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북미동남부지구
행복하기, 행복 전하기
유주영 님 수행담

지난해 말 6년간의 워싱턴정토회 총무 소임을 잘 마치고 미국 JTS 팀장, 국제국 외국어전법팀 번역담당자, 워싱턴법당 사회활동담당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유주영 님의 담담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정토회와의 첫 만남

1993년 가을에 정토회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하루는 대학 후배가 새벽기도를 하러 간다길래 따라갔었는데 그곳이 홍제동 정토포교원이었어요. 그때 당시 대학원 진학 준비로 불안하고 힘들어서 강남에서 홍제동까지 매일 새벽 6시에 기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기도하고 나누기하며 수행과제도 실천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지면서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도 ‘올해 안되면 내년에 가면 되지’ 하면서 마음을 비웠어요. 그래서인지 생각지도 못하게 외대 통역대학원 시험에 붙어서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었죠. 대학원 가기 전까지는 매일 법당에 가서 정진하고 정토회 청년부 활동을 했었고 제3차 인도성지순례에도 참가해서 깊은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바빠지면서 정토회와 인연이 멀어졌어요.

2014 년 인도성지순례: 오른쪽에 유주영 님
▲ 2014 년 인도성지순례: 오른쪽에 유주영 님

메릴랜드에 살게 된 계기

대학원에 다니며 결혼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 졸업을 하면서 남편 따라 미국 텍사스에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유학하는 동안에 시댁에서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을 거라 별걱정 없이 유학을 왔는데 1년 뒤에 한국에 IMF가 터지면서 갑자기 경제적인 지원이 끊겼어요. 다행히 남편이 실험 조교를 하면서 매달 월급을 받게 되었지만, 학비를 내면서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어요. 친정에서 도움을 좀 받고 몇 달 생활하다가 제가 박사과정을 시작해서 조교를 하면서 형편이 좀 나아지고 남편이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고 직장을 잡았어요. 2000년에 첫 아이를 낳고 우여곡절 끝에 저도 2002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남편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클램슨대학에서 연구교수로 8년을 지냈고 그동안 저는 딸 둘을 키우며 가끔 번역일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지인들과 가깝게 지내며 별 탈 없이 지내다가 2008년 가을에 현재 살고 있는 메릴랜드로 이사를 왔어요.

주위에서는 부러워할 만한, 하지만 내게는 힘들었던 삶

외관상으로 봤을 때 어릴 때부터 제 삶은 별문제가 없었어요. 외교관인 아버지와 주부인 엄마 슬하에서 동생 3명과 함께 크게 부족함 없이 살았고, 원하는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계획하지도 않았던 박사학위까지 받으면서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선한 남편과 결혼하고 예쁘고 건강한 두 딸을 낳아 키웠으니 주위에서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산 거죠. 하지만 어릴 때부터 삶이 참 버겁게 느껴졌어요. 맏이로서 어깨가 무거웠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힘들었던 기억만 많이 남았어요. 전형적인 경상도 분이신 아버지가 많이 무서웠고 제게 많이 의지하시며 큰 기대를 갖고 있었던 엄마가 부담스럽고 내심 원망스러웠어요. 3년마다 새로운 나라, 언어, 문화와 학교에 적응해야 했는데 숫기가 없는 저로서는 정말 괴로운 일이었어요. 처음에 말을 잘 못 하니 언어를 배우는 동안에는 아이들에게 저능아 취급을 받았고 그로 인해 무의식에 열등감도 많이 생겼고 따돌림당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컸어요.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제가 기댈 수 있고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고독했고 삶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일종의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때 엄마를 통해 불교를 접하게 되었을 때 기복적으로 의지를 하게 되었어요. 정토회에 잠깐 다녔기에 나는 기복적이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결혼 후 13년 정도 남편과 함께했던 기도는 항상 무엇인가를 바라는 기도였어요. 실체가 없는 불안과 걱정에 항상 시달리던 제게는 기도가 생명줄과 같았기 때문에 무교인 남편에게 나와 함께 기도하기를 강요했었죠.

