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할수록 내 자신이 낮아졌습니다.
봉사할수록 자신감과 부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보시할수록 소외된 이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법에 귀의하고 법륜스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공부하게 된 일도 제겐 영광이고 가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부처님 가신 길 따라, 스승님 지도하시는 길 따라 말없이 따라갈 것임을 다짐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도반을 품다

“이어서 저녁책임팀장 소임을 맡고 있는 조애자 님의 공지사항이 있겠습니다.”

수요일 저녁 수행법회 사회자의 소개 말입니다. 이어 감기로 목이 꽉 잠긴 조애자 님.

“이 감기가 한 달째 저에게 붙어서 나가질 않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도반이 말합니다.

“조애자 님이 문제입니다”

빵하고 터지는 도반들의 웃음, 법당이 화기애애 합니다
타고난 건강 체질에 씩씩하고 추진력 있어 수원법당에서는 조장군으로 통하는 조애자 님. 한 주만 푹 쉬어줘도 싹하고 나을 감기인데... 백악관 청원 서명 거리 홍보하랴, 책임팀장 회의 참석하랴, 서초법당 통일기도 정진하랴, 스님 강연 준비하랴, 불교대학생과 경전반 학생 수업 지원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눈 딱 감고 한주만 쉬어줘도 될 것을. 안쓰런 애기들이 힘들게 하는데 모른 척 쉴 수 없다며 매번 법당 행사에 나오다 보니 저리 되었습니다.

정초법회에서 법륜스님께 편지를 올리며. 한복 입은 분이 조애자 님.▲ 정초법회에서 법륜스님께 편지를 올리며. 한복 입은 분이 조애자 님.

수원법당을 이끌어가는 조애자 님과 정토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2018년 2월 22일 정회원을 위한 정초법회에서 법륜스님께 올린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친정식구들이 모두 교회를 다니는 데도 시어머니는 저를 이끌고 사찰을 갔습니다. 시어머니와 저만 절에 다녀요. 일 년에 몇 번 어쩌다 가는 사찰이라 절하는 방법이며 사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 주눅이 들었으나 싫지는 않았습니다. 돌아가시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너만은 부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몸이다”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어머님의 말씀을 명심문처럼 간직하고 15년 넘게 절을 다니던 어느 날, 옆에서 중얼거리는 저 반야심경은 어떻게 해야 외워지는지 또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사찰에서 제공하는 3개월짜리 불교대학 과정도 이수하고 법명도 받았으나 불교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허전한 마음도 여전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깊이 있게 제대로 불교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만 갔습니다. 그 때 아는 동생이 정토회란 곳을 소개하면서 함께 공부해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망설임 없이 바로 승낙하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정토회도 모르고, 법륜스님의 존재도 모르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불교공부에 대한 열정하나로 정토회를 만난 것입니다."

불교대학 담당, 조장군, 그리고 엄마의 마음으로

Q.온가족이 교회를 다니는데 시어머님은 왜 조애자 님을 사찰로 이끌었는지요?

A.남편은 지금 5형제 중 장남이지만, 그 위에 6형제가 있었답니다. 그 시절은 태어나서 잘 자라다가 서너 살이 되면 동네에 전염병이 돌거나 해서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시어머님은 자신이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어린 아이들을 모두 잃었다는 죄책감이 있어, 남편을 임신했을 때는 사찰에 다니면서 지극정성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그 후로 건강하게 잘 자랐고, 그 모든 것이 부처님의 공덕이라고 생각한 시어머님은 결혼하여 며느리가 된 저에게도 절을 함께 다니자 하셨던 겁니다. 시어머님의 품성이 너그럽고 저를 예뻐해 주셔서 인지는 몰라도 시어머님의 제안에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또 남편에 대해 지극정성을 쏟으신 시어머님의 간절함이 저에게도 가슴깊이 와 닿아 저도 남편을 귀하게 대했습니다.

늘 받기만 하고 귀하게 자라서인지, 남편은 저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의 한정된 월급으로 시어머님 모시랴, 아이들 학비대랴, 가정 살림은 점점 쪼들렸습니다. 급기야 생활비가 떨어져 지인들에게 돈을 꾸러다니기도 하고,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도 하며 어려운 살림을 겨우겨우 이어가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열심히 공부하여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부동산 중개소를 차리고 수입이 좀 생기고 아이들 학업도 끝나니 조금씩 여유가 생겼습니다. 힘들었을 당시는 남편이 무능하다고 생각하여 원망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지금은 정년퇴직 후 살림하면서 제가 시간내서 놀아주기만 기다리는 남편이 살짝 안쓰럽기도 합니다.

