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가 지나 이제 낮이 밤보다 길어지고 있지만, 임진각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어둡고 춥습니다. 2018년을 회향하고 2019년을 맞이하며 임진각 평화 통일을 위한 만 배 정진에 참가한 정토행자들을 소개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12월 30일 6시 30분. 영하 13도. 임진각 망배단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어둡고 조용한 가운데 플래카드가 걸리고 자리가 깔리고 방석이 놓입니다. 절하는 도반들이 조금이라도 덜 추워지라고 바람이 그대로 통하는 망배단 난간을 플래카드 끝으로 꼼꼼히 감쌉니다. 봉사자의 손과 몸이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파주법당 최영화 님 날씨 때문에 걱정을 좀 했는데 바람이 잔잔하니 우선 출발이 편안하네요. 옆에서 참가만 하는 입장이었다가 이번에 실무총괄을 맡아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는 일은 많지 않은데 혹시라도 멀리서 오는 분도 계시는데 불편한 부분이 있을까 부담이 좀 있었어요. 오늘 아침 눈 떴을 때 옆에서 도와주신 분들 생각이 먼저 났습니다. 실수할까 봐 긴장되는 이런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지역에서 선뜻 만 배 정진하는 도반들 드리라며 인삼을 보내주셨어요. 그것을 차로 끓이는 게 대여섯 시간씩 고아야 하고 오래 걸리잖아요? 임진각까지 들고 오는 것도 힘들고요. 그런데도 도반님들이 선뜻 마음을 내어 서로 하겠다고 해 주시고 옆에서 내 일처럼 마음을 내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오전 7시. 여전히 어두운 가운데 손전등을 조명 삼아 입재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손발이 얼어붙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참회기도 발원문’을 함께 읽으며, 만 배 중 한 배를 시작하는 도반들과 그들을 봉사하는 도반들 모두 한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 배 정진 입재식

파주법당 김춘연 님 내가 좀 변화해보려고요. 가슴이 답답하고 그래서... 만 배를 하면 답답한 마음이 맑아지려나 싶어서요. 내 자신을 좀 이겨보고 싶습니다.

대구법당 안선영 님 대구에서 도반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데 임진각에서 만 배 통일정진을 한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 거냐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계속 남더라고요. 이게 어떤 마음일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도반들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너무 추우니까요. 그래서 그해 법당에서 철야로 만 배를 했습니다. 법당이지만 같은 마음으로 있어야겠다 싶어서요. 그다음 해 광복절에 법당에서 임진각 간다고 하길래 그때 처음 와 보고 그해 겨울부터 계속 오게 됐습니다.

처음 시작은 마음 내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광복절에 와 보니 너무 더워서 절하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갈등이 있었거든요. 제가 더워서 ‘어떻게 하지?’ 하고 있는데 한 도반이 그해 두만강에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옆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 마음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내가 굉장히 얕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구나. 가서 기도하다 죽자’ 하는 마음을 먹으니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저 앞에 쓰인 현수막 글귀처럼 '8천만 온 겨레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한다, 미움과 원망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8천만을 대신해서 참회한다'는 그런 마음으로 분단 역사와 민족의 아픔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고향을 그리며 임진각을 방문한 97세 할아버지(맨 왼쪽 앞줄 첫번째)와 함께
▲ 고향을 그리며 임진각을 방문한 97세 할아버지(맨 왼쪽 앞줄 첫번째)와 함께

그때 와서 제주 도반들에게 제주 4·3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돌아보니 참회를 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며칠 전에도 제주도 출장 갈 일이 있었습니다. 4·3 기념공원에 가서 통일의병 티 입고 4·3 유가족을 기념하는 동백꽃 배지와 세월호 배지 달고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함께한다는 마음으로요. 겨레의 아픔이 한 배 한 배 절할 때마다 사라지고 화해와 상생의 길, 평화통일의 길로 간다는 마음으로 하니 그렇게 춥지도 않았습니다.

