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종로법당 소속 조명이입니다.
지난 1월 5일부터 21일까지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요, 17일간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불교대학 수업 중에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갔다와야 한다는 인도 성지순례’를 스님의 말씀따라 당연히 가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성지순례 일정이 잡히자마자 신청을 했고 인도로 떠나는 날만을 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순례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날짜가 잡혔고, 자료화면으로 보여준 동영상으로 순례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니, 가슴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또 한번 신청하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속한 그룹은 3호차 4조이고, 맡은 소임은 3호차 차량 내에서의 수신기 담당, 4조 그룹 안에서는 사진 담당이었습니다.

출국당일! 야, 드디어 떠난다!

조장(좌)과 부조장 조명이(우)▲ 조장(좌)과 부조장 조명이(우)

1월 5일 첫째날, 들뜬 마음 안고 찾기 쉽게 알록달록 예쁜 모자쓰고 인천공항을 갔습니다. 예정시간 보다 조금 일찍 공항에 도착하니 조장이 반기며 부조장 제안을 하였고, 저는 기꺼이 하기로 했습니다.
6시간 여의 비행 끝에 인도에 도착해 호텔에 하루 묵으면서 서로 안면을 트고자 자기소개와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소개를 마치고 보니 종로법당 4명, 노원법당 4명, 성북법당 2명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제 소임이 세 개나 되어서 조별 사진 찍는 소임은 다른 분이 하기로 하고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음날을 기다렸습니다.

둘째날에 바라나시행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에 있을 법륜스님과의 오리엔테이션과 저녁만찬을 기다렸습니다. 인도식 저녁 만찬을 먹으며 촌철살인 인도순례 에피소드들과 유의사항을 듣고 살짝 긴장 되었습니다. 다음 날 사르나트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사르나트에서 수계를 받다

1월 7일 셋째날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르나트에서의 수계식과, 신녹야정사, 영불탑, 강가강까지 가는 일정으로 새벽 일찍 사르나트에 도착하여 예불을 하였습니다. 현지에서 진행된 그 장엄함과 엄숙함에 감동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가사 입고 수계식까지 마치니 내가 비로소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온 것, 수행자로 이 땅을 밟은것이 실감났습니다.
수계식 후 처음으로 릭샤를 타고 강가강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께서 성지는 아니지만 인도 문화를 이해하기 좋은곳이라 하셨던 그 곳을 배를 타고 둘러보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오묘한 곳이었습니다. 배에서 내린 후 스리랑카 절을 들렀는데 그 곳으로 가는 중에 우리조 조원 한 명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찾아해매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다른 차량에 섞여 사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부조장이 후미를 잘 못 챙긴것 같아 좀 더 정신차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명이 짝이 되게 만들어서 꼭 붙어다니며 챙기기로 했습니다.

넷째날에는 수자타 아카데미, 환영식, 전정각산 유영굴 일정으로 수자타 아카데미행 버스를 탔습니다. 이날 작은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조원 중 한 명이 휴대폰을 숙소에 두고 온 것 같다고 하여 조장이 차장과 앞자리에서 상의하는 중, 차가 급정거를 해버린 것입니다. 우리 조장의 이마가 앞유리에 부딪치는 바람에 피가 나는 불의의 사고가 났습니다. 같은 차량에 다행히 의사가 있어서 응급처치를 하고 꿰매야 한다고 판단하여 현지 병원에 갔으나, 인도 의사는 꿰매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도병원의 낙후된 시설에 다시 진료 받을 엄두조차 못 냈던 조장은 서울로 돌아갈지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입장 전에 줄서서 기다리는 중▲ 수자타 아카데미 입장 전에 줄서서 기다리는 중

얼떨결에 제가 조장대행을 맡게 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수자타에 도착했습니다. 꽃목걸이에 꽃가루로 격한 환영을 받으며 학교에 입장하니 무거웠던 마음이 절로 가벼워졌습니다. 법당을 들러 인사를 하고 설지스투파에 꽃을 올리고 학교를 한바퀴 돌아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의 환영 공연과 짜이, 과자 등을 대접 받았습니다.
앞으로 3일 동안 묵을 숙소에 짐을 풀고 부처님께서 무려 6년 동안이나 고행하신 전정각산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예불과 명상, 경전독송을 하고 제 2 유영굴을 돌아 숙소로 왔습니다. 유영굴에 들어가보니 마치 내가 그 곳에 앉아 고행하고 있는 듯 성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네이란자의 마른 강을 걸으며

