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소금가마를 지고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 길을 가겠습니다.' 전법에 있어 묘광법사님이 마음에 새기신 말씀입니다. 그곳이 길이든 법당이든, 상대가 검은 양복이든 노숙자든, 분별없이 보시의 인연을 권하고 다만 스승께 배운 대로 법을 전하는 묘광법사님의 두 번째 이야기 전합니다.

든든한 도반이자 후원자인 남편과 함께▲ 든든한 도반이자 후원자인 남편과 함께

상(相) 백화점인 나, 상을 짓고 깬 이야기

만 배 절하는 것보다 모금함 들고 거리에 나가서 모금 한 시간 해보는 게 더 큰 공부가 될 거라는 보수법사님 말씀에, 안 하던 화장까지 해가며 100일 동안 저녁마다 거리모금을 나갔습니다. 어느 날, 검은 양복을 입고 새까맣게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을 보고 다가갈까 말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용기내어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모금통을 들이밀었습니다. 그런데 어마! 두목으로 보이는 사람이 “야, 줘.” 하니, 그 밑에 있던 사람이 “예” 하며 호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움큼을 꺼내서 모금함에 넣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모금을 나가보면 ‘이 사람은 줄 것이다, 저 사람은 안줄 것이다’라고 상을 짓는 자신을 보게됩니다. 100일 거리모금의 중반이 넘어가니, 돈을 주면 줘서 좋고 안주면 안 주는대로 좋아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숙이다 보니 법당에서도 더 잘 숙여졌습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엄청 추운 날, 길에서 파는 어묵을 하나 사먹고 싶어도, 거리모금한 돈으로 어묵 사먹는다고 할까봐 못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번은 한 팔이 없는 분이 법당에서 봉사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법당을 살펴보고 필요하다 싶으면 무엇이든 구해다 주고, 연등을 만들어 놓으면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한 팔이 없는데도 참 고맙고 신기해서 '아, 절 일은 절로 절로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법륜스님 법문 테이프도 많이 듣고 수행법회에도 나오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이 분이 스님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가끔 길에서 만나면 인사 정도 하고 지나쳤는데, 이 분한테는 '스님'이라고 부르기가 영 어색해서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습니다. 소낙비가 내리던 어느 날, 우산 없이 절 주변을 지나다 마침 이 분을 본 것입니다. 저는 "스님!"하고 부르며 뛰어가서 우산을 빌렸습니다. 막 웃음이 나왔습니다. 십여 년간 한 번도 '스님'이라고 부르지 않다가, 내가 꼭 필요하니 이렇게 숙이는 걸 알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스님'이라고 부릅니다.

전보살님! 친구왔어요

총무 시절, 법당에 노숙자가 많이 찾아왔었는데 올 때마다 작은 상에 따뜻한 밥을 대접했습니다. 돈을 얻으러 오면 얼마간의 돈을 주며 "불전함에 천원 보시하세요" 권하고, 초파일에는 "천원짜리 연등 달아드릴게요."라고 하며 보시할 수 있는 인연을 지어주어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전법당에는 천 원짜리 연등이 많았습니다. 그런 일이 잦으니 도반들이 "전보살, 네 친구왔다" 하면 '노숙자가 왔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중풍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던 분인데 5층 법당까지 어떻게 올라왔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냄새도 심하고 행색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집 나간 부인을 찾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원망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밥 차려주고, 얘기 들어주고, 돈도 조금 쥐어주면서, 부인 욕하고 싶을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염불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차츰 부인 욕이 줄고 얼굴이 밝아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법당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잘생긴 남자가 빵을 들고 법당에 찾아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누구인가 했더니 바로 그 노숙자였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물었더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자나 깨나 염불하고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했더니, 중풍이 낫고 집 나간 부인도 이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법당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참 많습니다.