왼쪽 첫번째. 환한 웃음의 조애자 님▲ 왼쪽 첫번째. 환한 웃음의 조애자 님

Q.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결단력과 추진력이 대단하신데,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저녁부 책임팀장을 맡기 전에는 어떤 소임을 하셨는지요?

A.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다니면서는 조용하기만 학생이었습니다. 이 불교 공부가 끝나면 예전에 다니던 사찰로 돌아가 조용히 살 예정이었구요. 그런데 경전반 졸업 후 동기 도반이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맡게 되면서 함께 할 부담당을 찾고 있기에, 법륜스님이 강조하시는 수행, 봉사, 보시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봉사가 필요하겠다 싶어 불교대학 부담당 역할에 지원했습니다. 같은 동기끼리 봉사하는 일이라 재미도 있었고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보람도 있었습니다. 이듬해에는 가을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아 또 새로운 인연들에게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담당 때의 경험이 있어선지, 담당이 되면서는 더 주도적으로 학생들을 챙기게 되고,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장 일을 하다가 오는 학생들이라 저녁을 못 챙기고 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혼자 사는 도반들은 늘 배고파 보였기에 무엇이라도 먹이고 수업에 들여보내고 싶어 떡이며 과일 등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똑같이 공부를 하러 왔으나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은 꼭 개별적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다 큰 성인이 마음 공부를 하러 온 법당인데 다 알아서 하겠지 싶지만, 어디나 힘든 사람은 있게 마련이어서 엄마의 마음으로 조금만 더 신경써주면 훨씬 편하게 법당에 적응하겠다 싶었습니다. 대신 특별한 사정없이 수업에 빠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느낌이 들면, 좀 싫을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얻은 별명이 조장군입니다. 그 학생들이 지금 책임팀장 일을 하는데 아주 고마운 인연들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소임을 줘도 싫다는 내색 없이 거리모금도, 당직도 모둠장 역할도 척척 해주고 있습니다.
결단력이 있다는 것은 한 쪽에서는 독선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추진력이 있다는 건 자칫 세심한 부분을 놓칠 수 있구요.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중요한 안건에 대해서는 회의를 합니다. 회의 분위기는 격의없는 농담과 자유로운 발언으로 평화롭지만, 안건에 대한 논박은 치열합니다.

지난번에는 저녁 각 교실과 저녁수행법회반 간식을 없애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녁 간식을 준비하면서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고, 준비하는 사람의 노고가 많이 필요하며, 간식을 먹느라 마음나누기에 집중이 안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담당 때의 경험이 있어 저녁을 못 먹고 오는 분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간식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때가 아니면 먹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을 근거로 주장하는 도반에게 밀렸습니다. 타협안으로 이제 새로이 과정이 시작된 수업반은 담당과 부담당이 상의하여 간식 제공 여부를 결정하고, 저녁수행법회반은 간식을 없애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제 마음에는 참 안 들지만 도반들의 의견이니 존중합니다.
회의를 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도반들의 의견이 참 다양하고 아이디어가 번뜩입니다. 혼자 고민하다가 안건으로 내어 놓으면, 해결책이 척척 나와 주니 내가 뭘 추진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 도반들이 해주는 것입니다.

Q.저녁책임팀장 소임은 어떻게 맡게 되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요?

A.가을불교대학 담당을 맡은 지 4개월 정도 지나서, 당시 법당 저녁책임팀장이 지부 선임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후임자에 대한 상의를 하시길래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책임팀장은 당연한 나의 운명이다'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때 마음은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품어주면 모두 다 함께 갈 거란 믿음도 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중간에 그만두지 않겠다고 나 스스로와 약속도 했습니다.

