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콩레이가 영남지역을 휩쓸고 간 다음 날, 두북 정토마을에 계시는 화광법사님을 만났습니다. 새벽 일찍 농사일을 하러 가신 법사님은 1톤 트럭을 몰고 운동장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방안에는 리포터 팀이 먼저 오면 먹으라고 고구마며 간식을 준비해놓으시고요.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은 수행의 길을 걸어오신 화광법사님,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두북 정토마을에서 화광법사님 ▲ 두북 정토마을에서 화광법사님

이산 저산, 이절 저절 헤매던 시절

화광법사님은 일찍이 불교와 인연이 있어 젊을 때부터 절에 가서 스님들과 차를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법사님 : 저는 이 절 저 절, 이 산 저 산 유형이에요. 한 번은 법륜스님이 ‘이 절 저 절 다닌 사람 손들어보라’ 하실 때 손을 번쩍 들었죠! 자주 어울리던 도반 다섯 명이서 해인사, 파계사 등 주변 유명한 데는 다 다녔어요. 그때는 산중불교이고 스님들 말씀도 경전 법문이었는데, 많이 들으니 아주 입만 살아서 다녔죠 뭐. 자기 마음을 봐야 하는데 그건 모르고 말이에요. 그 때 출가하고 싶어서 해인사에 갔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자식들 다 키우고 오라고. 그래서 다른 절에 같이 출가하려고 애들을 데리고 갔었더니, 또 안 된다고 그러데요.

담담하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법사님의 모습에서 생기 넘치면서도 그 내면에 절실함과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었던 법사님의 젊은 시절이 보였습니다. 그런 화광법사님과 법륜스님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법사님 : 도반들과 어울려 법문을 들으러 다니던 1988년도 어느 날에 대구 서문시장에서 최석호 법사님(現 법륜스님)이 생활법문을 한다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어요. 그때는 생활법문이라는 명칭도 생소한 때라 궁금해서 도반 다섯 명과 가보았죠. 그런데 일반 스님들과 참 다른 법문이어서, 저는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생활에 필요한 법문이라는데, 왜 이렇게 어렵게 하나 싶었죠. 그때까지 제가 듣던 법문과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같이 간 도반 한 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는데 스님이 대답을 참 상세하게 해주셨어요.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예시도 들고 풀어서 설명하면서 차근차근 답변해 주시더라고요. ‘법륜스님이 일반 스님들과 참 다르구나.’ 하는 것을 그 때 확 느꼈죠.

당시는 삐삐를 사용하던 때라 스님께 ‘대구에 오시면 꼭 공양 대접하고 싶다고’ 제 번호를 드렸어요. 후에 스님이 대구에서 법문을 끝내고 서울로 가시려고 하니 시간이 빠듯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스님 오늘은 저희 집에 묵으시지요?” 그랬죠. 스님께서 좋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제 마음이 막 불편한 거예요. 집 청소도 안 했지, 누추하지, 괜히 말했다 싶었죠. 그런데 조금 지나서 스님이 “아무래도 오늘 일이 늦게까지 있어서 보살님 집에 못 갈 거 같다”고 하시데요. 불편한 제 마음을 바로 꿰뚫어 보신 거죠.

담담하게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는 법사님의 모습 ▲ 담담하게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는 법사님의 모습

법사님 : 어느 날은, 제가 딸하고 심하게 싸우던 와중에 스님이 법사님들과 함께 집에 찾아오신 거예요. 딸하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스님과 법사님들이 한참을 가만히 서서 보고만 계셨죠. 저는 아무것도 아닌 거로, 철딱서니 없이 스님 대접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딸하고 싸웠지요. 지켜보시던 스님이 “딸한테 의지처는 못 돼주고 계속 싸우네.”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에 저는 그만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절인 배추처럼 되어버렸어요. 산중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말은 천상유수로 떠들면서 전혀 나를 못 보던 시절이었어요. 아휴 부끄럽네. 왜 나를 취재한다고 그래···

부끄럽다며 왜 왔냐고 하시는 법사님을 뵈면서 리포터 팀은 법사님의 솔직하고 구수하며 재미있는 입담과 소박한 모습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자식과 싸우는 모습은 사실 애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문득 딸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법사님 : 효녀에요, 효녀! 딸은 고등학생 수련부터 시작해서 <깨달음의장>과 인도성지순례까지 다녀왔어요. 지금은 정토회 후원회원으로 아주 잘살고 있어요.
회사에서도 칭찬받고 있고요. 딸이 어릴 때, 제가 일하러 나가면 도화지에 기와집을 그리곤 했어요. 저한테 그림을 보여주면서 “엄마, 돈 벌어서 이런 집 지어줄 거지?” 하는 거예요. 그런데 참 신기하데요. 정말로 제가 대구 동인동 가정집부터 시작해서 황금동 법당, 범어동 법당을 거쳐서 나중에는 문경 불사에 합류했거든요. 딸이 그린 기와집이 절이었던 거죠.

