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임유경 님은 세부정토회의 터줏대감,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유인즉슨 세부라는 지역 특성상 자녀들의 교육이나 직장 문제 등으로 잠시 머무르다 가는 분들이 많아 세부정토회 또한 도반들의 변화가 많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세부에 온 지 8년, 이제 외기러기 가족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원치 않은 타향살이

유년 시절 무엇이든 바라면 해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장녀로 커왔기에 어려움이란 제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이른 나이에 남편을 만나 결혼한 터라 몸만 어른이었지 정신적으론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혼한 이듬해 남편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365일, 1년에 한 두 번 심한 감기몸살을 앓는 날 외엔 남편은 집에서 쉬는 날이 없었고, 한두 명씩 늘어나는 직원들과 함께 우리 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저는 당연한 일인 듯 불평 없이 집과 회사 일을 도왔습니다. 앞만 보고 전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7~8년이 지났을 즈음, 남편은 해보지 않은 일을 하겠다며 덥석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고 사업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 우리 가족은 갑자기 힘든 시간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한국 일은 본인이 잘 해결할 테니 필리핀 세부에 가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공부시켜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했습니다. 저는 단박에 거절했습니다. 아이들 또한 반대했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남편 곁에서 지금껏 불평 없이 호흡 맞춰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만류했는데도 기어코 새 사업에 뛰어들더니 나와 아이들을 여기까지 내모는구나 하는 생각이 매일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중3 큰딸, 6학년 둘째, 4학년 막내와 함께 타향살이에 전혀 준비 안 된 엄마가 필리핀 세부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난관투성이였습니다. 언어부터 배워야 하는 시기에 입시를 같이 시작해야 했던 큰딸은 난폭해지며 원형탈모에, 친구들과도 잦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말수가 적고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던 둘째는 더욱 의기소침해졌으며, 막내는 거의 하루 걸러 두통약과 정로환을 달고 살았습니다. 3-4개월 간격으로 남편이 세부에 오면 왜 내가 아이들과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항상 같은 내용으로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야 했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혼란한 마음에 괴로운 나날은 계속되었습니다.

부처님, 제가 왜 여기에 있나요?

세부에는 학교 급식이 없어 세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새벽에 눈을 뜨면 늘 부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불교 집안에서 성장한 터라 매일 어떤 형식도 없이, 그냥 중얼중얼 부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 기도의 끝은 ‘왜? 대체 내가 여기에 왜 ?’ 였습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작은 방에, 내일은 더 작은 방에 가두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고 혼란스러웠고 불만으로만 가득 찬 생활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평소에 궁금해하던 내용의 질문을 스님께 묻는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뭐지!’ 스님의 답에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그렇게 스님의 즉문즉설을 수없이 찾아 듣기 시작하면서 내가 여태껏 몰랐던 신세계를 만난 듯싶었습니다. 아직 그 안에 내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조금씩 다른 이들의 괴로움 속에서 나를 보게 되고 스님의 말씀을 위로 삼아 시간 날 때마다 영상을 찾아보면서 점차 세부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 소개로 전 총무 소임을 맡았던 김화진 님을 만나게 되었고, 불교대학을 개설한다는 얘기에 선뜻 1기 불교대학생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계속 중얼중얼 부처님께 ‘왜? 제가 왜 여기에 있나요?’ 하고 질문을 던지니 ‘응답’을 해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4기 불교대학 졸업수련: 뒷줄 맨 오른쪽에 임유경 님▲ 제4기 불교대학 졸업수련: 뒷줄 맨 오른쪽에 임유경 님

새벽을 여는 불빛처럼 고요하고 은은하게, 행복을 열어가는 효명화입니다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그 안에 불교대학, 경전반을 졸업하고 스님께 '효명화'라는 법명을 수계 받아 정토행자로서 한 생각을 바꾸며 살아가니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앞에 나서는 것은 싫지만 회계 소임을 맡으며 스님의 해외 강연 중 두 번의 세부 강연을 치렀습니다. 처음 3명으로 시작했던 열린법회가 지금은 10~15명의 도반이 함께 하는 법회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 스님 해외 순례 세부 강연: 가운뎃줄 맨 오른쪽에 임유경 님▲ 2017년 스님 해외 순례 세부 강연: 가운뎃줄 맨 오른쪽에 임유경 님

법회 후 마음 나누기를 할 때마다 많이 달라진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남편은 항상 내가 원하는 답을 줘야 하고, 아이들은 내가 그린 그림처럼 커야 하고 나는 항상 남들에게 좋게 보여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순임을 알았습니다. 밖으로만 향해 있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고 나니, 기도 마무리에 항상 붙던 ‘왜’가 ‘감사합니다’로 바뀌었습니다.
지저분한 거리, 더위에 벌거벗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불평보다는 그들보다 나은 조건으로 태어나 생활하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항상 ‘잘해야 해.. 또 잘해야 해’ 하고 채찍질만 할 줄 알던 제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 보니 잘 하지 못 해도 우리 아이들 자체가 제게 가장 큰 보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기 서로 다름을 알고 나니 그 누구에게도 틀리다는 잣대를 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남편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제가 가장 이기적이었습니다. 요즘엔 멀리 떨어져 혼자 생활하며 대학을 다니는 큰딸에게 자주 “사랑해”, “고마워”, “그동안 엄마가 잘못했어”라고 뜬금없이 문자를 보냅니다. 큰딸은 그럴 때마다 “다 알아 엄마, 나도 고마워”라고 합니다. 입시를 끝낸 둘째는 매일 저녁 2~3시간씩 자기랑 TV 시청을 해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라며 들러붙어 귀찮을 정도로 쫑알거립니다. 시크한 막내아들은 야식을 다 먹을 때까지 식탁에 같이 앉아 있으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브리핑합니다.

효명화, 새벽을 여는 불빛처럼 그렇게 고요하게 행복한 엄마로 제 자리에서 주변을 밝히니 가정이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행복이 눈앞에 있음을 모르고 자꾸 그 너머에 무언가 더 나은 행복을 추구했던 어리석은 자신을 깨닫게 되니 그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빈 그릇 운동 실천하기: 왼쪽 첫 번째에 임유경 님▲ 빈 그릇 운동 실천하기: 왼쪽 첫 번째에 임유경 님

마음이 활짝 열리니 감사가 절로 피어납니다

지난 세월 돌아보니 인생은 선택과 책임의 반복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순간은 깨닫지 못했지만, 시간이 흘러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가 내린 선택이건, 타인이 내린 선택이건, 후회도 하면서 책임을 지어가며 진짜 엄마, 어른으로 커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계획보다 더 길었던 8년 세부 생활을 마치고 귀국합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곳도 가보자는 남편에게, “네” 하고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동안 저의 짜증과 불만과 불안을 들으며 혼자 헤쳐 나갔을 그 어려운 시간을 잘 지켜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겠습니다. 스님을 만나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알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일체유심조, 괴로움도 행복도 모두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모든 일상이 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하루해를 맞이하며 중얼거립니다. 부처님 제자됨에 감사합니다.

임유경 님의 귀국 파티가 조촐하게 열린 날, 함께한 도반들은 모두 임유경 님의 행복한 미소와 웃음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둥지를 틀고 행복한 수행자로 살아가게 될 임유경 님의 귀국을 세부정토회원 모두 축하드립니다.

글_임유경 (세부법회)
정리_이채인 희망리포터 (세부법회)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