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전법당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에 내 인생은 송두리째 부서졌고, 부처님 법과 함께 거듭났습니다
윤광자 님 수행이야기

27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 가족과 떨어져서 식당 일을 하며 온갖 설움을 겪어야만 했던 지난 날들. 어려운 상황속에서 부처님을 믿다가 나중에 정토회를 알고 정법을 만난 기쁨에 <깨달음의장>과 불교대학에 사비로 여러 사람들을 보냈다는 윤광자 님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남편의 뇌경색

삶에서 잊지 못할 단 하루를 꼽자면 1990년 7월 17일입니다. 그날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남편이 무역 회사를 이끌어서 아쉬울 것 없이 살았습니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남편은 거동도, 언어도 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남편 병시중을 3년 정도 하니 그제야 움직이고 생활할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언어는 안 되었고, 그때쯤 모아 두었던 돈은 바닥이 났습니다.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저는 생활 전선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 남편과 함께

생활전선으로 뛰어들다

사회 경험이 없었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설거지와 허드렛일이었습니다. 남대문 시장 난전(거리에서 하는 장사)에서 국수와 김밥을 파는 지인을 도우며 일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밤 9시부터 아침 11시까지 김밥을 말고 파는 일을 도왔습니다. 당시의 삶은 낮에 잠자고 밤새워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초등학생인 막내딸을 두고 와서 보고 싶은 마음과 집생각으로 엎드린 채 가슴을 부여잡고 뒹굴었습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밤이 되어 일터로 나가야되니 일하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난전에서 일하다가 다른 식당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선 주방장이 일을 못 한다고 구박하기 일쑤였습니다. 당시에 같이 일하는 분들이 불쌍하다고 그릇도 걷어주고 설거지도 도와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불교방송에서 어떤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때리면 맞고, 밀치면 뒹굴고, 얼굴에 침을 뱉으면 마를 때까지 그냥 두어라. 이게 보살의 행위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수없이 혼자 말하며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결국, 그곳에서도 일 못 한다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렇게 서울과 대전에서 이 식당, 저 식당을 옮겨 다니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집에만 있던 남편은 의처증이 생겼습니다. 일하고 와서, 저녁으로 된장을 보글보글 끓여주면 낮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며 의심을 했습니다. 일하는 식당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바꿔주기도 했는데도 의심은 여전했습니다.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절에서 공양주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절에서 일하는 걸로는 뭐라고 하지 않아서 그때부터 이 절 저 절 돌아다니면서 공양주 생활을 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거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웠던 그때, 세상 누구보다 내 인생이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이대로 죽어버릴까 생각했던 그날들. 쫓겨나기도 하고, 일 마치고 오갈 데가 없어 남대문 지하철역에서 밤새기도 했던 막막한 날들.
추석과 설에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날이면 더 외로웠습니다. 남편 몸이 불편하고 대화도 안 되다보니 부모, 친구, 모든 인연을 다 끊고 밥 먹고 일터로 가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설과 추석에는 갈데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법당에 가서 절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 외로웠습니다. 그런 지옥 같은 나날을 견디니, 아이들은 하나둘씩 잘 커주고 남편 건강도 조금씩 좋아져서 삶이 점점 나아졌습니다.

<나눔의장>을 마치고 법사님과 함께
▲ <나눔의장>을 마치고 법사님과 함께

정토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참가하다

2011년 불교방송을 통해 법륜스님을 알게 되고 정토회를 찾아 왔습니다. 정토회에 오고 2년 안에 모든 프로그램을 다 경험했습니다. <깨달음의장>, <나눔의장>, <명상수련>, <동북아역사대장정>부터 <인도성지순례>까지 모든 프로그램들이 감동이었습니다.
<나눔의장>을 통해서 남편에게 진정으로 참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을 위해서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었다고 생각만 했지, 남편 마음은 몰라줬습니다. 말을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을 안 해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마로 힘들었을 남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면서 서럽게 눈물 흘리며 참회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저 또한 더 자유롭고 행복해졌습니다.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고 자유롭다

초등학교까지만 나와서 그런지 많이 배운 사람들이 늘 부러웠고, 옛날 사람이라 타인의 시선을 늘 의식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했던 말에 사로잡혀서 며칠 간 끙끙 앓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고 자책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합니다.
명상을 통해선 만물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걷는데 그 비가 금, 은, 보석처럼 느껴지며 하늘에서 ‘이 금, 은, 보석 다 가져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난 보석도 싫고, 금도 싫고, 은도 싫다.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고 자유롭다.' 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동북아역사대장정>을 돌아보면, 스님과 함께 갔다는 게 감격적이었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봤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통일이 돼서 온 겨레 사람이 다 와서 천지를 보면 좋겠습니다. 압록강, 두만강 강변에서 보는 북한의 뙈기밭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배고프기에 저렇게까지 했을까. 집에 돌아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뙈기밭 노래도 지어 봤습니다.

부처님 오신날에
▲ 부처님 오신날에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서 힘들었던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어릴 때 받았던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힘든 상황도 툴툴 털고 나갈 수 있는 밑천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깜깜했던 터널을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토회를 통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여러 프로그램들을 체험하고 나니 이젠 아픈 기억들을 덤덤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은 행복과 자유의 길로 안내하는 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반들과 이 자유롭고 행복한 항해를 인생의 마지막까지 다 할 것입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일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습니다."

글_배성화 희망리포터(대전정토회 대전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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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화

힘든 삶 사셨네요ㆍ
그래도 옛 이야기로 할 수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ㆍ
힘든 세월 잘 이겨내신 공덕을 잘 키워준 부모 공덕으로 돌리시는 모습에서 보살림의 수행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2018-01-02 11:56:46

신선희

어렵고 함든시기를 딛고 참행복의길을 찾은 도반님들을 보며 부러워라합니다. 무엇을 더 가져야 행복할 수 있겠냐라는 욕심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이 순간이 복이며 행복임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보살님! 참으로 잘 사셨습니다

2018-01-01 14:52:11

명륜

살아 오시느냐 고생많으셨승니다‥ 내 고통이 별게 아니구나‥ 란생각을 해봅니다‥ 건강하세요

2018-01-01 09: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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