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길로 이어진 인연

결혼하고 남편 직장 일로 미국에서 살게 된 지 어느새 14년이 되었습니다. 2005년부터 댈러스에 터전을 잡고, 태권도장을 하는 남편, 12살 아들, 9살 딸과 살고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현재는 프리스쿨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2년 가을 법륜스님의 휴스턴 강연에 다녀온 후, 함께 갔던 3명의 지인과 댈러스 정토 열린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도장을 막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엔 남편의 사업이 잘되었으면 하는 기복적인 바램과 힘든 상황에서 마음을 잡아 줄 의지처에 대한 갈증으로 법문 많이 듣고, 수행도 하고, 불교대학에도 다니면 모든 게 다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생각일 뿐이었고 마음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남편과 같이 사업을 하면서 부딪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습니다.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잘 가르치는 남편은 좋은 지도자였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기에 홍보와 마케팅이 부족했고 치열한 경쟁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미래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수시로 올라왔고, 뭐든 해 보자 하는 나와 그런 걸 뭘 하냐고 하는 남편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11월부터 시작한 천일결사. 어느 날 아침 기도를 하면서 ‘그래! 남편 마음 불편하게 하지 말고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서 생계에 도움을 주자. 아이들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놔두자. 남편을 바꾸려고 하는 건 내 욕심이고 이기심인 거야. 우리가 이렇게 부딪치고 싸우면 상처받는 건 우리 아이들이지.’라는 마음이 탁~하고 올라왔습니다. 법문에서 수없이 들었던 ‘부부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말씀을 어느 순간 싹 잊어버리고, 남편을 들들 볶았던 것을 깊이 참회하게 되었습니다.

댈러스 수행법회 진행 모습 (가운데에 이두라 님)▲ 댈러스 수행법회 진행 모습 (가운데에 이두라 님)

그렇게 미국 생활 처음으로 파트타임 일을 하기 시작했고, 퇴근 후에 두 아이 돌보고 남편의 도장 일을 도와주는 것을 병행했습니다. 운전하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밤엔 녹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남편과 늘 붙어 있지 않으니 부딪칠 일이 줄어 마음은 편해졌고, 내 일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도 접할 수 있어 삶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나는 살아 숨 쉬고 있구나! 그동안 뭘 하느라고 숨어 지낸 거지?’ 남편,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게 되니 오히려 가족에 대한 소중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남편을 답답하게 여기고, 불같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내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몰아붙이던 어리석음을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노력으로 어느덧 태권도장 운영도 안정되었고, 남편이 하고 싶은 데로 두고 간섭과 개입을 하지 않는 연습을 하니 서로 싸울 일이 없어졌습니다. 남편은 법회 나누기 시간에 “우리 아내가 수행자라 참 좋아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편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욕심 많고 조급한 나의 업식을 일깨워 준 스승이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봉사의 의미를 배워가다

2015년 10월 댈러스 정토 열린법회가 정토법회로 승격되어, 법회 담당 소임을 맡으면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소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부담스러워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핑계를 찾기 바빴는데, 2016년 10월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후 봉사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깨달음의장>은 불교대학 졸업도 해야 하니 혼자 가는 여행이라 생각하고 바람이나 쐬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에서 신청하였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다녀온 후, 도반들을 분별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지켜보고 이해하는 연습을 해 나가면서 조직 속에서 둥글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법회나 행사가 있으면 모두가 다 참석해 주길 바라는 것도 내 욕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언가에 구속되고 얽매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다. 그러니 내가 부탁한다고 다 들어줄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하고, 내 부탁에 상대방이 싫으면 거절할 수 있으니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해야겠지.’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반들과 부딪치는 상황 속에서 ‘역시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구나.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서 실천해 가야겠구나. 쉽지 않지만 해 보자. 우선 마음가짐부터 고쳐보자’ 하는 마음을 내었습니다.

