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처럼 활짝 웃으시는 최인자 님▲ 봄꽃처럼 활짝 웃으시는 최인자 님

먼저 최인자 님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만나보겠습니다.

▲ 봉사상 수상자 최인자 님 영상

최인자 님을 잘 아는 분들이 누가 있을까요? 오늘 여기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불교대학과 경전반 동기, 매주 저녁 주례회의를 함께한 도반, 그리고 최인자 님이 담당일 때 불교대학 학생이었던 분들이 모였습니다.

좌부터 불교대학 동기이자 백효덕 님(노원법당 총무), 불교대학 동기 김금룡 님, 저녁 주례회의팀 박연숙 님(김금룡 님 아내), 불교대학 담당일때 학생이자 새벽기도 같이 하는 도반 김득만 님(지난 1월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 좌부터 불교대학 동기이자 백효덕 님(노원법당 총무), 불교대학 동기 김금룡 님, 저녁 주례회의팀 박연숙 님(김금룡 님 아내), 불교대학 담당일때 학생이자 새벽기도 같이 하는 도반 김득만 님(지난 1월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

노원법당에서는 누구든 소임을 맡아 시작하면 꾸준히 해내서 이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최인자 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JTS 거리모금 물품(파라솔, 테이블, 현수막, 모금상자 등) 들고 나가 설치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최인자 님에 대한 도반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았습니다.

박연숙(불교대학 모둠장) : 법당 소임을 하다 보면, 이름 짓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인자 님이 불교대학 담당으로 있을 때 수업 듣는 학생들과 함께 모둠 이름을 ’미래 법사단‘이라고 지었거든요. 법사를 지향점으로 가는 그룹인데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같이 하고 있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법당에서 새벽기도를 같이 하는 것을 보면 과연 ‘미래 법사단’이다 싶어요. 최인자 님은 별명이 ’장군님‘인데, 노원법당에서 매주 JTS 거리 모금이 가능하게 한 분이거든요.

백효덕(총무) : 불교대학을 같이 다녔었죠, 새롭게 도봉법당, 강북법당 개원 하면서 거기서 소임을 맡다 다시 노원법당에 왔는데 낯선 사람들 속에 동기가 있으니 반가웠어요. 주례회의 때 도반들이 장군이라고 부를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동기로서도 좋아 보였죠.

김금룡(불교대학 동기) : 5년 동안 옆에서 지켜봤는데, 부처님의 열반하시며 한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도 주도적으로 JTS 거리모금을 진행하는 분입니다.

김득만(저녁 지원팀장) : 제가 처음 학생이었을 때 불교대학 담당이던 최인자 님이 정토회 소속 직원인 줄 알았습니다. <깨달음의 장> 다녀오기 전에는 최인자 님이 이해가 안되었죠. ’왜 저분은 저렇게 열심히 하실까‘ 싶었거든요. 그러다 ’미래 법사단‘으로 매일 새벽기도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수행의 관점을 잡아준 고마운 분입니다.

노원법당 거리모금 장소인 문화의 거리에서▲ 노원법당 거리모금 장소인 문화의 거리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기

항상 밝은 모습으로, 도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최인자 님, 오늘은 장군이라는 별명처럼 씩씩하고 밝은 최인자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희망리포터] 먼저 상 받으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날 기분이 어떠셨어요?

[최인자 님] 처음에 영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어! 저건 난데?’ 하고 놀랐지요. 말도 안 된다 싶었어요. 내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해 주는 도반들, 참여해준 시민들 덕택에 할 수 있었던 일인데요. 제가 상을 받는다는 생각에 좀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희망리포터] 도반들이 다들 너무 기뻤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도반의 즐거움은 나의 즐거움입니다. 정토회는 어떻게 인연이 되신 건가요?

