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일산법당
겨울기도의 참맛! 임진각으로 오세요!! - 영하 20도에도 얼어붙지 않는 비결

영상 3도와 영하 3도 사이

3℃

새벽 3시 반. 차에 시동을 켜고 확인한 바깥 기온이었습니다. 1월 정초라면 분명 혹독한 겨울의 한복판이어야 하는데... 아, 이런 이런! 맘속에 아쉬움의 탄식이 절로 일었습니다. 영하 15도, 20도쯤 되는 혹한 속에서 정토행자는 어떻게 얼어 죽지 않고 정진을 이어갈 수 있는가, 감동의 리포트를 전하려했던 애초의 기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벌써 7년째 임진각에서 이어지고 있는 통일기원 300배 정진. 그 중에서도 특히 임진각의 겨울은 혹독하기로 유명해 수많은 감동적인(!) 하지만 결코 내 것으로 하고 싶진 않은(!!) 수행담을 만들어왔습니다. 너무 추위서 핸드폰이 저절로 꺼진다는 둥,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깨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둥, 옷을 6겹은 껴입어야 한다는 둥, 그러고도 너무 추워 앉지도 서지도 절하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었다는 둥... 하지만 그 모든 경악스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수년째 임진각의 사계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몇몇 기도자들의 이야기는 추위에 약한 리포터의 마음속에 믿을 수 없는 전설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이 얼토당토않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해야겠다! 야심차게 뜻을 세웠건만 하필 봄날 같은 날씨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 한 편으론 다행이다... 이런 마음이 일었습니다.


▲ 임진각에 도착하자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습니다.

- 3℃

임진각에 도착하자 대번에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일산 우리 동네와 비교하면 6도나 더 추운 것입니다. 여느 겨울날이라면 어떨까! 순간, 임진각의 겨울이 어떤 것인지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새벽 5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캄캄하고 차가운 공기 너머 별빛만 창창한데, 망배단 앞에는 벌써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담당인 일산법당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해 촛불을 밝힙니다. 어둠 속에서도 익숙한 손놀림입니다.



▲ 과일과 차, 그리고 스님의 책을 제단에 올립니다. <새로운 100년>과 함께 작년 가을부턴 <행복>도 함께 올리고 있습니다. 남북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지런히 기도 준비를 하는 동안, 대남방송인지 대북방송인지 알 수 없는 확성기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방송인가?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 방송인가? 그런 것 따윈 중요치 않다는 듯 그저 격앙된 확성기 속 음성이 행진곡풍의 음악과 함께 남과 북의 하늘에 웅웅대고 있었습니다. 어리석구나! 우린 참 어리석구나! 하는데, 순간

“탁-탁-타-데-구-르-르”

맑고 청아한 목탁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습니다. 분노와 공포에 사로잡혀 서로 알수 없는 소리만 지르고 있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치기라도 할 듯이, 정결하고 고운 소리였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300배 정진, 2017년 첫 번째 기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차갑게 식은 남과 북의 하늘에 고운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 반야심경 봉독과 발원문 낭독에 이은 300배 정진이 겨울추위를 녹입니다.

겨울치곤 따뜻한 날씨임에도 내복과 히트텍, 방한용 패딩조끼와 두터운 파카까지 걸치고 온 터였습니다. 그래선지 절을 하면서는 덥고 땀이나 파카를 벗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작 문제는 두터운 등산용 양말 하나만 걸친 발이었습니다. 시리다 못해 불편한 감촉, 앉고 일어설 때마다 추위에 마비되어 가는 발끝을 울리는, 기분 나쁜 통증이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여기는 따뜻한 거예요. 저기 너머는 더 추워요. 그니까 여기 와서 그걸 깨닫는 거예요. 더 추운 곳에 동포들이 살고 있다는 걸... 거긴 옷도 식량도 없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서 외면했었잖아요. 임진각 기도 덕에 한 번에 딱 깨닫게 되요.”
임진각 기도의 터줏대감격인 이영실님(파주법당)의 이야기가 단번에 몸으로 전해져왔습니다. 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게 깨칠 수 있다면 좋으련만!!


▲ 300배를 마치고 깊은 명상에 듭니다.


