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결사 8차년 회향 기간, 지난 차수를 돌아보고 수고한 활동가들을 소개하기 딱 좋은 시기. 떠오르는 대상자가 적지 않은 것은 북미동북부지구를 담당한 희망리포터의 복이라면 복입니다. 그들 중 연임 2회로 6년의 소임을 꽉 채우고 회향하는 두 분을 초대했습니다. 뉴욕정토회 총무 소임을 마친 후 9차년 해외지부 사무국 국장 소임을 맡게 된 이정인 님이 직접 인터뷰어(interviewer)가 되어 뉴욕정토회 대표 소임을 맡았던 차효순 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이정인 총무(왼쪽)와 대담중인 차효순 대표. 6년간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의 소통방법은 고수의 그것.
▲ 이정인 총무(왼쪽)와 대담중인 차효순 대표. 6년간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의 소통방법은 고수의 그것.

7차와 8차에 걸쳐 뉴욕정토회가 뉴욕, 뉴저지, 맨해튼 3개 법당으로 확장되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을 법하지만, 차효순 대표와 이정인 총무는 뉴욕정토회를 화합과 상부상조의 분위기 속에서 탄탄하게 발전시켜온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는 섭수와 절복을 겸비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뉴욕정토회 활동가들의 성성했던 분별심과 상처를 어루만지며 원칙에 충실한 수행공동체를 일구어 구성원들의 헌신을 끌어냈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는 관계 맺음과 소통방식은 그 자체로 활동가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두 고수의 이야기 나눔이 실타래처럼 술술 엮여 나옵니다.

활동가들을 후원하며 위로와 에너지를 주는 차효순 보살님, 2015년 뉴욕총무단 숙박회의 후 3개 법당 부총무들과 함께. 이들은 9차에도 모두 부총무직을 연임한다(왼쪽부터 맨해튼 임금이, 뉴욕 권영미, 차효순, 뉴저지 이영숙 님)
▲ 활동가들을 후원하며 위로와 에너지를 주는 차효순 보살님, 2015년 뉴욕총무단 숙박회의 후 3개 법당 부총무들과 함께. 이들은 9차에도 모두 부총무직을 연임한다(왼쪽부터 맨해튼 임금이, 뉴욕 권영미, 차효순, 뉴저지 이영숙 님)

정토회 인연

정인: 안녕하세요? 보살님. 제가 한국에서 백일출가를 마치고 1년간 활동하다 2009년 9월 뉴욕으로 돌아오니 그때 보살님이 법당에 계셨습니다. 정토회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효순: 26년 전인 1991년, 법륜스님께서 뉴욕의 절을 순회하며 강연하실 때 조계사에서 처음 뵀습니다. 당시 저는 신도는 아니었지만 인근에서 비즈니스를 하며 지역 상공회의소 이사직을 맡아 경찰서장이나 동네유지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는데, 동네 건달들이 조계사 벽에 낙서하거나 절 밖에서 소란을 피울 때면 도와주느라 자주 방문하곤 했어요. 그날 강연에서 ‘서울로 가는 길을 인천에서 물으면 동쪽, 강릉에서 물으면 서쪽’이라고 하셨던 말씀이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뉴욕정토회는 1994년 설립되었고 저는 우리 딸과 같은 학교 학부모였던 이연순 님이 총무를 할 때 깨달음의장(깨장)을 권유 받아 다녀온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2003년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법당이 없어서 고복순 님 집이나 비영리 단체에 무료로 장소를 대여해주던 ‘열린공간’을 전전하며 법회를 했답니다.

