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깨달으면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이순희 님의 수행담은, 밤새 싸웠던 귀신이 아침에 보니 오래된 빗자루였다는 이야기와 꼭 맞습니다.
헤매던 삶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단 한 구절.
이순희 님의 수행담을 들어볼까요?

가을불대 수행맛보기를 회향하는 날, 처음 이순희 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몇 주 후 예비입재자 만남의 날, 두 번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서 세 번째, 다시 글로 받아 보아 수행담을 읽습니다. 가슴을 훅하니 휘젓고 가는 이 감정은 수행담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매일 하는 수행과 나누기가 세끼 밥 먹는 것과 같다면, 이렇게 내밀한 삶을 내어주는 수행담은 지친 몸을 달래주고 힘을 불어 넣어주는, 정성이 담긴 보양식을 대접받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다 보면, 내 안에 굳어있던 응어리들도 어느새 녹아내리고, 어떤 삶이라도 살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습니다. 경청. 귀한 깨달음의 이야기를 가만히 앉아, 깊숙이 들어봅니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행사례담을 발표하기로 약속하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는 뛰어난 수행자가 아닌데……. 늘 일상에 끄달리는 어리석은 중생인데... 무엇을 말할까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경험한 것들을 그냥 솔직하게 발표하자고 편안하게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18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4년 가을불대에 입학했습니다. 그해 11월 <깨달음의장>을 다녀오면서부터 수행을 시작했으니... 2년 반쯤 되어갑니다.

저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태어난 딸입니다. 그 시대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요. 딸은 돈이나 벌어서 아들들 뒷바라지를 하는 살림 밑천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기특하게 생각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남동생을 돌보았다는 것뿐입니다. 단지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들들 사이에서 참 많은 차별을 견뎠습니다. 그것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차곡차곡 불행의 원인으로, 상처로 쌓였습니다. 그런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저는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아버지가 공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딸인 저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지나친 기대와 열망이 오빠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나 봅니다. 오빠는 사춘기 내내 크게 반항하고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빠가 삼수까지 했는데 대학에 못 가자 그러면 딸이라도 대학에 보내자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부지리로 대학에 갔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학비를 대야 하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 눌려 저는 미친 듯이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을 벌었습니다. 또한, 취업도 열심히 도전했습니다. 누구 하나 제 곁에서 살갑게 저를 돌봐줄 수 없는 형편이어서 모든 걸 혼자 해결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당시 제가 매우 외로웠고, 누군가 돌봐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모양입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습니다. 시댁에서도 역시 남편이 주인공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배경에 가까웠습니다. 친정에서 아들들에게 받았던 상처는 다시 살아나 저를 찔렀습니다. 남편은 마음 밭이 참 비옥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눈이 어두워 어리석었던 저는 남편이 몹시도 못마땅했습니다. 제 기준에 맞게 여기저기 고쳐야 할 구석이 많아 보였습니다.

시멘트벽과 같았던 내 마음

회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저는 마음속에는 두려움, 불안, 미움 등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웃는 얼굴로 무장하고 주어진 일을 불도저처럼 열심히 해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프로젝트를 스스로 만들어 몇십 억 예산을 타내 사업을 완수하기도 했습니다. 가정도 있는데 왜 그렇게 일에 매달렸을까요?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핍감을 회사에서 일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를 대신할 따뜻하고 자상한 상사 밑에서 일로 인정받아 허한 마음을 채워보기도 했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도 허한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똑똑하고 완벽한 내가 되면 공허한 마음이 채워질 거라고 어리석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시도 쉬지 않고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한순간도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 진짜 모습을 녹슨 철근이 여기저기 튀어나온 초라한 시멘트벽인데... 배움이라는 멋진 타일들로 그 벽들을 감싸고 나를 장식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나 배움은 끝이 없고 장식해야 할 벽은 넓기만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 저는 ‘만성우울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고 맛있는 음식도 맛을 몰랐습니다. 쉬지도 못하고 그저 늘 불안하고 불행하기만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습니다.

어느 날 상사에게 약간의 꾸중을 들었습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전산센터 21층에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는 미안한 사람도,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래로 몸을 던질까 망설이다 그 순간 3살짜리 딸아이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내 삶이 이렇게 서러운데... 내가 없으면 내 딸은 얼마나 서럽고 비참한 삶을 살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거운 삶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그 후 괴로운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상담을 받고,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상담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심리학 관련 책들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나의 발목을 잡았던 과거의 상처를 덜어내고 덜어냈습니다.

