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정진 2,050일을 맞이하는 도반이 있어 소개합니다.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임은순 님! 새롭게 태어난 그녀의 라이프스토리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지금부터 7년 전까지만 해도 제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겨 늘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눈치 보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잠을 자도 얕은 잠과 불면증으로 인해 아침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간신히 일어나는 힘든 생활을 해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시간만 나면 몸이 아파 누워 있었고,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녀봐도 병명도 없이 처방받은 약봉지만 집안에 가득 했습니다.
이런 나에게도 남편과 아들 둘이 있고 직장도 다니고 있었습니다만, 집안도 아이들도 엉망인 상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만이 살길이라 여겨 시간만 되면 잔소리를 했습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때리고 혼내고 하는 동안 큰아들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술 먹고 수업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때는 담배를 피워서 부모님 호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방과 후에는 피시방에서 있다가 다음 날 아침 6시쯤 들어와서 밥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 생활을 고등학교 내내 하면서 불량학생으로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돈을 달라고 해서 홧김에 돈을 주지 않았더니, 팔에 자해를 했습니다.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 싶어 서울에 있는 정신병원에 가보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6개월 정도 치료를 해 보자고 했는데, 본인이 거절하여 치료는 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정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고 아픔이었습니다.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오른쪽 첫 번째가 임은순 님
▲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오른쪽 첫 번째가 임은순 님

정진하면서 힘들었던 유년시절이 떠오르다

이런 아픔을 겪고 있는데 우연히 불교방송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를 진작부터 다니던 지인의 소개로 천일결사에도 참석해보고 입재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가볍게 해보라는 지인의 말대로 시작했던 것이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정진을 하면서 어린 시절의 삶이 다시 재연되어 힘들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정진 안 하고 그냥 그냥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습니다. 정진하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과거의 삶이 하나둘 살아서 올라오는 게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집안 살림을 하게 되었고, 억센 오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폭행과 폭언으로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어쩌다 집에 오시면 아버지랑 다투고, 이웃 사람들과도 싸우셔서 너무나 창피하였습니다. 편안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저는 학교생활도 엉망이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선생님들께도 미움을 받으며 생활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한 유년시절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하루하루 정진을 하면 올라와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심환을 사 먹으면서 이것은 좋아지려는 명현현상이라고 여기며 정진을 놓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혼자 스님 법문을 계속 듣고, 수요일마다 가정법회에 가서 듣고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아마 그때 말문이 트인 것 같습니다. 법문 듣고 나누기 시간에 거의 매번 울면서 말도 더듬거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원망과 잘못된 사고방식에 대해 깊이 반성도 하게 되었고,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기도 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천일결사 기도를 하면서 부득이 아침 정진을 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는 날도 많았습니다. 1년에 몇 번씩 출장과 연수가 있어서 직장 동료들과 한방을 사용한다거나 할 때는 정말 난감했습니다. 특히나 기존종교가 다들 있는 동료들이라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혼자 오롯이 정진할 수 있는 장소는 화장실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서 300배 정진을 하고 나오니 동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걱정하듯 바라봤습니다. 이런 식으로 꼭 못할 것 같은 정진도 화장실서 하고, 여름에 가족과 같이 여행을 할 때도 텐트 속에서 300배 정진을 해왔습니다. 이렇게 정진을 조금 하다 보니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이 많이 없어지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혼자 어린 시절을 재생하며 들었던 생각들이 차츰 사라지고 현실에 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떤 일에 부딪히면 화가 확 올라오는 증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정진도 하루하루 꾸준히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전반 담당자를 맡았을 때 (뒷줄 왼쪽 임은순 님)
▲ 경전반 담당자를 맡았을 때 (뒷줄 왼쪽 임은순 님)

수행하니 주변이 편안해지고, 감사한 일들뿐

충주법당이 개원하고 3년은 회계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불교대학과 경전반 담당자를 하면서,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쓰임이 있음에 이 또한 감사한 마음입니다. 남편은 처음에 어디 이상한 종교에 빠져 헤매는 건 아닌지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문경에 바라지 하러 가면 자진하여 데려다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큰아들도 군대 제대 후에 경제적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맡은 바 일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생활이 즐겁고 재밌다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저를 위로합니다. 나의 수행으로 집안은 평화로워졌으며, 가족들도 각자 자기 일들을 열심히 하며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시간만큼 많은 것들이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저는 수녀님이 원장으로 있는 사회복지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필요에 따라 가끔 미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퇴근하여 법당에 와서 수행 정진을 합니다. 한때는 분별심도 많이 올라와서 근무지를 바꿔볼까도 했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둘 다 소중한 곳이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수행일지는 계속된다

제가 천일결사 시작할 때는 수행일지 쓰는 노트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트에 정진이 끝나면 떠올랐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적어 나갔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과 용서하지 못 하는 일들, 용기가 없어 대항하지 못했던 일들을 적습니다. 울분도 많이 토해내고 보호받지 못했던 나를 위로하면서 다독여 주고, 격려해주고, 감싸주는 그런 작업을 했습니다. 수행일지 노트도 30여 권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5년 반의 세월 2,050일이 되었습니다. 점점 나아지고, 향상되어 가고, 성숙하고 있다고 스스로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여기까지 잘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옵니다. 마음속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행복한 수행일지는 계속 쓰일 것입니다.

수행일지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임은순 님
▲ 수행일지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임은순 님

바다와 하늘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를 보지 않고 깊은 바닷속 고요함을 보고 싶고, 하늘의 흰 구름과 먹구름은 보지 않고 그 너머의 텅 빈 창공을 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가을 하늘은 마침 흰 구름도 먹구름도 한 점 없이 청명하기만 한데, 저는 자꾸만 지상에 있는 건물이나 나무를 바라보게 됩니다. 파란 하늘도 좋지만, 흰 구름과 먹구름도 있는 것이 바라볼 게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아무것도 없이 사는 것보다는 이런 일 저런 일이 있는 가운데 재미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삶이 힘들다고 했지만 결국은 그 힘든 삶이 있었기에 귀한 법문도 들을 수 있었고, 지루하고 재미없었을 텐데 재미있는 삶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삶이 주는 해택인 샘입니다.

이번 입재식 이후에도 수행일지는 계속 채워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글_임은순(충주법당)
정리_최익란(청주정토회 충주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

[2017 법륜스님 즉문즉설 <행복한 대화> 강연일정]

▶강연일정 확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