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연 님의 수행담을 읽고 있으면 격정적이었던 파도가 서서히 잠잠해지는 시류를 타는 듯합니다.
여러 소임과 장소를 바꾸어가며 경험한 것을 오롯이 나로 돌이키는 수행담, 전순연 님의 마음나누기를 함께 나눕니다.

법당 도반과 불교대학 홍보 중. 맨 왼쪽이 전순연 님.▲ 법당 도반과 불교대학 홍보 중. 맨 왼쪽이 전순연 님.

내 인생의 나침반, 불교대학

처음으로 수행문을 읽던 그날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수행문은 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줄 열쇠가 숨겨진 보물지도였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로 애 간장을 졸이던 때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스님의 책 제목에 위안을 얻어 정토회를 찾아오게 되었다. 첫 수행법회 법문은 들었을 때 괴로움에서 벗어나 편안해지는 경험을 한 후, 내 살길은 이 공부에 있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은 잘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 법륜스님처럼은 되어보자며,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 발 뒤꿈치는 가지 않겠나 싶어 뭐든 해보라는 대로 했다.
처음에는 서울의 서초법당에서 불교대학을 다니며 말씀 하나 하나 땅에 떨어질까 수첩에 모두 담았다. 그 법문은 마치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졌다. 퇴근 이후 듣는 저녁반 수업이었으나 한번도 졸지 않을 정도로 내 생에 그렇게 재미있는 공부는 처음이었다. 졸업 할 때 내가 기록한 수첩은 네 권이나 나왔다. 졸업 소감문에 '불교대학은 내 인생의 나침반과 같다'라고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침마다 하는 정진은 먼지가 없도록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어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곧 내 마음에 대한 이해는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교대학 졸업 이전부터 이런 저런 소임을 거부하지 않고 "예"하고 했다. 소임은 배운 것을 내 것이 되도록 해주었고 몸과 마음을 넓혀주는 역할도 했다. 불교대학을 다닐 때 동작법당 불사를 담당하여 어렵게 끝낸 후 불교대학 담당을 연이어 제의를 받고서는 소임에서 두 손을 들었다. 그 때 법문에 “빵빵해져 터지기 직전에 탁! 돌이키는 맛을 봐라”하신 말씀을 들으며 소임에서 손 때는 것을 많이 아쉬워 했다. 그때 어쩌면 뭔가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놓쳤구나 하며 다음 소임은 절대 물러나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총무님이 생일상을 차려주셨을 때. 맨 오른쪽이 전순연 님.▲ 총무님이 생일상을 차려주셨을 때. 맨 오른쪽이 전순연 님.

김천체육관 앞에서 세월호 참사 천만인 서명 받았을 때. 맨 왼쪽이 전순연 님.▲ 김천체육관 앞에서 세월호 참사 천만인 서명 받았을 때. 맨 왼쪽이 전순연 님.

경전반 재학 중, 직장 이전으로 서울에서 김천으로 내려오게 되면서 저녁책임자 소임을 맡게 되었다. 수업은 대구법당에서 듣고, 소임은 김천법당 일을 했다. 김천법당은 개원한지 두 달 되는 신생 법당이었다. 그 때는 학과 개설도 없던 때였다. 부총무님이 절대 도망가지 않도록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한다'라는 생각으로 어떤 소임이든 흔쾌히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총님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내가 도망가지 않도록 뭐든 다 하셨단다.
뭐든 지지해 준 부총무님과 함께 신나게 보냈다. 소임을 하면서 여러 경험을 하게 되었다. 바쁜 일정으로 잠이 줄어드니 예전보다 몸에 대해 자유로워지게 되었고 나의 일이냐 너의 일이냐 따지던 좁은 마음은 주인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무엇이든 가볍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계산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돈을 내가 더 많이 낸 것 같고 혹은 내게 더 많은 일이 오는 것 같아 때때로 피곤해지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 '아차 내가 또 상대에게 기대려 하는구나, 이건 내가 좋아서 선택한 자리에 상대가 있어 주는 것이니 내가 돈을 낼 만하다. 돈보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좋아한다. 일도 당연히 내 일이고 내가 선택 할 수 있는지 상황을 살펴서 할 뿐, 상대가 해주면 거들어 주니 고마운 일인 것이다.' 이런 마음이 되니 이전보다는 넉넉해지고 많이 편해졌다. 물론 계산이 순식간에 될 때가 있지만...
3년간 내가 얻은 최대의 수확은 '주인된 마음일 때 걸리지 않고 자유롭다'는 것을 경험한 것과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해 보았다'는 것이다. 소임이 복이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천 도반들과 야유회.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천 도반들과 야유회.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즐거움과 집착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소임은 배움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들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끝내고 나서 때때로 마주하는 마음에 당황스러웠다. 소임이 바뀔 때 아쉬움도 그랬지만, 인도성지순례 때 소임을 하다가 내려 놓았을 때 소임을 뺏긴 듯한 마음이 더 그랬다.
1월에 인도성지순례 차장 소임을 받고 이전 순례 영상 시리즈를 밤마다 보면서 사전 계획을 한 달에 걸쳐 신나게 만들었다. 그러다 나의 인도 출발이 불투명해져 출발 이틀 전에 소임을 급작스럽게 바꾸게 되었다. 뒷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손 때 묻어 반들반들해진 장난감을 순식간에 뺏긴 듯 억울한 기분이였다. 인도는 결국 가게 되었으나 인도에 있는 내내 짜증이 계속 되었다. 준비하는 동안 그렇게 즐거웠던 것이 놓아야 할 순간에 괴로움이 되었다. 그 때 좋아한다는 것은 집착을 함께 동반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위를 보며 '나는 시어머니가 되면 저러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하며 미래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젠 일이 신나게 느껴질 때 일에 집착하는지 마음을 살피며 하게 된다.

