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정토행자상 수상자
정진상 최문숙 님의 수행이야기

[특집기사] 2017년도 정토행자상 수상자 취재 - 그 첫 번째 주인공

정토행자상은 2차 천일결사의 두 번째 해인 199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97년~2004년까지는 ‘정토행자상’이라 해서 매년 1명만 선정했는데 2005년부터는 지금과 같이 정진, 봉사, 보시, 환경, 복지, 포교, 통일, 대상의 8부문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올해 2월 4일 9-4차 입재식 때 2017년 ‘정토행자상’이 수여되는 것을 보고 많은 정토행자들이 그분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여덟 분의 수상자를 취재한 기사가 오늘부터 8주간 매주 토요일마다 발행됩니다. 그 특집기사의 문을 ‘정진상 수상자인 해운대법당 최문숙 님의 수행 이야기’로 열어보려 합니다.

맑고 깊은 미소를 띤 최문숙 님
▲ 맑고 깊은 미소를 띤 최문숙 님

도반들이 말하는 최문숙 님

김순연 님 : 세상에 적이 생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최문숙 님이 그 한 분일 거에요. ‘아 저 사람 때문에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 있잖아요? 최문숙 님이 그런 분이지요.

김연금 님 : 법륜스님이 말씀하시는 “재미로 하라”는 가르침을 늘 실천하고 계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늘 주인 됨의 마음을 실천하는 분, 진정 수행정진하시는 분이에요. 그러면서도 밖으로 표 내는 것 없이 묵묵히 누가 보든 안 보든 하시는 분이지요.

해운대법당 총무 김태희 님 : 누구나 닮고 싶은, 정말 서원행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분이에요. 법당에서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꼭 필요한 일들을 솔선수범해서 하는 정토행자의 롤모델이자 의지처가 되는 친정엄마 같은 분이에요.

부산울산지부 사무국장 전은주 님 : 정토회 일이라면 늘 앞장서서 해주시는 분이에요. 해운대 법당의 개원멤버로서 법당의 큰 어른이자 친정엄마 같은 분이시죠. 저도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저렇게 쓰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분이에요. 최문숙 님이 수상하실 때 그동안 해오셨던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네 분의 도반들에게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의 미담이라는 미담은 이분이 다 가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면의 한계로 줄인다고 줄인 게 저 정도이니까요. 들으면 들을수록 이런 사람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주인공이 참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주인공의 첫인상은 마른 체격에 맑고 깊은 미소를 띤 할머니 보살이셨습니다. 제가 퇴근하고 오는 길이기에 혹여 배고플까 빵과 우유를 챙겨오셨는데 작은 것 하나라도 신경 써 챙겨주는 배려가 몸에 밴 분인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스님이 계시나?!