1월 9일 다섯째날, 보드가야 명상센터, 수자타 공양터, 우루벨라 가섭 교화터, 수자타 탑터, 보드가야 대탑을 도는 일정으로 새벽 일찍 짙은 안개를 뚫고 렌턴으로 길을 밝히며 보드가야로 향해 걷는 길!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물길만 남은 마른 네이란자라강은 걷기가 힘든 모래사장이 되어 있었고 먼지가 심하게 날렸지만 '부처님께서 이렇게 험하고 힘든 길을 걸어서 가셨구나' 하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느끼며 한 발 한 발 옮겼습니다.
공양 후 수자타 공양터, 우루벨라가섭 교화터, 수자타 탑터를 돌아 보드가야 대탑에 도착하였습니다. 예불한 후 드디어 개인 시간을 가졌습니다. 힌두인들과 각국의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있었던 보드가야 대탑은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없었습니다. 빠듯한 스케줄에 불상 구경도 제대로 못 보고 그냥 스치듯 봐야해서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힌두절이었던 것을 미얀마 왕이 복원시켜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을 아쉽게 뒤로하고 가야산에 들러 수자타 아카데미 숙소로 왔습니다. 저녁에는 JTS활동 브리핑도 받으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JTS 활동에 좀 더 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라즈기르로 가는 길 도보행진

1월 10일 여섯째 날, 아침 일찍 예불 후 3호차가 전정각산에 가지 않고 아침배식 준비를 했습니다. 400여 명의 밥을 짓고, 간식을 준비하고, 다음 먹을 후식을 씻고, 솥에 붙은 밥 하나까지도 싹싹 긁어 숭늉 만들고, 큰 솥을 씻는 등 배식은 전쟁이었습니다.
설지스투파에서는 설성봉 님의 숭고한 보시, 봉사의 마음과 뜻을 되새겼습니다. 앞으로 내가 봉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추모식 후 진행된 개교기념식은 장관이었습니다. 둥게스와리에 도착하자마자 봤던 구걸하던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에 감탄과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점심식사 후 마을 방문도 했는데요, 현지인의 실생활을 둘러보니 우리가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설지스투파에서 개교식 마친 후, 출연진들과 함께.▲ 설지스투파에서 개교식 마친 후, 출연진들과 함께.

일곱째 날, 라즈기르로 출발하여 도보행진, 죽림정사, 영축산, 빔비사라 감옥터, 나란다 박물관, 나란다 대학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스님께서 처음 시도한다는 제띠안 도보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16km를 4시간 안에 가야하는 여정이어서 발걸음은 바빴습니다. 지난 밤에 배탈이 나서 설사하느라 한숨도 못 잔 제 몸은 도시락, 물, 경전 등이 들어있는 가방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배도 고프지만 빨리 도시락을 먹어서 조금이라도 무게를 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밥 먹을 마땅한 장소가 쉽게 나오지 않아 11시가 다 되서야 유적지 한 곳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얼마나 꿀맛이던지요!

아침 공양 후 홀가분하게 환호성!▲ 아침 공양 후 홀가분하게 환호성!

늦은 아침 공양 후 인공 동굴인 손반다르 동굴까지 13km를 걸은 후 녹야정사, 영축산, 빔비사라 감옥터를 다녀왔습니다. 그 후 시간이 늦어 이미 예약된 티켓을 취소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나란다 박물관은 스치듯 뛰어갔다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란다 대학은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다녀왔습니다. 어머어마한 규모의 대학을 짧은 시간 안에 봐야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불교 번창과 함께 세워진 최초, 최대의 대학이 무슬림 침공으로 불타서 사라진것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열반 후의 부처님을 뵌 후,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을 되새기며

