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어느 날

미국에 이민 온 지 2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이런데, 여기는 왜 이러나…. 한국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는 이런 생각들은 저를 힘들게 했고, 이유도 없이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우연히 가족들과 식사하러 간 곳에서 법륜스님의 강연 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어? 이번에는 중부 뉴저지로 오시네?’ 제가 사는 곳은 중부 뉴저지라 불리는 지역입니다. 뉴저지는 미국의 다른 주들에 비하면 작은 주에 속하지만, 그런데도 한국 분들이 많이 사시는 북부 뉴저지까지는 이곳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매년 스님의 강연 등 행사는 북부 뉴저지에서 주로 열리며, 뉴저지 정토회 역시 북부에 있습니다.
‘그러면 강연 준비하는 분들이 북부에서 이곳 에디슨 지역까지 내려오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작정 연락처에 나와 있는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집이 강연장에서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시간도 많습니다. 무슨 일이든 도울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그간 법륜스님 법문을 유튜브로만 들어왔을 뿐이지, 정토회라는 곳이 어떤 곳 인지도 잘 모르면서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소심하게 고민하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이메일 보낸 지 채 10분이 되지 않아 마음을 내주어 고맙다는 따스한 답 메일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바로 해외 사회활동팀장을 맡고 있는 백은주 님이었습니다.

 2016 뉴저지 강연 후 찍은 봉사자들 기념사진: 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박승희 님▲ 2016 뉴저지 강연 후 찍은 봉사자들 기념사진: 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박승희 님

강연 날 많은 봉사자분들이 마치 매일 하는 일인 양 능숙하게 강연장을 만들어 가는 모습에 살짝 놀라며, 저도 그 속에서 초보자 티 내지 않으려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강연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서로 인사 나누며 스님 늘 말씀하시는 객(客)이 아닌 주인(主人) 된 하루를 살았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저의 인연은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에디슨에 행복강좌가 개설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날 스님의 강연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은 건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SYK한미 커뮤니티센터의 린다 강 대표님은 그 날 스님의 강연을 보고 앞으로도 에디슨에서 스님의 영상 강좌가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선뜻 장소를 내어 주었습니다.
에디슨에서 첫 행복강좌가 열리던 날, 늘 집에서 혼자 듣던 스님의 법문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같이 웃고, 공감하며 듣는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나누기’라는 것도 해 보았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왜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에디슨 행복강좌 후 간식 시간:왼쪽 맨 앞에 박승희 님, 맞은편에 안선영 님▲ 에디슨 행복강좌 후 간식 시간:왼쪽 맨 앞에 박승희 님, 맞은편에 안선영 님

SYK센터를 나서는데, 한 분이 제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랑 불교대학 같이 다니지 않을래요? 지난주에 입학식만 했고 아직 수업은 시작 안 했어요.”
살면서 불교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멀리 미국까지 와서 불교 공부라니….

108배도 한 번 안 해본 내가 불교대학에….

그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 다시 여름이 오는 동안 저는 매주 불교대학에 갔습니다. 눈물 글썽이는 제게 불대 같이 가자며 말 걸어주셨던 도반, 안선영 님과 함께요. 왕복 140km 정도니까 서울에서 대전까지 되는 거리를 한 주씩 교대로 운전하며 그렇게 1년을 지냈습니다. 물론 2주에 한 번 있는 에디슨 행복강좌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저는 천일결사 예비 입재자로, 그리고 백일 뒤엔 정식 입재자로 입재도 하고, 300배 특별수련, 명상수련 체험 같은 제가 결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경험들을 했습니다.

불교대학 특강수련 후: 맨 왼쪽에 지난 1년간 불대를 이끌어 주신 한혜진 님, 바로 옆에 박승희 님▲ 불교대학 특강수련 후: 맨 왼쪽에 지난 1년간 불대를 이끌어 주신 한혜진 님, 바로 옆에 박승희 님

처음 108배를 하고 울면서 계단을 기어 내려오던 일, 나누기만 했다 하면 웃다가도 울고, 다른 도반들 얘기에 또 울던 일, 제가 조금 예민하다 싶으면 유튜브 스님 법문을 슬며시 들이밀던 우리 아이들... 이제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기억들입니다.

2017년 9월 오늘

시간은 흘러 어느덧, 1년 전 그 날처럼 스님이 오셨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뉴욕법당으로, 다시 뉴저지 강연장으로 몸도 마음도 분주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오늘 도반들과 함께 지난 1년간 다닌 불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깨닫는 이’라는 뜻의 ‘보리화’ 불명도 받았습니다. 불명을 받고 불자가 된다는 것은 신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 사는 것이라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니다.

뉴욕, 뉴저지, 맨하튼법당의 불교대학 졸업생들입니다.▲ 뉴욕, 뉴저지, 맨하튼법당의 불교대학 졸업생들입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스님과 한 컷▲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스님과 한 컷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 제게 수행은 그렇습니다. 언제나 앞에서 든든히 끌어주시는 선배 도반들이 있고, 제가 주저앉아있으면 일으켜 세워주는 우리 불대 도반들이 있습니다. 자랑을 하자면 저희 2016 뉴저지 가을 불대생들은 중간에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7명 전원이 오늘 졸업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 7명이 모두 경전반으로 함께 간답니다.

스님 강연 후 뒷정리 중: 불대 졸업생들끼리 기념 촬영 왼쪽부터 박승희, 안선영, 정정화, 남현종, 배영애, 박미애, 김양숙 님▲ 스님 강연 후 뒷정리 중: 불대 졸업생들끼리 기념 촬영 왼쪽부터 박승희, 안선영, 정정화, 남현종, 배영애, 박미애, 김양숙 님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자고, 적게 쓰는 수행자의 기본 생활 자세조차 저는 아직 어렵습니다. 여전히 맛집 순례를 좋아하고, 주말 아침의 늦잠이 그리 달콤할 수 없으며, 명품가방에 하트 뽕뽕 눈빛을 보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1년 전 보다 저는 더 많이 행복합니다. 낯선 곳에 와서도 밝은 얼굴로 생활하는 아이들과 성실한 남편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저를 이 먼 미국 땅에서 부처님 법과 만나게 한 그 인연에 감사합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명심문 되뇌며 오늘도 시작합니다.
지금! 여기! 바로 내가 행복하기.

박승희 님 가족사진: 엄마가 좀 예민하다 싶으면 유튜브 스님 법문을 슬며시 들이미는 우리 아이들과 성실한 남편, 늘 감사합니다▲ 박승희 님 가족사진: 엄마가 좀 예민하다 싶으면 유튜브 스님 법문을 슬며시 들이미는 우리 아이들과 성실한 남편, 늘 감사합니다

글_박승희 희망리포터 (북미동북부 뉴저지법당)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