댈러스 희망강연 봉사 (가운데에 이두라 님)▲ 댈러스 희망강연 봉사 (가운데에 이두라 님)

꼿꼿이 들던 고개를 숙이는 연습을 하는 속에서, 정토회라는 조직이 상하 조직이 아닌 수평 조직으로, 소임자는 보스가 아니라 그저 봉사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반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배우며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임을 깨닫고 나니, 나는 잘난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기도를 하면서 내 안의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고집 세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가고 원칙에 얽매여 뻣뻣했던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소임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들었습니다.

2017년 3월. 새로운 9차 천일결사가 시작되면서 부총무 소임을 제안받았습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화끈하게 마음 내면 될 것을, 미리 걱정하는 업식에 빠져 처음엔 쉽사리 마음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잘 키우고, 교사로서의 내 커리어도 쌓고 싶고, 이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정토회 일에 집중하며 부총무라는 큰 소임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도반이 스승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모든 걸 내가 다 해야 하고, 잘할 거라는 것은 내가 잘났다는 아상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 우선 한번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부총무 소임을 맡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도반들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인연이고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로서 함께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 만들어 나가며 세상에 잘 쓰이고 있다.’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행복한 수행자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명심문을 되뇌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어떤 일이든 즐기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마음으로 봉사합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내가 이만큼 하는데, 너는 이만큼밖에 안 줘 라고 자꾸 거래하게 되지만 봉사는 그런 걸림이 없어 더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JTS 캠페인 피켓을 직접 만들면서 인연법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캠페인을 하면서 모은 작은 정성이 굶주리고 병들고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숱한 점들을 통해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임을 알았습니다.

JTS 모금 캠페인. 아이들, 도반들과 함께▲ JTS 모금 캠페인. 아이들, 도반들과 함께

직장에서 누군가 도움을 부탁할 때 웃으면서 기꺼이 도와주는 마음을 내니 인간관계가 좋아져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저를 낯설게 보고 거리를 두던 동료들도 “너는 참 성격이 좋아. 언제든 웃으며 일을 해.”라고 말해 주며 선뜻 다가와 주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니 많이 배우게 됩니다. 어느새 직장 생활 2년 차가 되어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일이 즐겁습니다.

또 강연 봉사 및 JTS 캠페인을 가족과 함께하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봉사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엄마가 바빠 아이들에게 많이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아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엄마를 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연습을 해 나가니 다행으로 여겨집니다. 매일 새벽 수행정진하는 엄마를 보고 아이들이 108배를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부모를 거울삼아 자라남을 다시 깨닫습니다. 이렇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 일하는 봉사자의 자세가 삶에 스며들어 촉촉한 윤활유가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앞으로의 길

정토회 활동을 통해 사람을 더 깊게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예전엔 혼자 끙끙거리다 시간을 낭비하며 결론도 못 내고 괴로웠는데, 이제는 진솔한 마음으로 다가가려 노력하고 힘들 때는 주변 분들의 조언을 구해 해결해 나가니 좀 더 부드럽게 결론이 나오곤 합니다. 정토회에서 지향하는 통일, 환경, 복지 활동은 이제서야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 가는 단계라 길게 보고 꾸준히 하고자 합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알려고 욕심내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 안에서 하나하나 해 나가다 보면 점점 시야가 넓어질 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댈러스 정토법회가 여법한 법당을 갖추어, 더 많은 사람의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 이어지기를 서원합니다.

댈러스 정토법회 신년행사 모습▲ 댈러스 정토법회 신년행사 모습

작년 11월 댈러스에서 열린 활동가 수련에서, 기도 나누기 밴드에서만 뵙던 이두라 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훤칠한 키에 똑 부러진 말솜씨의 씩씩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아이 엄마로, 직장인으로, 틈틈이 남편 도장 일을 돕는 가운데 댈러스 정토법회 부총무 소임을 맡아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이두라 님. 그런데도 <정토행자의 하루> 기사 인터뷰를 부탁하니 흔쾌히 승낙하고, 글쓰기도 수정도 무엇이든 바로바로 작성해 보내주었습니다. 일하는 것도 시원시원하고 야무져서 함께 기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이두라 님의 밝고 환한 미소처럼 댈러스 정토법회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곳으로 자리 잡아 가리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댈러스 정토법회의 불사를 기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정리_임선희 희망리포터 (북미중부지구 휴스턴법회)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