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꽃들이 피었다 지고 또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계절은 때가 되면 이렇게 왔다가 가지만 부처님 법 만난 정토행자의 마음은 항상 봄 아닐까요? 이번에 널리 많은 이들에게 법문의 향기를 전해 포교상을 받은 이숙미 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가을 계곡에서▲ 가을 계곡에서

마산정토회와의 첫 인연

리포터 :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어떻게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이숙미 님 : 둘째 아이를 낳고 97년도에 IMF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원 시내에서 멀지 않은 반촌 동읍으로 주택을 지어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한살림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명, 살림, 나눔, 환경에 대해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2004년 여름에 도법스님을 대표로 한 생명평화결사단이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서 부산-경남-울산으로 탁발 순례하는 과정에서 저희 동네 한살림 공동체 식구들이 점심을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속 프로그램을 마산정토회에서 하게 되었고, 그 프로그램에 참가한 동네 동생들을 통해 2005년도에 마산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리포터 : 정토회에 와서 처음 공부하실 때 어떠셨어요?

이숙미 님 :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계속하느라 시어머님께서 아이를 키워 주셨습니다. 거기다 친정 동생 둘도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동읍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거의 10년을요.
남편은 결혼 전에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난치성 질환으로 인한 고관절 괴사로 양쪽에 인공관절 수술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걸음 걷는 것도 불편해지고 직장을 다니는 것 말고는 집에서 거의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답답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동네에서 세 명이 함께 불교대학에 입학해서 열심히 다녔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1박으로 가는 특강수련과 4박 5일의 <깨달음의장> 수련이었습니다. 결혼해서 한 번도 혼자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때는 불교대학 졸업 요건으로 <깨달음의장> 이수가 필수였던 때였어요. 근데 입학하고 5월 말에 <깨달음의장>을 갈 수 있었어요. 정말 기적 같은 일이지요.

그때 월광법사님이 마산정토회 총무 소임을 맡고 계셨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천일결사 입재를 하라고 하셔서 그냥 했네요. 5-2차로 기억합니다. 근데 간절함이 없어서 그랬는지 입재만 하고 기도도 안 하고 그러니 당연히 입재식도 안 가게 되더군요. 그나마 하나 잘한 건 기도비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빠지고 내고 있답니다. 생각해보니 뭐든 끈 하나는 잡고 가면 같이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1년을 다녀 졸업을 하고 다음 해 경전반 입학을 했는데 반년 정도 다니고 결국은 정토회를 그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건강과 직장 생활하는 여동생 둘째 아이를 키워줘야 해서요.

경전반 졸업식 (뒷줄 맨 오른쪽)▲ 경전반 졸업식 (뒷줄 맨 오른쪽)

리포터 : 여러 가지 참 힘드셨겠어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좋았던 점이나 깨달았던 점, 불편했던 점도 좀 말씀해 주시죠.

이숙미 님 : 저 자신을 알아가는 게 좋았죠. 물론 외면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제가 크게 남과 부딪치는 성향도 아니고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거의 참는 수준이었어요. 늘 남편의 아픈 몸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혼 20주년 선물로 인도성지순례를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얻은 것이 남편과 가족 때문에 내가 못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 한 것을 괜히 남편 탓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남편이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살았다는 걸 자각했죠. 그러니 남편에게 저절로 팍 숙여지더라구요. 인간이 참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 어떤 것도 내가 한 선택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된 거죠. 정토회 활동을 안 했더라면 저 자신에 대해서 정말 몰랐을 겁니다.

불사가 가르쳐준 마음공부

리포터 : 네. 저도 아직 인도성지순례는 못 갔는데요. 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토행자 수상자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어떠셨어요?

이숙미 님 : 정말 생각도 못했어요. 너무 놀랐죠. 실감도 안 나고, 김은숙 대표님 앞에 서 있는데 마구마구 떨렸어요. 다들 물어보시더군요. 정말 몰랐냐고. 미리 연락 온 것 없었냐고. 미리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하고 옷이라고 좀 차려입고 갈 수 있었을 텐데(하하). 감사함이죠. 저 혼자 한 게 아니니까 함께 하는 도반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9-4차 입재식 때 포교상을 수상하는 모습.▲ 9-4차 입재식 때 포교상을 수상하는 모습.

활짝 웃는 이숙미 님.▲ 활짝 웃는 이숙미 님.

리포터 : 이번에 포교상을 받으셨는데 불법을 잘 전하게 된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자세하게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이숙미 님 : 저는 뭐든지 가볍게 흔쾌히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어떤 일도 그냥 오는 것은 없다 싶어요. 인연인 것 같습니다. 의창법당 불사를 시작할 때도 그랬습니다. 창원법당 재불사를 추진한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장소를 못 구하자 정홍자 국장님이 '의창구에 법당을 먼저 내서 숨통을 트자'라는 말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가볍게 그렇게 하자고 공간을 구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정말 몇 달 만에 공간이 구해졌어요. 그때가 8차년 마지막 해였습니다. 불사 모연금 통장도 안 만들고 당연히 불사금도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거의 두 달 만에 불사금이 다 모였어요. 신기한 일이에요.

