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천일결사 기간에는 불교대학에서 정진, 제7차에는 전법 팀장, 제8차에는 해운대법당 총무 소임을 거쳐 현재 제9차에는 행복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김래영 님! 지난 12년간의 수행과 봉사를 통해 현재의 평온함을 얻기까지의 감동스토리, 지금 시작합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2006년 9월 말, 저는 상담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상담공부를 하며 <깨달음의장>을 다녀오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었습니다. <깨달음의장> 수련을 통해 가족들에게 화를 내며 제정신이 아닌 듯 행동하는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친정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여 몇 년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니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며 삶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저는 ‘여기 정토회에서 공부하며 답을 찾아보자’라는 생각을 했고 그리하여 상담공부를 접고, 2007년도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을 다니며 공부했던 스님의 법문과 수행은 제게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신세계였습니다. 상담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화는 갈수록 심해만 지며 괴로움으로 가득했던 저는 불교대학을 시작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기존의 가치관이 와르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어 간 것입니다.

2007년도 불교대학 졸업 사진(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래영 님)
▲ 2007년도 불교대학 졸업 사진(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래영 님)

현실에서 나를 넘어서는 것이 진정한 공부

2008년에는 경전반에 입학해서 담당 소임을 맡았고, 저에게 전법 팀장의 소임도 주어졌습니다. 소임을 맡아 일을 진행하며, 내면에서는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 이렇게 열심히 봉사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지 않고 지혜롭게 사는 길을 터득하겠나?’ 하는 의구심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 일단 3년만 열심히 해보자. 열심히 하면 뭔가는 터득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매진했습니다.

3년 후가 되자 ‘아~ 내 마음 알아차림만 하면 되는구나. 그런데 봉사하느라 나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명상으로 알아차림을 이어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고요하게 지내고 싶은 이런 제 마음과는 달리, 봉사하면서 갈등을 겪게 되었고 그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갈등 상황 속에서 일할 주제가 안 되는 것 같아 명상으로 알아차림을 이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곧, 현실에서 답을 찾고 현실에서 나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다시 마음을 굳히고 열심히 정진하던 중, 해운대 법당 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고 ‘이제는 내 마음만 보고 가보자’라고 생각하며, 또 열심히 3년을 매진했습니다. 수년간의 소임을 다하며 생각과 행동의 업식이 많이 바뀌어 있음을 느끼고 봉사 소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중(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래영 님)
▲ 불교대학 홍보 중(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래영 님)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저는 남동생 3명에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원하는 바를 쉽게 들어주셨고, 저는 남동생들에게 주로 지시와 조언을 많이 하며 성장하였습니다. 이런 가정환경이, 행동보다는 말이 먼저인 저의 업식으로 남아있었다는 것을 봉사하며 깨우쳤습니다.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말만이 아닌 말에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았던 저의 어린 시절부터의 업식으로 인해 상처받는 도반들이 있음을 봉사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업식이 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제 모습들이 인간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은, 팀장 소임을 하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 한 도반이 “니가 총무야?”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분의 한마디로 인해 ‘최선을 다한 내 진심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 후로 움직이기 힘들 만큼 몸이 아프기 시작했고 몇 번의 큰 수술도 받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한 도반의 권유로 지압 치료를 같이 가게 되었는데, 치료사에게서 “기혈이 막혔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도반의 그 말 한마디에 기혈이 막힐 정도가 되었구나. 내가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줘, 받아줘, 하는 상이 엄청난 사람이구나!’ 하고 한 번 더 제 모습을 크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

‘내가 마음을 다해 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겠거니 했던 생각, 남들이 내게 사소한 어떤 싫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나는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난 사람이구나!’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남편이든 시부모님이든 도반이든, 그들은 답답한 마음을 자유롭게 나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데, 나는 어떤 말도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가족들 간의 갈등의 원인도 열심히 사는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미워하고 원망하던 나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상대에게 화살을 돌리고 내 마음 편한 곳,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런 곳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저는 비로소 현실에서 내 모습을 보고 넘어선다는 것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미숙한 한 사람이 봉사하며 도반들을 통해 ‘함께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면서 ‘나 자신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입니다.

행복학교 활동사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래영 님)
▲ 행복학교 활동사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래영 님)

마음을 다하는 삶

작년 10월부터는 행복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행복학교에서 여러 대중을 직접 만나며 정일사에서 느꼈던 ’법사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존중해주는 느낌이 나에게도 녹아들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토회에서 나를 보는 깨우침이 없었다면, 행복학교 대중들의 아픔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직접 내 마음을 전달하는 연습을 통해 긍정적인 말 한마디로 어떻게 관계가 달라지는가를 경험하였습니다. 행복연습을 통해 달라지는 대중들의 모습을 직접 느끼니 신기하고 감동스럽습니다. 또 다른 깨달음을 주는 한분 한분이 너무 소중합니다.

요즘은 ‘원’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새벽마다 스님이 세운 원, 법사님, 도반들이 읊는 그 원을 나는 진정으로 원하고 실현해 나가고 있는가?' '내가 책임을 져 나가는 사람인가?' 머릿속에서만이 아닌, 과연 그 원을 자기화하여 실천해 나가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제가 12년 동안 정토회에서 엄청난 혜택을 얻었듯이 저도 누군가가 혜택을 받도록 마음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행복학교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래영 님)
▲ 행복학교 도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김래영 님)

글_고채인 희망리포터(해운대정토회 해운대법당)
편집_방현주(부산울산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