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 졸업식. (왼쪽이 이지연 님)▲ 불교대학 졸업식. (왼쪽이 이지연 님)

<월간정토>가 정토회로 가는 길을 터주었습니다

법륜스님을 처음 알게 된 건 같이 근무하던 학원 선생님께서 읽어보라고 건네준 <월간 정토>를 통해서였어요.
대학 때부터 법정스님의 글이나 마음공부, 불교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왔었지만 책을 읽을 그때 뿐,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답답함이 늘 있었는데 <월간 정토>에 실린 스님의 법문과 정토행자들의 수행담은 좀 더 구체적이고 가까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 후 <월간 정토>를 정기구독 신청했고, 인터넷에서 정토회를 검색하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법문들을 시간 날 때마다 거의 다 들었어요. 밤늦게까지 학원 수업을 했기 때문에 오프라인 법회는 참석할 수가 없었고, 인터넷 열린 법회에 처음 문을 두드렸어요. 매주 올려준 법문을 듣고 채팅방에서 함께 나누기를 했는데, 얼굴을 직접 뵙지는 못한 분들이지만 자판 너머 글들은 따스했고, 도반들의 권유에 따라 혼자 집에서 108배를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알콜 중독으로, 한번 입에 대면 며칠을 끊이지 않고 술에 온전한 정신을 빼앗기고, 폭력 폭언을 일삼았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괴로움이 컸었고, 20대와 30대에는 정말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았지만 행복하지가 않았거든요.
그 후 15년 가까이 근무하던 학원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고, 집에서 과외를 시작하면서 시간을 조금 자유로이 쓸 수 있어, 당시 하대동 주선자 님 댁에서 봄불교대학을 모집한다는 걸 알게 되어 정토회로의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심이 깊고, 매번 수업 때마다 정갈하게 정돈된 거실에서 헌신적으로 수업을 이끌어 주셨던 공덕왕 주선자 님과, 직장인들이라 다들 시간에 쫓겼지만 늦은 시간까지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고 나누는 시간은 20년 가까이 일만 하던 제겐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후 이듬해 5월 법당이 개원되었고, 주간 활동가들이 몇 분 안 계셨기 때문에 주선자 님과 임연희 님을 따라다니며 법회 지원, 불사 재정 등을 함께 했습니다. 법당이 개원되면서 법당 재정 담당, 공양간 지원, 천일결사 모둠장, 자원활동 담당, 통일의병교육 담당을 했고, 현재는 통일특위 활동과 초전동에서 행복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행복학교 회원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이 이지연 님)▲ 행복학교 회원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이 이지연 님)

함께의 힘으로

애초에 3년 정도 활동하자고 생각했었고, 경전반 졸업할 때가 가까워 오니 법당 활동들도 하기 싫은 마음이 크게 자리잡았습니다. 다시 예전에 하던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법회 참석과 새벽 정진,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봉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천일결사 같은 모둠에서 수행정진하던 도반들과 같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둠법회도 열고 실천과제들도 해나가면서 다시 재미가 붙었습니다. 그때 활동에 조금 지쳐있던 도반이 자원 활동 소임을 내려놓게 되었는데, 짐을 좀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그 소임을 맡게 되면서 다시 한발 내딛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물론 혼자서도 잘 해나가는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지난 7년간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스스로 발심하여 봉사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 주셨던 선배도반과, 때론 부딪치며 서로에게 분별심 내기도 하고 때론 끌어주고 밀어주는 도반들의 힘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이든 봉사든, 처음에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더라도 거의 매일 만나서 함께 활동하다 보면 서로 다름이 보이고, 일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세우게 되더라고요. 결국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이 첨예하게 다를 때는 싫어지고 피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밖이 아닌 나 자신에로 철저하게 돌이키게 하는 스님의 법문이 있었고, 상하반기 두 차례 정일사 정진과 법사님과의 점검 시간을 통해 다시 수행의 관점을 잡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달라서 갈등하는 게 아니라 달라서 풍요롭다는 말의 의미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네요.

죽림정사에서 용성조사 탄신일 외부봉사. (맨 오른쪽이 이지연 님)▲ 죽림정사에서 용성조사 탄신일 외부봉사. (맨 오른쪽이 이지연 님)

개인과 사회, 행복의 두 수레바퀴

통일의병교육 담당을 맡으면서 좁은 소견들이 정말 많이 깨진 것 같아요. 담당이다 보니 다른 도반들은 한 번 듣는 수업들을 여러 번 들으면서, 그리고 진행자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상고사부터 가슴 아픈 근현대사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니 현대의 정치와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생기더군요. 사실 저는 그동안 굉장히 편협하게 공부를 했었거든요. 이과 출신이라 수학과 과학 등은 좋아해서 찾아서 책도 보고 했지만 인문학이나 역사, 근현대사 특히 사회 정치 분야는 관심도 없었는데,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로 문제라고 여기지도 않았어요. 게다가 내 삶의 무게가 무겁고 여유가 없다보니 주변이나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요.

