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밴쿠버에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던 지난 9월 20일 목요일 오후, 밴쿠버 국제 공항의 한쪽 구석에선 밴쿠버 정토회 활동가들이 모여 춤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공항 내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는 청소차를 밀고 다가와 활동가들에게 한류스타냐고 묻는 사상 초유의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아주머니 복 많이 받으세요~♡

LA행자대회에서 선보일 노래 한마당을 준비 중인 벤쿠버 도반들▲ LA행자대회에서 선보일 노래 한마당을 준비 중인 벤쿠버 도반들

춤바람이 난 활동가들은 다름 아닌 LA 행자대회에서 선보일 노래 한마당을 준비하는 김상진, 최내영, 김보경, 김소희, 이혜성, 박은선 님입니다. 총 여섯 명 중 네 명에게는 첫 행자대회여서 모두 부푼 가슴을 안고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도 연습 중인 도반들, 다음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고 신이 났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도 연습 중인 도반들, 다음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고 신이 났습니다.

공항에서 바로 LA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열리는 후기 성도 교회로 이동했습니다. LA답게 운동장만 한 교회당 안이 교민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살아 숨 쉬는 현장감에 화면으로 보던 즉문즉설과는 역시나 다른 느낌입니다. 이 좋은 법문을 행자대회 내내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습니다.

LA법당으로 이동해 준비해놓은 김밥을 먹고 열정의 춤 연습을 마친 뒤 자정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달콤한 꿀잠도 잠시, 새벽 4시 반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싹~ 일어났습니다. 불전을 앞에 두고 대중이 함께하니 매일 집에서 혼자 하던 아침기도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고 또한 이 많은 행자가 매일 나와 똑같은 기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정토행자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LA 법당에서 준비해주신 따끈한 떡을 하나씩 먹고 행자대회가 열리는 LA쿠야마 벨리 정토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운전 봉사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이동하는 차 안에서 들려주신 LA정토회 이하나 님의 수행담은 2시간이 넘도록 펼쳐지는 사막의 건조한 풍경으로 지루했을 여정이 짧게 느껴질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수련원에 도착하여 바로 시작된 행자대회의 첫 순서로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 이후, 스님께 직접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한 뒤 입재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엊저녁 느낀 현장감과는 차원이 다른, 활동가들이 정확한 수행자적 관점을 잡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신 법문이었기에 더욱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일정 내내 입재법문과 회향법문, 두 번의 정리 말씀과 세 번의 즉문즉설까지 총 일곱 번의 법문이 있어 행자대회 사이사이 잠깐씩 뒤로 물러났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첫날 밤, 대망의 노래 한마당 시간, 두둥~!!

박진영의 노래 ‘허니’를 개사한 곡에 맞춰 춤을 추는데……이럴 수가!!! 음원 파일이 저장된 디바이스의 문제로 음악을 스피커로 연결하여 틀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배경음악이 없는 조용한 가운데 노래담당 도반의 목소리에 의지해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현란한 색색의 가발, 그리고 뜨거웠던 간밤의 연습에도 점점 엉켜가는 춤사위에 애가 탔지만, 그 모습에조차 환호해 주는 행자들 덕분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 진땀 나던 노래 한마당은 끝이 났습니다.

배경음악 없이 추는 춤사위에 진땀 나던 노래 한마당▲ 배경음악 없이 추는 춤사위에 진땀 나던 노래 한마당

이 외에도 법당별 현황과 소개, JTS 소개, 새로 개편된 불교대학 맛보기, 주제별 모둠 토론, 법당별 일감 나누기 관련 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더이상 알차기 힘든 2박 3일을 촘촘히 수 놓았습니다. 그 중 자원해서 나와 주제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3분 스피치 시간에는 밴쿠버의 김상진 님이 나와서 불법을 만나 자유로워진 삶의 변화와 인도성지순례를 다녀온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분은 김상진 님의 수행담이 선주법사님의 JTS이야기보다 감동이었다며 선주법사님께 죄송하다는 소감문을 발표해서 큰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행자 대회에 참석한 밴쿠버 도반들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가장 크게 얻은 가르침은 바로 ‘수행자로서의 관점’입니다. 늘 그렇듯 스님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예를 들어 쉽게 말씀 해주셔서 짧다면 짧은 2박 3일의 기간 동안 정토회 활동을 하며 무엇을 놓치고 혼동하였는지 명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밴쿠버 활동가들의 LA행자대회 나누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최내영 님: 행자대회를 하면서 모든 여정이 감동이었지만 저에겐 특히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온 인도 활동가들의 JTS기금마련 나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모금을 끝내고 “한국은 부자 나라이니 도와줄 만 해서 도와주겠지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수백 번 머리를 조아려 1000원, 2000원 모금 활동을 하고 목소리 높여 고맙습니다를 외치는 줄 몰랐습니다. 평소 다정한 쁘리앙카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이 음식을 조금이라도 깨끗이 먹지 않으면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어떤 돈으로 음식을 먹는 줄 아느냐? 한 톨도 남기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와서 보고 알았습니다. 한국의 행자님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인도로 돌아가 잘 쓰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요.
법당에서 다양한 JTS활동을 하며 “취지는 좋으나 효율성이 떨어진다. 법당 사람들 주머니에서 보시금을 내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수행자로서 스스로 보시하는 삶을 실천하고, 그 기회를 법당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며 모은 100불, 200불의 돈이 누군가의 간절한 삶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인도 활동가의 나누기는 마치 제게 직접 하는 말처럼 용기를 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응원의 말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입니다. 아는 것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발로 행하며 정토 세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빙그레 걸어가고자 합니다.

