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영등포법당
1000일 봉사의 공덕으로 다시 시작된 인생, 영등포법당 권정희 님 인터뷰

안녕하세요, 영등포 법당 희망리포터입니다. 오늘은 정토회 불교대학 입학을 시작으로 1000일간 수행 보시 봉사를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영등포 법당의 권정희님을 인터뷰했습니다. 권정희님은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정토회의 봉사소임을 일찍 시작했습니다. 여러가지 내적, 외적 갈등으로 소임을 그만두고 법당을 뛰쳐나갔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 비난이나 질책이 아닌 기다림과 격려로 보둠어 준 도반들 덕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같이 권정희님의 1000일 수행담 함께 들어볼까요?

희망리포터: 정토회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권정희님: 2013년에 양천 법당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불교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던 마음의 괴로움을 조금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것과 심리 상담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교대학을 다니면 왠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6개월 정도 공부를 했을 때, 양천법당 자원 활동 팀장 소임을 맡아보라고 해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소임을 하는 동안 도반들에 대한 분별심이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울면서 때려치웠다가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희망리포터: 그만두셨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권정희님: 처음엔 굉장히 편했어요. 그런데 한 달쯤 지나고 나니 업식이 올라와 너무 우울했습니다. 경전반 수업을 땡땡이치고 서점에 갔던 어느 날, 어떤 책을 읽다가 마음이 탁, 풀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내가 ‘아이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정토회가 문제가 아니고, 도반이 문제가 아니고, 1년 넘게 봉사를 하면서도 아기가 생기지 않으니까…이거 한다고 뭐 좋은 일이 생기나, 이런 밑 마음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활동 중인 권정희 님
▲ JTS 거리모금 활동 중인 권정희 님

그런데 돌이켜보니, 스님은 언제나 우리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바른길을 안내해주시는 분이셨어요. 이거 하면 어떤 대가가 올 거다, 뭐가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 거지요. 1년 6개월을 다니면서도, 스승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의심, 의혹 속에 있었던 거예요. 참회가 저절로 되었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법문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봉사를 안 하고 법회만 다니면서 도반들을 보니까, 그들이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업식이 있었고,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해서 살 뿐이었어요. 내 멋대로 평가하고 분별했기에 갈등을 일으켰던 거죠. 처음에 다른 보살님들로부터 ‘분별심’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잘 몰랐는데, 이런 게 분별심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 사람 왜 저러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도반들이 계속 지켜봐 주었기에 돌아올 수 있었어요. ‘공양만 같이 먹자, 법회만 같이 듣자’고 끌어내 줘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 ‘네가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일을 그만두고 나갔냐’는 식으로 책임을 물었다면,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희망리포터: 그 후로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법당 개원 후에 가장 인상 깊은 일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권정희님: 그때쯤 영등포 법당 불사가 시작되었어요. 부동산을 알아보러 다닐 때 따라다녔고, 계약한 후에는 화장실, 방 청소부터 시작해서 불사 과정에 참여했죠. 법당 공사가 끝나고 수요 법회만 열다가, 잠시 부총무 대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유수스님과 함께하는 영등포 정초법회,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권정희 님
▲ 유수스님과 함께하는 영등포 정초법회,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권정희 님

개원을 하고 나니 혼자라도 법당을 지키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법회 나오시던 보살님 두 분을 꼬셔서(웃음) 300배 정진을 거의 매일 같이했어요. 어느 날 정진 마치고 셋이서 차담을 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분이 들어오셨어요. 그분은 인생에서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계셨는데,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죠. 그 이후로 법당에 나오셔서 함께 정진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희는 그냥 와주셔서 너무 감사했는데, 그분은 많은 위로를 받으셨던 거 같아요. 그 이후에 열린 불교 대학에 바로 입학하셔서 지혜롭게 위기를 잘 극복하셨어요. 지금은 많이 행복해 보이세요.

힘든 사람들이 이렇게 치유되고, 부처님 법 만나서 좀 더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불사를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 내과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 일을 했을 때, 아픈 환자들을 간호하면서 몸의 병이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픈 사람을 돕고 싶어 간호사가 되었는데, 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제가 돕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았죠. 그런데 법당을 열고 이렇게 있어 보니까, 이곳이 사람을 살리는 곳이구나. 그 사람 인생뿐 아니라 가족들도 살리는 거라는 걸 확신하면서, 제대로 찾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부터도 괴로움에서 벗어나 많이 행복해졌으니까요. 그 후로는 좀 더 주인 된 자세로 사람들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희망리포터: 오랜 기간 아이를 갖지 못해 괴로워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임신중이신데, 그사이 어떤 일이 있었나요?

권정희님: 저희는 난임 부부였어요. 그래서 시험관 시술 날을 잡아놓고, 한참 괴로워하다가 2016년에 10일 명상 수련에 갔었어요. 그런데 스님이 어느 날 ‘락수(樂受)’가 ‘고(苦)’임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다음 날 명상을 하는데, 갓난아기를 안거나, 어린아이를 교육하는 망상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한참을 붙잡고 있더라고요. 호흡도 빨라졌고요. 그때 무릎을 딱 쳤어요. 시댁도, 남편도 문제가 아니었고, 아이가 생기고 안 생기고가 문제가 아니었구나. 이 ‘좋은 느낌’에 끄달려서 괴로움을 자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어려운 숙제가 해결된 느낌이었죠. 수련이 끝난 후에는 임산부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고, 갓난아기를 봐도 슬픔이 올라오지 않았고, 동서의 아이도 그저 ‘예쁜 조카’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서, 한 달 후에 임신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 중, 앞줄 오른쪽 권정희 님
▲ 인도 성지 순례 중, 앞줄 오른쪽 권정희 님

희망리포터: 정말, 1000일 정도 지나니까 이렇게 되는 건가 봐요. (웃음)

권정희님: 1000일 동안 수행, 보시, 봉사하면서 얻은 것들은 이 외에도 정말 셀 수 없이 많아요. 특히 봉사하면서 일어나는 갈등과 괴로움들은 내 생각이 아닌 마음을 보게 해주었어요. 불편한 마음들을 해결하기 위해 법문도 집중해서 듣게 되고, 정진하면서 내 마음작용에 대해 스스로 연구하게 되더라고요. 그 속에서 얻은 크고 작은 깨달음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어요. 지금도 여전히 괴로울 때가 있긴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가면 되는지 아니까요.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도반님들이 생겨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희망리포터: 권정희 보살님이 환하게 웃으며 ‘봉사를 꼭 해야 한다, 그래야 수행이 된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신 이유가 이런 거였다는 걸 알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일단 1000일 해 볼게요!

글_복주옥 희망리포터(양천정토회 영등포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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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란

권정희님 반갑습니다. 깨장동기로서 항상 궁금했는데, 좋은소식이 들려서 저도 너무 기분좋네요. 그동안 수행과 봉사하며 열심히 살았군요. 정말 임신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좋은 소식 들려주세요~^^

2017-07-05 23:17:34

향명화

수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신 인터뷰에 감사합니다.
이번 여름 10일명상수련 도전하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2017-03-14 23:25:11

보리엄마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2017-03-14 21: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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