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애 님의 시계는 정토행자 맞춤형 시계가 아닐까!

숫자들 속에서, 더하고 빼는 셈 속에서, 잠시 잠깐 미간이 찌푸려질 법도 한데 박영애 님은 온종일 직장에서의 쓰임이 무색해지는 평온한 미소로 또 법당에서 주어진 자기소임에 어떤 불평불만의 기색도, 어떤 시비분별의 내색도 없이 즐겁게 집중해 있습니다.

“피곤하시겠어요! 종일 직장 일도 고되셨을 텐데요.”

“아휴. 아니에요. 모두가 애쓰시죠. 호호호”

늘 돌아오는 박영애 님의 응답에는 잔잔한 웃음소리가 배경음이고 은은한 미소가 고명입니다. 얼마나 고단하실까! 박영애 님을 바라보는 도반들 마음이 오히려 더 애틋해지는 저녁시간이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광주 시내에서 출퇴근하는 것도 아니고, 광주시에서 1시간 30분 이상을 이동해야하는 전라남도 보성군 통계청에서 지부장으로 팀을 이끌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계시려니, 내로라한 똑 부러진 일솜씨로 이뤄낸 그 직책의 결과물만큼이나 직장 내에서의 무게감도 크겠다 느껴지곤 하지요. 묵직한 직장 업무만큼이나 정성을 쏟는 남편, 자식들, 그리고 홀로 계신 시어머님까지! 시댁의 자잘한 일들로 주말이면 더 분주하신 박영애 님의 하루 시간표, 일주일 스케줄 표를 숨 고르며 세심히 살펴보고픈 오지랖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어찌 그 많은 일을 저렇듯 편안하고 온화한 미소로 다 해내시는지 그저 존경의 마음만 샘솟습니다.

누가 보아도 법당 회계소임까지 맡기에는 염려가 함께 일어나곤 하는데, 소임을 받으실 때도 그랬지만, 지난해 초부터 1년이 넘게 해 오시는 중에도 그녀에게 무거운 기색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더 깊숙이 그녀의 삶 속을 들여다보고픈 충동이 일었던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통일정진 참여 후 도반들과 함께 :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박영애 님▲ 통일정진 참여 후 도반들과 함께 : 맨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박영애 님

“2006년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아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남편이 유난히도 성당 다니는 것을 싫어했어요. 그 해에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를 18일 간격을 두고 차례로 여의면서 많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성당에라도 가서 어느 정도 위안을 받으려 했었어요. 그런데 직장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 주일을 수시로 빼먹기 시작했고 어느덧 무종교인이 된 지도 6년쯤 되었을 거예요. 중심을 잃은 것인지, 어느 순간 또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어머님의 한없는 사랑도 집착으로 느껴져 옥죄어오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이던 남편도 무척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열심히만 살아왔던 나에게도 성과 없는 그 부지런함이 모자라게 느껴지고요. 한마디로 자괴감 속에서 나를 사랑할 힘조차 내질 못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주말마다 시댁에 갈 필요가 있을까? 한 달에 두 번만 가야지! 가서 나 혼자 죽어라 일 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결국 나만 힘들 뿐인데, 하면서 괴로워하는 혼자만의 탄성이 거듭거듭 이어지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직장 동료가 <깨달음의장>을 다녀왔다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환희심을 일상에서 보여주는데, 문득 그곳이 어디일까? 하는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어요. 그 계기로 법륜스님의 행복강연에 다녀오게 되면서, 정토회를 알게 되고 불교대학을 다니게 된 기회를 얻게 된 것이죠.”

전해주시는 말씀 중에도 미소는 내내 보너스로 덧붙여져 보고 듣는 리포터의 얼굴에도 전염된 듯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세세히 여쭤보지 않고, 가만히 박영애 님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누기로 듣는 듯 귀 기울여 듣는 것만으로도 금세 마음 안이 따뜻해오는 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일을 한 적이 없긴 해요. 분명 법적으로든 도덕적, 사회적으로든 잘못 살아온 건 아니지만, 시어머님을 대하는 제 마음이 이제는 참 가볍고 편안해졌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되 진심으로 그 마음을 전하고 행하려고 하거든요. 법당에서 봉사하는 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어느 일을 대하든 어떤 사람을 대하든 내가 먼저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면 일에서도 사람들에게도 그 기운이 전해진다고 생각을 해요. 자식에 대해서도 마구 퍼주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내 몫을 지혜롭게 다하려 하니, 그게 또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요. 성당 다니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던 남편이 정토회 다니는 것에는 부드러운 마음을 내어주니 법당에 오가는 제 발길도, 마음도, 모두 편안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광화문광장에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영애 님▲ 광화문광장에서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영애 님

