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정토회와 인연이 된 계기는?

동생과 통일의병대회를 마치고▲ 동생과 통일의병대회를 마치고

친동생이 보내 준 즉문즉설 동영상과 운명적인 만남

정토회와 인연은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두 달 뒤에 친정 여동생이 ‘스님 천당 있어요?’라는 즉문즉설 동영상을 보내줘서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궁금해서 얼른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궁금해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보니 소설책보다도 더 재미있어서 몇 달 동안 시간만 나면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주말은 이틀 꼬박 들으면서 스님의 사이다 답변에 체한 것이 내려간 듯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스님이 어떤 분인지 문경에 가게 되면 꼭 찾아뵈리라 생각했었죠.

저는 친정에서는 2남 2녀의 장녀이고, 시댁에서는 4남 1녀의 둘째 며느리인데요. 결혼하고 4년이 지난 후부터 홀 시아버님과 20년간 함께 살았어요. 친정어머니께서도 거의 8년을 누워 계셨고요. 그래서 30대, 40대는 앞뒤 돌아볼 틈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제 나이 마흔아홉살일 때 시아버님께서는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이제 좀 편안히 살아보나 했는데 남편이 대장암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과 12번의 항암치료로 안정이 될 무렵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두 딸도 집 떠나 공부하고 있었고 어느덧 50세가 넘으니 갱년기도 찾아왔습니다.

큰일을 여러 번 겪고 나니 이젠 나 자신을 위해서 취미 생활이라도 해야겠다고 고민하던 중 차라리 불교를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데도 없고 해서 시누이한테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마침 직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불교대학을 추천해주더군요. 거리도 가깝고 집에 가는 버스도 바로 있고 안성맞춤이다 싶어서 결정 했어요. 그때 마침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정토불교대학 모집을 보고 정토회도 불교대학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곧바로 대구정토회에 전화해보니 거리도 멀고 교통도 불편하고 순간 갈등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그동안 스님 즉문즉설을 들으면서 이런 훌륭하신 스님이 하시는 절에 다니려면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누구 소개도 없이 제 발로 대구정토회를 찾아왔어요.

Q 정토회를 접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깨달음의장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세 번째)▲ 깨달음의장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세 번째)

2014년 2월에 불교대 입학하고 어느덧 5년 차가 됩니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아요. 저는 정토회를 다니고부터 제 일상생활에 변화가 많았습니다. 그해 10월에 <깨달음의장>에 가서 상대와 내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죠. 상대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는 걸 듣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그동안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되는데... 그럼 그동안 내가 애쓴 건 뭐였지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어요.

둘째면서 홀 시아버님을 모시고 있다는 생각에 남편과 시댁 형제들에게 은근히 유세를 떨고 힘들다고 불평을 했던 일, 특히 남편에게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해서 가정이라는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어 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온갖 간섭과 잔소리를 하면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늘 냉랭했어요. 나는 열 개를 해줬는데 한 개도 못 해주느냐고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고 본인밖에 모른다고 싸움도 많이 했어요. 나만 늘 일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기에 원망하고 미워하고 아이들한테도 아빠 인정머리 없다고 흉도 많이 보고 그랬어요. <깨달음의장>을 다녀오고 불교대를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남편도 나와 사느라 힘들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간섭이나 잔소리하는걸 제일 싫어하는 남편은 어른이 계시니까 집안 시끄러워 질까 봐 저의 강요와 잔소리를 참고 살았으니 백번을 해 줘도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겠구나. 나를 맞추고 살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봤거든요. 나 역시도 잘해주려고 애쓰고 살았지만, 인사 못 듣고 저도 힘들었더라고요. 마음의 상처도 많이 입었고요.

