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동아시아·태평양지구
서툴고 어려웠던 첫 강연 준비 그 뒷이야기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있었던 스님의 2017년 세계 강연 중에 스님께서 유일하게 처음으로 가신 곳이 바로 퍼스(Perth)였습니다. 퍼스는 호주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로 호주 대륙의 서부 끝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인구는 퍼스시에만 대략 백만 명가량, 한인은 7~8천 명 정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처음 열린 퍼스 즉문즉설 강연의 공동 총괄을 맡아 성공리에 진행한 허청 님과 봉사자로 참여한 송교남 님의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성당을 쓰고자 말씀해주신 부처님과 이를 허락해 주신 예수님의 천상 <행복한 대화>

지난 9월 7일 퍼스 Infant Jesus Parish Morley  성당에서 열린 스님의 즉문즉설: 성당의 천장 불빛이 마치 하늘의 별과 같이 보이네요.
▲ 지난 9월 7일 퍼스 Infant Jesus Parish Morley 성당에서 열린 스님의 즉문즉설: 성당의 천장 불빛이 마치 하늘의 별과 같이 보이네요.

허청 님: 안녕하세요. 현재 퍼스 열린법회 담당자인 조미정 님과 함께 이번 퍼스 강연의 공동 총괄을 맡았던 허청입니다. 저는 2014년 처음 퍼스 열린법회를 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이민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친구를 통해 법륜스님을 소개받고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조금씩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되었습니다. 지난 3년간 적은 수의 법회 참가자들과 열린법회를 지속해가던 중 잠시 소임을 내려놓고 쉬던 차에 스님께서 마침내 퍼스에 오신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실 출산 후 둘째 아이를 잃은 개인적인 아픔 때문에 행사 총괄을 맡는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법륜스님께 진 큰 빚을 꼭 갚고 싶어서 부족하지만, 기꺼이 행사 준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017 퍼스 <행복한 대화> 강연에서 접수를 맡은 도반들
▲ 2017 퍼스 <행복한 대화> 강연에서 접수를 맡은 도반들

공짜 강연장? 이런 대접은 처음

우선 퍼스 정토행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다른 도시에 비해 평균 연령대가 낮고 30대 젊은 층이 대다수입니다. 젊고 활기찬 장점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된 연령층이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보시가 취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행사장 대관 등 강연에 필요한 여러 부분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 받으려니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갑질’을 당하게 됩니다. 이치로 보면 공짜로 달라고 하니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당시에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위축되고 자괴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는 퍼스 교민들을 위해 스님께서 와 주시고 정토회에서도 많은 분이 봉사를 해주는 것인데 고마워하기보다는 되레 장사하는 양 이걸 주면 저걸 줘야지 하는 식이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했나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기적 같은 구원의 손길

그렇게 여기저기서 치일 무렵 기적처럼 노 드미트리 신부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 한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주셨습니다. 다른 신부님들께 부탁을 드려 성당을 강연장으로 쓸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해 주신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성당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필요로 하는 모든 대중의 것”이라며 성당에 보내는 희사금마저 본인의 주머니를 털어 대신 내주셨습니다. 신부님 말씀 중에 특히 이번 강연을 들어 ‘성당을 쓰고자 말씀해주신 부처님과 이를 허락해 주신 예수님의 천상 <행복한 대화>’라고 표현하신 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처럼 좋은 마음과 의도로 일을 하다 보니 결국 좋은 마음을 내준 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첫 강연을 잘 치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연소 봉사자가 속한 강연장 내부 안내팀
▲ 최연소 봉사자가 속한 강연장 내부 안내팀

도반들과 함께 이번 행사준비를 하며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성향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을 하다 보면 갈등이 있기 마련이지요. 일 처리 하는 방식이 꼼꼼한 사람도 있고 대충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성격이 꼼꼼하지는 않아도 구색을 갖추어 되도록 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일하는 중간중간 ‘대충해요. 그래도 돼요’라는 말을 들어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틈날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관련 법문을 듣고 절 수행을 통해 마음 들여다보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괜찮구나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제가 괴로우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내 방식이 맞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괴로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져서 도반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지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나서 되려 부드럽게 제 의견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로 얘기를 했을 텐데 이제는 조금 기다려보고 이해하려 해보니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맞추어 가는 것, 이해하는 것이 참 재미있구나’ 생각하며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강연 날이 다가왔고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마치며 “말없이 참아주고 이해해줘서 감사하다.”는 봉사자들의 인사를 받은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굳어있던 교민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구나, 깨달음의 모습이 이렇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또 어떤 일이든 웃으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봉사자들 모두 한 자리에
▲ 봉사자들 모두 한 자리에