통일의병교육을 마치고. (뒷줄 오른쪽이 이지연 님)▲ 통일의병교육을 마치고. (뒷줄 오른쪽이 이지연 님)

불대와 경전반 수업 속에 포함되어 있는 복지, 환경, 통일 특강과 봄, 가을 두 차례 수행법회에서 진행되었던 특강들도 정말 유익했던 것 같아요. 개인주의에서 빠져 나와 내 가족만을 보며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음이 크게 자각이 되더군요. 행복이란 것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인연 맺고 살고 있는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는데, 말 그대로 개인주의에 절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보아 모두 연기되어 있다는 걸 몰랐던 거죠.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니 아찔해지네요.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지금도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었겠죠. 또 그런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면서요.

JTS 거리모금 캠페인 (남편과 함께)▲ JTS 거리모금 캠페인 (남편과 함께)

나의 아들, 나의 수행

우리집에는 나의 수행을 끊임없이 점검하게 하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아들이 있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은 왜 그리 저를 자신없게 만들고 쪼그라들게 하던지요.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다시 학원으로 복직했었어요. 아이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줄이긴 했지만 돈 몇 푼 벌어 볼 거라고, 아니 그 당시엔 돈보다는 일을 그만두면 왠지 사회에서 도태되고 뒤처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면서 부딪치는 일들이 잦아졌어요.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상위권을 유지했는데, 중학생이 되었으니 스스로 공부하고 싶다길래, 그래보라고 법문 귀동냥한 건 있어서 믿고 지켜봐야지 하며 놔뒀더니, 성적표를 받고 상상도 하지 못한 점수에 너무나 컸던 실망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성적이 나올 수가 있지, 책 한 번만 봐도 이 정도는 안 나오겠다' 하며, 정말 아들이 이해가 안 되고 그 상황이 용납이 안 되었어요. 아들을 달달 볶기도 하고 잔소리라도 심하게 하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다시 부족한 엄마라고 자책의 화살을 돌리며 괴로워했고, 다음날 새벽엔 다시 300배를 하며 나 자신에게 벌을 주기도 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친구 관계도 정말 맘에 안 들었어요. 중학교 3년 내내 이성교제에 열을 올리는 것도 싫었고요. 본인은 특별히 가리는 친구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낸다고 말했지만, 친구들과 놀다가 학원 수업도 빠져 학원 선생님한테서 전화 오는 일이 잦아졌어요.
한번은 학교 급식소에서 화를 못 이겨 친구와 심하게 싸워 담임 선생님께 전화 받고 불려간 적도 있어요. 얼마 전에는 겉옷에 담배냄새가 잔뜩 배여 있길래, “너 담배 피우나? 옷에 담배 냄새가 왜 이리 심하노” 했더니 “담배 피우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서 그래” 하면서 자기는 안 피운다고 믿어달라고 소리를 지른 일도 있어요. 새벽마다 엎드리면서 ‘우리 아들은 잘 자랄 거다. 믿고 지켜보자. 건강하게 학교에 잘 다니는 것만도 다행이고, 공부도 중간은 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라고 되뇌며, 아들을 믿지 못하고 성질 낸 일들을 돌이켜 참회했습니다.

아들, 조카와 한반도 평화콘서트에서▲ 아들, 조카와 한반도 평화콘서트에서

수행과 알아차림을 계속 해나가니, 들뜨고 강하게 나오던 아이가 나의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편안할 때 같이 누그러지고 편안해짐을 미약하나마 종종 경험합니다. 새삼 정토회를 만나고, 법문을 듣고, 수행 정진하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 사춘기 아들 때문에 저보다 맘고생 심하게 하는 지인에게 하소연했더니, 대뜸 “아들 때문에 경찰서 불려 가봤냐? 왜 멀쩡한 애를 문제아로 만드냐"고 하며 한마디 던지더군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아들의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도 보지 못한 채 멀쩡하게 잘 자라는 아들을 내 기대와 요구에 따라주지 않는다고 달달 볶으며 사춘기 아들과 얼마나 부딪쳐 왔을까. 또 아들은 자기대로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물론 매 순간 아직도 바람과 요구가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아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는 수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아들에게 최소한 엄마인 내가 자식을 옭아매는 사슬은 되지 말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수행의 끈 놓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 봉사하는 삶에 충실해야겠다.’ 다시 발심해 봅니다.

글_이지연 (진주정토회 정토법당)
정리_채희주 희망리포터 (진주정토회 정토법당)
편집_목인숙 (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