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늘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며 성실하고 열심인 학생이 있습니다. 그 모범생이 바로 대구법당에 있습니다. 불안해하며 무표정하던 첫 모습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지금은 당당하고 밝아진 박은희 님인데요. 불교대학을 거쳐 경전반까지 한결같이 우등생의 면모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다는 박은희 님을 만나러 갑니다.

2018 봄불교대학 남산순례 봉사자로 두 손 번쩍들고▲ 2018 봄불교대학 남산순례 봉사자로 두 손 번쩍들고

행복해지고 싶었어요.

Q 정토회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2013년 힐링캠프에서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있으면서도 노력하지 않고 생각으로만 성을 쌓기도 합니다. 복은 손톱만큼도 짓지 않으면서 복 받기만을 바라죠"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가슴에 콕 박히면서 공감이 갔어요. 한시간 남짓한 방송을 웃고 울며 때론 손뼉 치면서 시청했습니다. 얼마 후 법륜스님의 희망편지를 카카오스토리로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2015년 겨울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다 불교대학에 오세요.” 라는 불교 대학 모집 문구에 이끌리듯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를 기억해 보면 즐겁긴 했었지만, 마음속엔 늘 허함과 미움, 원망과 같은 독소가 온 가슴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요. 남들과 어울리는 동안은 즐거웠지만, 집에 오면 허전함이나 해결하지 않은 답답함으로 행복하지 않았었죠. 그런데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오라는 문구가 탁 들어왔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첫날 나누기할 때 '행복해지고 싶어서 왔다'고 했었습니다.

문경새재 활동가 나들이에서 박은희 님 ▲ 문경새재 활동가 나들이에서 박은희 님

Q 행복을 찾아 시작한 불교대학 공부는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아버지로부터 딸이라고 심한 차별을 받고 컸습니다. 아버지의 성정은 불같은 분이셨고, 할머니는 엄마와 아버지 사이를 늘 이간질해서 두 분이 웃는 꼴을 못 봐 넘겼습니다. 집안은 늘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던 사춘기에는 방황도 많이 했었어요. 결혼 후 남편과 다툼 있던 날 겁에 질려 있던 딸아이의 눈을 보니 머릿속에서 띵하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제가 자랄 때 부모님의 다툼으로 겁에 질리거나 불안함이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는 불안감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아이들 앞에서만은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겠다고 맹세했었어요. 그런데 부모님과 똑같이 하는 저 자신을 보며, 그날 이후 자책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 이후 신랑과 말다툼이나 언쟁이 있을 것 같으면 말을 하지 않고 상대도 하지 않았어요. 나의 짜증섞인 부정적인 성격과 신랑의 불같은 버럭 성격이 부딪치니 늘 시끄러웠어요.

그러던 중 불교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낯을 가리는 성격이어서 첫 날은 서먹하고 어색해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나왔었죠. 덕분에 입학식 사진에 제가 없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초반에는 수업 빠지는 날도 많았어요.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어요. 제가 여태껏 어디 가서 우리 아이의 장애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장애 엄마들의 자존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동정받기도 싫고 또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싫었나 봅니다. 그런데 법당에서는 당시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런 말들이 술술 나온 것 같아요. 저도 약간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편안해지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산순례 후 마음도 열리고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되다.

특강인 남산순례 가기 전 남편과 크게 다퉈서 이혼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한편으로 만사가 귀찮아서 싫은 마음과 다른 한편으론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큰마음 먹고 가게 되었어요. 남산순례 동안 여러 도반이 많이 이끌어주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님을 가까이서 뵙고 함께 하는 동안 무겁던 내 마음도 많이 열리고 한결 가벼워 졌어요. 그 이후 게으른 업식이 있는 제가 자신도 놀랄 만큼 성실히 공부하고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빛나는 졸업장과 개근상을 동시에!▲ 빛나는 졸업장과 개근상을 동시에!

Q 동기들 중 누구보다 성실히 아침수행 하고 천일결사 입재식 참여도도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수행맛보기는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했었습니다. 처음 천일결사 입재식 때 108배를 매일 해야 하는 걸 미리 알았다면 안 갔을 것 같습니다. “백일 하면 내 꼬라지를 알고 안 죽었으면 매일 한 번만 해라”는 말씀이 신선하게 들려서 시작하게 되었죠. 천일결사 처음 시작할 때 힘든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고 백일도 못 하겠냐 싶은 마음으로 계속해 나갔습니다. 화가 나면 마음속으로 ‘너 왜 화나니?’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어요. 내가 옳다는 마음이 보였어요. 그럴 때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외며 관점을 항상 내게만 적용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수행의 기쁨, 행복의 동력

