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스님과 한 컷▲ 2017년 3월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스님과 한 컷

나도 한번 가볼까?

특별할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던 십년지기 친구와 층간 소음 문제로 감정이 상하면서 제 일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좋아하고 잘해줬는데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어?'
'같이 애 키우는 처지에서 그 정도도 이해 못 해?'

전 실망과 배신감과 분노로 지난 십 년 세월이 억울했습니다. 앞에서는 미안하다고, 조심하겠다고 웃으며 얘기하고, 돌아서서는 이를 갈며 미움을 쌓아갔습니다. 내가 피해를 주는 입장이니 참아야지 하면서도 억누르려니 그 화가 아이들에게로 폭발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잔소리를 쏟아내면 8살 딸 아이는 제 눈치를 슬슬 보고, 4살 먹은 아들은 저 보다 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떼를 쓰는 날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여기가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었지만 제 안의 화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가까이서 이를 지켜보던 이웃이 교회에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신을 믿어 본 적은 없었지만 제 마음을 이해해 주니 감사해서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 성경 공부하고, 찬송하고, 기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믿음이 생기고 노력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 년이 지나도 제 마음속의 미움과 원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신에게 매달리고 싶었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 믿음이 생기질 않으니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즈음, 한 지인이 <깨달음의장>을 다녀오더니 불교대학에 입학하고 불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저에게 정토회 이야기며 부처님 이야기며 깨달음이 어쩌고저쩌고 하니, 도대체 불교대학이 뭐길래 그 힘들다는 108배를 매일 하면서도 행복하다고 저러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나도 한번 가볼까? 그러면 교회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 아닐까?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남의 눈치보며 우물쭈물하기엔 제 행복이 더 소중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2016년 드디어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월요일은 교회 합창 연습, 화요일은 불교대학과 수행법회, 목요일은 교회 구역 모임, 일요일은 주일 예배. 행복을 찾아 이 종교 저 종교,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는 제 모습이 우스웠는지 남편은 "이슬람 사원은 언제 가냐?"고 자주 놀려댔습니다. 학기 초에는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내가 옳지 않으면 너도 옳지 않다고 속으로 우겨대며 계속 나를 고집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부처님 가르침이 이해되더니 그토록 미워하던 친구의 입장도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위층이 비어 있어 조용히 살다 갑자기 우리네 식구가 이사 들어왔으니 시끄러운 것이 당연했겠구나... 내가 더 배려해서 조용히 살아주길 바랐겠구나... 시끄럽게 구는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 마음속의 응어리가 천천히 녹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아래층에 사니 내가 더 조심하고 먼저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구나.'

눈도 마주치기 싫었던 친구 얼굴을 다시 웃으며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으니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첫날, 자기소개 시간: 스님 옆에 박동주 님, 제일 오른쪽에 최민교 님, 그 옆에 곽안숙 님▲ 인도에 도착한 첫날, 자기소개 시간: 스님 옆에 박동주 님, 제일 오른쪽에 최민교 님, 그 옆에 곽안숙 님

길에서 만난 부처님들

불교대학을 개근으로 졸업하자마자 경전반 공부를 시작해 곧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제 내면의 변화가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불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전 아직도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며 괴로워하고 아이들에게도 그 업식을 물려주는 줄도 몰랐을 테니 부처님 법 만난 것이 기적입니다. 그토록 미워하던 친구가 바로 저를 불법으로 인도한 보살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올해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인도성지순례를 갔습니다. 무조건 믿어야 믿어진다는 신이 아닌,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깨달음을 얻으신 분. 저 같은 중생들에게 법을 전하는 일로 평생을 바치신 길을 드디어 찾게 되었습니다.
성지를 순례하는 곳곳에서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 애쓰시며 늦은 밤까지 법문해 주신 가이드 부처님, 430여 명이 순조롭게 순례할 수 있게 준비해주신 법사 부처님, 행자 부처님, 진행팀 부처님, 순례자들에게 따뜻한 밥 먹여주신 공양주 부처님, 빠르고 안전하게 운전해 주신 드라이버 부처님, 쾌적한 여행을 위해 쉬는 시간마다 버스 청소 열심히 해주시는 조수 부처님, 생면부지 우리에게 꽃을 걸어주며 멋진 공연까지 선사한 수자타 학교 어린이 부처님, 여행 내내 함께 웃고 함께 자고 함께 행복해한 순례자 부처님 등 너무도 많은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가장 기뻤던 것은 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아이들 부처님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 기쁩니다.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즐거운 점심 공양 시간▲ 즐거운 점심 공양 시간

인도성지순례를 함께 한 최민교, 곽안숙 님의 이야기도 들려 드립니다.

최민교 님: 인도로 떠나기 전에는 부처님의 성지를 찾아본다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두 도반과 동행하는 경전반 졸업 여행 같은 들뜬 맘으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감동과 재미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구나 기대했는데 현실은 고행이 8할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디뎌 본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만 생각했었기에 다녀온 후에야 그 고행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의 첫날, 릭샤를 탄 후에 내려서 걸어간 강가강까지의 그 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 릭샤, 오토바이 등 갖가지 탈 것과 온갖 동물들까지 뒤엉켜 난무하는 데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은 지금도 귓가를 맴도는 듯합니다. 그 이후에 이어진 강가강의 화장터! 정말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왜 부처님이 다른 나라가 아닌 인도에서 탄생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사라져 버린 순간이었습니다.
6년 동안 고행하셨던 전정각산과 시타림, 거기서 도보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있는 수자타 아카데미. 그 곳에 학교를 짓고 불가촉천민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개교 기념식에서 스님의 격려사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로 이곳에서 6년간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듯이, 너희들도 이러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감동적인 말씀을 들으며 사랑의 실천이 이곳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공연은 세계 어떤 유명 작품보다 더한 감동을 선사했기에 대부분 순례자는 눈시울을 적셔야 했습니다. 이날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셨던 사르나트의 녹야원,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밑, 쿠시나가라의 열반당, 금강경의 배경이 된 기원정사 등 어느 한 곳도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어서 2,600년 전 그 곳에 사셨던 부처님의 향기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위대한 휴머니스트이자, 사상가였고 수행자였던 붓다의 발자취를 따라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수행의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깨달을 수 있었던 잊지 못할 순례였습니다.

곽안숙 님: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아 몸은 힘들었지만, 그 값어치는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스님께서 단순히 순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읽고 그 글귀를 통해 자기 삶을 비추어 보고 스스로 자각을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식은 많은데 믿음은 부족하다고, 종교는 믿음이 근간이며 진리로서의 철학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법문을 통해 앞으로 불자로서 더욱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저는 더욱 행복해졌습니다. 정토회를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글_박동주 희망리포터 (방콕법당)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