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창원법당
불법이라는 꽃씨 하나 가슴에 품고

불법이라는 꽃씨 하나 가슴에 품고 긴 겨울과 긴 봄을 지나 예쁜 꽃이 된 하영주 님. 창원법당에서 2년을 가을불대 담당을 맡아 수행하시다가 산하법당인 의창법당이 생기면서 그쪽으로 가셔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력이 점점 나빠져 가고 있고 몸이 여기저기 고장이 나서 병원에 다니면서도 언제나 아무 일 없다는 듯 밝고 맑은 하영주 님.
지금은 자처해서 회계담당과 봄 불교대 담당을 맡아 똑 소리나게 일하고 그 외에 여러 가지 소임이 주어져도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함께하는 그 미소가 봄꽃보다도 더 아름답습니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잘 극복해서인지 불대생들을 편안하면서도 참 정성스럽게 챙기니 학생들도 법당에 나오는 것이 신나고 즐겁습니다. 함께하는 사람을 덩달아 신나게 만드는 마술 같은 하영주 님의 수행담을 시작하겠습니다.

하영주 님
▲ 하영주 님

5년 전 불교대학을 입학하고 첫 수업을 들었을 때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양동이 말씀을 듣고 나의 마음 저 깊은 곳에 희망의 작은 불씨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빨간 양동이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남편의 참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아주 살짝 들었다.

결혼 후 가족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도 전혀 하지 않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십수 년 동안 남편을 원망하다 결국엔 미움과 외면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 보려고 책도 읽고, 강연도 듣고, 상담도 해 보았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남편에 대한 감정이 메말라지니 자연스럽게 두 아이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 아이에게는 잔소리 많고 화가 많은 엄마가 되어 있었다.

천일결사 입재식때 도반들과 함께. 아랫줄 오른쪽 두번째가 하영주님.
▲ 천일결사 입재식때 도반들과 함께. 아랫줄 오른쪽 두번째가 하영주님.

불교대 첫 수업은 나에게 짜릿한 충격이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 나로부터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작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희망의 작은 불씨를 꺼지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법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법문도 듣고, 봉사도 하고, 아침 기도도 열심히 했다.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서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도 조금씩 조금씩 이해로 바뀌기 시작했다. 약간의 우울증도 있었던 내가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오전은 법당에서, 오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는 과외를 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큰아이도 조금씩 엄마의 사랑을 느끼면서 편안한 고교 생활을 마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그렇게 4년을 보낸 2015년 겨울.
병원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녹내장과 시신경 위축증.
치료가 안 되는 병이니 정신적,육체적으로 최대한 편안하게 생활을 하란다.
이건 뭐지? 난 하루를 48시간처럼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병이 나에게 올까?

창원법당 활동사진. 왼쪽 첫번째가 하영주님.
▲ 창원법당 활동사진. 왼쪽 첫번째가 하영주님.

과외지도를 그만두고, 법당도 나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집안에만 있으면서 종일 울기만 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매일 매일 대답 없는 질문만 하고 또 했다.

그렇게 긴 겨울과 봄을 보내고 다시 법당을 찾게 되었다.
부처님께 다시 물어보고 싶었다.
부처님 오신 날. 그날 부처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않느냐고 !!!

그래! 다시 살아보자!
이만한 일을 가지고 뭘 그리 징징거리나!

아주 작은 봉사로 인연을 맺게 된 의창법당에서 나의 수행생활은 다시 시작 되었다. 수행법회를 마치고 나누기 시간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따뜻하게 감싸 주시던 도반님들께 지금도 너무너무 감사하다.
작년엔 총무님의 배려로 작은 아이 수능 백일기도를 했다. 가족이 집에 있는 토, 일요일까지 혼자 나와서 사시예불을 하려니 가끔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고교 3년 동안을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갇혀 있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작은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부처님께 매일 엎드려서 아들을 이해하려 한 공덕이었을까. 작은 아이도 원하던 대학에 입학을 했다.

스무 살. 두 아이의 독립.
이제 내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항상 목표를 정해두고 쉼 없이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두 아이의 독립은 목표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다시 나에게 고비가 찾아왔다.

경전반 졸업사진. 가운데가 하영주님.
▲ 경전반 졸업사진. 가운데가 하영주님.

이제 뭘 하고 살지?

부처님은 그냥 살라고 하시는데, 나는 목표 없이 살지를 못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사라져 있었다. 몸도 여러 군데 더 고장이 나서 그동안 잘 찾지 않던 병원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시간이 많아서 무언가를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한 도반이 나에게 한 말이 나를 다시 살게 해 주었다.
“보살님, 집에 또 한 사람 있잖아요.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는 있잖아요. 우리랑 같이 봉사하면서 거사님과 행복하게 살면 되죠”

그래! 잊고 있었던 한 사람! 말없이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내 옆에 있어주는 그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이제 그와 함께 살아보자.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몸에 감사하며 세상을 위해 살아보자!
오늘도 나는 법당에서 불교대 담당일을 하고 왔다. 책상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를 기다린다. 퇴근을 하면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으려고...

봄불교대 입학식날. 오른쪽 끝이 하영주님.
▲ 봄불교대 입학식날. 오른쪽 끝이 하영주님.

부처님,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부처님, 지금 이대로가 행복임을 알고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부처님, 항상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글_하영주(창원정토회 의창법당)
정리_김미화 희망리포터(창원법당 창원정토회)
편집_목인숙(경남지부)

전체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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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승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2017-05-14 19:54:28

정홍자

평소에 밝은 모습 늘 간직하시고 건강하세요^^

2017-05-07 23:12:53

박미란

저만 힘들고 외롭다고 투덜댔었는데 이길을 보고나니 부끄럽네요~~부처님 법을 만난걸 행복으로 생각합니다.^^항상 힘내세요!!!

2017-05-06 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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