두북 정토마을의 전경▲ 두북 정토마을의 전경

세상의 복 밭, 정토회를 만나다

법사님 : 스님이 저에게 “딸한테 의지처가 못 돼준다” 그러셨을 때, 사실 마음에 분별이 나서 ‘다시는 저 법사님 안 봐야지’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삭발하고 법복을 딱 입고 나타나시니 마음이 출렁이더라고요. 머리를 기르고 계셨을 때는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랬는지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분별하던 그 마음은 어디 가고, 스님이 어디 어디 오너라 해서 갔더니 <깨달음의장> 6차, 또 어디 어디 오너라 해서 갔더니 <나눔의장> 1차, 또 어디 어디 오너라 해서 가면 <일체의장> 1차! 자석처럼 뭐든지 스님이 만드시는 대로 따라가게 되었어요.

그러면서도 저는 여전히 입만 살아서, 다른 도반들하고 수련할 때 남편과 싸운 이야기, 생활 이야기만 하는데 시시하데요. 그래서 말도 안 하고 있으니 같이 수련하는 도반들이 싫어하더라고요. 그런데 스님이, 제가 혼자서 수행해서 그렇다고 편을 들어 주시데요. 마음이 열려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저는 완전히 반대였죠. 그러다가 차츰차츰 물들어 간 거예요. 하다 보니까 ‘바른불교, 쉬운불교, 생활불교가 이거구나!’ 하면서. 그전에는 산중 스님들 속에만 있었으니 몰랐지요.

법륜스님이 한번은 저더러 법성행보살은 해탈하기 글렀다는 거예요. 스님들 속에만 있으면 해탈 못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서 ‘해탈을 못 하면 안 되는데, 큰일 났네. 해탈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스님 말씀을 잘 듣기 시작했어요.

법사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자그마한 체구의 고집스러운 법사님이 조금씩 정토회에 젖어 드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젊은 시절 법사님의 모습은 어쩌면 자주 넘어지고 부딪치는 지금의 우리 모습과도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장미꽃과 함께 소녀 같은 법사님의 모습▲ 장미꽃과 함께 소녀 같은 법사님의 모습

법사님 : 법당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알던, 겁 없던 때에 대구 동인동 집에 법당을 냈어요. 스님은 제 마음이 안 열렸다고 법당 내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제 고집대로 있는 돈 다 털어서 법당을 낸 거예요. 보증금 다 까먹고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나중에는 파출부를 다녔어요. 언니가 보태 주기도 했고. 그때 스님이 다른 것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무릎이 부서져라 절만 했어요. 하루에 천 배, 삼천 배를 밥 먹듯이 했지요. 그렇게 기도를 했더니 도반들이 생기고 법당이 자리를 잡더라구요. 그렇게 해서 황금동으로, 다시 범어동으로 법당을 늘리며 옮겨갔어요. 지금의 대구 법당까지 안정화 되니 스님께서 저보고 문경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여러 교육 때면 찾아가는 대구법당을 법사님의 손길로 일구어냈음을 알게 되니 새삼 법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커졌습니다.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이라는 청법가 구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법사님 : 문경에 아무도 없다고 저를 보내셨는데 정말이지 돌과 나무 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해나갈지 깜깜했어요. 그런데 지장보살님 생각이 딱 나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보니 산에 열매 있고 나물 있고 물 철철 흘러내리는데, 그대로 살아지겠다 싶더라고요. 백화암에서 생활하면서 뱀한테 늘 긁히고 독사한테 물리고 그랬어요.

고단한 산중생활 속에서 불사를 했을 법사님. 당시 문경수련원 터에는 천막 몇 개만 있었다고 하니, 지금의 정갈하고 아름다운 문경수련원으로 거듭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손길과 땀방울이 닿았을 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톱밥을 덮어쓰는 지금의 화장실조차 불편하다고 투덜대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봅니다.

트럭도 거뜬하게 운전하시는 법사님▲ 트럭도 거뜬하게 운전하시는 법사님

세상의 복 밭을 만나 이를 일구어 나가는 화광법사님의 이야기는 내일 ‘정토행자의 하루’에 이어집니다.

속기_안정미(대구경북지부)
속기_도경화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글_하상의 희망리포터(경주정토회 양덕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