의창법당 개원하고 같은 건물 4층이 계속 비어있는 상황에서 1년 6개월 만에 권열기 국장님이 4층 확장 불사를 제안했어요. 법당 자체적으로는 공간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지만, 교통이 좋아 경남지부, 통일특위, 각종 회의, 교육, 수련 공간으로 쓰면 좋겠다 싶어 또 불사를 시작했네요. 그때도 모연금이 하나도 없었어요. 한 도반님은 모연금 부족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했어요. 그때 국장님이 아파트라도 팔아서 책임져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다행히 모연금으로 해결이 되었죠. 십시일반의 힘을 그때 느꼈습니다.

본부불사 돕는이 소임을 맡아서 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우선 저부터 선뜻 마음을 내고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힘이 실리는 것 같아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예요. 불사도 5대 수행의 하나. 저는 다만 한 분 한 분께 정성을 다해 안내할 뿐이고, 하고 안 하고는 그분의 선택으로 맡깁니다. 그러나 몰라서 못하는 분은 없도록 빠짐없이 안내하려고 합니다. JTS 거리모금할 때도 분별하지 않고 차제걸이하는 마음으로 하잖아요. 그리고 내 일로 받아들여야만 되는 쪽으로 연구하는 마음을 내는 것 같아요.
소임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안 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음 내어 주시는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에 감동을 많이 느낍니다. 소임이 복인 줄 알아갑니다.

의창법당 확장 개원 법회▲ 의창법당 확장 개원 법회

선물 같은 나의 작은 아들을 떠올리며

리포터 : 결국 포교상 받으신 노하우는 자신부터 선뜻 마음을 내고 정성을 다하면 그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이군요. 저도 많이 배우게 되네요. 불법을 전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이나 일이 있을까요?

이숙미 님 : 3년 전에 18살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간 작은 아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지주막하 뇌출혈로 5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나이여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5일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 때문에 여한은 없습니다. 아이는 장기 기증으로 6명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떠났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어디에도 무엇에도 집착할 바가 없다는 것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돈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니 삶이 정리가 되더라구요. 바라는 것이 없으면 아들을 효자로 만든다는데 저는 바라는 것이 없음을 넘어서 해줄 것도 없으니 우리 아들 얼마나 효자입니까. 정말 선물 같은 아이입니다. 없어서 편안한 것과 안 해도 되는 것의 가벼움. <나눔의장>에서 묘덕법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항상 되새깁니다. 처음에는 안 받아들여지더니, 지금은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아이에게 잘 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살아있다면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할 금액을 계산해서 매년 보시를 합니다. 나를 위해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회향하는 마음으로 잘 쓰이고 싶습니다.

봉림사지 통일기도 (가운데 이숙미 님)▲ 봉림사지 통일기도 (가운데 이숙미 님)

리포터 :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들으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아픔인데요. 어디에도 무엇에도 집착할 바가 없다는 말씀, 큰 일을 겪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니 삶이 정리가 되더라는 말씀, 가슴 깊이 공감합니다. 정말 내놓기 힘든 말씀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불법을 전하는 요즘 마음은 어떠신지요?

이숙미 님 : 얼마 전에 법당에서 사시예불을 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부처님 제자 중 부루나 존자가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전법의 길을 떠나는 경전의 내용이 떠오르면서 '나도 이렇게 부처님 법 만난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다가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세세생생 윤회하는 삶 속에서 이 생은 이렇게 살다가도 좋겠다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4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온전히 전법을 하시다가 열반에 드셨으니 부처님 제자로서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가는 것이 맞겠지요. 부처님 법 안에서 수행, 보시, 봉사하는 수행자의 삶.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이 활동이 참으로 복되고 귀하다는 생각에 다만 감사한 마음입니다.

또 아픈 몸으로 직장 다니면서 돈 벌어다 주는 남편에게 고맙고, 어렵고 힘든 공부 잘 해내는 아들도 고맙고, 예전에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함께 하는 거라는 말로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선배 도반님도 고맙고, 여기까지 버티고 견디어 온 저 자신에게도 고맙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스승님 가르침 따라 도반들 손잡고 함께 가는 저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수요법회 홍보 중인 이숙미 님 (오른쪽 두 번째)▲ 수요법회 홍보 중인 이숙미 님 (오른쪽 두 번째)

JTS 거리 모금 (맨 오른쪽 이숙미 님)▲ JTS 거리 모금 (맨 오른쪽 이숙미 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또 눈물이 납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꽃처럼 피어난 이숙미 님,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하시기를! 완전한 마음의 봄을 맞이하여 널리 세상에 법문의 향기를 전하는 부루나 존자가 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글_이숙미 (마산정토회 의창법당)
정리,편집_목인숙 (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