2016년 북미동부지구 정토를일구는사람들 수련: 뒷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유주영 님
▲ 2016년 북미동부지구 정토를일구는사람들 수련: 뒷줄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유주영 님

찾아온 위기, 워싱턴정토회와의 만남

그러다 2008년에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 메릴랜드로 이사를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발생했어요. 결혼 전부터 저는 돈에 대한 큰 욕심은 없었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습니다. 돈이 적더라도 절약하면서 생활하는 것으로 만족했었기 때문에 남편이 사업을 하겠다고 준비했을 때 불안한 마음이 컸어요. 남편은 한국의 한 회사에서 사업 투자를 받기로 하고 교수직을 그만두고 메릴랜드에 와서 작은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투자가 무산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을 당면하니 저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해지고 불면증과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어요. 당장 생활비가 없으니 빚을 지기 시작했는데 저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어요.
친정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들으시고는 절 기도를 하라고 일러주셨고, 저는 너무 불안한 상태에서 100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외출도 하지 않고 절만 했는데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모든 게 절망적으로 느껴졌어요. 그 와중에 텍사스에서 함께 유학했고 2002년도에 메릴랜드로 이사 와서 워싱턴정토회를 설립한 민덕홍 님과 김순영 님 부부와 연락이 닿아서 100일 기도를 마치고 법당에 나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100일 기도를 하면서 제가 겪는 어려움에서 좀 구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지만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기복적으로 기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절하느라 힘이 없어서 그 기간에 남편과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고 불면증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정토회에 나가면서 법문 듣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고 제가 영어 학원 강사로 취직해 수입이 생기고 남편도 회사를 통해 수입을 올리게 되면서 생활비를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맡게 된 부총무 소임

법당에 다니면서 바로 천일결사 입재를 해서 참회 기도를 시작했고 남편과 함께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바른 불교 공부를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총무님이 해외지부 사무국장 소임을 맡게 되었다면서 제게 갑작스럽게 부총무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잠깐 정토회 활동을 했지만 아직 <깨달음의장>에도 다녀오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부담스러웠지만 당시 명심문이었던 “예 하고 가볍게 합니다.”를 떠올리며 바로 소임을 맡겠다고 했습니다. 남편하고 제대로 상의하지도 않고 부총무 소임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겨우 <깨달음의장>에 갔다 온 직후 덜컥 소임을 맡아서 법회를 진행하게 되었지요.

2016년 해외활동가 수련: 왼쪽에서 두 번째에 유주영 님
▲ 2016년 해외활동가 수련: 왼쪽에서 두 번째에 유주영 님

내 생각 속의 나와 현실의 나

워싱턴정토회 부총무 소임 1년, 그리고 총무 소임을 6년간 맡아서 하고 작년 12월에 회향했습니다. 그 동안 많이 울기도 하고 힘들어했는데 되돌아보면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처음 4년 정도는 직장에 나가며 두 어린 딸을 돌보며 총무 소임을 맡은 저를 도반들이 최대한 배려해주었기 때문에 도반들과의 갈등은 크게 없어 개인적인 괴로움을 푸는 데 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깨달음의장>에서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이 엄마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해결이 된 줄 알았어요. 그러나 엄마에 대해 참회가 되지 않아서 기도하면서 무수히 눈물을 쏟았습니다. 2013년에 엄마와 함께 인도성지순례를 하면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갈등이 고조에 달했는데 집으로 돌아와 서로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솔직하게 내놓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가 엄마에 대한 집착과 기대로 인해 괴로웠던 것이지 엄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되어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수행을 시작하고 4~5년간은 기도하면서 바뀌지 않는 저를 자책하고 총무로서 썩 일을 잘하지 못하는 저를 미워했습니다. 그러니 수행의 진전도 별로 없고 총무로서 발전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법문을 들으며 깨달은 것처럼 과대망상증에 빠져서 제가 너무 잘났다고 생각하니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현실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반들과의 갈등이 감사함으로

