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희망리포터 소임을 맡게 되어 어떤 기사를 써야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흔쾌히 수행담을 나눠주겠다는 전임 희망리포터 유영애 님이 계셔서 든든했습니다. 전화통화에서 들려오던 어머니같이 푸근하지만 밝고 활기찬 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던 유영애 님. 나눠주신 수행담에서는 편안한 마음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차로 5시간이 걸리는 아름다운 전원지방, 데본 (Devon)에서 날아온 글을 전합니다.

고국을 떠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올해는 제가 영국에서 산 지 32년째 되는 해입니다. 1981년 서울에서 영국인을 만나 결혼해 1986년에 이곳 데본 지방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영국인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는 이곳은 런던에서도 차로 5시간이 걸리는 지방입니다. 영국 남서부의 해안과 가슴이 확 뚫리는 광활한 고원의 풍경은 서울에서 태어나 아파트 생활을 하며 살다 온 저에겐 꿈같이 여겨졌습니다. 처음엔 이곳에서의 조용한 전원생활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푸르른 해안선을 따라 걷고 광활한 고원을 산책하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그때는 요즘과 달리 국제전화가 너무 비싸서 고국의 부모님께 전화도 자주 못 했습니다. 동양인이라고는 홍콩 여자 한 명과 저밖에 없는 이 마을에서 고향과 친지들이 그리워 하루가 멀다고 거의 매일 편지를 썼습니다. 언어부터 시작해서 문화와 관습 등 모든 것이 다른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배우며 아이 둘을 길렀고, 공부도 하고 직장에도 나가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돌아보니 영국에서의 32년은 일장춘몽처럼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아들딸이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지 몇 년 지난 지금, 전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은퇴하고 낚시를 즐기는 남편과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며 어렵게 느껴지던 불법을 쉽고 재미있게 배우게 된 것이 지금 제 나이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제 뜻대로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고 제 뜻대로 안 되면 괴롭다 하며 살다가 불법을 배우고 정신이 들어 주위를 살피니, 괴로울 땐 눈에 보이지도 않던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 둘러싸여 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즈음은 무한히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해안 도시 데본에서 유영애 님 부부
▲ 해안 도시 데본에서 유영애 님 부부

가톨릭 신자인 친구에게 선물 받은 법륜스님의 책을 시작으로

한국에 사는 가톨릭 신자인 죽마고우가 2014년 가을 <스님의 주례사>를 재미있게 읽었다며 보내줬어요. 그즈음 괴로운 일들이 많아 힘들어하던 중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유튜브에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찾아 들었어요. 그러면서 저의 업식과 욕심과 집착을 보게 되었습니다. 즉문즉설을 통해 <깨달음의 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깨달음의 장>을 2015년 봄에 다녀온 후로 백일정진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백일이 지나고도 내 뜻대로 안 되면 괴로워하는 저를 보면서 천일결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도반들과 함께 꾸준히 수행 정진 했고 특히 마음 나누기를 할 때는 ‘나 혼자 했더라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같이 정진한 도반들, 백일기도 입재식 날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런던 터미널에 도착하면 마중 나와 준 도반들, 숙소를 제공해주신 도반들께 감사드립니다.

런던 법회 첫 모임에서 (첫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유영애 님)
▲ 런던 법회 첫 모임에서 (첫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유영애 님)

괴로움도 다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일 뿐

저에게 수행이란 그동안 밖으로 향해 있던 눈을 안으로 돌려 나랄 것이 없음을 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상황에선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구나,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반응을 하는구나, 하며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니 제가 업식대로 상황에 휘둘리며 살고 있기에 괴로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행은 제 마음공부입니다.

9-3차 입재식에서 (첫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유영애 님)
▲ 9-3차 입재식에서 (첫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유영애 님)

나를 돌아보며 자신을 알게 되니 나 자신이 이해가 되고, 비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부터 사랑하게 되니 그다음엔 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타인들도 이해하게 되었고, 비판하고 원망했던 그들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분별심도 점점 사그라지게 되어 마음이 한결 가볍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제가 그런 마음으로 친지들과 세상을 대하니 친지들도 세상도 제게 부드럽게 다가왔습니다.
괴로움도 다 마음이 지어낸 것뿐이었다는 걸 깨달으니 행복은 원래 있었는데 그걸 못 보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항상 부족한 듯해서 더 잘 해야 한다는 욕심과 집착이 그 행복을 가리고 있었을 뿐이었죠. 그러나 아직도 가끔 내 뜻대로 안 돼서 괴롭다 싶을 땐 절을 하고 좌선하고 앉아 명상을 합니다. 그러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지금은 봉우리가 터지기 시작하는 작고 노란 수선화 한 송이를 보면서도, 밤하늘 구름 위에 걸려있는 초승달을 올려다보면서도 그 경이로움에 놀라워하며, 살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들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회향

괴로움으로 낭비하던 에너지를 이제는 주위에 보답하는 데 쓰고자 합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분에게 사랑과 자비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적극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는 못했어요. 특히 영국으로 이사 와서 모든 것이 낯설어 힘들 때 외국인인 저와 아이들에게 시간과 관심과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준 이 마을 사람들과 영국의 복지제도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게 된 것, 잊지 않고 이 사회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신 고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제 수행과제입니다.

미력하나마 이 사회에 보답하고자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려서 부모나 형제, 조부모님 혹은 친지를 잃은 아이들이 그 상실감과 슬픔, 분노 등을 속으로 쌓지 않고 표현하고 충분히 애도할 수 있게 도와서 건강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학교로 가서 한 아이에게 6주에서 8주 동안 일대일로 공작도 하고 게임도 하며 아이들이 억눌려있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끌어 가는 일입니다. 감옥에 가는 젊은이들의 많은 수가 억눌렸던 감정들을 어른이 되어 분노로 폭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를 보면서 이런 일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자연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유영애 님
▲ 자연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유영애 님

희망리포터 소임을 끝내며

희망리포터라는 말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듯했어요. 희망이란 단어가 참 절절히 다가왔어요. 저보다는 제 아이들이 희망이라고 하며 살았었는데 욕심과 집착과 기대를 희망으로 혼동했기에 아이들이 엄마의 뜻이 아니고 자기 뜻대로 할 때 괴로워하며 살았던 거에요. 이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니 ‘내가 희망입니다’라고 하시는 스님 말씀대로 저에게 희망을 품게 되었고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며 행복해졌기에 희망리포터가 되어 희망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인터뷰나 기사를 부탁하면 묵묵히 성심껏 도와준 도반들, 그분들의 자발성과 수행담을 통해 배우고 더욱 큰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후배 희망리포터님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모두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하며 희망을 전합니다. 얼마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삶인지요. 그 삶의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주세요.

지금까지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신 전임 희망리포터 유영애 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자신의 수행담을 나눠주신 유영애 님 덕분에 저도 첫 단추를 끼울 수 있어 참 뿌듯합니다. 고국을 떠나 모든 것이 낯선 영국의 지방에서 뿌리내리기까지의 이야기가 깊게 마음속에 와 닿아 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지나 지금은 행복을 나누는 유영애 님, 먼 그곳에도 수행을 실천하는 정토행자가 있어 든든합니다.

글_유영애(런던법회)
정리_김경진 희망리포터 (런던법회)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