▲ 각자 마음 속에 소망의 촛불을 하나씩 품고 정성을 다합니다. 춥고 고달프지만 그래서 기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유영옥님(일산법당).
두터운 파카와 목도리, 담요로 중무장한 모습들. 남북의 화해를 염원하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 ‘우리의 소원’을 부르며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마주 잡은 손과 손 사이로 간절한 염원이 함께 흐르며 커져갑니다.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도반의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어느새 추위도 발끝의 불편함도 사그라집니다. 벌써 7년째,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울려 퍼지는 이 노래... 이 모든 게 시작된 것은 사실 어느 한 사람의 지극한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정토회 월광법사가 된 당시 유애경님 한분으로부터 시작된 임진각 기도

2011년, 천안함 참사와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가 위기로 치닫던 그 해 겨울. 지금은 정토회 월광법사가 된 유애경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었습니다. 혼자서라도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생각한 그녀가 선택한 것이 임진각에서 올리는 화해와 통일의 기도였습니다. 전날 일산법당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에 임진각에서 기도하는 험악한 일정. 오전에 잠시 한숨 돌리곤 곧바로 광화문으로 나가 거리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를 이었습니다. 한주도 빠짐없이 계속되는 유애경 님의 지극한 마음은 일산법당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자연스레 유애경님의 임진각교통편 마련을 위한 봉사자가 꾸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인연으로 2013년부턴 일산 법당이 임진각 기도를 이어받았습니다.


▲ 2012년 겨울, 기도를 마치고 도반들과 함께 한 유애경 보살 (왼쪽 세번째) (출처 : 현대불교)

2015년 광복절을 기점으로 임진각 기도는 일산법당만의 행사가 아닌 정토회 인천경기서부지부 전체의 사업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지금은 첫째주 일산, 둘째주 부천, 셋째주 광명, 넷째주 파주, 다섯째주 안양의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한 주씩 기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기도가 끝나고, 알 수 없는 확성기소리도 잦아든 고요한 시간... 각자의 마음을 밝히던 촛불을 한곳에 모아, 마음을 나눕니다.


▲ 나누기 시간. 촛불을 온기삼아 오손도손 마음을 나눕니다.

바로 일주일전, 이곳에선 정토회 주관으로 새해맞이 만배 정진이 있었습니다. 2010년부터 벌써 7년째 이어져온 전국 단위 행사입니다. 제주, 대구, 마산 등지에서 총 120명의 정토행자들이 참가했습니다. 이렇다 할 편의시설도 없는 임진각에서 그것도 추운 겨울 3일씩이나 계속 절만 하다니!! 여기에 참가했던 안홍근님이 먼저 마음을 내놓았습니다. 만배 정진의 여운이 아직도 가득한 목소리였습니다.

안홍근 : 작년 8월 15일날 (임진각에) 처음 와봤어요. 우리의 소원도 부르고 태극기도 흔들고... 그러다 지난주엔 만배 했는데 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통일 생각 같은 건 전혀 못했고요, 어떻게 하면 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웃음) 그런데 앞에 대구에서 올라오신 보살님이 계셨는데 저보다 더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얼마 안 있으면 주저 앉으시겠구나... 나는 그때 같이 쉬어야겠다! (웃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오, 정말 끝까지 하시는 거예요. 그런 도반님들 모습 보면서 많이 감동 받았어요.

이어서 최근에 새롭게 합류한 김종각님이 마음을 나눴습니다.

김종각 : 어제 오늘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이럴까 저럴까 아무리 해도 정답은 없더라고요. (웃음) 아, 그냥 모르겠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가보자... (웃음) 촛불도 한 개 두 개 있을 땐 외롭고 밝기도 약했는데 모이니까 더 밝고 따뜻한 것처럼 한 사람이라도 더 보태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자는 발원문이 유난히 감동이었다는 정인님의 마음이, 기도를 시작 하고서야 통일이 내 삶의 문제로 다가왔다는 박정란님의 고백이, 임진각 추위 덕에 기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유영옥님의 통찰이 이어졌습니다, 남과 북만이 아니라 다문화가정에도 우리의 관심이 절실한 것 같다는 이영실님의 체험담이, 그리고 4년째 임진각 기도를 이어가고 있는 주정희님의 추위를 이기는 깜짝 비결이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주정희 : 대부분 추우니깐 옷을 여러 겹 입을 생각만하지 손발은 놓치거든요. 그런데 사실 몸은 그럭저럭 견딜만 한데 발은 양말을 세 겹을 신어도 엄청 시릴때가 있어요. 그런데 둘째 해 겨울에 정인 보살님이 방한화를 하사하신 거예요.