이젠 불교대학생 뿐 아니라 저녁부 모든 도반이 저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소임을 새로이 맡은 도반이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보게 되고, 정회원이 아직 안 된 도반은 무엇이 부족해서 저러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고...
그러나 저의 분별없음은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정토회 경력도 짧은 총무가 새로이 선임되면서 불편함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당 행사, 업무 분담 등을 위해 회의를 하는 중에 자꾸 본인의 권한을 내세우는 것이 못마땅했고, 의견을 나눠 적당하게 결정을 하면 될 것 같은데 자꾸 내 의견이 묵살 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이 소임을 하겠다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다른 도반 고민은 다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느라 노력했는데, 막상 내 고민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곳 조차 없다는 느낌이 들어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일사 회향을 하는 날, 다른 법당에서 같은 소임을 맡고 있는 분이 저와 같은 고민을 법사님께 털어 놓았습니다. 그 순간 ‘아,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법사님 말씀에 완전 집중하며 듣게 되었습니다. 나를 돌아보니, 새로 업무 맡은 사람이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하는 행동에, 나이도 많고 경력도 오래 된 이른바 '수행자'가 걸려 넘어진 꼴이었습니다.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드높던 내 콧대와 자존심을 상대가 세워주지 않음에 내가 불편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고 나를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그 한 생각을 돌이키니, 상대방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짠한 마음까지 올라왔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며 주간반과의 소통을 자주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법당 도반들과 활기찬 뜀박질!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애자 님.▲ 법당 도반들과 활기찬 뜀박질!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애자 님.

세상과 내가 하나되는 경험

Q. 요즘 한반도에 평화의 봄바람이 따뜻하게 불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고, 비핵화 선언을 하고...
지금의 이 봄바람을 위해, 정토회는 3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통일기도를 해 왔고, 전쟁기운이 커져가던 작년 11월에는 만여 명이 광화문에 모여 평화대회도 개최했습니다. 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달라는 백악관 청원운동도 했구요. 우리의 노력으로 한반도가 평화로워진다는 자부심도 있지요?

A. 당연하지요. 그 추운 겨울날 광화문 평화대회에 참가해 준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오늘의 남북관계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그 일들을 지극정성으로 실천함에 하늘이 감동하여 이런 좋은 결과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내 손자들은 군대도 가지 않고 북한 여행도 자유롭게 하는, 좋은 나라를 물려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부심이 생깁니다.

통일의병 교육을 받은 후, 법륜스님의 안내로 <동북아 역사기행>을 하면서 내내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통일을 하면 고구려의 높은 기상이 깃들어 있는 저 넓은 영토를 우리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도 있고, 굶주림에 지친 북한 동포들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너무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았습니다. 이젠 합가해야지요.

수원정토회 도반들과 함께 서명운동하며. 오른쪽이 조애자 님.▲ 수원정토회 도반들과 함께 서명운동하며. 오른쪽이 조애자 님.

Q. 남북은 화해분위기로 좋아지고 있는데, 집안은 평안하지요? 매일 법당에서 봉사하느라 집안일이 소홀해 식구들이 싫어할 수도 있는데요?

A. 남편한테는 살짝 미안하지요. “결혼하고 30년을 당신을 위해서 살아왔다. 앞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은 서로에게 의지하지 말자. 나는 불법에 의지하고, 또 나 자신을 의지처로 삼으며 살아갈 터이니 당신도 나에게 의지하지 말고 당신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를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재미있게 살도록 옆에서 지켜봐줄 겁니다.

아들 내외는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줍니다. 며느리는 아주 저를 좋아합니다. 거긴 아직 보살펴야 하는 손주도 있고 해서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고 있고, 또 다른 시어머니와 다르게 자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시어머니에게 받은 사랑 며느리에게 그대로 베풀려고 노력합니다. 사회적인 이슈나 국제적인 정세 같은 문제도 제가 법륜스님에게 배운 공부가 있어 내 의견을 이야기하면, 시대 감각이 있다고 아주 좋아합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즐거움이 있을까 싶어요. 매일 아침 동네 아줌마들 만나서 수다나 떨고 있었을 텐데, 법륜스님 덕에 통일공부도 하고 국제정세도 배우고, 환경사랑도 실천하고... 정신도 풍요롭고 몸도 바빠서 잡생각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게 행복 아닐까요? 가끔 다시 내 생각에 걸려 또 넘어지겠지만 다시 일어날 힘이 있으니까 그것도 걱정 안 합니다.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대상에게는 끝없는 정성을 베푸는 조애자 님의 내리사랑에서 보디사트바의 정신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진정한 보살이십니다.

글_김경란 희망리포터 (수원정토회 수원법당)
편집_전선희 (강원경기동부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