마음의 공허함을 따뜻함으로 가득 채우다

돈 버는 일을 얼마간 멈추고 행정처 정보시스템국 업무혁신팀 소임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왠지 모르게 끈 떨어진 연처럼 마음이 공허했다. 일에 많이 의지하고 살았다는 것을 일을 놓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런 내게 유수스님께서 한 시간 동안 300배를 천천히 하라하셨다. 나는 그 때 300배를 40분만에 후딱 해치우고 있을 때였다. 300배를 한 시간 동안 한다는 것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처럼 지루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 한 시간이라는 목표를 놓고 천천히 숙였다. 마음에 따뜻함이 가득하니 세상도 평화로웠다. 목표를 잊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 새로운 경험이였다. 그로부터 허전함은 사라졌고 소임에 집중하며 지낼 수 있었다.

작년 여름 행정처 정보시스템국 도반들과 함께 청계산에 갔을 때. 앉은 사람 중 맨 오른쪽이 전순연 님.▲ 작년 여름 행정처 정보시스템국 도반들과 함께 청계산에 갔을 때. 앉은 사람 중 맨 오른쪽이 전순연 님.

청계산 계단에서.▲ 청계산 계단에서.

행정처에서의 회의는 마음나누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보다 마음이 열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일은 그것이 된 이후에 가능하다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김천에서 그 회의 문화를 함께 연습해 보고 있다. 수 개월 하던 소임을 놓게 되었을 때 아쉬움이 컸지만 충분히 소통하고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았다. 언젠가 아궁이를 만들고 부수고를 반복하며 그 때 일어난 마음을 살피라 하시던 법문이 생각나 일에 집착하는지 살피며 마무리하였다.

액자 설명 : 죽림정사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사진 설명 : 김천에서 혼자 여는 '행정처 여는 모임' 사진.▲ 액자 설명 : 죽림정사에서 법륜스님과 함께. /사진 설명 : 김천에서 혼자 여는 '행정처 여는 모임' 사진.

내 마음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본 백일출가

백일출가는 나의 일에 대한 집착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식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아들은 변함없이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였다. 그래서 게을러질 수가 없었다. 스님 법문 들으며 나도 아들도 살아갈 길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을 했다. 소임을 통해 수행을 하면서도 불안이 때때로 올라왔고 이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자유로움과는 가까워지기 어려울거라는 생각에 백일출가를 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 문경 밖 일정이 있을 때도 미리 알려주지 않으니 사전에 뭘 준비한다는 등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황당하고 언제 뭘 준비하라는 말인가 하여 당황했지만 그런 불평을 할 시간 조차 없이 최소의 짐을 꾸렸다. 그러다 나중에는 일정을 모르는 것이 번뇌가 생기지 않아 훨씬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 다만 지금에 집중하게 되었다.

9-3차 입재식 때 백일출가 도반들과 공연한 날.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전순연 님.▲ 9-3차 입재식 때 백일출가 도반들과 공연한 날. 왼쪽에서 두 번째가 전순연 님.

짧은 기간이지만 나에 대해 집중해 보고 싶었다. 백일출가는 번뇌를 허락하지 않았고 매 순간에 집중하도록 했다. 지금도 머리가 굴려 질려고 할 때 '지금에 깨어있기'가 떠오르는 것은 그 때의 경험 덕이다. 공동체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감사를 모르던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에 만인의 노고가 있다는 것을 보이도록 해주었다.
백일출가자들은 보통 70명 이상의 세 끼니를 준비한다. 나는 국을 담당하였고 옆에서는 무거운 밥통에 밥을 하는 도반, 정성스럽게 반찬을 만드는 도반, 그리고 긴장으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공양바라지 도반들, 많은 설거지를 하는 도반들도 있었다. 아침밥은 포기하고 공양바라지를 하려고 하던 어느 날, 소임이 바뀌어 편안하게 발우공양을 하는 때가 있었다. ”오, 밥과 반찬을 맘껏 먹을 수 있어“라는 생각에 이미 설레어 있었다. 마침내 내 앞에 밥과 국, 정갈한 반찬이 놓여졌다. 그런데 그 편안하고 설레는 순간에 갑자기 울컥 했다. 거기에는 밥과 국과 반찬 뿐만 아니라 도반들이 함께 있었다.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편안하고 맛난 음식에 도반의 노고를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모를 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만인의 노고가 깃들어 있다는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사한 순간이었고 연기법을 어렴풋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와 네가 선을 긋는 다른 존재가 아니라 연기된 존재라는 것과 인연 따라 쓰임이 있을 뿐 내 것이라 고집할 것이 없다 등 그동안 머리로 배우던 것을 몸소 맛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불교대학 졸업식 날 담당자 인사 때 법륜스님께 책을 받고 있는 전순연 님.▲ 불교대학 졸업식 날 담당자 인사 때 법륜스님께 책을 받고 있는 전순연 님.

깨달은 분들은 부처님법이 단순하고 명쾌하다고 말씀하지만 나는 아직도 만나면 바로 돌이키지 못하고 끄달리다가 얼마간 지나서야 깨닫는 수준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하얀 종이를 받아드는 것처럼 가벼워지는 이 공부를 신기한 마음으로 계속한다. 마음이 늘 변하는 줄 알아 흔들거리지만 오늘도 정돈하며 도반들과 함께 이 길을 간다.

글_전순연 님(구미정토회 김천법당)
정리_이미란 희망리포터(구미정토회 김천법당)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원서접수 기간 : 2018. 3. 25 (일)까지

문의 : 02-587-8990
▶정토불교대학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