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법당엔 언제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언제나 나타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뽀빠이 같은 분이 계십니다. 때론 친언니같이, 때론 엄마같이 환한 미소로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박은주 님! 그분의 따뜻한 14년 수행담이자 김해법당의 산 역사를 함께 만나볼까요?

가을 단풍과 함께 박은주 님▲ 가을 단풍과 함께 박은주 님

불교대학과의 첫 인연

동래정토회 다니던 직장 동료인 안혜원 선생님이 2004년 봄 해운대정토회 개원 때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가 있으니 함께 들으러 가자고 권유해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두 달 동안 매주 화, 목 이틀 해운대정토회에서의 스님 금강경 강의를 들으니 제가 막연히 생각해왔던 불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지는 느낌이었어요. 스님 말씀 들으며 강의 때마다 환희심이 나서 ‘불교가 이렇게 쉽고 명쾌하며 과학적이었단 말인가!’ 하며 강의하시는 날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 우스운데 그 당시 저는 종교가 없었고 절하는 법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금강경 강의는 매번 너무 감동적이고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법문 후 ‘정근과 희사의 시간’이 너무나 낯설어 법문만 딱 듣고 법당을 급히 빠져나오기도 수차례 했었어요. 그러다가 금강경 강의에 이어서 한 달간의 ‘수행맛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기도는 교회에서만 하는 줄로 알고 있던 제게 매일 아침의 수행 연습은 너무나 신기한 체험이었고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2018년 강연회 봉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은주 님)▲ 2018년 강연회 봉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은주 님)

나를 돌아보게 된 아침 기도

공부하면서 좋았던 점은 매일 아침 기도를 통해 조금씩 내 삶에 변화가 왔고 여유를 찾게 됐다는 점입니다. 원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아침밥도 거르고 허겁지겁 출근하던 게으른 제가 매일 아침기도를 하면서부터는 꼬박꼬박 아침밥을 챙겨 먹고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 차도 마시고 청소까지 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좀체 화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착한 사람이야’ 하며 ‘옳고 그름의 잣대’로 끊임없이 타인을 재단하며 올라오는 화를 안으로 억누르며 살아온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화'란 것이 '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일어나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 탓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빠져 주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했던 점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어떤 도반이 나에게 말했던 애정 어린 별칭이 수긍 되지 않아 섭섭해했던 날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창기 해운대법당 도반들과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금요 정진을 했던 것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0여 년 전 가정 법회 시절 엘리베이터 안에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새벽 목탁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는 입주민의 민원 글이 부착된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바로 다음 날부터 목탁 없이 기도했던 때도 생각나네요. 아무래도 집 근처에 법당이 없어서 가정집에서 수련하느라 이런 불편한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07년 부산 가정법회에서 왼쪽 첫 번째가 박은주 님▲ 2007년 부산 가정법회에서 왼쪽 첫 번째가 박은주 님

가정법회에 선뜻 집을 내어준 도반들

2007년 전세로 살던 부산 북구 한 아파트에서 가정 법회를 3년 동안 열었는데 주인이 갑자기 집을 팔게 되어서 급히 집을 비워 주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당시 전세금 상승 폭이 너무 커서 화명동에 거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잠시 원룸에 기거하다가 이왕 이사할 것 같으면 아직 법당이나 법회가 없던 김해지역으로 가게 되면 전법의 기회도 되어 좋을 것 같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김해의 아파트 전셋값도 화명동과 큰 차이가 없어서 난감하던 중에 김해에서 부산까지 가정 법회에 오던 흥동의 박순자 님이 흔쾌히 집을 내어 주었습니다. 김해에서 마산법당으로 불교대학을 다니던 임미희 님이 또 흔쾌히 흥동 집을 법회 장소로 제공해주었고, 삼계동에서 천복이라는 찻집을 하던 박옥선 님과 내동의 하경애 님, 율하의 김정옥 님이 수행법회 장소를 내어주었습니다. 내동의 이경미 님, 외동의 이지연 님, 삼계동의 조경임 님, 율하의 이동옥 님도 불교대학 법회 장소를 선뜻 제공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여러 곳에서 법회가 진행될 수 있었고 아울러 김해법당 불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는 터전이 되어준 셈이지요. 김해로 와서 많은 분의 신심을 보니 괜히 가야불교 초전법륜지라 불리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덕천역 서명운동 오른쪽 첫 번째 박은주 님▲ 2008년 덕천역 서명운동 오른쪽 첫 번째 박은주 님

고속버스 타고 내려온 액자 속 부처님

개원 전인 가정 법회 시절 여러 곳에서 법회 장소를 선뜻 제공했던 많은 신심 깊은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어려운 점은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법회가 열리던 이곳저곳에 모여서 도반들과 법당 불사 발원 정진기도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8년 전 가정 법회 시절부터 법당 불사 발원 정진기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동참해주셨던 우리 법당 최고령인 80세 정삼춘 님께서 2012년 법당 개원 직전에 김해 시외터미널에서 서울에서 고속으로 보내온 액자 부처님을 온 정성을 다해 모셔오던 그 때도 떠오릅니다. 우리법당 최고령 통일의병 정삼춘 님은 김해법당 역사의 산증인인 셈입니다.
그리고 부군이 사업 부도가 나 파산신청을 하고 부득이 창녕의 한 시골로 귀촌을 하게 되신 민노미 님이 그 어려운 중에도 제일 먼저 법당 불사 보시금을 가지고 오셨을 때 서로 껴안고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2012년 김해법당 개원 때(두 번째줄 왼쪽 첫 번째가 박은주 님)▲ 2012년 김해법당 개원 때(두 번째줄 왼쪽 첫 번째가 박은주 님)

필요한 곳에 잘 쓰이는 행복한 삶

두 달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병석에 누워계실 때 선주법사님의 도움 말씀을 들으며 어머니를 위해 꾸준히 기도해드려서인지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 안녕. 잘 가요~’하고 잘 보내드릴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요즘 저는 통일특위 의병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행복학교를 진행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오셨던 분들이 스님 강의를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뿌듯하고 행복해집니다. 작은 힘이지만 필요한 곳에 잘 쓰이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하지만 연구하며 필요한 곳에 잘 쓰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안녕. 잘 가세요!▲ 엄마, 안녕. 잘 가세요!

김해법당의 대들보, 든든한 기둥, 진정한 보살님, 검소한 수행자, 무소의 뿔, 친언니, 친정엄마!
법당에 계시는 분들이 박은주 님을 떠올리며 부른 말입니다.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가면서 수행자로서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글을 쓰면서 이런 분과 같은 법당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괜스레 행복해집니다.
웃을 때 보조개가 예쁜 박은주 님과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글_송현숙 희망리포터(김해정토회 김해법당)
편집_조미경 (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