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정토회와의 인연

저의 할머니께서는 독실한 불자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벽돌을 직접 날라 절을 지으셔서 제가 그곳에서 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청주 쪽에서는 불교 법회가 활성화 되어있어서 학교 선배들이 쉬는 시간에 찾아와 법회를 홍보하러 오곤 했는데, 어느날 법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불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법문을 듣고 나서 처음으로 시야가 탁 트이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법회와 수련회에 종종 참가하다가 한 절의 수련회에서 정토회를 처음 알게 되어 1993년에 정토 불교대학 3기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 JTS 후원은 지속적으로 했지만 정기적으로 나가지는 않았고, 인천 쪽에 거주하다 보니 서초법당이 멀게만 느껴져서 다른 절로 다니곤 했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후 제작년에 중3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몇몇 아이들이 너무 극성스럽고 말도 잘 듣지 않아 일상이 힘들고 괴롭던 차에 퇴근길에 정토불교대학 홍보 포스터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을 검색해보니 부천법당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작년에 불교대학 과정을 다시 한번 이수했고, 올해 두 번째로 불교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봄불교대학 졸업식 갈무리▲ 2017년 봄불교대학 졸업식 갈무리

’네. 하고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한 후 삶의 변화

예전에 한 절에서 바라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백 명의 공양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감자 깎기 등 여러 재료를 손질해야 했고, 아침 공양을 하고 나서 잠시 쉬었다가 또 점심공양을 준비 하고, 또 다시 저녁 준비를 하는 식으로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공양을 담당하는 스님이 계셨는데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왜 저렇게 했냐 하고 화를 내시니까 ‘저 분 왜 저래? 저분 스님 맞아? 스님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하는 분별심이 계속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여기 와서 이러고 있나? 그냥 집어 던지고 집에 갈까?’하는 생각들이 이틀 동안 계속 들었습니다. 딱 이틀이 지나가니까 "예 알겠습니다" 하고, 저렇게 하라 그러면 "네" 하면서 마음이 걸리지 않고 가벼워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별 생각 없이 "예 알겠습니다"하고 그냥 가볍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품어준다는 게 쉽지 않아... 다시 괴로운 삶으로

그렇게 행운으로 불법을 만났지만 꾸준히 수행을 하지 않았더니 이전의 괴로운 삶으로 되돌아갔습니다. 1993년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수행을 피해 다녔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힘들고 짜증나고, 분별심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이미 불법을 알고 있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실천이 쉽지 않았고, 괴로움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직업이 교사인지라 사춘기 아이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는데 재작년에는 유난히도 속을 굉장히 많이 썩이고 극성스러운 아이들의 담임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늘 마음 상태에 깨어 있어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해주려 했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품어준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감사한 마음 - 매일 "나는 행복한 학생입니다"를 복창한 아이들이 차분해지고 행복해져 뿌듯했어요

그렇게 괴로움이 점점 커져가던 중 문득 정토회에 다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다시 불법을 만나게 되었으니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작년에 불교대학 다니면서 1년 내내 학교생활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아침 종례가 끝날 때, 그리고 집에 가기 전에 "나는 행복한 학생입니다"를 3번씩 복창하게 했습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들이 훨씬 차분해지고,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년이 지나고 작년에 제가 담임을 했던 그 애들이 찾아와서 너무 뵙고 싶었다고, 작년에 너무 행복했었다고 얘기해주었는데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받아서 해보니

또 다른 변화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경사가 있거나 상을 당했을 때 화환을 보내고 조의금, 축의금을 전달하는 상조회장이라는 역할이 있습니다. 선출 과정에서 직원들이 서로 안한다고 미루어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나에게 저 임무가 온다면 ‘예, 알겠습니다’라고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투표가 있었는데 제일 많이 나온 사람은 안한다고 하는 바람에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제가 뽑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끝까지 안하겠다고 했겠지만 그냥 가볍게 “예,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소임을 맡았습니다. 지난 3월에 상을 당한 사람이 있어, 직원들에게 문자를 전송해주고 기차표를 끊어 광주에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면서 흐뭇하기도 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불법을 다시 만난 후 삶이 가벼워지고 매사에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2017년 문경 특강에서 도반과 함께(맨 왼쪽)▲ 2017년 문경 특강에서 도반과 함께(맨 왼쪽)

천원의 보시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

올해 저는 봄경전반 학생이면서 경전반 담당과 JTS 거리모금 부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때도 보시부장을 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아원이나 영아원에 가서 빨래, 청소를 해주고 애들이랑 놀아주는 게 보시부장의 역할이었는데 그 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거리모금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불교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빼놓지 말고 거리모금을 꼭 나가야지 하고 원을 세워서 꾸준히 참여했었는데 이번에 총무님께서 부담당을 맡아보라고 하셔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 거리모금을 했을 때 초반에 몇 분간은 목이 안 트이고 멘트가 입에서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나오고 이제는 JTS 거리모금을 하는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마음속으로는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옆에 있는 어린이나 도와주지 왜 인도나 필리핀, 북한 등 세계 어린이들을 도와주냐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예전에 제가 인도 성지순례를 갔을 때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 곳의 불가촉 천민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들이 굉장히 남루하고, 평생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조차 없는 빈곤한 삶을 평생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부금을 통해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선생님이나 경찰관 등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그런 기적같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리모금 할 때 ‘천원이면 굶주린 아이들 두 명을 먹일 수 있고, 죽어가는 어린이 7명을 살릴 수 있다’ 라고 외칩니다. 그런 작은 기부금들이 모여 큰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천원이 들어오고 이천원이 들어오고 하는 게 저에게는 정말 소중합니다. 기부해주시는 한 분 한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도 거리모금 부담당으로서 열심히 참여할 것이고, 모인 기부금이 필요한 곳에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JTS 거리 모금 중인 김희숙 님의 모습▲ JTS 거리 모금 중인 김희숙 님의 모습

수행을 통해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나가는 김희숙 님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들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는 수행을 이어가는 김희숙 님. 앞으로도 순수한 마음 잃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글_ 김지혜 희망리포터 (부천정토회 부천법당)
편집_한명수(인천경기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