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법당이 생긴 지 만 3년! 해마다 불대와 경전반이 열리고, 정회원과 봉사자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성지역의 아프고 지친 사람들의 행복 쉼터이자 수행터가 되고 있는 맑은 도량 고성법당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져 옵니다.
우리는 고성법당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이 분을 떠올립니다. 이 분이 없었다면 고성법당은 없었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고성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길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 고성에 혼자서 씩씩하게 법당을 내고, 거제에서 고성까지 3년을 하루같이 출근하며, 고성법당을 뿌리내리게 한 장미애 님을 생각하면 진정한 보살행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고성법당 전 부총무님인 장미애 님의 수행담을 들어보겠습니다.

불교대학 입학식에 부총무님으로 참여한 장미애 님(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
▲ 불교대학 입학식에 부총무님으로 참여한 장미애 님(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

정토회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건 거제 옥포 대우 불교청년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쉬고 있을 무렵 청년회 동생의 권유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되어 바뀐 삶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결혼 후 남편의 사업자금과 생활의 어려움으로 시댁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어요. 시누이 네 명이 모두 주변에 살고 있었고요. 애들 키우며 나 살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암으로 저 세상 가신 시누이가 애들 셋을 앞세우고 남편이랑 걸핏하면 우리 집에 오는 거예요. 직장을 다니면서 힘드니까 토요일은 실컷 자다가 밥 먹으러 우리 집에 오는 거지요. 불편하고 미웠어요. 그런 마음 가득 안고 살아가니 위도 탈이 나서 사흘이 멀다 하고 체하곤 했어요. 아이들에게도 내 방식대로 강요하고 참 못살게 굴었죠. 남편과도 소통이 안 되었어요. 급한 성격에다 술 좋아하는 남편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많이 미워했죠.

이런저런 마음고생이 심할 무렵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고, <깨달음의장>에 다녀오고, 불교 청년회에서 불대를 열게 되어 그때부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시어머니와는 관계가 좋아서 어머님이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 주셨어요. 공부를 하면서 성격이나 마음가짐이 좋아지니까 어머님도 더욱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제가 정토회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정토회를 만나 가장 달라진 점이요? 남편과 관계가 좋아진 것이죠. 그렇게 미웠는데 지금은 우리 남편만 한 사람도 없다 싶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거죠! 하하하

도반들과 함께 JTS거리모금을 하는 장미애 님(왼쪽에서 세 번째)
▲ 도반들과 함께 JTS거리모금을 하는 장미애 님(왼쪽에서 세 번째)

고성법당을 내실 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전국적으로 지역법당이 이곳저곳 생겨날 때, 우리 경남 지역도 불사에 한창 불이 붙어 있었어요. 모두 신이 나서 활동을 했죠. 그때 경남 지부장이었던 정홍자 님과 읍 지역 불사를 해보자는 마음을 모으게 되었고, 제가 불사 책임자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어요. 책임자는 저였지만 희망 강연 때 인연이 되었던 몇 몇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 주셔서 불사를 원만히 이루게 되었습니다.

경전반 나들이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장미애 님 (오른쪽에서 두 번째)
▲ 경전반 나들이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장미애 님 (오른쪽에서 두 번째)

3년 부총무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 보람 있었던 점들도 들려주세요.

처음에 회원이 없었어요. 제8차 천일결사 제 1차 백일기도 입재식 때 저 혼자 갔어요. 사회자가 "고성법당 1명" 하고 호명을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와하하하하"하고 웃었어요. 불대 개강하면서 인원이 늘었어요. 하지만 시골이라 기복 신앙이 심했고, 원래 다니는 절을 기반으로 해요. 또 불교 공부만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졸업한 뒤에 남는 분들이 별로 없었죠. 봉사자로 이끌어 내는 과정이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성과 거제를 오가며 늦은 시간에 다니는 게 조금 힘들었어요. 저녁반 불대나 경전반 수업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거제까지 운전해서 돌아갈 때 잠이 너무 쏟아지는 거예요. 커피를 한 통 사서 마시며 가기도 하고, 얼굴을 두드리며 운전을 하기도 했어요.

보람 있었던 것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거예요. 법당을 주인 된 마음으로 이끌어가는 도반들이 여럿이 생겼고, 새로 소임을 맡은 부총무님과 함께 마음 모아 법당을 이끌고 가는 모습을 보니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다 싶습니다. 도반들과 새록새록 깊은 정도 들어가고, 오붓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로 잘 지내고 있어, 고성과 거제를 오갔던 3년의 세월이 참으로 보람되게 여겨집니다.

카페 사장님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신 장미애 님
▲ 카페 사장님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신 장미애 님

지금은 ‘해피데이’라는 카페를 개업하셔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는데, 지금까지의 수행이 이 일에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카페는 남편이 저 모르게 계약을 하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습니다. 카페를 해보자고 몇 번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안 된다고 잘랐어요. 그런데 제가 없는 틈을 타서 남편이 몰래 계약을 해 버린 거예요. 처음 3일 동안은 잠이 안 오고, 이 일을 어쩌나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토회 활동 10년에 무엇을 못하겠나 싶어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왕 물에 빠졌으니 조개도 줍고 신나게 놀아보자는 마음을 내니 자신감이 생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하기 전이었다면 남편과 대판 싸웠을 것이고, 장사는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사이좋게 돈가스도 굽고, 커피도 내리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함께 담소를 나누며 일터를 놀이터 삼아 신나게 일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 나이에 카페에 취직시켜 준 남편에게 고마워해야겠지요.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전법의 길을 선택하여 고성법당의 문을 열어 주신 정토행자 장미애 님. 이제는 전법의 장을 잠시 옮겨서 카페를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밝은 미소와 따뜻한 마음으로 행복을 전파하고 계십니다. 그런 보살님이 있어 우리 고성법당은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글_임경화 희망리포터(마산정토회 고성법당)
편집_목인숙(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