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법당에는 항상 단정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생활하고 수행하는 도반이 있습니다. 수행을 하루의 계획 중 가장 우선으로 삼고 정진하며, 때론 다가갈 수 없는 범상함으로, 때론 특유의 편안한 미소와 차분한 말투로 친구처럼 도반들에게 다가오는 분입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많은 도반의 본보기가 되어주는 진은미 님의 이야기를 함께 하겠습니다.

엄격하고 정갈했던 엄마를 닮아

4~5살 무렵부터 절집 아이였던 저에게 엄마는 스님과 엄마의 역할 중간 그 어디쯤을 오가는 두려움과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엄격하고 정갈함이 몸에 배어 어린 제가 따르기에 너무 높은 기준이라 긴장했던 기억과 칭찬받았을 때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불편하고 힘들었음에도 그 엄마를 그대로 닮은 어른이 되었음을 아이를 기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와 글자 익히기를 하면서 짜증내고 윽박지르기를 멈추지 않는 저를 보면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넘어 무기력감을 느끼면서도 괴로움이라 알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그리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면서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알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5월, 당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함께 하던 박효진 님 가정집에서 여름불교대학 입학을 시작으로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2012년 6월 법당 개원하기 이전까지 가정법회의 영상담당자, 불교대학 담당 소임으로 일과 수행의 그 새로운 옛길, 아름다운 여정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정법회 당시 함께한 도반들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진은미 님)
▲ 가정법회 당시 함께한 도반들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진은미 님)

혼자서도 이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준 만 배 정진

2010년 9월 6차 천일기도 10차 백일기도에 첫 입재를 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후 100일을 빠뜨리지 않았고 회향한 후 7차 천일기도에 ‘처음 마음으로 정진합니다’라는 명심문으로 다시 입재하여 오늘까지 기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법당이 개원하던 2012년과 2013년 말에는 만 배 정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만 배 정진의 마지막 3000배는 도반들과 철야정진으로 진행하여 함께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면, 2013년 만 배 정진은 혼자 해 보았습니다. 8차년 소임에 대한 부담감과 시작하기도 전에 가득했던 걱정들을 내려놓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두 번의 만 배 정진 경험은 도반과 함께해도 좋고, 혼자여도 묵묵히 이 길을 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 때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진은미 님)
▲ 천일결사 입재식 때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진은미 님)

별일 아니라고 웃으니 정말 별일 아닌 일

처음 법을 전한 울산의 선배 도반이 소임을 새로 받거나 과제가 생기면 300배 기도를 100일 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하였습니다. 처음 불교대학 소임을 받으면서 300배 정진을 100일 동안 했습니다. 어렵게 불법 만난 인연들이 최소한 저로 인해 인연을 놓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어서 그분들이 와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지부 회계팀장 소임이 왔을 때도 그랬습니다.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머리가 복잡해서 또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 당시 부총무님과 함께 일하는 제 업식이 보이면서 부총무님이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임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총무 소임이 왔을 때도 결정을 내리기 전에 300배 절을 했습니다. 지부 회계팀장과 부총무 소임이 막중하게 여겨져 7차 천일기도를 회향하면서 500배 정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소임이 큰 만큼 넘어지기를 여러 번,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소임을 시작한 지 1년이 못 되어 남편은 참다 참다 이혼 선언을 했고, 그때 남편의 분노와 결의에서 이 사람을 위해 이혼해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마산법당에서 지부회의가 있어 일찍 법당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 곳에 계신 월광법사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신 법사님께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을 법사님께서 고스란히 대신 느끼고 있음을 알게 되어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어 지부 구성원들이 다 거치는 과정이라며 별일 아닌 것으로 웃어 주어 정말 별일 아닌 일이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3년간 봉사하고 일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봉사하는 3년은 기다려주기를 부탁했고, 이후 남편은 좋은 후원자이자 수행점검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후원으로 봉사하는 시간은 부처님 당시 수행자와 장자들의 관계처럼 감사했습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만이 남편의 후원을 공덕으로 만드는 것이구나 여겨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과 봉사 중에 단 한 순간의 망설임이나 여지없이 남편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놀랍습니다. 그 단호함이 어쩌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2015년 정토행자 정진상 수상자 진은미 님
▲ 2015년 정토행자 정진상 수상자 진은미 님

