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두절 된 남편

저의 20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방황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그림 그리는 남편을 절에서 만나며 먼저 그가 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를 도우며 다른 일을 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그림 그리는 일을 사업처럼 벌였으나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고, 그쯤에 2013년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심한 아토피로 인해 혼자서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과는 떨어져 저는 부모님 집에 의지하며 오롯이 아이 아토피 치료에만 몰두했습니다. 남편은 간간이 부모님 집을 찾아오며 한동안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일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친정에도 차츰 잘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남편이 못마땅한 부모님을 보며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은 저의 어머님과 다툰 후에, 연락이 두절 되었고 그 뒤로 전 아이와 둘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이와 둘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언젠가 성공해서 돌아오겠지라는 막연한 믿음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야지 내가 살 수 있었고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아토피

아이는 병원에서 상위 1%라는 아토피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을 써 봐도 소용없어 온천에도 가보고 냉온욕, 풍욕 등 자연치료를 하며 하루하루 그렇게 지냈습니다. 아이가 9개월쯤 되었을 때, 자연치료 한답시고 여러 곡물로 쑨 미음을 먹이다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 소리 지르며 기절해서 응급실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아이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병원에 가고 입원도 했었습니다. 아이가 아픈 것도 걱정이었지만 부모님께 의지만 하고 아이 치료를 위한 돈 한 푼 없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남편도 원망스러웠습니다.
2014년 12월 아이의 아토피는 조금씩 나아져 갔습니다. 남편을 미워하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는 괴로워서, 이번에는 언니가 있는 천안에 와서 함께 살았습니다. 학원을 운영하는 언니의 도움으로 방 한 칸에서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심리적, 경제적 의지처가 필요했습니다. 2015년 1년을 꼬박 남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도 내 의지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며 아이와 함께 살 집을 구해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의지처는 계속 찾고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어떤 취미 활동을 해 보아도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절하고 싶어서 등에 업힌 아이▲ 함께 절하고 싶어서 등에 업힌 아이

새로운 의지처가 되어 준 불교대학

그러다가 2016년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로 보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천안정토회 가을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가는 그 날이 기다려질 만큼 가고 싶어졌습니다. 법문 듣고 도반들과 나누기 하고 차 마시는 그곳이 의지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이를 돌봐주시겠다는 도반의 도움으로 <깨달음의장>도 4박 5일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새터민과 여행도 가고, JTS 거리모금도 하며 아이와 함께 가능한 모든 것을 함께 참여했습니다. JTS 거리모금을 할 때는 아이가 간식을 먹으며 옆에서 지켜봤는데 그 이후 아이는 가끔 동전 몇개가 생기면 "밥 못 먹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라며 말하곤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찾는, 관세음보살 같은 아이

얼마 전에는 새벽 6시에 잠자는 아이를 깨워서 일주일간 새벽 통일 정진도 함께 했습니다. 법당에서 엄마의 목탁 소리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든 아이는 어느 날 재미있는 행동을 했습니다. 사촌 형과 잡기 놀이를 하는데 사촌 형이 아이를 잡자 위기에 처한 아이가 갑자기 두 손을 모으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외쳤습니다. 갑자기 관세음보살을 찾아 아이의 사촌 형과 저는 웃음이 빵하고 터졌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장난을 치거나 위기상황이라고 생각될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찾곤 합니다. 5살 아이와 둘이서 함께 생활하고 법당가서 기도하고 법문 듣고 봉사하는 지금이 참으로 행복하기만 합니다.

가을불교대 입학 후 거리모금 때. 왼쪽 뒷줄에서 첫 번째가 신상미 님▲ 가을불교대 입학 후 거리모금 때. 왼쪽 뒷줄에서 첫 번째가 신상미 님

나는 행복한 수행자

수행하기 전에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남편에 대한 원망, 미움이 컸지만, 지금은 괴로움이 많이 사라지고 오히려 연민의 정도 느껴집니다. 정토회를 다니기 전 가장 힘들었던 일이 남편의 부재였는데 불법을 공부하면서 관점이 바뀌니 귀한 생명 하나를 주고 간 게 가장 큰 고마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아이와 함께 "이 세상에 ○○이를 낳아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며 삼배를 하고 잠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아빠 얘기가 나오면 당당히 "우리 아빠 멀리에서 일하고 있다"라며 씩씩하게 말합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만 했던 나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부처님 법에 의지하며 아들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토회의 여러 활동을 아이와 함께하고 있는데,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키워주는 느낌을 받게 해준 모든 도반님께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전쟁반대 평화협상 집회 중에서 아이와 함께▲ 전쟁반대 평화협상 집회 중에서 아이와 함께

글_신상미(아산법당)
정리_전혜영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아산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