내 직장 일을 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을 돌보기 위해,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기 위해, 법당에서의 봉사 소임은 손사래를 쳐오고 무겁게 받으려는 마음들에 ‘일과 수행’ 그 모든 것이 오직 한 길이고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박영애 님의 일상이 느껴졌습니다. 경청에만 몰두하다,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법당 회계담당 소임을 해오며 그래도 고충이 있으셨을 텐데요. 허심탄회하게 (하하하) 다 내어 놓아보셔요.”

‘허심탄회하게’라고 하였지만, 적절히 쓸 것만 쓰겠다는 마음으로 여쭌 질문이 부끄러워지는 박영애 님의 한없이 맑은 미소가 또 그 답으로 돌아옵니다.

“아니에요. 힘들게 느끼는 건 없고요. (호호호) 정말로요!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중요한 소임이 법당 일에는 초보인 나에게 주어져도 되는지 염려가 되었지만, 늘 해왔던 대로 그저 충실히 내 소임을 다하자는 마음으로만 임했더니 그 불안과 염려도 이내 녹아버렸어요. 솔직히 이렇게도 투명한 예산편성과 집행의 과정들을 철저히 해오고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정토회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회계담당자로서 그래도 그간 불필요하다 싶게 과다 지출되던 통신비를 절감했던 것이나, 도서 재고가 맞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았지만, 어느 정도 시스템에 맞추어 놓았던 것, 환경상품 관리대장이나 입금표 관리대장을 정리해놓고 이제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 느꼈어요. 물론 그 중에 그나마 작은 불편이라 하면, 법당에 나가서 처리해야만 하는 아이큐브 시스템이 집이나 직장에서도 할 수 있다면 먼 곳에서 퇴근하며 바삐 오기 힘들 때는 좀 유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쁜 직장인이나 주부에게 편리할 것 같아요.”

박영애 님의 잔잔한 목소리에는 분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나 아닌 누군가가 겪을 불편을 앞서서 덜어내 주고픈 고운 마음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턱을 괴고 더 듣고 싶다는 듯 리포터가 그 다음을 가만 기다리니 얼굴 가득 미소를 남발하시며 뒤이은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예전에는 모든 게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착각이었어요. 하면서도 힘들고 알아주지 않는 게 괴로웠던 참 중생 중 최고 중생이었지요. 정토회 덕분에, 부처님법 덕분에, 그래도 이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괴로움에 빠지지 않을 힘이 조금 생겼다고나 할까요. (호호호). 이제 내 삶 속에 묻혀 내 것만 생각하는 좁은 길이 아니라 넓게 보고 함께 가는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자주 사용하고 좋아하는 말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이 두 가지 말을 떠올리면 금세 편안해지고 감사한 마음만 생겨나요. 하나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또 하나가 ‘참 다행이다.’예요. 참 좋죠?”

지난 9-2차입재식에서 축하공연을 마친 후 무대 뒤에서 도반들과 함께. 두 번째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주인공
▲ 지난 9-2차입재식에서 축하공연을 마친 후 무대 뒤에서 도반들과 함께. 두 번째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주인공

애써 좋은지 상대를 향해 묻지 않아도, 이미 확 번져 리포터도 받게 된 그 ‘좋음’을, 그 ‘편안함’을 어찌해야할까요!

천 가지 만 가지 소임이 온들 이런 두 가지 마음 앞에서는 그저 즐겁고 가벼울 수밖에 없겠다 싶습니다. 불교대학, 경전반을 새로이 꾸려야 하는 봄을 앞둔 지금에, 박영애 님의 소임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평온함은 많은 도반에게 은은한 깨달음을 전할 듯합니다. 리포터인 저부터도 이미 전염돼 버렸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광주법당은 이제 서로 봉사소임을 맡아 해보겠다고 이 손 저 손 높이 들 터이니, 번호표 받고 기다리라는 여유와 배짱 튕기실 또 다른 ‘박영’클럽 멤버이신 ‘총무 박영애’ 님의 따스운 봄날 같은 미소도 덩달아 꿈꿔보는 바입니다.

글_문수미 희망리포터(광주정토회 광주법당)
편집_양지원(광주전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