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 님▲ 이혜영 님

풍요 속의 빈곤

찬바람 속에 법당을 찾는 마음이 행복으로 충만해 있는 스스로를 봅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곤란 없이 안온하게 살았습니다. 결혼생활은 시부모님 덕분으로 처음부터 강남 역삼동 넓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습니다. 돈의 소중함도 몰랐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와 교만에 빠져있었습니다. 내 가족, 내 아이들만 소중하고 귀했습니다.
종교문제로 형님을 멀리하시는 시부모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면 모시기 싫다고 할 수 없고, 다섯 형제 가운데 마음 약한 자신의 차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쪽으로는 왜 NO라고 말하지 못하는지, 왜 착한 여자 신드롬에 빠져있는지 자책하며, 모든 게 친정어머니의 교육 탓이라고 원망했습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 잘 나가는 남편, 잘 자라는 아이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에 매일 쫓기는 생활이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기분으로 늘 허전하고 이유 없는 갈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공직에서 일하다가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청주로 내려왔습니다. 남편은 퇴직 후에, 연이어 큰 시련이 있었습니다. 과욕으로 인한 투자에 큰 실패를 보았고, 또 믿었던 후배와의 창업에서 배신을 당했습니다.
아파트를 확장하여 60평이 넘도록 넓게 사용하며 둘이서 어느 구석에 들어앉는 지도 모르게 살다가 작은 주택으로 이사를 할 때, 이건 현실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경제적인 충격이 너무나 컸습니다. 남편은 관료적인 습성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 이 모든 상황을 더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골프는 물론 친구와 사람 만나기도 거부하며 집안에만 있었습니다. 저는 이왕 벌어진 일이고 내 손을 떠난 문제라 생각하고 남편에게 바가지 한번 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게 되니, 남편은 그게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찾은 한 줄기 빛

저는 저대로 숨이 막혀 밖으로 나가 복지관을 찾아서,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 안부 나눔 봉사를 하는 생활 관리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르신들을 보며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고 있었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부모님을 4개월 차이로 보내드리고 나니,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 공황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외로움으로 기다리시는 어르신들, 전화 한 통화에 고마워하시는 그분들 덕분으로 숨 쉬고, 집을 들고 나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꼴도 보기 싫었고, 눈도 마주치기 싫었고, 말만 나눠도 짜증과 화가 올라왔습니다.
그러던 2016년 가을 동료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몹시 황망했던 그 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인생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분명히 빛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행복학교에 등록해서 듣고, 다음 달에는 불교대학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이 끝나고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 번째가 이혜영 님)
▲ 불교대학 수업이 끝나고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첫 번째가 이혜영 님)

육십 인생이 거꾸로 쏟아져 내리는 새로움

처음엔 법륜스님의 광활한 법문에 빠져 정토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다음엔 부처님께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불교대학에서 환경적, 역사적으로 이해하며 만난 불법은 위대한 한 인간의 고행과 가르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 번의 발걸음이 흔들리던 인생을 바꿔 놓았듯, 육십 인생이 송두리째 거꾸로 쏟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태껏 무얼 위해서 살았으며 나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지만 가슴은 충만한 무언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눈부신 오월에 다녀오고, 수행 정진을 시작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해외여행 중에도 정해진 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몇 날을 소리 없이 울며 참회했습니다. 내 남편, 내 아이들 모두가 감사하고 나아가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더 감사했습니다. 참회와 감사의 눈물 속에 평온함이 자리 잡았습니다.
남편은 지금 새로운 방송 장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베트남과 동남아까지 수출을 꿈꾸며 새롭게 청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밉고 원망했던 남편이 이제는 밉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해 못 해주고 투정해도 여태껏 나를 챙겨주고 보듬어준 고마운 사람일 뿐입니다. 남편이 욕심내지 않고 재미있게 일하기만 바랍니다. 아들과 딸, 며느리, 그리고 자랑스러운 동생, 올 봄 불교대학에 입학하는 올케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모든 게 감사할 뿐입니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느껴지나 봅니다. "요즘 뭐하러 다니세요? 얼굴에 행복이 넘치는 것 같아요, 예뻐지는 것 같아요." 사무실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저는 행복학교와 정토회, 불교대학의 이야기를 열심히 합니다. 남편의 절망이나 역경이 아니었으면, 과연 이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불법을 만났을까? 삶의 새 이정표를 만들어준 그 고난에 감히 감사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도반들과 봉사하고 있는 모습(오른쪽 첫 번째가 이혜영 님)▲ 도반들과 봉사하고 있는 모습(오른쪽 첫 번째가 이혜영 님)

수행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수행이 어떤 큰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것부터 알아차림, 그 작은 것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우주만큼 키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젊은 시절 꿈꾸던 내가 정녕 무엇이었는지, 지금 이순의 나이에 찾았습니다.
그동안 세상에 진 빚을 갚으려면 수행, 보시, 봉사를 남들 두 배는 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손해 보지 않으려거나 혹은 나만 아프지 않으려고 머리싸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곧 알아차리고 깨어있어서, 나는 행복한 수행자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감사함이며 수행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부처님, 스승님 감사합니다.

글_이혜영 (청주정토회 흥덕법당)
정리_김미경 희망리포터(청주정토회 흥덕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