통일의병티 입고, 제주 4·3 동백꽃 배지 달고, 세월호 배지 달고 임진각 만 배 정진
▲ 통일의병티 입고, 제주 4·3 동백꽃 배지 달고, 세월호 배지 달고 임진각 만 배 정진

새해 소원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입니다! 작년에는 상황이 많이 안 좋았는데, 만 배 정진하고 평창올림픽 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올해는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어요. 하지만 아직도 북한 제재가 풀어지지 않고 있으니, 올해는 인도적 지원이 꼭 이루어져서 따듯한 겨울을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전 기도를 마치고 공양시간입니다. 파주법당 천일결사 “접시꽃” 모둠과 일산법당에서 3일 공양 봉사를 맡았습니다. 따뜻한 밥과 국 특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주법당 조정애 님의 두부조림을 먹었습니다. ‘이 밥을 먹고서는 더 열심히 기도할 수밖에 없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만하려던 마음을 그만두고 다시 절을 합니다. 여러 번 그랬습니다. 그만할까 싶어 옆을 보니, 평소 다리를 다쳐 힘들어하던 도반이 여전히 절을 하고 있어 한 배 더 해 봅니다. 이제 정말 그만하자 싶어 앞을 보니, 목탁을 치며 정근을 하는 도반이 있습니다. 집전하는 그 도반의 발이 시릴까 봐 무릎담요로 발을 감싸주는 또 다른 도반이 있습니다. 나의 한 배가 우리의 한 배임을 알겠습니다.

파주 특산물 콩으로 만든 콩죽을 먹고 힘내서 통일까지~
▲ 파주 특산물 콩으로 만든 콩죽을 먹고 힘내서 통일까지~

일산법당 노숙자 님 그냥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지요. 나도 내가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우리 많이 들었잖아요. 우리나라가 통일을 해야 한다고. 올해는 또 통일의 물꼬가 좀 열린 것 같으니까 마음을 모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일 잘하는 게 밥 해 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다른 건 없어요. 그래서 하는 거지 이 일밖에 없으니까요(웃음). 올 한 해는 너무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의 국운이 트여서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이 소원입니다. 개인적인 소원요? 애들 다 크고 뭐 개인적인 소원은 없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어려운 건 우리가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각자가 좀 아끼면서 긍정적으로 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고맙습니다.

일산법당 홍기식 님 많은 분이 이렇게 만 배를 해서 통일 염원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양 차량 봉사하러 왔어요. 밥이랑 국이랑 차에 싣고 왔지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만 배 할 때 그 '일만 만'자가 되게 겁이 납디다. 만 배 참여는 못 했어요. 올 한 해 좋은 일도 있고 복잡한 일도 있고 진짜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오늘 여기 오면서 돌아보니 지나고 나니까 그냥 지난 일일 뿐이고 내일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으로 한 번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토회 덕분에 감사한 한 해 보냈어요. 뭐가 그렇게 고맙냐고요? (웃음) 힘들 때 정토회를 알게 되었고 지금 돌아보면 그때 힘들었던 마음이 지금은 신기하게 없어져서 감사한 마음이 있어요. 내가 도움받은 만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있습니다.

제주법당 정연심 님 제주법당에서 3년째 왔어요.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에 와봤지요. 항상 통일에 대한 염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제주 4·3 70주년이었습니다. 70년간 거의 말을 못 하다가 최근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우리나라 분단의 역사와도 연결이 됩니다. 무고하게 돌아가신 많은 분의 억울한 마음, 미움과 원망, 갈등이 나로부터 풀려야 제주가 풀리는 거고 우리나라가 풀리는 거니까요. 한 배 한 배 절할 때마다 우리 조상님들께 회향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 무말랭이를 만들었습니다. 무말랭이가 하늬바람에 맛있게 잘 마르거든요. 초등학교 다닐 때 비만 안 오면 무말랭이 발에 하나하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널었어요. 어릴 때 농사지으면서 힘들었지만 이겨냈던 경험 덕분인지, 힘들어서 임진각 가기 싫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2019년은 남북관계도 중요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서로 품을 수 있는 한 해가 되면 좋겠어요. 바로 옆에 있는 이웃들을 품지 못하면 어떻게 세상을 품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면 내 가족, 그리고 법당에 가면 내 도반들을 잘 품을 수 있도록 해 볼 생각입니다.

춥고 어둡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 춥고 어둡지만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19년 1월 1일 오후 5시 만 배 정진을 마쳤습니다. 입재식 전,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 도전했다던 파주법당 김춘연 님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파주법당 김춘연 님 처음 참여합니다. 만 배를 해야 마음속 부처님이 눈을 뜨신다는 말씀을 듣고 ‘내 마음속의 부처가 눈을 뜰 수 있다면?’ 하는 반가운 마음에 망설임 없이 신청했습니다. 언제나 마음 한편이 답답했거든요. 첫날은 죽자 살자 절만 했습니다. 내 안의 어둡고 답답한 마음 다 쏟아져 나오라 하면서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고 내가 왜 절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겠더라고요. 통일을 염원하며 하는 기도라는 것을요. 아침부터 무릎이 아파져 왔습니다. 그럴 때면 그냥 하면 돼요 하시는 말씀을 생각하며 아파도 계속했어요.

