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천법당의 보배, 웃는 모습이 동글동글 귀여운 맏언니 같은 최명숙 님. 최명숙 님은 주간 수행법회 담당, 경전반 학생이면서 부담당, 그리고 옷가게 사장님과, 엄마, 아내로 일인 다역을 해내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준 최명숙 님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온화한 미소로 수행법회 여는 최명숙 님 ▲ 온화한 미소로 수행법회 여는 최명숙 님

관심없이 인연맺은 정토회

10여 년 전, 정토회를 다니던 친언니는 정토회가 얼마나 좋았던지 저에게 자꾸 가자고 권하였습니다. 법륜스님의 강연을 들으러 여기저기 몇 번 따라 다녔으나 그때만 해도 제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5년 전 대구법당을 다니던 언니가 생일 선물이라며 제가 사는 영천의 법당에 불교대학을 끊어주었습니다. 저는 입학 하고 싶지 않았으나 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 다녀보기로 했습니다.

막상 입학하고 보니 즉문즉설 같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불교대학 수업은 생각과 달리 지루하고 재미없어 졸기도 하였습니다. 수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여태껏 이치도 모르고 그냥저냥 절에 다니고 있었던 저는 부처님의 탄생을 시작으로 불교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도반들과의 관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우리 도반들이 아니었으면 불교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반 일곱 명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났지만 서로 소통이 참 잘되었습니다. 평소 나누는 이야기가 모두 마음 나누기가 되었고 처져있으면 힘이 되어 서로 이끌어 주며 천일결사도 함께 했습니다.

9-6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아래)▲ 9-6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도반들과 함께(오른쪽 아래)

단지 불교대학 졸업을 위해 갔던 <깨달음의장>, 큰 평안을 얻다.

당시 불교대학은 <깨달음의장>을 다녀와야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깨달음의장>이 별로 절실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선 보증이 잘못되어 제가 가진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없어지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이렇게 만든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저는 사람 꼴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협심증이라는 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모든 것을 다 놓고 정신없이 살고 있던 어느 날 중학생이었던 큰딸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에게 잘 안 해줘도 돼.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 나중에 우리가 커서 엄마랑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을 때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 건강만 좀 챙겨줬으면 좋겠어.”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조차 안 보였던 저에게 아이들이 보였고 여기서 제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이 마음에 켜켜이 쌓였습니다.

수행법회 나누기는 가볍게 (오른쪽에서 두 번째)▲ 수행법회 나누기는 가볍게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불교대학 졸업을 위해 <깨달음의장>에 갔을 때는 그런 때였습니다.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도반들과 함께 졸업하기 위해 2014년 1월 <깨달음의장>을 다녀왔습니다.
도대체 내 속을 알 수 없던 시간이 지나니, 이 모든 원망의 근원이 남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의장>을 마치던 날은 지금 생각해도 행복합니다. 저를 데리러 문경까지 온 남편이 다시 보였습니다. 나는 다가가서 남편을 안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미안해. 이제는 이렇게 괴롭게 살지 말자”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남은 힘든 일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그 전의 상황으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고 마음에 차지 않는 상황에 부딪히면 불편한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그러나 불편한 마음은 예전의 그 마음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불편해하는 마음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책임감으로 얻은 ’내 꼬락서니 바로 보기‘

2014년 2월에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3월에 경전반을 입학했으나 일이 더 바빠져서 결국 과락을 하였습니다. 수행법회도 미루며 잘 가지 않았습니다. 4년이 지난 올해 수행법회 담당을 맡으며 경전반을 다시 수강하고 있습니다. 수행법회를 열심히 챙기다 보니 경전반도 거의 결석 없이 출석하고 있습니다. 담당이라는 소임이 주어지니 몸이 아파도 나오는 저를 보며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책임감으로 수행법회 담당과 경전반 부담당을 하면서 동시에 학생으로서 수업을 듣다 보니 내 꼬락서니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말을 들어줄 줄을 모르고 내 말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네에서 숙녀복 가게를 하던 저는 가게로 오는 동네 손님들이 편안하도록 계속해서 얘기하는 습관이 어느새 몸에 배여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용하고 가만히 침묵하는 상황을 견디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수행법회를 열며 열심히 법문을 듣고 있던 어느 날, 귀를 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조금씩 들어주고 있는 제가 보였습니다. “엄마 좀 조용히 이야기해” 하던 아이들도 내 목소리 톤이 낮아지고 대화가 조용해지니 더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목소리가 크다고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더 잘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중심은 “나”, 굳건해지는 우리 가족

점점 내 안의 중심이 서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중심이 잡히니 가족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이제까지 어려운 일을 같이 겪으며 우리 가정은 전보다 더 화목해졌습니다. “여보, 당신 운전사지? 운전하는 당신과 조수석에 앉은 내가 뒤에 앉은 승객인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 위해서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우리는 가다가 비탈길 같이 험한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자.“ 하며 서로 다독이고 격려해 줍니다. 이제는 어떤 어려운 일이 와도 걱정없습니다. 저에게는 가족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중심이 먼저 서있어야 가족에게도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즘 들쑥날쑥 했던 천일결사 기도를 다시 챙기고 있습니다. 기도해야한다는 중압감이 보다 가벼워지면서 빠지는 날 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소임을 맡고 보니 책임감이 생기고 그 책임감으로 법당에 나오지만 사실은 제가 더 좋아짐을 느낍니다.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즐겁게 하니 도반들과 소통도 잘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오면 오는 대로 가볍게 해보는 인생을 살겠습니다.

2018년 정초 기도 순회 후 모두 함께(아랫줄 오른쪽 두번째 최명숙님)▲ 2018년 정초 기도 순회 후 모두 함께(아랫줄 오른쪽 두번째 최명숙님)

인터뷰를 마치며

“엄마, 그때 우리 안 버리고 같이 있어 줘서 고마워”하고 말한다는 너무 예쁜 딸들과 언제나 착하고 다정한 남편과 애정 넘치게 지내고 있는 최명숙 님. 인터뷰를 마치니 굳건한 엄마의 마음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명숙 님을 보며 저도 내 중심이 굳건해져서 우리 가족에게 좋은 에너지를 발산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진해야겠다고 크게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글_정수옥 희망리포터(경주정토회 영천법당)
편집_박정미(대구경북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