그다음부터는 욕먹기 싫어서, 좋은 소리 듣고 싶어서 억지로 하는 것들을 과감히 내려놓는 연습을 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하고 하기 싫은 것은 싫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싫다고 하면 하지 않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거 짜다” 하면 예전에는 “안 짠데~” 하고 말하면 그것 가지고도 싸움이 되곤 했는데 이제는 “안 짜게 할게요.”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목소리가 크다고 지적을 받았는데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들을 줄도 알고 제가 차분해졌어요. 정토회 다닌 지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남편이 “당신이 정토회 다니고부터 내가 편안해졌다. 간섭 안 하지, 잔소리 안 하니까 살기 편해서 좋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어른들도 그렇게 하고 살기에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배우니 그동안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싶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장했던 일들이 부끄럽고 저도 힘들게 살았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참회가 많이 됩니다. 그땐 정말 몰라서 그랬는데 지금이라도 알게 되니 감사합니다.

JTS 거리모금 후(오른쪽 세 번째)▲ JTS 거리모금 후(오른쪽 세 번째)

기일날 기부로 제사문화를 바꾸다

경전반을 졸업하고 수행법회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기도와 봉사도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4년이 지나 작년 3월에 친정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토회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 형제들의 모습이 어땠을까 싶어요. 친정엄마 기일과 설이면 큰 올케가 삼십만 원짜리 제사음식을 한 상자 보내줘요. 그걸로 그동안 엄마 제사를 모셨어요. 달리 방법도 없었고요. 그런데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 남동생이 제사를 모셔야 하는데 큰 올케는 너무도 바쁜 사람이고 제례 문화나 농촌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갈등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어요.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을 위해 스님께서 제사도 문화라고 말씀하시는 법문을 듣고 동생들에게도 재에 관한 동영상을 몇 개 보내주었더니 다들 찬성을 하더라고요. 아버지께도 우리집 사정이 큰올케가 너무 바쁘고 제사 모시기가 힘들 것 같으니까 기일 날 쌀을 기부해서 가난한 이웃과 밥 한 끼 나누어 먹는 거로하면 어떻겠냐고 여쭈었어요. 아버지께서도 흔쾌히 그러라고 하시면서 최대한 간소하게 지내라 산소에는 소풍 오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가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해 엄마 제사와 친정 숙모님 기일까지 쌀 한가마니씩 무료급식소에 기부해서 280여명 어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어 드렸어요. 너무 잘한 일 같고 뿌듯했습니다. 올해 아버지 첫 제사에도 쌀 한가마니를 보냈고 어르신들과 맛있게 먹었다는 사진과 문자를 받았습니다. 쌀 한가마니로 500여명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요. 무엇보다 형제간의 갈등 없이 지내는 게 제일 좋아요. 정토회에 와서 스님 통해서 제례 문화를 바꾼 것이 가장 잘한 일 같아 너무 감사한 마음이에요. 스님 감사합니다.

전쟁반대 집회 후 바라밀다 도반들과 함께(왼쪽 네 번째)▲ 전쟁반대 집회 후 바라밀다 도반들과 함께(왼쪽 네 번째)

Q 기억에 남는 정토회의 수련프로그램이 있다면요?

4박 5일간 스님과 함께하는 명상수련에 참여 했을 때 어느 날 아침에 스님께서 법문 하시는데 여기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는 것도 팔십 노인 걷듯이 천천히 걷고, 오로지 가만히 앉아서 코로 숨이 들어가나 나가나만 지켜보라 하는데도 그것도 못 하면서 어떻게 남편이나 자식을 제 마음대로 하려 하느냐는 말씀을 듣는 순간 이른 아침인데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거에요. 시아버님 생각이 났어요. 둘째 집에 사신다고 철없는 며느리 눈치 보시며 사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나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어른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손하게 굴었던 저 자신이 참 어리석었고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내게 살갑게 잘해줘서 고맙다 일등며느리다 백 점짜리 며느리라면서 친척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셨는데 형제들과 우애 있게 지내라고 그런 말씀을 해 주신 것 같았어요. 시아버님이 계실 때는 형제간에 바람 잘 날 없이 시끄럽게 살았는데 시아버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동안 원망스럽고 억울했던 형제들에 대한 마음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작년부터 시아버님 제사는 큰동서가 모시지만 저는 아버님 기일에 시어머님 이름과 함께 희망의 집에 쌀 한가마니를 기부하고 있어요. 불효한 죄송한 마음과 늘 지켜주시는 것만 같은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보답하고 싶어요. 지금은 형제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니 참 좋아요. 그동안 복잡하게 얽히고 설켰던 감정들이 내가 일으킨 어리석은 감정들임을 알고 내려놓으니 지금은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바라밀다도반과 문경공연 후(오른쪽 두 번째)
▲ 바라밀다도반과 문경공연 후(오른쪽 두 번째)