[최인자 님] 그때가 마흔 중반쯤이었어요. 남편과의 갈등도 심한 무렵이었죠.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재밌는 스님이 있다고 법륜스님 법문을 추천해 주었어요. 엄마 추천이면 듣고 싶지 않았는데, 그날 밤에 자면서 한 번 찾아보았죠. 그런데 유투브 법문 내용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저는 엄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결혼을 했었는데, 저도 엄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더라구요. 남편과의 갈등, 시댁과의 갈등.

2015년 경전반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첫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최인자 님▲ 2015년 경전반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첫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최인자 님

그 무렵 남편에게 스님의 법문이 재밌다고 얘기를 했었죠. 어느 날 남편이 노원법당 거리의 현수막을 보고 정토회 이야기를 해줬었어요. 그래서 찾아갔어요. 수요법회부터 듣기 시작했다가 2013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죠.

[희망리포터] 도반님들이 별명으로 ‘장군님’이라고 하시더라구요. 법당 행사뿐만 아니라 거리모금도 씩씩하게 잘 하신다고 하던데요, JTS 거리모금 소임을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소임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최인자 님] 2015년에 전임 담당이 한번 JTS 담당을 해보겠냐고 했어요. 그래서 ‘그냥 한번 해보지 뭐’ 하고 시작하게 되었죠. 당시 잠시 쉬다가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던 무렵이었습니다. 처음엔 추운 겨울날 모금도 많이 안 되고 차라리 직장에서 돈을 벌어 기부하는 게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갈등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기부를 해주면 기뻤죠.

2015년 노원정토회 송년캠페인, 두 번째 줄 맨 왼쪽 하얀 옷이 최인자 님▲ 2015년 노원정토회 송년캠페인, 두 번째 줄 맨 왼쪽 하얀 옷이 최인자 님

두려움을 마주하고 용기를 얻다

도반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 그럴 때는 좀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아, 오늘 정말 아무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어요. 그래도 매번 2~3명씩은 나오는데 정말 그런 날이 왔습니다. ‘혼자 하면 어떻게 할까! 거리모금 물품 들고 혼자 과연 할 수 있을까’ 입재식과 희망강연 홍보 준비 등으로 법당이 정말 바쁘게 돌아갔던 때였습니다.

오전 근무 토요일이라 부리나케 법당에 와서 혼자 짐을 들고 거리모금 장소로 나갔어요. 그날이 계기가 되었어요.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한 생각이 바뀐 경험이었습니다. 늘 혼자 할 경우에 대한 여러 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법당에서 회의 중이던 도반들이 마이크 충전과 물건 등을 챙겨줘서 미리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가뿐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커다란 파라솔도 항상 챙겨갔지만 혼자 하는 날에는 가벼운 물건들만 가지고 나갔었지요.

막상 혼자 해 보니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죠. 내 마음속에 있던 그 두려움을 마주한 순간, 흔들리던 마음에 중심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외로움이 바닥까지 갔을 때, 뭔가 ‘이게 정말 어른인 거구나. 이제 내 중심이 바로 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거리모금 했던 날, 2015년 4월 27일. 지나가던 행인께 부탁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혼자 거리모금 했던 날, 2015년 4월 27일. 지나가던 행인께 부탁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미리 상을 짓고 문제라고 정해서 고민하는 것이 문제지 실제는 별것 아니란 것을, 산다는 것도 정말은 단순하고 가볍게 살 수 있고, 끙끙 앓던 문제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는 것도 알겠더라고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행복해 질수 있겠구나, 정말 어른이 됐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자신감이 생겼죠.

감정적인 동감보다 당장 행동으로 실천을!

처음에 거리모금을 할 때는 멘트를 하면서 울컥하기도 하고, 말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
아픈 사람들은 치료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감정에 휩싸여 슬퍼하기보다 지금 이 시간 행동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밝고 자신있게, 힘든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좋은 것들을 참 많이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맨 앞줄 가운데 아이 옆에 최인자 님▲ 맨 앞줄 가운데 아이 옆에 최인자 님

봉사를 통해 나를, 세상을 알아가다.

