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구촌은 그야말로 폭염의 도가니입니다. 무덥던 한여름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저녁 시간, 울산정토회 대표이면서 또한 상임 대의원 자원활동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교중 님과 울산정토회 사회활동 팀장을 맡고 있는 한선화 님을 시원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두 분은 부부 도반으로 정토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데요, 리포터와도 인연이 있는 사이라 두 분과의 만남이 더욱 편안했습니다. 그동안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인터뷰 내내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부가 함께 가꾸는 황혼의 행복 이야기, 여러분도 함께 들어보세요.

미소가 닮은 부부의 모습(남편 권교중 님과 아내 한선화 님)
▲ 미소가 닮은 부부의 모습(남편 권교중 님과 아내 한선화 님)

Q. 정토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한선화 님 : 2009년 봄쯤 한 방송 프로그램에 법륜스님이 나와서 법문을 하시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그 무렵 그동안 다니던 절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마침 이사를 하게 되면서 울산정토회가 무거동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초파일 법회에 남편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초파일 법회가 다른 절과는 다르게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경건하고 여법하게 진행되는 것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날 귀갓길에 《월간정토》와 《JTS》 한 권씩을 받아왔습니다. 소식지를 읽으며 정토회에서 여러 사회운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JTS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죠.

초파일 이후 동네에서 수행법회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러 갔다가 불교대학 권유를 받았죠. 다음 해 봄불교대학에 입학해서 6월에 <깨달음의장>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은 2주 후에 <깨달음의장>을 다녀왔고 가을불교대학 저녁반에 입학하여 불교대학은 정근, 경전반은 개근을 하였습니다. 남편과 저는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경험하며 수행자의 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Q. 수행을 하면서 좋아진 점은 무엇인가요?

권교중 님 : 6-9차 천일결사입재를 시작으로 매일 새벽 5시에 기도하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매일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공동 투자한 실내골프 연습장과 사범을 두고 운영하던 태권도장이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 이유가 동업자와 사범에게 있다고 생각한 저는 나날이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커져갔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약 40여 일이 지날 무렵 매일 독송하던 삼귀의 중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이 문구에 그만 오열을 토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구나! 모든 것은 내가 저지른 일인데 내가 누굴 원망하고 미워하며 괴로워하고 있는가!’ 실컷 울고 한 생각 바꾸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눈앞에 가리워진 뿌연 안개가 걷히듯 밝아짐을 느꼈습니다. 어차피 사업은 안될 시기에 도달했음을 알았기에 정리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러나 투자액 손실을 어떻게 감수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이대로 괴로워 하는 것보다는 손절매가 낫겠다 싶어 손해를 보고 매도 할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때 '불량한 씨앗은 건실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깨닫고 나니 나와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한선화 님 : 저는 수행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겨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에 감사합니다. 정토회에 와서 수행을 하기 전에는 남편이 월급을 못 받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 너무나 마음 졸이고 근심 걱정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경제 사정은 더 안 좋아도 세간의 사람들처럼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쓰는 수행자의 삶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제 삶에도 배어 가는 것 같습니다.

JTS 모금활동 중인 권교중 님 / 사회활동팀 도반들과 함께 한선화 님(뒷줄 가운데)
▲ JTS 모금활동 중인 권교중 님 / 사회활동팀 도반들과 함께 한선화 님(뒷줄 가운데)

Q.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권교중 님 : 천일결사 8차년이 시작되면서 총무님이 저에게 저녁 팀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여 처음엔 사양했지만 결국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활동가는 여성들이고 처음 해 보는 소임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바깥에 나도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노모의 눈총도 너무 따가웠습니다. 또한 다른 활동가와의 충돌로 심한 갈등을 겪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업이 안 되어 큰돈을 손해 볼 때보다 몇 배 더 힘들어 저녁 팀장 소임을 내려놓으려 할 때 총무님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거사님, 마침 정일사 기간이니 이번 기회에 자신을 살펴보는 계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라며 보내온 문자는 몇 번을 곱씹어 봐도 결국 내가 잘못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내일 당장 소임을 내려놓고 정토회도 기도도 그만두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다음날 새벽 3시에 눈을 뜨고 기도방으로 향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건 뭐지?’ 하는 의구심으로 나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렇다 할 그 무엇도 없음을 알아차리고 나니 괴롭던 마음도 사라지고 8차년도 저녁 팀장 소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를 잡아준 김명희 전 총무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9차년은 지역정토회 대의원과 상임 대의원 소임을 받았는데 뜻하지 않게 울산 대표 소임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잦은 회의참석과 문서 검토에 부담을 느꼈지만, 절반의 임기를 넘기면서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처에서 활동하는 도반들, 특히 울산법당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는 총무님과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상임위원회 자원활동분과 회의 중인 권교중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상임위원회 자원활동분과 회의 중인 권교중 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한선화 님 : 경전반을 다니면서 정토회 상황은 아무것도 모른 채 7차년도 사회활동 팀장을 맡게 되었는데, 잘하고 싶은 의욕은 크고 일은 할 줄 몰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계획 없이 살던 내가 계획을 세우며 기획안을 짜는 것도 힘들었고 매일 법당에 나가며 주어진 일을 따라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법당에서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되어 꼼짝도 할 수가 없어 남편을 걱정하게 만들었습니다.
7차년에 누적된 피로감이 8차년에 들어오면서 병이 들어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8차년에 들어와서 팀장 소임을 내려놓고 아픈 몸을 치료하면서 통일담당 소임을 다시 맡아 새터민들과의 관계를 놓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9차년에 들어오면서 다시 사회활동 팀장으로 도반들과 함께 활동을 하게 된 것은 남편과 시어머님의 도움 덕분인 줄 알면서도 가족에게는 가끔 고집도 부립니다. 아직은 부족한 저이지만 가족들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광화문에서 평화를 외치다 – 아내 한선화 님과 남편 권교중 님▲ 광화문에서 평화를 외치다 – 아내 한선화 님과 남편 권교중 님

Q. 부부도반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으신가요?

권교중 님 : 그동안 경제적 지원도 부실하고 살갑게 대해 주지도 못하는 남편이었는데, 4남매의 맏며느리 자리를 지금까지 불평 없이 지켜준 고생한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이제는 부디 건강하기를 바라며 여유롭게 활동하는 변화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느덧 60대 중반인 내가 지난 일들을 살펴보면, 능력도 준비도 안 된 채 욕심만 앞세워 명예와 돈을 좇는 어리석음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을 정토회와의 인연으로 일찍 끝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삶은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스승님의 말씀을 새기며 수행자로서 남은 인생을 즐기고 싶습니다.

한선화 님 : 정토회 사회활동 팀장으로 아직도 산하 법당까지 잘 챙겨가진 못하지만 남은 기간 계속 역량을 키워가며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9차년을 잘 마치고 남편과 함께 정토행자로서 이웃과 사회에 회향하는 수행자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강릉나들이 – 아내 한선화 님과 남편 권교중 님▲ 강릉나들이 – 아내 한선화 님과 남편 권교중 님

아직 한낮의 기온은 높은 여름이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듯 우리의 삶 역시 항상 젊을 것 같아도 나이가 들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황혼이 오겠지요.
지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어느덧 두 분의 모습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몸은 변했지만, 수행자로서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유롭고 행복할 것입니다. 저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앞서가는 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한 수행자가 되어있겠지요.

우리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글_신인숙 희망리포터(울산정토회 울산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