부처님 열반 후 마하가섭 존자가 부처님 법문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며 첫번째로 500명을 결집한 곳이라는 칠엽굴로 향했습니다. 오백아라한들이 3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에서 명상을 하니 나도 오백아라한의 한 명이 된 듯 하였습니다.
칠엽굴을 내려와 여성 최초 출가지인 바이샬리로 출발했습니다. 원숭이가 부처님 발우를 알아보고 꿀을 채워 공양했다는 원후봉밀터를 들러 진신사리 탑터로 향했습니다. 진신사리 탑터라 기대했는데 사리는 파트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터만 자리잡고 있어 내심 아쉬웠습니다. 2500여 년 전의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느껴보며, 그 분들의 노력 덕에 지금 많이 좋아진 비구니들의 인권을 생각해봤습니다.

아홉째 날, 바이샬리를 떠나 쿠시나가르로 가는 부처님을 떠나보내기 아쉬워했던 리차비족들에게 이별의 징표로 발우를 건네준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께사리야 탑을 들렀습니다. 쿠시나가르로 출발하여 춘다의 공양터, 카쿳타 강, 열반당, 라마바르 총을 도는 일정으로 버스를 탔습니다. 춘다의 공양으로 부처님의 병이 더 악화되었다고 비난받을 춘다를 걱정하며 그의 공양을 치켜세우신 부처님의 위대함을 보였던 곳, 춘다의 공양터. 그 후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욕했다는 카쿳타 강에서 아침공양 후 사라쌍수나무 밑에서 열반하셨다는 열반당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니 이미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예불과 경전 독송 후에 열반상을 친견하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쉼없이 쏟아졌습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이 쉼없는 수행과 정진하는 것이라는 유언을 받들어 죽을때까지 수행, 정진할 것을 발원했습니다.

부처님의 열반상을 바라보며.▲ 부처님의 열반상을 바라보며.

14일 새벽 2시 30분부터 기상하여 네팔 국경을 넘어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룸비니로 가기 위해 일찍 출발하였습니다. 버스에서의 긴 기다림이 이어지고 버스에서 환기가 힘들어 밖에서 아침공양 할 곳을 찾다가 겨우 현지식당에서 음식 2개를 시켜놓고 10명이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11시간의 사투 끝에 겨우 국경을 지나 룸비니에 도착하니 이미 3시가 넘었고, 예불을 드리고 나니 스님께서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차량을 또 더 기다리신다고 하십니다. 국경변수에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예불과 법문을 다섯 번 하게 된 스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우리를 하나라도 더 알게 하고자 애쓰시는 마음과 열정이 느껴져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탄센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카필라성에 속하는 곳으로,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주변환경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순례 일정에 들어 갔다고 하는데요. 어제처럼 국경을 넘는 것도 아닌데 왜 새벽 일찍 출발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2시 30분에 기상하여 탄센행 버스를 탔습니다. 안개가 많이 껴서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한 그 곳은 해발 1800미터에 달하는 고산지대로, 구름보다 위에 있는 지역이라 여태껏 안개 끼고 공기 안 좋은 인도와 달리 맑고 청명한 하늘에 깨끗하게 정비된 집들이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본 일출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다웠고 업장이 두터우면 안 보인다는 설산도 마음의 눈으로 봤습니다. 오랫만에 맑은 공기를 폐 속 깊숙히 넣어보니 따스한 햇빛과 맑은 공기의 소중함이 가슴 깊이 느껴졌습니다.

주차장에서 아침공양 후 콜리족이 강 속에 세운 진신사리탑이 헐리지 않고 그대로 있는 랑그람을 들렀습니다. 또 두나라 간 전쟁 직전에 부처님이 중재한 기록이 있는 로히니 강을 거쳐 어제 못간 카필라성과 쿠단을 가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어제 못다한 일정까지 소화하느라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쿠단에 도착한 우리는 렌턴 불빛으로 경전독송을 하는 강행군을 했는데요,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더 보여주려는 스님의 열정을 한번 더 느낄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법륜스님과 탄센 산책▲ 법륜스님과 탄센 산책