백일기도가 끝날 쯤 조금씩 보이는 제 실체가 너무 한심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짜증, 불평, 불만, 부정적인 사고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다툼이 있을 때 말을 안 하고 '온전히 내가 참아서 가정이 유지되었다'는 착각도 하고 있었었죠.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게으름 등 내 꼬라지를 알고 나니 신랑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이 북받쳐 엎드려 절하며 신랑에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모든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집안일도 기꺼이 즐겁게 했어요. 신랑이나 아이들에게도 신경질 내지 않고, 잔소리 하지 않고 웃으며 대하니 신랑이 "당신 얼굴이 밝아졌다", "예뻐졌다"는 둥 칭찬을 많이 해주었어요. 오랜 병원생활로 까칠했던 아들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엄마가 좋다고 말해줍니다. 주어지는 일은 긍정적으로 “예” 하며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생각이 달라지니 불교 공부도 재미있고 jts 거리모금 봉사도 부끄럽거나 어색함 없이 열심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절에 다니며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하고 빌면 '언젠가는 될 거야! 언젠가는 홍시가 내 손에 떨어질 거야!' 하고 바라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내 복은 내가 노력해서 받겠다는 현인의 길로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어요. 수행의 기쁨을 몸소 느끼게 되니 백일만 하고 절대 더 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열심히 수행하게 되더라고요. 그 후론 스님 말씀처럼 낙관도 낙담도 하지 않고 그냥 했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 도반 수행 사례담이 끝나고 도반과 함께 ▲ 선배 도반 수행 사례담이 끝나고 도반과 함께

Q 절 수행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깨치는 과정이 어땠는지요?

저 같은 경우는 3박자가 다 맞았던 거 같아요. 즉문즉설도 좋았고, 아침에 수행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수행 동안 마음의 변화 등을 진솔하게 나누는 도반들과의 시간도 의미 있고 중요했던 거 같습니다. 스님 말씀 중에 "죽어라 수행만 하고 묻지 않는 것도 올바른 수행이라 할 수 없고 또 열심히 듣고 물으면서도 몸 움직여 수행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올바른 수행이 아니다" 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적절히 공부하고 꾸준한 수행이 병행되어야만 올바른 체득이 되어서 수행에 있어 발전이 있다"는 말씀이 와 닿았어요 .힘든 과정이었지만 지금까지 즐겁게 할 수 있도록 격려와 용기를 주며 함께하는 도반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도반들 한분 한분이 저에겐 소중하며 또 다른 스승님이셨어요.

두북 봉사 후 맨 중앙에 박은희 님▲ 두북 봉사 후 맨 중앙에 박은희 님

Q 현재 맡고 계신 소임은 무엇이고 정토회의 봉사 활동하시면서 어려운 점들이나 보람 있는 일들이 있다면요?

제가 아침에 장애아이 등교 시켜 주는 일을 하는지라 법당에 조금 일찍 옵니다. 그래선지 처음에 영상봉사 제의로 시작하였습니다. 사실은 제가 대인공포증이 약간 있어 나서면 긴장하고 덜덜 떨고 식은땀이 나곤 합니다. 처음엔 못한다고 거절했지만 하다 보니 책임감도 생기고 보람도 느껴졌어요. 지금은 포살법회 담당, 화요불교대 영상담당, 수행법회 안내봉사, 천일결사 모둠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봉사라는 생각도 없이 그냥 제가 할 일이라는 마음으로 했던 거 같습니다.

봉사를 통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중

봉사자체가 힘들기 보다는 개인 생활과 시간을 조율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여건상 하고 싶은 활동을 맘껏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수행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면서 나를 알아가고 상대가 나와 다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이해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끄달리지 않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불법의 위대함을 느끼며, 그때그때 듣는 법문들이 어찌 그리 항상 제 상황에 맞는 말씀인지 감탄할 때가 많았어요. 불법은 지식이나 윤리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등불임을 알게 해주었어요.

JTS거리모금도 수행과정, 모금함들고 있는 박은희 님 ▲ JTS거리모금도 수행과정, 모금함들고 있는 박은희 님

Q 개인적인 수행과제나 앞으로의 활동계획도 듣고 싶습니다.

수행과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겸손을 행하는 사람이 될 것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살면서 마음이 이 만큼 편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수행하고 싶습니다.

잘하려는 마음 내려놓고 감사와 겸손함을 과제로

아이가 아파 사회적, 물질적으로 도움받을 때가 많았어요. 항상 봉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고 혼자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정토회에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봉사 활동이 많이 있는걸 알고 내심 반가웠습니다. 다른 사찰과 달리 수행 보시 봉사를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는 방식도 참 좋았고요. 새로운 소임을 할 때는 아직도 긴장하고 두려운 마음이 올라오지만 잘하려는 마음 내려놓고 그냥 주어지는 대로 감사히 즐겁게 하고 싶습니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아 불교대학의 문을 용감히 두드리게 되었다는 박은희 님은 그 파랑새를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자신 마음에서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름지기 수행자는 마음에 걸림이 없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 행복한 수행자가 행하는 보시와 봉사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이기에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사랑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따뜻한 도반이 제 동기라 더욱 흐뭇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글_김영희 희망리포터(대구정토회 대구법당)
편집_박정미(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