점심공양을 하며 이렇게 앉아 있는데 봉사하시는 분들, 또 추운 데서 이렇게 앉아서 공양하시고 절하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더라고요. 이왕 하러 온 기도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후에는 진짜 열심히 쉬지 않고 절했습니다. 나중에는 눈물이 너무너무 나는 겁니다. 그래서 펑펑 울며 눈물 다 쏟아 냈습니다. 집에 오는데 몸이 개운하고 마음이 환해지고 정말 가벼웠습니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쉬고 있는데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정근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메아리처럼 계속 들려왔습니다. 봉사하시는 분들의 맑은 눈동자가 지나가고 웃는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아 이 분들이 진짜 관세음보살님들이었구나’하고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안타까워했던 것은 '내 좁은 소견으로 그렇게밖에 못 봤구나' 싶어 참회했습니다. 이분들이 얼마나 큰 뜻을 가지고 이렇게 기꺼이 하는 줄을 미처 몰라서 부끄러웠습니다. 마음이 좀 맑아진 것 같아요. 마지막 날 기도하러 왔는데 무릎이 또 많이 아파졌지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다가 죽으면 후회는 없겠다 싶어 아픔을 참고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 기도 정진했습니다.

우리의 만 배 정진 기도로 평화 통일이 한 걸음 더 앞당겨졌을 것이라 믿어요. 바램은 하루속히 통일되어 이런 수고로운 기도가 필요 없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함께하신 분들 모두 다 고생하셨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덕분에 저는 만 배를 무사히 마쳤고,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답답한 마음도 많이 해결이 되었고요, 모든 분이 관세음보살로 보이면서, 내 안의 부처님이 눈을 크게 뜨지는 못했지만, 약간 실눈 정도는 뜬 것 같습니다. 이제 적극적으로 법당의 사회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통일을 간절히 바라면서 임진각 통일기도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나를 깨워준 만 배. 왜 만 배를 하라고 하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내 마음 속의 부처가 눈을 뜰 수 있을까?
▲ 내 마음 속의 부처가 눈을 뜰 수 있을까?

운정법당 전기돈 님 운정법당에서 6분이 숙식을 하셨습니다. 저와 운정법당 도반들은 법당에서 임진각까지 이분들을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고 모셔 오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다른 도반님들은 새벽에 공양하실 수 있도록 누룽지와 반찬 준비를 해주셨어요. 목탁 봉사도 나눠서 하고요. 다른 지역에서 만 배 하러 일부러 오신 분들인데, 파주 사는 사람들이 당연히 도와야죠.
운정법당에서 임진각까지 30분 정도 걸리거든요. 만 배 정진하시는 분들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천일결사 기도하고 간단하게 공양하고 나면 제가 임진각까지 모셔다드렸죠. 저녁에도 그 지친 몸으로 법당에 돌아와 그냥 주무시는 게 아닙니다. 그날 못 다 채운 절을 법당에서 따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따로 만 배를 다 채우시더라고요. 말 그대로 인간 승리죠.

미움, 갈등, 원망을 해소하기 위해 8천만 민족을 대신해 참회합니다
▲ 미움, 갈등, 원망을 해소하기 위해 8천만 민족을 대신해 참회합니다

2011년 월광법사님의 전쟁반대 1인 기도 시위가 씨앗이 되어 전국에서 일 년 내내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파주 임진각 망배단에서도 인천경기서부지부 도반들이 매주 토요일 통일 기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임진각 만 배 정진은 향존법사님이 월광법사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부터는 인천경기서부지부가 맡아 진행한 지 5년째가 되었습니다. 2018년을 회향하고 2019년 6년 차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일산정토회의 많은 도반님이 모자이크 붓다가 되었습니다. 숙박하며 정진하는 도반님들 차량봉사, 목탁 봉사에, 천도재 떡 배달 등 여기저기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행사를 맡아 진행한 인천경기서부 일산정토회 도반들과 각 지역에서 보시해 주신 얼굴도 모르는 도반님들의 정성에 지면을 빌어 감사 말씀드립니다.

반갑다~ 2019년
▲ 반갑다~ 2019년

*본 기사는 일산정토회 소속 파주법당과 운정법당이 공동 취재했습니다.

글_박상미 희망리포터 (일산정토회 파주법당)
사진, 영상_ '우리의 소원은 통일': 전기돈(일산정토회 운정법당)
영상_'만배정진 입재식': 임현주(일산정토회 파주법당)
편집_고영훈(인천경기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