쉬라바스티의 따뜻함과 기원정사의 여법함

열두째날, 다시 인도로 들어가기 위해 국경을 통과 해야하는 날이고 지난번처럼 오래 기다릴까 내심 걱정했으나 다행히 일찍 끝나서 석가족이 세운 사리탑터인 삐쁘라하와에 도착했습니다. 사리는 델리 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마지막 날에 친견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은 천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기념하여 세운 탑인 천불화현 탑터를 보기위해 쉬라바스티로 출발했습니다. 천불화현 탑터를 마지막으로 한국 절인 숙소로 향했는데요, 그 곳에서 한국식 국과 김치로 순례객을 맞이해줘서 오랫만에 따뜻한 저녁 식사자리가 되었습니다. 모두 즐겁게 저녁을 먹고 스님법문과 즉문즉설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열세째 날은 버스를 타지 않고 오로지 걸어서 기원정사, 사위성, 앙굴리말라 탑터, 수닷타 탑터, 동원정사를 순례하는 일정입니다. 새벽 일찍 '석가모니불'을 정근하며 기원정사 가는 길은 순례 중 가장 여법했던 길이었습니다. 새벽 이슬 맞으며 예불과 경전독송을 3시간 가량 꼼짝 않고 하느라 힘들었지만 해가 나오면서 얼었던 몸도 이내 풀렸습니다. 기원정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정진도 하며 여유있는 하루를 보낸 후 다른 탑터와 밭길도 걸으며 숙소로 돌아오니 그 동안 바빴던 일정과 다르게 몸과 마음이 편안했던 하루였습니다.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한곳 상카시아로 가서 탑터를 돌고 담마센터에서 회향식을 하고 석가족들을 만나면 실질적인 순례가 마무리됩니다. 상카시아로 가는 도중 조원의 시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회향식에 이은 석가족의 환영파티에 다들 즐거운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순례의 마지막 명심문을 가슴에 새기다

마지막 날은 아그라로 와서 관광객의 일정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수도를 아그라로 옮기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아그라성을 밝은 마음으로 관람하고, 순례 후 처음 보는 초호화 호텔에 묵었습니다. 정리법문과 마지막 만찬에 이은 수고하신 스텝들, 법사님들 노고를 치하하신 후 기사님들, 차장님과 조장님들까지 챙겨주시고 선물로 스카프까지 주셨습니다. 그간의 노고가 봄눈 녹듯이 싹 사라지는 호텔에서의 밤이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체크아웃 후 무굴제국 대표 건축물인 타지마할 관람과 진신사리가 있는 델리 국립박물관 일정을 마지막으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 찾고 수신기 회수하고, 깃발, 조끼, 물품 등 정리해서 스텝에 넘기며 9명 조원들과 정들었던 17일 여정에 이별을 고했습니다.

3호차 기사님과 법사님, 차장님 그리고 함께했던 34조.▲ 3호차 기사님과 법사님, 차장님 그리고 함께했던 34조.

마지막까지 함께한 34조.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한 34조.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휴대폰을 찾는 소동, 일행을 잃어버리는 소동 등 소소한 사건 등이 있었고, 한 명은 이마 깨지고, 또 한 명은 도중에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조금 일찍 귀국했지만 무사히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어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법륜스님과 함께 순례를 책임지고 맡은 스텝들과 법사단, 차장님들 등 400여 명의 많은 대중을 무탈하게 이끈 보이지 않은 곳에서 애써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순례 3일째 부터 갑자기 조장이 다쳐 조장대행이 되었지만 잘 따라준 조원들께도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면서 아주 먼 신적인 존재가 아닌 좀 더 인간적인, 혁명가적인 면들을 많이 보게되어 부처님이 좀더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물이 귀하고 전기가 부족하여 잘 씻지 못하고 불편하였지만, 내가 얼마나 풍족하게 여유를 누리는지 느끼며, 실생활에 어떻게 아끼며 살아야 할지, 수행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뜻깊은 순례였습니다.
순례가 가능하게 했던 건강, 회사 등 모든 조건들에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순례에 딱 맞는 명심문을 가슴에 새기며 상을 짓지 않도록 발원합니다.

글_조명이 님(서대문정토회 종로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원서접수기간 : 2018. 3. 25 (일)까지

문의 : 02-587-8990
▶정토불교대학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