치료하는 아들과의 기차여행

큰아이가 3학년을 끝내고 4학년 올라갈 무렵 왼쪽 머리와 이마 부근 백반증이 나타났습니다. 앞쪽 머리카락 일부가 흰색으로 변하고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아버님께서 서울 쪽 병원을 알아보시고 수술을 권하셨으나 검진 결과 부정적이었습니다. 이후에도 부산으로, 다른 지역으로 여러 곳을 권하면서 아이가 힘들어하자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업식대로 했더라면 아버님에 대한 감정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화풀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서 돌이켜보니, 손자를 향한 아버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감사했고, 짜증 내지 않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의 마음은 감사히 받고, 제가 중심을 잡고 아이 치료에 대해 정리해 나갔습니다. 수술은 가능하지 않고, 광선치료를 해야 하지만 시일이 오래 걸리고 완치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고가의 광선치료기기라 지역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워 밀양에서 부산을 오가는 번거로움을 받아들여야했습니다. 그랬더니 주 2일 아들과의 기차여행이 소풍처럼 가볍게 다가왔습니다. 학교 마치는 시간을 기다려 맛있는 간식을 함께 먹고 이야기하면서 아이가 어릴 때 직장생활을 했기에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다시 채우는 듯했습니다.

4년여의 치료를 마무리한 지금도 여전히 아이의 앞쪽 머리 한 움큼은 하얗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졸업식장에서 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흰둥가리’라는 별칭을 단체복에 새길 만큼 백반증에 편안합니다. 동생이 생겨 형이 되면서 엄마를 빼앗긴 아이가 어쩌면 4년여의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 모든 것이 수행과 봉사의 힘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새벽 예불 올리고 오신 엄마의 차가운 손길이 지금은 따뜻함으로 남아

기도하기 싫은 여러 날 중,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기도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겨울 새벽, 예불 올리고 내려와 방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과 함께 언 손으로 나를 깨우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누군가와 그 누군가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며 그렇게 기도했을 마음이 와 닿아 먹먹하고 오래 따뜻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인연을 지어주었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사랑은 어린 내가 알기에 너무 커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해 못마땅하고 부족하다 여겼던 것입니다.

6~7살 때쯤 아버지가 출타 중일 때 우리 세 자매가 불장난하다 헛간을 홀랑 태운 일이 있었습니다. 최근 상담 공부를 하면서 그 일이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거라고 점검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러지 않아서 꿈이 아닐까 생각되어 엄마에게 확인해 보았습니다. 엄마는 어린 딸들이 이미 놀랐을 텐데 또다시 혼내면 더 큰 상처가 되어 불난 사건에 매일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 아버지와 의논하여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좁은 소견에 갇혀 평생 부모님을 원망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수행한 공덕으로 온전히 사랑 받은 것을 알고 감사하며 살 수 있어 다행입니이다. 나아가 세상을 향해 받은 바를 회향할 수 있는 봉사 인연에 더없이 행복합니다.

어른의 역할이 뭘까

최근에 받은 소임은 김해정토회 대표 소임입니다.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임이라 역할이 서툴고 부족했고, 늘 의문이었습니다. ‘어른의 역할이 뭘까?’하고 말입니다. 지난 통일의병대회에서 스님과 법사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리 살면 어른이겠다’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한 마음이었습니다. 어른이 곧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정일사 회향에서 유수스님으로부터 100일 동안 매일 법당에 출근하여 봉사하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어른으로, 주인으로 연습 중인 요즘 나는 먼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듯 편안합니다. 법에 비추어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살펴 챙겨주시는 친정엄마의 마음처럼 따뜻하게 여겨집니다.

바라아제 대의원수련 사찰탐방 (왼쪽에서 네 번째가 진은미 님)
▲ 바라아제 대의원수련 사찰탐방 (왼쪽에서 네 번째가 진은미 님)

여전히 저는 넘어지고, 넘어짐을 탓하기도 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기도 정진하고, 봉사하면서 일어나기를 포기한 적은 없습니다. 그 길로 나아가고 있는 내가 고맙고,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과 그 길을 알려주신 스승님과 또한 함께 가고 있는 도반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수행자는 일상에서 수행이 늘 먼저이어야 함을 알고 있고, 그리고 매일 매일 정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한다는 것이 힘든 일임을 잘 알기에 진은미 님의 이야기는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개인적인 아픔과 어려움도 수행과 정진으로 극복해 나가며, 부담될 수 있는 소임들도 정진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진은미 님께 수행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앞으로 진은미 님이 ‘진정한 어른’ 으로 더욱더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글_진은미 (김해정토회 밀양법당)
정리_손춘현 희망리포터 (김해정토회 밀양법당)
편집_조미경 (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