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재능을 살린 영상과 사진 관련일 뿐만 아니라 공양간, 밭일, 청소 등 수 많은 법당 일을 내 일처럼 돕는 김유경 님을 만나 봤습니다.

요즘 시애틀법당은 예전보다 법당 운영이 훨씬 안정적입니다. 법회에 참석하는 도반들도 평균 이삼십 명이나 됩니다. 지금의 이런 법당을 만드는 데에는 주인의식을 갖춘 도반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앞에서 기둥처럼 딱 중심을 잡고 있는 도반들이 있는가 하면 특정 소임을 맡고 있지는 않아도 누가 시키든 시키지 않든 법당에 필요한 일이라면 기꺼이 손을 보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내려놓는 수행을 꾸준히 하니 큰 갈등 없이 나날이 웃음꽃이 핍니다.
그 중 김유경 님은 도반들 중 많은 법당 소임을 해내십니다. 김유경 님에게 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질문해보았습니다.

재능기부로 시작한 봉사

저는 2008년에 시애틀법당이 생기면서부터 법회 및 홍보 영상을 다운받아서 법회 시간에 재생하는 일, 시애틀법당 홍보영상을 만들어서 광고하는 일, 행사 사진을 찍어서 백일 간의 발자취 영상을 만들어 도반들에게 보여주는 일 등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봉사할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그쪽 분야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제가 자연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법당에서는 초보자들을 가르쳐서 기술을 갖출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고 저도 기꺼이 하는 마음을 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 일에 관심은 있지만 기술이 없어 망설이는 분들이 봉사할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봉사는 혼자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다른 도반들과 함께 일을 해오다, 이제는 앞에 나서기보다 도움이 필요할 때 뒤에서 조용히 돕는 것이 좋겠다 싶어 맡았던 소임을 내려놓았습니다.

공양 봉사하는 김유경 님▲ 공양 봉사하는 김유경 님

봉사, 내게 득이 되는 꼭 필요한 일

제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정토회 와서 봉사하기 전과 후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미국 와서 먹고 사는 거 해결하고 살아남으려고 하다보니 억세고 거칠었습니다. 별명이 쌈닭이었으니까요. 그 정도로 강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그 당시 사진 속 제 모습을 보면 독이 든 낯선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까지 왔는데 남에게 뭔가 보여줄 만한 걸 이뤄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정토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매주 법문을 들으면서 사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니 가진 것이 참 많고 이만하면 됐는데 자꾸 뭔가를 더 가져서 뭐할까 하는 생각이 탁 들었습니다. 또 너무나 열심히 산 제 동생이 병으로 죽게 되니 삶 자체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왕 사는 거 내 재능을 이용해 남에게 도움 되면서 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바뀌게 해준 정토회에 대한 감사함이 크고 저의 재능으로 그것을 갚을 기회가 있어 기쁩니다. 또 봉사 활동을 하면서 주는 것보다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으니 제게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야유회 겸 나눔 장터에서: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김유경 님▲ 야유회 겸 나눔 장터에서: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김유경 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건강 적신호

최근 가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남편은 “돈 버느라 눈 나빠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는데 또 봉사하면서 매일 컴퓨터 보고 있고, 정토회 그만 나가면 안 되나” 하면서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 또한 큰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번에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나빠진 일이 지금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직장에서 매일 12시간 이상 컴퓨터를 보면서 일했던 피로가 쌓여 눈이 쉬어야 한다는 적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람이 눈으로 얻는 정보가 90% 이상이라는데 눈이 안 보이게 되었을 때는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두려웠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보이긴 하지만 또 언제 안 보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큽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삶에 대한 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아, 인간이 이렇게 나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조금만 괜찮아지면 나 잘났다는 생각으로 보여주려 하고 더 소유하려 하는구나.’ 싶어 지금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해가고 있습니다. 저는 구색을 갖춰서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일 년에 몇 번 올까 말까 한 손님들에게 내주려고 마련한 그릇들도 많고 또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주고 간 물건들도 다 쌓아놓고 있었더라고요. 지금은 누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다 가져다줍니다.

눈 쌓인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맨 오른쪽에 김유경 님▲ 눈 쌓인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맨 오른쪽에 김유경 님

미국에서 살면서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 하며 잘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점점 시간도 안 되고 몸도 힘들고 그만둘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질질 끌려가고 있었는데 눈이 나빠지고 회사를 그만둘 마음을 탁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우선순위에 대해 초점을 맞출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구순이 되어가는 시부모님을 잘 챙겨드리는 것입니다. 시부모님은 48년 동안 시애틀에 사시면서 여유가 없어 가보지 못한 곳이 많으십니다. 남편은 시부모님 돌아가시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군데씩 모시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나중에 장례식장에서 그 사진을 슬라이드쇼로 조객들께 보여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 전문이니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매주 좋은 곳에 가서 시부모님하고 남편 세워놓고 사진 찍는 것이 일상입니다. 가족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게 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기꺼이 손 보태는 수행의 길

눈이 나빠지니 귀가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목탁 소리에 대한 가슴 울림이 커졌습니다. 얼마 전에 열반절 기도를 할 때 목탁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으면서 불경을 외우는데 그 감동이 아직도 찡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목탁 치며 법회를 집전하는 봉사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인데 공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수줍게 웃는 김유경 님▲ 인터뷰를 마치고 수줍게 웃는 김유경 님

이제는 법당에 어떤 도움이 필요하고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금방 보인다며 환하게 웃는 김유경 님. 법당 일이 봉사 활동이 아닌 생활 일부가 된 듯합니다. 법복을 입고 앞을 향해 반듯하게 서서 집전하는 김유경 님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제 마음이 다 울컥합니다. 시애틀법당에는 유경 님뿐만 아니라 이 글에 다 담지 못한 숨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을 도반으로 함께할 수 있어 저는 참 복이 많습니다. 저 또한 행복한 미소지으며 그렇게 손 보탤 줄 아는 수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준 김유경 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글_박근애 희망리포터 (시애틀법당)
편집_이진선 (해외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