Q 맡은 소임과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지금은 천일결사모둠장 소임을 맡고 있는데 모둠원들이 협조를 잘 해주어서 어려운 건 없습니다. 기도는 8~2차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빼먹지 않고 꾸준히 잘하고 있어요. 저는 기도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100일씩 넘어갈 때마다 그동안에 쌓여있던 감정들이 정리되었고, 기도 중간중간 점검 기간에도 빠지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다보면 조금씩 성장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매일 읽는 경전이 어려울 때도 많지만 경전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이 만큼이라도 성장한 게 꾸준히 한 기도 덕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1220차 <깨달음의장> 도반들과 1,312일째 나누기를 하고 있어요. 도반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대구법당에서는 불교대와 경전반 바라밀다 동기들과 함께 수요법회와 봉사를 함께하며 수행을 하고 있어요. 이런 훌륭한 도반들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정토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수많은 절이 있는데 정토회를 만나고 훌륭하신 스님을 스승님으로 인연 맺고 좋은 도반들과 수행을 하는 게 너무 감사하고 그럴수록 겸손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행, 봉사, 보시

그동안 삶에 너무 틀을 많이 만들어 놓고 살았던 것 같아요. 법문을 들을 때마다 툭툭 무너지는 느낌이에요. 정말 스님법문이 유쾌하고 통쾌하고 속이 뻥 뚫리는 것같이 시원해요. 예전에는 능력도 안 되면서 욕먹기 싫어서 애쓰는 힘든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삼박하게 'yes, no'를 하면서 사니 자유롭고 가볍고 주변 정리가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고마운 건 고맙다 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해도 나를 굽히는 게 아니고 자존심이 상하는 게 아닌 걸 아니까 마음이 즐거워요. 늘 내주장이 강했는데 이제는 남의 이야기 들어주기, 부드럽게 말하기, 공감해주기, 아는 게 많은 줄 알고 살았는데 모르는 게 더 많음을 알고 나니 말이 줄어들게 되고 남이 하는 말을 듣게 되더라고요. 천지도 모르고 날뛰던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수행을 통해 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알아가게 되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사는 게 괴롭지 않은 삶인지 몰라서 괴롭고 힘들게 살았는데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시니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빠져나온 기분이고 또 삶에 바로 적용하니 생활의 변화가 빨리 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주변정리도 조금씩 하려고 해요. 앞으로의 삶은 수행하고 보시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목표를 세웠어요. 여동생은 남산법당에서 봉사자로 잘 쓰이고 있어 뿌듯하며, 둘째 딸도 서초법당 청년회 가을불교대 다니고 있어서 함께 정토회 이야기를 정토회에 와서 많이 배우고 스님의 말씀을 제 삶에 새겨두고 살아갑니다.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이효정 님의 얼굴이 봄꽃처럼 환했습니다. 정토회 와서 생활의 변화가 가장 컸고 감사하다는 단어가 인터뷰 내내 함께 했습니다. 특히 자녀가 한둘인 시대 아들만 제사 지내던 시대와 이제 작별을 고할 날이 성큼 다가온 이때 새로운 제례문화를 소개해 주셔서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글_김화숙 희망리포터(대구정토회 대구법당)
편집_박정미(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