희망리포터 : 최문숙 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려 도반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오히려 더 궁금증만 커지더군요. 정토회와는 언제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최문숙 님 : 정토회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려면 우리 친정아버지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를 겪은 분이세요. 당시 소학교를 나오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셨지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공부하러 가실 수 있었던 것은 형인 큰아버지가 따라가셔서 뒷바라지를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데요. 본래 어려서부터 민족의식이 투철하셨는데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겪으며 식민지 국민의 울분과 민족의식은 더 커져만 가셨다고 합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때 당시에는 철도 분야가 최첨단 분야라 그 방면으로 취업을 하셨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조선인에 대한 불합리한 임금, 대우, 노동 강도의 차별을 보시고는 항의하다 쫓겨나게 되었지요. 아버지가 항일독립운동의 길로 가시게 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 후 징집이 되셨는데 부대 안의 조선인 군인들에게 탈영하여 해외 독립군에 합류할 것을 도모하시다가 밀고되어 총살당할 위기에 처하셨지요. 천만다행으로 해당 부대의 조선인 징집 1기로 부대선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한 일제는 총살만은 면해줬습니다. 그렇게 잡혀계신 와중에 해방이 되었고, 아버지는 민족을 위한 일을 찾아 그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결국, 분단이 되고 단독정부가 들어섰고 독재가 시작되고 그 독재에 항거해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세 번의 옥고를 겪으셨지요. 이렇게 항일독립운동, 민주화운동을 해나가신 아버지는 늘 민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하에서 자란 저도 민족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어느 날, 북한 이야기만 나와도 간첩으로 몰려 잡혀가는 시대였던 어느 저녁에 아버지께 한 손님이 찾아오셔서 차를 내어가는데 문밖에서 두 분의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한 스님이 기근에 시달리는 북한의 동포를 돕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무교로 종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일 밖에 계신다는 스님이 그 엄한 시대에 북한을 돕는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들렸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정말 그런 분이 계신다면 한번 만나봤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 날 신문을 봤는데 거기 한 모퉁이에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돕는 스님에 대한 짧은 기사가 있었고 손가락 마디만 하게 작은 스님 사진이 실려 있었어요. 이 분이 그때 그 스님이시구나, 정말 이런 분이 계셨구나 하고 다시 한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러다 또 세월은 흘러 차를 타고 가는 어느 날, 도로변 현수막에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라고 걸려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분이 그때 그분이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저는 불교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었고 오로지 스님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갔습니다. 그때는 스님이 직강하셨거든요. 그날이 바로 2004년 2월 해운대 법당 개원일이었어요.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섰는데(해운대 법당은 9층에 있습니다) 갑자기 몸이 탁 굳어 움직여지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못 올라가고 돌아왔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독립운동, 민족운동, 민주화운동을 하며 힘들게 사신 아버지의 고생을 너무나 잘 알기에 북녘 동포를 돕는 민족운동을 하시는 스님의 고생도 이해가 되었고 그런 대단한 분을 만나게 된다기에 여러 감정이 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른 저녁 설거지를 다 마치고 ‘내가 왜 돌아왔을까, 그렇게 한번 만나보고 싶던 분인데’하고 다시 갔습니다. 저녁 수업을 들은 거지요. 그렇게 스님과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 첫 줄 오른쪽에서 4번째(화살표)가 최문숙 님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 첫 줄 오른쪽에서 4번째(화살표)가 최문숙 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라웠습니다. 한 세기를 돌아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한번 훑어온 느낌이었다 할까요. 정토회와의 인연을 어떻게 맺게 되었냐는 한 질문에 이미 최문숙 님의 인생을 들은 듯한 기분이었죠. 그리고 평화집회, 사천왕사지 통일기도, 법당 통일정진 같은 여러 통일활동에 보살님이 왜 적극적으로 참여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을 하였을 뿐...

희망리포터 : 첫 질문만으로도 뭔가 압도되는 느낌이 드는군요. 현재 어떤 소임을 맡고 계시고 언제부터 하셨나요?

최문숙 님 : 수요일 공양간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도재 재바라지를 하고 있어요. 2004년 개원법회 때, 스님의 금강경 강의 직강을 할 당시 200~300명의 사람이 모였어요. 저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지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공양간에서 밥이 다 나오더라고요. ‘이 많은 사람이 밥을 먹는데 얼마나 고생하겠노, 내가 그릇이라도 씻어줘야 안 되겠나’ 해서 공양간에 갔지요. 거기 가니 가스 3단으로 해놓은 큰 밥솥이 보였어요. 그래서 저 무거운 밥솥이라도 씻어주자 해서 설거지를 조금 시작한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천도재는 2008년으로 기억합니다. 천도재를 도맡아 하시는 담당을 천도재 재바라지라 부르는데요, 그때 그분이 차바라지는 간단하다고 차바라지 좀 해달라고 하셔서 그게 뭐예요 하니, 그냥 재지내는데 차만 따르면 된대요. 그래서 그건 할 수 있겠다 해서 알겠다 하고 하다 보니, 또 그 후에 그분이 못하게 되셔서 제가 재바라지까지 받게 되어 지금까지 왔네요(웃음).