2018년 하반기 정일사 입재수련(앞줄 가운데 묘광법사님)▲ 2018년 하반기 정일사 입재수련(앞줄 가운데 묘광법사님)

스승같은 도반

법당의 새벽기도와 사시기도는 한번이라도 빼먹으면 안 되는 줄만 알았습니다. 자리를 잠시 비우게 되어서, 한 도반에게 전화로 사시기도를 부탁했더니 선뜻 하겠다고 했습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그 도반은 사시기도를 할 줄 몰라서 법요집만 정성껏 읽었다며 밝은 얼굴로 말하고 급하게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시간 기도하려고 강원도 양양에서 대전까지 왔다가 다시 가는 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아, 보살은 이런 마음이구나. 저렇게 살면 되겠구나.' 수순하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북한 동포 돕기 거리모금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도반이 “총무야, 니 돈 좋아하제” 하며 모금함에다가 하얀 봉투를 넣어 주었습니다. 모금을 마치고 계수 할 때보니, 봉투에는 무려 천만 원이나 들어있었습니다. 법당에서 내도 되는데 당시 총무인 제 기를 살려주겠다고 거리에서 모금함에 넣어준 것입니다. 그 도반은 평소에도 아주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환경운동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으로 저에게 감동을 주었던 분이기도 합니다. 제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말 없이 행동으로 힘이 되어주는 권소윤 님과 여러 도반이 있었기에 맡은 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대전법당 근처 공원에서 희망리포들과 함께(오른쪽 두번째가 묘광법사님)▲ 인터뷰를 마치고 대전법당 근처 공원에서 희망리포들과 함께(오른쪽 두번째가 묘광법사님)

전법의 삶, 스승님이 하시는 것을 다만 할 뿐입니다.

얼마 전, 연화회 보살님들 나들이에 함께 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곁에서 보니,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스님은 밥그릇과 국그릇을 솥단지에 삶아서 따끈따끈하게 한 뒤에 국과 밥을 푸라고 하셨습니다. 따뜻한 그릇에 밥과 국을 푸면서 어르신을 위해 정성을 들이고 마음 쓰시는 스님의 마음을 느끼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법륜스님의 이런 모습은 오래 전부터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루는 경주에서 법문을 듣고 스님 댁에 가게 되었습니다. 스님 댁 아래채에 황토방이 있었는데, 들어가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운동복을 입은 웬 아저씨가 장작불을 떼고 있었습니다. 일 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바로 법륜스님이었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는데 저 뒤꼍에 있는 상추를 따서 깨끗이 씻어 탁탁 털어 주시면서, “이거 묵어봐라, 맛있다. 이거 내가 농사 지은 거다.” 그런 살가운 모습이야말로 산교육이고 보살행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대중들을 위해 불 때는 모습. 상추를 탁탁 털어서 제자들을 위해 준비하는 그 모습에서, 제가 앞으로 도반들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불교 중흥과 민족중흥을 위해서 동분서주하시는 스승님을 만난 것과, 동시대에 우리 모두 함께 부처님께서 가신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만약에 소금가마를 지고 바닷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 길을 가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법사님은 '물러서는 마음이 들 때마다 도망가지 말고 선배를 찾으라'고 하시며, 남은 감과 자두를 두 손에 꼭 쥐여주었습니다. 맛있는 것이니 차 타고 가면서 먹으라는 말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날은 저물고, 늦은 식사 준비를 하고 밤이 되어서야 가방을 풀어봅니다. 법사님이 꼭 쥐여준 감과 자두, 법륜스님이 물기를 탈탈 털면서 맛보라고 건네준 상추가 머릿속에 가만히 떠올라 빙긋이 미소지어 봅니다.

*묘광법사님은 1999년부터 10년 동안 대전정토회 총무 소임을 하셨고, 현재는 청주정토회 상임법사, 전주정토회 담당법사 소임을 맡고 계십니다.

녹음_신명옥 희망리포터(대전충청지부)
사진_허지혜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서산법당)
글_이애순 희망리포터(천안정토회 천안법당)
편집_하은이(대전충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