초기 가정법회 장소로 집을 내어 놓았던 고복순 보살님(가운데)의 칠순 잔칫날, 2012년
▲ 초기 가정법회 장소로 집을 내어 놓았던 고복순 보살님(가운데)의 칠순 잔칫날, 2012년

신여성, 미국에서 깨장할 줄이야

정인: 미국 이민이 개방되기 전인 1960년대 미국에 유학 온 신여성으로 당시 비즈니스도 잘되고 지역사회 활동도 활발하게 하며 성공적인 미국생활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깨장을 가게 된 계기와 다녀오신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효순: 외국어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며 중남미 문화에 관심이 많던 차에 1964년 국비유학생으로 콜롬비아에 유학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엄마가 반대하실 것 같아 축음기를 사들고 가서 외국에 나가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많다고 꼬셨더니 ‘나가서 한번 마음껏 살아봐’라며 승낙을 해주셨어요. 일본부터 플로리다까지 다섯 번을 경유하는 콜롬비아 행 비행기에서 당시 콜롬비아 법무부 장관이 옆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운명적이라 할 수 있는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지도층에 있는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지요. 그들에게 요가를 배워 가르치기도 하고 한국 문화 사절 역할도 하며 상류사회의 생활을 경험하고 그 인연으로 또 68년에 미국으로 와 뉴욕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건축회사에 다니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비즈니스도 하며 굉장히 바쁘게 살았는데, 그런 중에도 제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던 무엇이 있었나 봐요. 깨장을 가기 전 어느 해, 잘 나가던 비즈니스를 정리하고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계단에 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뉴욕을 방문한 지인들을 박물관 계단 앞에 데려다 주길 수 차례, 그러나 정작 나는 바빠서 한 번도 안에 들어가 보질 못했거든요. 한국을 떠난 이후의 복합적인 감정이 폭발했던 것 같아요. 뉴욕에서 유수 스님과 깨장을 하며 세상을 너무 좁게 보고 내 앞만 보고 살았구나 하고 자각하게 되었어요. 이후 불교대학도 하고 경전반도 마치고 정토행자로 살게 되었으니 정말 복 많은 사람이지요.

댄서의 여왕, 차효순 님이 원어로 부르는 베사메무초 들어보셨나요? 2013년 뉴욕법당 송년회에서
▲ 댄서의 여왕, 차효순 님이 원어로 부르는 베사메무초 들어보셨나요? 2013년 뉴욕법당 송년회에서

긍정 또 긍정…. 그리고 보살님의 맛난 보따리

정인: 저도 한국에서 돌아온 후 보살님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습니다. 보살님께서는 부정적인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안 좋은 상황도 비관적으로 보거나 비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정토회에서 일어나는 일만 해도 처음에는 보고한다는 생각을 못했고 사소한 것으로 생각되어 방관하며 보고를 잘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보고하고 여쭈어보며 상호 소통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보살님께 배웠습니다. 그 사이 서운한 점도 많았을 텐데 한 번도 질책하지 않고 지켜봐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눈물 한 방울…)

효순: 정토 사람들은 일을 맡으면 열심히 긍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정인 보살은 조용히 자기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이어서 지도자로 적격인 것 같아요. 이번에 국장 소임 맡게 된 것 축하 드립니다. 6년 전 나에게 대표하라고 했을 때 나는 굉장히 기뻤습니다. 책임감을 느끼고 어려움을 예상했기 때문에 수행이 되겠구나 생각했고,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내가 대표가 될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 특히 법륜스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자신감과 즐거움을 주었어요.(하하) 그때만 해도 영어와 스페인어에 문제가 없고 건축을 공부했으니 뉴욕에 수련원을 건립하겠다는 불사의 원을 세웠지요. 시장조사도 많이 했지만 제도적인 면을 포함하여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엔 시간이 필요해서 이루어내지 못했어요. 아직 내가 힘이 있으니 대표직 여부와 상관없이 언젠가는 실현할 꿈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전날 내린 폭설로 주차가 힘들었던 인터뷰 날, 조심조심 빙판길을 걸어오신 보살님은 이날도 어김없이 보따리를 열어 털목도리에 둘둘 싸 온기가 여전한 쫄깃한 찰옥수수를 꺼내주셨습니다.
▲ 전날 내린 폭설로 주차가 힘들었던 인터뷰 날, 조심조심 빙판길을 걸어오신 보살님은 이날도 어김없이 보따리를 열어 털목도리에 둘둘 싸 온기가 여전한 쫄깃한 찰옥수수를 꺼내주셨습니다.