십오 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한 소임을 책임져 봉사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요. 앞서 쓴 주변 도반들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문숙 님은 소임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어려우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기에, 그 부분들에 대해서도 질문드려봤으나 최문숙 님은 답하시기를 어려워하셨습니다. 아마도 어른 세대들의 겸양을 미덕으로 배우며 성장한 풍속적 배경과 그분 본래의 겸손하고 표 내지 않는 삶의 방식 때문에 그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위에 기술된 일들도 이미 주변 도반들의 이야기를 들어 알 수 있었지, 본인의 일을 애당초 소임이나 봉사로 생각하지 않고 하시는 분이기에 말씀 안 한 것들도 많을 것이라 짐작이 갔습니다.

공양간에서 도반들과 함께(정중앙)
▲ 공양간에서 도반들과 함께(정중앙)

베푸는 게 봉사인 줄 알았는데 얻는 게 더 많더라...

희망리포터 : 천도재 같은 경우 한주에 2~3번까지도 할 때가 있다던데 힘드시지는 않으셨어요? 공양간의 일도 다른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기피하게 되는 소임 중 하나가 공양간 봉사라던데 그만큼 힘든 소임이라 그렇겠지요. 소임을 하실 때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최문숙 님 : 스님이나 도반들을 보면 불교와 법당의 일부터 환경운동, 세계구호활동, 통일운동, 행복학교 등 참 많은 일들을 하잖아요. 저도 스님 법문 듣고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는 컴퓨터도 할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것을 보니 공양간은 제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엄마들은 집에서 하는 게 씻고, 밥하고, 청소하는 것이라 이런 일은 잘 해요(웃음).

천도재 같은 경우에도 소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제가 더 얻는 게 많습니다. 천도재를 지내면서 스님의 입재 법문, 회향 법문을 듣게 되는데 법문이 정말 좋아요. 영원한 생명의 이치에 대한 가르침으로 재를 지내는 가족과 봉사자 모두 깨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거든요. 그리고 천도재할 때 ‘착어’라 해서 읽는 게 있는데 그 내용에서도 많이 배웁니다.

재비로 들어온 돈은 모두 JTS에 보내져서 못 먹고, 아프고, 못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쓰여 본래 재(齋 : 베풀 재)의 의미를 실천합니다. 마지막 천도재 회향할 때는 관욕이라고 해서 영가에 새 옷을 입혀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절차가 있는데, 그때 상주들이 가져온 내의, 양말, 신발, 칫솔, 치약 등을 태우지 않고 구호물자로 보내서 어려운 이를 돕는 데 쓰이고 있어요. 그 하나하나가 뜻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게 하면서 형식은 너무 현대적이니 놀랍습니다. 천도재를 지내면 영가도 좋은 데 가시니 좋고, 상주도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조금은 해소가 되니 좋고, 바라지 하는 우리들도 함께 배우고, 베푸는 일에 동참하니 얼마나 좋아요. 힘들 것이 없지요. 다만 점점 체력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져 전만큼 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나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네...