환한 웃음이 아름다운 이순희 님.
▲ 환한 웃음이 아름다운 이순희 님.

본래 괴롭고 아픈 일은 없다는 깨달음

삶이 평온해진다 싶으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지는 게 우리의 인생인가 봅니다. 친정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1달을 누워 있었습니다. 저는 다니지도 않았던 동네 교회에 가서 엄마를 살려달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신우회에 다니며 기독교에 발을 들어놓았습니다. 몇 번의 재수술 끝에 엄마는 회복이 되셨습니다.

온 가족이 엄마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아버지는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향한 제 마음은 굳게 셔터를 내려놓았습니다. 아버지께 마음의 문을 한 번도 열어드린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서도 자식들 줄 마늘을 심지 못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렇게 평생을 가족들을 위해 온 생을 다 바친 아버지를 저는 평생 원망만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크기의 사랑을 내게 주지 않았다고...저에게 든든한 그늘이 되어 주셔서 고마웠다는 그 한마디를 아버지 살아생전에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고 녹슨 마음의 문을 연 저의 어리석음에 또 눈물이 납니다.

몸과 마음을 혹사하다 보니 허리가 아프고 만성피로에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즈음 퇴사를 하고 불대에 입학해서 수행 정진을 해 오고 있습니다. 불법을 만나기 전의 저는 열정은 있으나 지혜가 없었습니다.

반야심경에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공하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다만 그것일 뿐이다. 부족할 것도 넘칠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다. 그것을 깨달으면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늘 불행하고 부족하다고 느꼈던 제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단 한 구절입니다. 제가 만신창이가 되어 행복한 삶을 찾아 헤맨 끝에는 불법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밤새 싸웠던 귀신이 아침에 보니 오래된 빗자루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삶이 괴롭고 아프다고 울부짖었는데... 깨어보니 본래 괴롭고 아픈 일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_ 깨고 보니 가족은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_ 깨고 보니 가족은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족해 보였던 남편도 참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제 곁을 잘 지켜준 든든한 사람이고 아이들에게 있는 좋은 심성은 다 남편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큰딸은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회사 다니느라 남의 손에 맡겼던 딸이 중학교에 입학하고 성적표를 받아왔습니다. 재난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그때 '공부를 못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혼낼 일이 아니다'라는 스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방법을 같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사춘기 동안 딸아이는 저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워 까칠하게 굴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대들거나 울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딸이 스스로 경험하고 자신의 길을 찾도록 그냥 지켜보았습니다.

2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지금, 딸은 예전의 상냥한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딸은 제 소유가 아니라 잠시 제 둥지에 맡겨진 어린 새입니다. 그 새가 독립할 준비가 되면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 자유롭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떠나보내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끔 시어머니께서 딸이 저를 즐겁게 해 주냐고 물으십니다. 딸이 공부를 잘하느냐는 우회적인 물음입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저는 저 스스로 즐겁다고. 딸이 공부를 잘해야 제가 행복해진다면 저는 언제 행복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의 상태에서 그냥 행복합니다. 딸의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더 큰 집에 살지 않아도...

수행은 매일매일 수염을 깎는 일

천일결사 모둠장들과 함께. 맨 왼쪽이 이순희 님
▲ 천일결사 모둠장들과 함께. 맨 왼쪽이 이순희 님

요즈음은 저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감사할 뿐입니다. 아직도 가끔 저 자신이 부족해 보이고 마음이 허합니다. 그러나 그냥 지켜봅니다. 매일 매일 제 마음의 거울을 닦으며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수행이 무엇이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매일 매일 수염을 깎는 일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수염은 하루만 안 깎아도 까실까실하게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찌릅니다. 오늘도 저는 수염 깎듯이 수행을 하면서 까칠한 제 마음을 매끄럽게 깎습니다. 제게 남겨진 길은 오직 수행뿐임을 알기에 제게 허락된 삶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수행 정진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부족한 사례담을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_이순희 님(분당정토회 서현법당 천일결사 담당)
정리_엄지선 희망리포터(분당정토회 서현법당)
편집_전은정(강원경기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