‘우리 00이는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지금 잘하고 있어, 우리 00이는 다 이겨낼 수 있어, 다 극복할 수 있어, 엄마는 항상 00이를 믿어’ 라고 말해줍니다. 이런 아이들은 표현을 못 할 뿐 그런 육감은 더 뛰어납니다. 저의 진실한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에게 관심도 없던 녀석이 엄마를 찾습니다.

모둠장을 맡은 봄불대 수행맛보기 회향식, 앞줄 맨 오른쪽이 이심교 님
▲ 모둠장을 맡은 봄불대 수행맛보기 회향식, 앞줄 맨 오른쪽이 이심교 님

불교공부를 하면서 큰 아이에게 바라는 마음을 하나씩 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씩 비울수록 제가 더 가벼워지고 화를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과정을 즐기고 있습니다. 나에게 불법을 만나게 해주고, 나를 공부시켜주고, 큰 가르침을 준 큰 아이야말로 부처님의 화현입니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 꼬박 만 4년이 걸렸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정진하라는 스님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

글_엄지선 희망리포터(분당정토회 서현법당)
편집_전은정(강원경기동부)

전체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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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배워갑니다.()()()

2016-11-16 19:04:27

공덕장 손명진

부처님법 만남을 함께 감사드립니다
아이와 성불하십시오 ()

2016-10-21 06:29:22

이기사

이심전심!
고맙습니다_()_

2016-10-18 20: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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