다시 한번 이런 귀한 깨달음과 수행의 기회를 경험하게 해준 정토회의 모든 선배 도반들, 법사님, 또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강연이 끝나고 여러 교민께서 전화를 주셔서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어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퍼스는 호주 대륙의 서부 끝에 위치해 마치 섬처럼 뚝 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크고 작은 행사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대부분은 연예인 공연이 전부였는데요, 스님께서 오셔서 이민 생활에 지친 퍼스 교민들의 목마름을 덜어주셨습니다. 말 그대로 참 <행복한 대화>였습니다. 그 여운은 오래도록 우리들 가슴에 남을 겁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

송교남 님 : 제 별명은 보탁입니다. 보시할 때 보, 탁발할 때 탁을 따서 지은 건 아니고요, 직장 동료인 싱가포르 친구가 지어준 애칭입니다. 대머리라는 뜻이라네요. 제가 대머리라서 정토회와 인연이 닿은 것인가 우스운 생각을 해 봅니다.

강연이 있기 한 달 전쯤에 법륜스님 강연회가 퍼스에서 열린다는 빅 뉴스를 들었습니다. 놀랍고 흥분되고 무척 기뻤습니다. 퍼스에 살면서 스님을 직접 뵌다는 건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스님 책도 읽으며 나름 수행이라는 것을 혼자 하던 중에 존경하는 스님께서 이 외딴 도시, 호주의 대도시 중에서는 가장 외떨어진 퍼스까지 오신다니 정말 기뻤습니다.

강연장 외부 안내팀: 맨 왼쪽에 송교남 님
▲ 강연장 외부 안내팀: 맨 왼쪽에 송교남 님

퍼스 강연회 총괄을 맡은 허청 님과 열린법회 담당자 조미정 님을 주축으로 봉사자를 모집할 때, 아무렴 마음공부 하는 수행자인데 방긋 웃으며 ‘예’ 하고 해야지 스스로 용기백배였습니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강연장 내부와 외부 안내 팀장을 맡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토회에서 내려오는 준비 사항들, 보고 해야 하는 것들, 홍보 문제, 책 판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모든 일을 봉사와 후원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마음이 멀찌감치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아마 제 업식이 작용했지 싶습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번뇌와 망상에 사로잡혀 ‘아,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난 이런 행사 준비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빠지는 게 도움이 될 거야’, ‘야 이건 군대보다 더하네. 쉽게 쉽게 하면 안 되나’ 수십 가지 핑계와 변명을 들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다 포기하자니 염치가 없고 비겁해 보여서 능력이 부족하니 외부팀장만 맡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리석었지만, 당시에는 짐을 덜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모두가 애쓴 덕에 강연이 성황리에 끝나고 나니 허전한 마음도 들고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강연 후 더욱 수행 정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나는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얼마 후 시드니에서 열린 <깨달음의장>에 다녀오고 나서야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현재에 깨어 있지 못하고 업식에 끄달려 헤매고 괴로워하던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강연 준비 과정에서 진 마음의 빚을 갚겠습니다. 애써주신 도반들, 봉사자들, 스님, 법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처음이라 조금 더 어렵고 서툴렀지만, 그 과정에서 시선을 안으로 돌려 수행 정진하는 퍼스 도반들의 모습이 그대로 수행자입니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 성장하는 퍼스법회를 기대해 봅니다.

글_허청, 송교남 님 (퍼스법회)
정리_이진선 희망리포터 (시드니법당)

[2017 법륜스님 즉문즉설 <행복한 대화> 강연일정]

▶강연일정 확인하기

전체댓글 5

0/200

부동심

드미트리 신부님의 말씀에 뭉클해집니다. 퍼스의 젊은 도반님들의 활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행사 잘 치르신 것 같습니다. 멋지셔요. 홧팅!!^^

2017-11-15 11:57:45

이기사

고맙습니다_()_

2017-11-02 17:36:04

새벽

글을 읽으니 그 날의 감동이 밀려옵니다. 감사합니다.

2017-11-02 09:09:53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동아시아·태평양지구’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