그리고 2014년에 다시 인도성지순례를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그때 비로소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모든 것을 상처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도반들도 제가 얼마나 상처를 잘 받는지 알게 되면서 저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서 좀 거리를 두게 되었고, 저는 소외당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잘 몰랐었지만 제가 바로 지도법사님께서 가장 무섭다는 '착한 여자'였습니다. 항상 부모님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했고 희생해서라도 다른 이들에게 베풀고 부탁을 들어주려 했기 때문에 제가 옳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에 항상 피해자인 척을 했어요. 그러니 누가 제게 문제를 제기하면 억울했고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탓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의도가 있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제게 비판을 하거나 비난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수긍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아버지의 영향으로 누가 화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언성이 높아질 때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고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일 하는 도반 중에 제가 소통이 안 된다고 힘들어하며 떠나가는 이도 있었고 지속적으로 비난을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비난을 피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저는 도반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그들은 제가 제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참 억울했었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반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연구하기보다는 제 입장에서 그들이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했던 거구나 인식하고 나니 억울할 게 없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계속 문제 제기해준 도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제가 저 자신에 대해서 지금만큼 알게 되지 못하고 전도몽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거예요. 도반들이 저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을 통해 제가 저에 대해 믿고 있던 것을 의심하게 되면서 실제로 제가 어떤지 인식하게 되고 인정하게 되면서 정말 편해지고 행복해졌습니다.

2017년 통일의병학교: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유주영 님
▲ 2017년 통일의병학교: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유주영 님

법문, 기도, 도반, 수련의 힘

그동안 정토회 활동하면서 지도법사님의 지혜로운 법문을 꾸준히 듣고 천일결사 기도를 놓지 않았기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버틴 것 같습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총무 소임을 잘 못 해서 정토회와 지도법사님께 누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면서 그만둘까 하는 유혹에 넘어갈 뻔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용기를 주는 도반들이 있었고 <정토를일구는사람들>, <행자대회> 및 <해외활동가 수련> 등을 통해서 다시 힘을 얻고 활동을 했습니다. 지도법사님과 법사님들 그리고 해외 각지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정토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도반들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고 제가 그분들과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참 뿌듯했습니다.

행복하기, 행복 전하기

수행 덕분에 제가 편안해지고 더 이상 남편이나 아이들을 문제 삼지 않으니 가정생활이 행복해졌고 엄마나 동생들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니 관계가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도반들과는 깊은 나누기를 통해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서로 화합해 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눈을 확실히 안으로 돌리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총무 임기를 마치고 나서야 수행적 관점을 잡게 된 셈이죠. 이제 자책하지 말고 다른 이들을 탓하지 말고 "오직 알아차리라"는 말씀을 조금씩 실행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제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해졌으니 행복 전하기에 매진하려 합니다. 현재 맡고 있는 미국 JTS 팀장 소임과 다른 소임들에 충실하고 또 앞으로 필요한 곳에 잘 쓰이기 위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진해나갈 것입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글_유주영 미국JTS 팀장 (워싱턴법당)
담당_김선태 희망리포터 (북미동부 버지니아법회)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

[2017 법륜스님 해외강연 - 미국 워싱턴 일정]
09월 27일 (수) 3:00~5:00 PM (영어통역)

▶강연세부정보 : https://goo.gl/rM8vQ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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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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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유주영 보살님, 잠깐씩 두어번 뵈었지만 주변 도반들을 잘 챙겨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굽이굽이 잘 헤치며 살아오신 보살님 수행담을 읽고 감동스런 마음입니다. 국제국 활동도 화이팅 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2018-12-10 01:54:26

임금이

환한 웃음에 오랜 수행으로 단단해진 내공이 숨어 있었군요. 올해 미국JTS업무도 맡아 멋진 활동 기대 되네요.

2017-08-23 05:03:02

박종희

보살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수행하는데 항상 귀감이 돼주셔서 감사합니다~한국에서도 응원할께요~

2017-08-23 00: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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