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님은 아내가 먼저 손잡고 정토회에 가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법당 좀 그만 가라고 한답니다. 먼저 가자고 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그만하라고?! 부처님 앞으로 데려다 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김영호 님의 수행담입니다.

정토회에 가기까지

어릴 때 저는 제법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인물 났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아무 대학이나 갈 수 없어 대학을 포기하고 고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속에서 한계에 부딪히며 제 삶은 불만과 열등의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일과를 마친 후 동료들과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불만을 토로하는 일들이 일상이 되면서 어느새 술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다투는 일도 잦았습니다. 주로 일방적으로 혼났지만... 어느 순간 내 곁에 술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싶어 취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일정이 끝나면 또 술이었습니다. 모임에서 이성 간의 교류도 있다 보니 아내에게 의심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취미 생활도 괴로움만 쌓일 뿐 나와 가정의 행복에 보탬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제안해 왔습니다. 언니가 서울에서 정토회라는 곳에 다니는데 가르침이 참 바르고 마음공부에 좋다며 함께 다니자고 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몇 번 다닌 인연으로 불교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흔쾌히 동의하고 천안 법당을 수소문하여 찾아갔습니다.

불교대 입학

처음 법당에 갔더니 10평 남짓 작은 공간에 불상도 없이 동영상으로 강의한다고 해서 "아~~ 이건 사이비다"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현상 파악이나 해보려고 몇 번을 더 나갔습니다. 어느 순간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선배 도반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불상이 있고 없고를 떠나 참 가르침은 이곳에서 함께 봉사하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2013년 가을 불교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수행 맛보기 체험을 통해 처음으로 수행이란 걸 하게 되었습니다. 도반들과 돌아가며 모닝콜을 하고 잠에서 깨어 108배와 명상을 했습니다. 저는 평소 1시간 일찍 출근하므로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자 마음먹으니 자신이 있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

맛보기 체험하는 중에 제8-1차 입재식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도반들의 수행담을 들으며 감동을 하였고, 남들이 볼세라 손수건을 꺼내 들었습니다. 수행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참회하는 공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결심을 했습니다.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한 것이 없으니 앞으로 100일간 나와의 약속을 한번 지켜보자는 마음을 먹고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삼십 일쯤 지나니 매우 지루하고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백일을 꼬박 채우던 날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이제 그만 해야지 그리고 백일 했으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겠지 했는데 아무런 변화도 복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3~4일이 지나고 가족과 여름 캠핑을 갔습니다. 자연 속에서 호흡한다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몇 잔 마시고 나니 기분이 한층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절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밖에서 산책하라 하고 텐트 안에서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7~80배쯤 했을 때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도 그때 왜 눈물이 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불심이 생기고 스스로 참회할 일이 많아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북한산 국녕사에서 두 손 모아 나라의 안녕과 평화 통일을 염원▲ 북한산 국녕사에서 두 손 모아 나라의 안녕과 평화 통일을 염원

불교대학 담당자로

그렇게 그해 여름을 보내고 불교대를 졸업하면서 선배 도반들의 권유로 불교대 담당을 맡게 되었습니다. 법당을 옮기면서 봉사 인력이 부족하던 터에 영광스런 소임이 주어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담당자는 깨달음의장을 필수로 다녀와야 해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수련원에 갔습니다. 풀 한 포기, 티끌 같은 내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를 돌아보고 내려 놓고 참회하고... 그렇게 기도문이 달라졌습니다.

기복을 바라지 않고 참회와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한 지 1년,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욱! 올라오는 화는 잘 제어되지 않았습니다. 또 기도하면서 돌아보고 참회하고... 간혹 아내한테 정토회 다니는 사람이 변한 게 없다고 핀잔을 듣습니다. 예전 같으면 반사적으로 대응했을 텐데, '그래 아직 더 해야지.' 어느 순간 내려놓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정토회 다니는 것을 알기에 정토회를 욕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명감이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얼굴 편해졌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제 천일기도도 두 달여 남았습니다. 천일만 채우면 기도 그만할 거다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렸었는데, 아내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어져 온 수행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업보를 씻고 변해 가는 중입니다.

동북아 역사 기행과 통일의병

올해, 인생에 기억할 만한 동북아 역사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어느 날 역사기행 안내 영상을 보면서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기 통일의병 교육을 이수하면서 많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배달민족 6천 년의 역사를 알게 되고, 찬란했던 홍산문명, 발해의 웅대한 꿈, 시련기의 민족사, 광복독립운동 등 마치 역사 속에 제가 있는 듯했습니다. 근무 여건상 맡은 책임도 있고 9일 간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았지만, 1년 전부터 준비하고 후배에게 인계하면서 감동스런 역사 현장에 마침내 설 수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일정과 무더위에 몸은 파김치가 되고 분별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사흘 정도 지나니 스님이 걱정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정을 함께 하며 열정적으로 안내하고 강의하는 모습이 겸허하게 느껴졌습니다. 압록강을 따라 백두산을 향해 가며 부르던 백두산 노래와 북녘땅의 우리 동포들 너무도 많은 감동을 하고 통일을 염원하였습니다.

천안법당 도반들과 동북아 역사 기행 중, 맨 왼쪽 김영호 님▲ 천안법당 도반들과 동북아 역사 기행 중, 맨 왼쪽 김영호 님

그 인연으로 법당에서 통일 학교 및 의병 교육 진행자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수행법회에서 집전 봉사도 하고 있어 요즈음 법당 나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아내가 제게 법당에 너무 많이 나가는 것 같으니 그만 나가라고 합니다. 손목 잡고 법당에 데려간 사람이 누군데 그런 말 하는 건지.

5기 통일 의병학교 담당 소임을 맡은 맨 뒤 줄 김영호 님▲ 5기 통일 의병학교 담당 소임을 맡은 맨 뒤 줄 김영호 님

982일 째 수행 중

정토회와의 인연이 올해로 3년째입니다. 더는 열등감이나 시비하는 마음도 없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며 긍정 마인드로 변한 것일 테지요. 그러나 아직도 갈 길 먼 수행자입니다. 살아 있는 날까지 수행은 지속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 앞으로 데려다준 아내에게 고맙고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는 스님께 한량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영호 님은 2016년 11월 28일 현재 982일째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호 님의 천일기도를 응원합니다.

아내와 함께 북한산에서▲ 아내와 함께 북한산에서

글_김영호 님(천안정토회 천안법당)
정리_ 전혜영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천안법당)
편집_함보현(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