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정토회는 2004년 4월 가정법회로 시작하여 2011년 2월 세리토스에 법당을 마련하고 OC법당으로 거듭나면서 매년 15명 안팎의 불교대학 졸업생을 꾸준히 배출해 왔습니다. 이렇게 전법과 수행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불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불사팀이 만들어지고 많은 분이 애를 썼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여러 어려움을 풀어내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을 때 기존 법당이 있던 건물이 재개발된다는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불가피하게 법당 이전을 해야만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끈기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재의 장소로 안착할 수 있게한 숨은 일꾼이 있어 만나 봤습니다. 바로 OC법당의 전은영 님입니다.

새로 이사한 OC법당에서 한 컷. 전은영 님▲ 새로 이사한 OC법당에서 한 컷. 전은영 님

저는 2012년 불교대학을 시작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어 그 후 회계담당 소임을 맡아서 일했고요. 작년 한 해 OC법당 부총무 소임을 맡았었습니다. 불사에 뜻을 둔 이유는 딸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불교는 비주류에 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딸아이가 이 좋은 불법을 모르고 기독교나 다른 종교를 기웃거리며 정신적 지주를 찾아 방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커가면서 정신적 지주로 삼을 수 있는 철학이나 종교로 불법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법당이 없어 일요일마다 어디로 갈지 망설여지거든요. 그러려면 우선 그럴만한 장소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장소로 저는 OC법당을 생각한 거예요. OC법당의 규모가 커져서 더 넓은 장소로 옮기게 되면 법당 내 아이들을 위한 불교수업이나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고 더 나아가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어질 테고 그러면 제가 그와 관련된 일에 참여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포부를 가지게 된 거죠. 제가 이런 꿈을 갖게 된 데에는 정토회와 인연을 맺기 전 다녔던 정혜사에서 활동하면서 받은 영향이 컸어요. 그곳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시설이 잘 되어있었거든요.
그런데 정토회와 인연을 맺고 몇 해가 지나면서 그것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보다 엄마가 먼저 행복하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굳이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죠. 일반적인 절과는 다르게 자기 수행을 우선으로 하는 수행자의 모임이라 현재로서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OC법당 이전 법회: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에 전은영 님 ▲ OC법당 이전 법회: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에 전은영 님

그러던 어느 날 엘에이정토회 대표를 역임하셨던 고본화 님에게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고본화 님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딸아이가 불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OC 법당을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면 앞으로 실망할 일이 생길 수 있다고. 그 아이가 커서 불교를 선택할지 모르는 일인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에 제가 깨달았죠. ‘내가 상에 집착해서 내가 옳다고 고집하고 있구나’라고요. 이후로는 ‘아이가 어떤 종교를 갖게 되어도 내가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수행을 통해 맛보면서 제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만일결사는 외국인을 상대로 전법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OC법당이 그 토대가 되는 장소로 쓰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다’라고 생각이 정리될 때쯤에 OC법당 부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법당은 커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불사를 담당하셨던 분들께 큰 장소로 옮겨야 한다고 부르짖었고 그 기준으로 법당장소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런 데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며 달려가는 제 성격이 한몫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행동이었어요. 장소가 크고 넓으면 좋겠지만 그에 따르는 현실적인 문제 즉, 경제적인 지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또한 그런 장소를 이곳 오렌지카운티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도 문제였어요. 캘리포니아에서 종교단체의 건물이나 사무실을 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던 선배들이 반대를 하셨나 봐요.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나서 일을 할 때 부분에 집착하기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단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지난달 15일에 있었던 OC법당 이전 법회▲ 지난달 15일에 있었던 OC법당 이전 법회

그리고 불사를 하려니 결정해야 할 일이 참 많더라고요. 당연히 그와 관련된 분들도 많았고요. 사람이 많다 보니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합의 없이는 불사를 진행할 수 없었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정토회에서 하는 일이 그렇듯이요. 그렇다 보니 많은 분이 불사를 추진하다 어려움에 봉착해 포기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럴 즈음 “불사는 화합이 중요하다.”, “화합이 되지 않으면 불사가 힘들고 되고 나서도 힘들다”라는 말씀을 법륜스님께서 해주셨어요. 그 말씀에 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번쩍했어요. 불사를 해야 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성사시켜야 한다는 결과에 집착했지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과정은 보지 못한 거였어요. 이 일로 저는 크게 깨닫게 되었죠. 일을 하다보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데 꼭 성공해야 한다는 제 업식을 돌아보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또한 이걸 계기로 저는 제가 옳다고만 했던 걸 내려놓을 줄도 알게 되었고 상대방 의견도 들으면서 인정해가는 자세를 갖기 위해 노력했죠. 그러던 중 해가 바뀌어 건물이 재건축되니 일 년 육 개월 안에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법당 이전을 해야 할 상황이 된 거죠.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무리하게 건물을 매입하는 것보다 임대하는 걸로 결정을 하고 법당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육 개월 정도를 일주일에 두세 곳을 찾아다녔지만, 법당 장소로 적합한 여러 요건을 맞춘다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습니다. 또 불사팀 관계자들이 법당 요건으로 보는 우선순위가 서로 달랐어요. 그러니 의견이 모이는 게 어려웠죠. 이러다간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때는 성사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 가면서 팀원들이 모르고 있던 문제가 있으면 설명하고 다른 분의 의견도 듣고, 다른 장소와 조건을 비교하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팀원들 간의 이견을 좁혀갔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법당으로 이전할 수 있게 되었어요.

OC법당 도반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첫 번째에 전은영 님▲ OC법당 도반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첫 번째에 전은영 님

중간에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당시는 부총무 자리도 내려놓고 불사팀의 일원도 아니었는데,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 수 있는데 왜 내가 해야 해?’라는 생각이 절 괴롭히곤 했어요. 이전부터 법당 장소를 알아봤으니 계속 맡아서 하면 어떻겠냐는 권유로 뛰어들긴 했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마음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일이 깨지면 저처럼 실망할 다른 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봤어요. 그러면 다시 힘을 받아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 사람이 이 힘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죠. 또 제가 다른 사람보다 끈기가 있어요. 다르게 보면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번 불사는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톡톡히 한몫을 한 것 같아요. 솜은 부드러움으로 쓰이고 쇠는 단단함으로 쓰인다는 말처럼요.
제가 불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화합의 중요성입니다. 화합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OC 법당 도반들이 서로 화합하고 개선해 가며 앞으로 외국인과 교포 2세들에게 전법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요. 또 우리부터 먼저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전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긴 이야기를 한정된 지면 위에 다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글을 정리하면서 일과 수행이라는 정토 수행자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전은영 님 정말 보기 좋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글_전은영 님 (OC법당)
정리_이노숙 희망리포터 (북미서남부)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