정인: 네, 보살님. 앞으로도 지켜봐 주시고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8차년에 팀장 회의에 참석해서 아무런 말씀도 않고 듣고만 있다가 의견이 분분할 때면 결정적인 조언을 해주곤 하셔서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챙겨오시는 먹거리는 저희의 큰 즐거움이었어요. 보살님 오시면 손에 든 보따리에 눈이 먼저 갔으니까요.(하하) 법륜스님과 법사님들 오실 때마다 도시락을 손수 챙기고 주요 행사 때는 재료부터 일일이 구매하셨고요. 2015년 뉴욕 명상수련 때 똑같은 크기의 감자와 사과를 사기 위해 도매시장에서 한 알 한 알 수백 개를 고르신 일화는 유명하잖아요.(하하) 명상과 연이은 행자대회에서 공양팀장으로 세계 각지에서 온 바라지들과 갈등 없이 화기애애하게 공양간을 잘 이끌었다고 스님 칭찬도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일을 하며 힘들었던 점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또 의욕적으로 현역에서 일했는데 소임을 내려놓으면서 서운한 마음은 없으신지요?

2015년 뉴욕 명상수련과 해외 행자대회 공양팀장으로 바라지장을 화기애애하게 이끈 차효순 님
▲ 2015년 뉴욕 명상수련과 해외 행자대회 공양팀장으로 바라지장을 화기애애하게 이끈 차효순 님

엄마처럼 훌륭한 사람 없어요

효순: 일 년에 한두 달 한국에 가 있을 때 정인 보살에게 국제전화를 수시로 하긴 했지만, 정토회 대표로서 잘 챙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소임을 내려놓는 지금이 가장 힘든 것 같은데요.(하하) 임기를 마친다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도 들고, ‘대표님’에서 그냥 ‘노인네’로 보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는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니 시원한 마음도 듭니다.
정토회에서 얻은 행복을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좀 더 돌려주고 싶어요. 정토회를 만난 후 남편과 가족이 더욱 소중하고 가깝게 다가왔는데 마음만큼 신경을 써주지 못했거든요.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끌려갔는데, 지금은 나를 존경하고 따르는 경향이 있어요. ‘이 세상에 우리 엄마처럼 훌륭한 사람이 없다. 다른 친구들은 직장이나 남편 등 매일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문제가 없다. 엄마가 가르쳐 준 것이다.’고 말하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지요.

정인: 보살님이 예비 사위가 결혼 허락 받으러 왔을 때 ‘다른 건 필요 없다. 우리 딸이 아이를 낳으면 최소 3년은 육아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신 말씀은 법륜스님의 법문에도 인용이 되었지요. 그 약속 덕분에 따님이 세계 최대의 회계법인인 언스트 앤 영(Ernst & Young )의 고위 간부임에도 지난해 출산하고 휴직을 할 수 있었고요. 법문을 실생활에 적용하신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그 집의 기둥인 어머니가 살아만 계셔도 집안이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살님께서 법당의 어른으로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푸근합니다. 오늘 장시간 즐거운 대화 감사합니다.

궂은 일 마다하지 않는 차효순 보살님, 곁에만 계셔도 푸근합니다. 2016년 뉴욕법당 김장날
▲ 궂은 일 마다하지 않는 차효순 보살님, 곁에만 계셔도 푸근합니다. 2016년 뉴욕법당 김장날

저는 5년 전 정토회에 갓 나오기 시작했을 때 차효순 보살님과 같은 차를 타고 워싱턴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가는 9시간 동안 이것저것 여쭈며 한국 떠난 지 55년간의 영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은 재미한인사(在美韓人史)로서 기록에 남겨야 한다', '제가 언젠가는 쓰겠다'고 무심코 뱉었던 말이 현실이 되어 신기하고 기쁩니다. 조선처녀 콜롬비아 상륙기, 인도성지순례 기간 중 스님께 유창한 원어로 헌정한 노래 <베사메무초> 이야기 등 지면과 표현의 부족으로 그 많은 재미난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다 전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보살님에 대한 바램으로 대신합니다.

차효순 보살님! 지금처럼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글_백은주 희망리포터(북미동북부)
편집_김지은(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