저는 돈에 대해선 정말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은행에서 20년 근무를 해서 엄청난 돈을 보았지만 돈에 욕심이 없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오백 원, 천 원. 만 원을 기부 할 때 제 마음이 다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는 아닌 척 하고 살았는데 돈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달라지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돈에 대해 갖는 감정도 더 이해하게 되었고 욕심을 내는 것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불러 죽을 수는 있어도 배고파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돈에서 더 자유로워졌어요.

한번은 노숙자가 와서 모금하는 분들에게 돈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숙자 한 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저 사람이 와서 돈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오히려 천원을 넣어 주시더라고요. ‘아 내가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리모금을 통해 세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보다

노원법당이 거리모금 하는 곳은 유동 인구가 많은 문화의 거리인데요. 초창기에 근처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이 한참을 주시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돈을 넣어주는 것을 봤어요. 그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정말 숱하게 거리모금에 나갔었는데, 한 번도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내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호응해 준다는 것을 알았죠. 사람들이 마음을 내어 주는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이 하나 둘 쌓여가니 저의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억울함, 원망의 감정들이 바뀌어 갔습니다. 이 세상이 정토이고 모두가 부처라는 확신으로 바뀌어 가게 되더군요.

[희망리포터] 그러네요.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 새삼 우리 사회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토회란 최인자님에게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서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인자 님] 정토회는 제게 집과 같아요. 가장 편안한 곳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활동 하고 싶습니다.
도반들이 호응을 잘 안 해 줄 때도 있지만. 함께 할 사람이 없으면 그대로, 마음을 가볍게 먹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불편이 없어야 하니까요.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하고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제 자신을 되돌아보면 도반들도 그렇겠다 싶을 때가 참 많거든요.
앞으로는 환경실천에도 좀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현재 노원법당의 사회활동을 담당하고 있는데, 올해는 환경실천을 위해서 노력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작년 평화집회때 남편과 함께 광화문에서▲ 작년 평화집회때 남편과 함께 광화문에서

끝으로 직장 끝나면 바로 정토회에 와서 저녁밥도 잘 챙겨주지 못한 적이 많아도 옆에서 그저 묵묵히 지켜봐주는 남편에게 늘 감사하다고 합니다. <모자이크 붓다> 시간에 법사님께 ‘이제 남편 밥을 챙겨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드렸는데 ‘고맙다고 붙어 있는 것이 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퇴근하고 집에 가서 남편 밥도 챙겨주고 법당에 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네요. 남편에게 잘 해주는 것이 내가 내 길을 갈 수 있는 기반이라고 하면서 활짝 웃으십니다.

인터뷰는 늦은 시간에 끝났습니다. 직장일과 가정 그리고 봉사활동까지, 물론 매일 아침 수행은 기본이구요. 최인자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이래서 상을 마땅히 받을만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냥 들판에 핀 풀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내 모습이 그 풀무리에서도 이 만큼 삐져나와 삐쭉 솟아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답니다. '나 잘났다' 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수행과 봉사를 통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지금처럼 꾸준히 수행하고 싶다는 말씀에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최인자 님 인터뷰는 노원법당 최은주 희망리포터님과 함께 취재했습니다. 끝으로 최은주 님의 소감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상을 받으셨을 때 모두 기뻐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같은 법당이라는 것에, 가까운 도반이라는 것이 인터뷰하는 내내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또 최인자 님을 위해서 시간내어 주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해 주신 도반들을 보니 반갑고 좋았습니다. 최인자 님 본인은 정작 본인의 활동이 별거 아닌 듯 말하셨지만, 몇 년간 봉사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담담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하셨지만 수행도 봉사활동도 잘 해나가시는 모습이 '역시 상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안하게 주인된 모습으로 봉사와 직장, 그리고 가정생활도 잘 해나가시는 것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바람이 부는 밤이라 쌀쌀했지만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길은 마음까지 따뜻했습니다. 늘 행복한 수행자 되길 바랍니다.

글, 영상 _박성희 희망리포터(서울정토회 관악법당)
인터뷰_ 박성희, 최은주 희망리포터(노원정토회 노원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