▲ 겨울 임진각 정진의 필수품 방한화

주정희 : 저도 추위 엄청 타는 체질인데 그 방한화를 신고선 아무리 추워도 견딜만 해졌어요. 그래서 늘 정인보살님께 감사하죠.
안홍근 : 저는 만배 첫날에 핫팩을 발바닥에 붙였어요. 너무 발이 시려워서. 오늘은 안 붙였더니 시렵네요.
리포터 : (솔깃) 오, 핫팩을 발에 붙이면 좋은가요?
안홍근 : 네. 엄청 도움이 많이 되요. 발가락있는 발바닥에 붙이니까 온돌위에 서 있는 것처럼 좋더라고요.

이때 핫팩은 일회용품이니깐 사용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이영실님이 제안했습니다. 아쉽게도 핫팩에 대한 제 궁금증은 여기서 멈춰야 했습니다. 아, 역시 지독한 사람들이다! 그 철저함에 몸서리치다가 문득 바보 같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캄캄한 임진각에서 매주 이렇게 모여 극한의 추위를 경험하고 기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통일에 도움이 되긴 하는 걸까? 된다면 어떻게?’

이영실 : 도움이 되죠. 내가 바뀌니까... 내 마음이 바뀌니까... 내가 바뀌면 주변도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주정희 : 사실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얼마나 달라질까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거든요. 그렇긴 하지만 처음 한 사람, 민들레 홀씨가 뿌려져서 여러 사람들이 참여를 하고 큰 강줄기를 만들어 가듯이 이런 노력이 통일을 이루는데 작은 씨앗이 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굉장히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이영실 : 여기는 특히 번뇌가 많은 사람들에게 권해줄만해요. 왜냐하면 추워서 정신이 확 들거든요. (웃음) 그래서 임진각 기도는 겨울이 본 시즌이에요. 통일정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진수예요.

참고로 임진각 기도는 온 세상이 얼어붙어도,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몰아쳐도 쉬는 법이 없다합니다. 그러니까 어렵게 마음 냈는데 다음날 일기예보를 보며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답니다.

주정희 : 비오면 저 처마 밑에서 해요. 비오는 망배단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그게 또 그렇게 운치가 있을 수 없어요. 저기 저 버튼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데 아시죠?
이영실 : (노래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유영옥 : 나는 제목도 모르고 그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웃음)
리포터 : 잃어버린 30년이요.
주정희 : 그 노래 들으면 딱 우리 같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리포터 : 날씨가 힘들면 더 좋은 거네요.
유영옥 : 아무래도 각오나 다짐 같은 게 더 생기는 것 같아요.

7년 전, 한 사람의 지극한 마음으로 시작한 통일기도는 이제 임진각 뿐 아니라 강화의 통일전망대와 경주에 사천왕사지, 창원의 봉림사지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모아내고 있습니다.
아, 아무리 남북관계가 꼬이고 분단이 영원한 것 같아도 우린 그냥 멈춰선 게 아니구나. 한사람 한사람의 기도로, 각자의 마음이 모이고 구비치고 흘러서 통일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구나... 취재를 마치며 통일이 코앞에 다가온 것 같은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여러분, 통일기도의 진수, 임진각의 겨울로 오세요!


▲ 정진을 마치고 기념촬영. 왼쪽으로부터 안홍근, 리포터, 주정희, 유영옥, 김종각, 이영실, 박정란

글 | 전우성 희망리포터 (일산정토회 일산법당)
편집 | 한명수 (인천경기서부지부 편집 담당)

전체댓글 12

0/200

악바리

소름 쫘악ㅡ추운데... 난 못 해.
감동 쫘악ㅡ돈 되는 일도 아닌데.
난 못 해.
눈물 쫘악ㅡ내가 못 한 걸 해 주시니.
짝짝짝...

2017-02-11 22:50:17

한명수

완전 실감나네요^^ 글만 읽어도 여러가지 체험이 되네요.
추우니까 북한 사람의 입장을 더 깨달을 수 있다는...
번뇌가 많은 사람에게 좋은 정진이라는 말씀이 많이 와닿습니다.

리포터가 작가인이신 같아요~^^

2017-02-11 12:30:24

지현맘

영상 3도와 영하 3도 사이 통일정진에 대한 잼난 무협만화 한편 본 듯 합니다. ㅋㅋㅋ
전우성거사님 맛깔나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경 각지역 도반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2017-02-10 16: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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