희망리포터 : 어려운 점을 여쭤봤는데, 오히려 좋은 점을 말씀하시니 당황했습니다(웃음). 정토회에 와서 최문숙 님의 삶에 크게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최문숙 님 :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독립운동이다, 좌익세력이다, 민주화운동이다, 당시로는 위험한 일을 하시는 아버지로 인해 우리 집은 늘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영향인지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불안함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거기다 심신이 허약한 체질까지 한몫했지요. 그러다 소위 잘 사는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시아버님은 가난한 집 출신이셨지만 호롱불 아래서 열심히 공부하여 형설지공으로 자수성가하셨던 분이셨어요. 건강이며 명예며 돈이며 학식이며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성공 가도만 달리신 시아버님께 느껴지는 그 당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친정아버지도 일본에서 공부도 하셨던 분이지만 운동권 인생을 사셨기 때문에 시아버님께 비하면 작게 느껴졌고 친정과 시댁의 분위기 차이로 더 의기소침해지고 마음의 불안은 더 심해졌지요. 생각해보면 시아버님은 며느리인 저에게 잘해주셨어요. 하지만 잘해주신다고 해주시는 게 오히려 그때의 어리고 기가 약한 저한테는 어려운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떨 때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도 느껴졌어요. 그때는 안 그래도 시부모님이 많이 어렵던 시절인데, 집안 수준의 차이, 본연의 불안함이 겹쳐 전전긍긍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것들이 다 내가 지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아버님은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며느리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감사한 분이셨는데도 제가 무서운 분으로, 어려운 분으로 상을 지어 힘들어했던 것을 알았어요. 돌아보면 제가 저를 괴롭혔던 거지요. 아버님은 96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스님 법문을 아버님 살아생전에 만나 정말 다행이라고, 만약 돌아가실 때까지도 제가 저를 괴롭힌 줄 모르고 아버님을 있는 그대로 봐 드리지 못했다면 나중에 얼마나 죄송하고 한스러웠을까 하고요. 불법 만나 그 괴로움들이 다 제가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마음도 평안하고 그동안 어렵게 느껴졌던 분들도 한없이 감사한 분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문숙 님은 매일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감사하게 느껴지신답니다. 스님께서 종종 새벽 정진을 쉽게 하는 방법으로 "매일 아침 눈뜨면 오늘도 살은 기념으로 정진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최문숙 님도 매 순간의 소중함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에 스님 가르침대로 긴 세월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하고 계신 거겠죠.

희망리포터 : 오늘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네요. 앞으로 정토행자로서 서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최문숙 님 : 스님의 <새로운 100년>이라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우리 민족의 에너지가 분단이라는 장벽에 막혀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낭비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하루빨리 통일이 되고 북녘의 동포들과 하나 되어 우리 민족이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서원입니다.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대중을 향한 회향...

장장 4시간 가까이 되는 긴 인터뷰를 마치고, 최문숙 님께 인터뷰 마치는 소감 나누기를 부탁드렸는데 한동안 말이 없으셔서 당황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다만 묵묵히 스스로 할 일을 하시는 분이라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화되어 밖으로 나가는 것에 망설이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최문숙 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어요. 이렇게 드러내놓으려고 오랫동안 봉사한 것이 아니기에 본인에게 비치는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정토행자의 하루’ 기사에 협조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이 도반이 나눈 수행담을 읽으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자기점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해드렸어요. 그러자 스님의 가르침 중에 ‘가볍게 내어놓는다’를 떠올리신 듯 이내 환한 웃음으로 털어내셨습니다.

2017년 정토행자상(정진상) 수상중인 최문숙 님
▲ 2017년 정토행자상(정진상) 수상중인 최문숙 님

연꽃을 피워낸 진흙처럼...

최문숙 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차분한 말투며 포근한 미소가 저에게는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왜 뭇 도반들이 최문숙 님을 친정엄마처럼 편안해 하고 가깝게 느끼는지, 의지가 된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진흙탕에 한 떨기 핀 연꽃처럼 화려한 것은 잘 보지만 정작 그 연꽃을 피워낸 진흙은 잘 보지 못합니다.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본인의 소임에 충실하며 불법의 가르침대로 여법하게 수행정진하는 최문숙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수상자가 되셨을까?’ 하는 의문은 눈 녹듯 해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해운대 법당의 엄마 같은 존재이자 함께 법을 배우는 도반으로서 오래도록 우리 곁에 함께해주시길 소망합니다.

글_노희동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해운대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

다음주 토요일 이 시간에는 2017년 정토행자상 봉사상을 수상하신 김승태 님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원서접수 기간 : 2018. 3. 25 (일)까지

문의 : 02-587-8990
▶정토불교대학 홈페이지

전체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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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일

감동 입니다. 보살님
늘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2018-03-22 10:42:00

선광

보살님 감사합니다.
해운대 법당 파이팅 입니다.

2018-03-22 10:28:18

무애명

수행하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감사합니다.

2018-03-19 20: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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