박은선 님: <스님의하루> 총괄을 맡아, 모둠 활동을 많이 빠지게 된 아쉬움에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아직도 받으려고만 하는 욕심인 줄 알아차리고 다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다들 처음 맡은 스님의 하루 소임에 적극적으로 임해준 리포터들, 3일 내내 사진을 맡아 준 사진 담당자들, 녹음기와 질문지를 빠뜨리지 않고 챙겨준 도반들, 기꺼이 녹취를 맡아준 저 멀리 동부 지역의 김윤진, 박승희 님, 바로 옆에서 글을 다듬어 준 해사국의 도반님, 그리고 무엇보다 따스한 눈으로 격려의 말씀을 쉼 없이 주셨던 행자대회 참석자 모든 분께 <스님의하루> 팀 전체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도반은 수행의 전부라 하셨던 부처님 말씀을 되새깁니다. 함께한 모든 도반께 감사합니다.

김상진 님: 처음으로 행자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 수련은 불교대학 소임을 맡고 있는 제게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실제 일을 맡아 하는 해외 행자들의 고뇌와 노력, 문제점 등을 들으니 ‘나는 불대 총담당자가 밥상을 차려놓으면 거기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도와주세요’ 했던 사람이 ‘도와줄게’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어려움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적극적으로 불교대학 홍보를 하는데도 기대와 달리 적은 인원으로 시작하는데 대한 아쉬움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또한 스님은 “가을날 떨어진 낙엽 줍듯이 하나둘씩 천천히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경우만 봐도 열심히 살면 살수록 뜻대로 되지 않던 이 억울한 세상이 감사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바뀌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는동안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쓰이고 싶다는 마음을 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수행정진이 우선이 되어야하며 담당자의 바로 선 모습이 불교대학 학생들에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출근을 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한 많은 인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김소희 님: 50여 명이 단체로 생활해야 했던 수련원 환경은 예상 했던 대로 불편했습니다. 되는대로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자고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것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행자대회 기간만이라도 모든 일에 불만을 갖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불편했던 환경은 점점 익숙해졌고 첫날 그렇게 덥게 느껴지던 날씨도 셋째 날이 되니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환경에서 공양 바라지나 봉사로 힘들게 수고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정말 편하게 지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은 이런저런 어려움을 괴로움으로 이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히려 특급호텔에서의 휴가보다 더 즐겁고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혜성 님 (나나이모 열린법회): 저는 기도도 꾸준히 하지 못하고 정토회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라서 행자대회 가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첫날 '역시 내가 낄 자리가 아니었어. 정토법당 총무정도는 되어야 오는 자리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도반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아 나에게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시는구나, 이런 얘기들을 듣지 않았다면 내가 저렇게 똑같이 겪었겠구나' 싶었습니다. 행자대회는 수행이 잘 되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수행이 뭔지, 무엇이 바른길인지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인 것 같았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에는 실천이 안 돼 궁금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도반들의 질문을 들으니 그 질문이 저 스스로도 궁금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통해 소소하지만 늘 명확하지 않았던 점들이 하나씩 해결되며 참 가볍고 개운한 마음이었습니다. 노래 한마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저의 업식과 마음을 볼 수 있었고 두고두고 얘기할 추억이 생긴 것 같아 참 감사합니다. 제가 행자대회를 고스란히 누리도록 봉사해주신 LA도반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애써주신 도반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보경 님: 제가 처음 행자대회를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은 저를 마치 한국 대형교회의 광신도를 대하듯 했습니다. 어린아이 셋을 맡기고 4박 5일 <깨달음의장>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오랜 기다림 끝에 어렵게 남편의 동의를 얻어 가게 된 저의 첫 행자대회는 말 그대로 복음이었습니다. 저는 소임을 맡겨주시니 '예'하고 했지만 물러서는 마음이 들 때마다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법당의 봉사활동 자체가 중요한 수행이며 일과 수행의 통일이 있지 않고서는 ‘온실 속의 화초’일 뿐이라고 말씀해 주신 스님의 법문을 통해 소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수행자적 관점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스님께 속 시원히 질문할 수 있어, 또 여러 도반의 질문을 통해 귀하디 귀한 법문을 가까이 들을 수 있어 많이 행복했습니다.
달빛을 벗 삼아 둥글게 앉아 함께 노래 부르던 시간은 좀처럼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밴쿠버법당의 노래 한마당은 폭망(심하게 망했다는 뜻의 신조어)했지만 그것조차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추억입니다. 알찬 행자대회를 위해 수고하신 모든 행자님께 그리고 행자대회 기간 동안 아이셋을 돌보고 늦은 밤 공항 픽업도 마다하지 않은 남편에게 감사합니다. 법이 내게 오기까지 그 길에 계셨던 부처님과 선지식들, 스승님, 그리고 도반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마지막 날 수련원 앞마당에서. 뒷줄 왼쪽에서부터 최내영, 김소희, 박은선, 김상진, 이혜성, 김보경 님▲ 마지막 날 수련원 앞마당에서. 뒷줄 왼쪽에서부터 최내영, 김소희, 박은선, 김상진, 이혜성, 김보경 님

글을 마치며, 행자대회 마지막 날 밤의 야간 산책이 떠오릅니다.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 스님과 법사님들 그리고 70여 명의 행자들이 둥그렇게 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등불 삼아 함께 노래 부르던 장면은 이미 무의식 저 깊은 곳에 새겨졌습니다. 삼삼오오 수련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우리는 정말 행복한 수행자임을 온몸으로 말해 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빛나던 별들을 가슴에 품고 밴쿠버법당의 활동가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김보경 희망리포터 (밴쿠버법당)
편집_이진선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