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는 샌프란시스코 법당이 위치한 산호세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주도입니다.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는 한주희 님은 전문직 여성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희망리포터는 한주희 님과 삼 년 넘게 천일 결사를 함께 해왔고 그 간 마음 나누기에 올려주신 진솔한 이야기들을 보며 수행의 고단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주희 님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2019년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날,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수행담 취재에 한 번 손사래 친 후 흔쾌히 마음 내어주신 한주희 님을 만났습니다.

선주법사님과 함께한 수련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한주희 님)
▲ 선주법사님과 함께한 수련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한주희 님)

희망리포터: 정토회와의 인연, 그 후의 수행까지 이어지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어머니, 언니, 오빠와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됐습니다. 어느 정도 자란 후에 이민을 오다 보니 늘 한국과 친구들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의 지인을 통해 한 남자를 소개받고 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다 그 남자가 미국에 오게 됐었습니다. 그리고 일여 년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은 살면서 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고, 사랑의 감정도 더욱 커질 테니 별 문제없을 줄 알았습니다.

저는 결혼 전 친정의 모든 일을 도맡다시피 처리 해왔었고 그러다 보니 친정어머니와 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관계는 결혼해서도 그대로였고, 그게 저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저와 다른 가정환경,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제가 지나치게 친정 일에 관여하는 게 늘 불만이었고 저는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로워했었습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게 되었고 스님의 해법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영상도 보고 했지만, 저의 괴로움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아이들도 한국문화를 배우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뵙게 되면 좋을 것 같아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정토법당을 찾아 불교대학과 경전반, <깨달음의 장>까지 다녀오게 됐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나 자신이 집착과 아집이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도를 찾으려는 마음이 내가 뭔가가 되어야 한다는 착각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내 안에 불성이 있다면 애써 도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요 법회에서 스님의 법문을 들었을 때만 기복된 마음이 평정을 찾아갔습니다. 짧은 한국 생활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한국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미국살이를 하는 남편의 외로움은 모른 체, 오직 남편의 말투와 아이들 훈육방식이 나와 다르다고 괴로워하고 미워했습니다. 남편만 바뀌면 내 괴로움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아주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냥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편에게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금문교에서 평화 캠페인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한주희 님)
▲ 금문교에서 평화 캠페인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한주희 님)

매일 새벽 참회와 기도를 해도 남편에 대한 원망, 불만은 쉬이 사그러지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아이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점, 친정 일에 나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점 등 그 모든 것이 남편 탓인 것만 같아서 쉬이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남편의 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아! 이 사람은 홀로 이국땅에서 가족도 없이 오롯이 나 하나 보고 사는데 내가 이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구나! 남편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올라오면서 진정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그리고 그 원인이 내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나만 억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또한 남편에게 불안한 마음을 심어주었으니, 남 탓하느라 보낸 세월에 대해 깊은 참회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한마음 돌이키니 세상에 그런 남편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내 욕심과 무지가 내 눈과 귀를 막았던 거지요. 내 마음이 바뀌니 말과 눈빛, 태도가 바뀌고 남편의 말투와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수행의 공덕임을 알았습니다.
이 공덕을 나만 누리기보단 세상에 회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JTS America 인터넷 사이트 관리 소임도 맡게 됐습니다. 크지 않은 역할이라도 내가 쓰일 곳이 있으면 '네' 하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희망리포터: 정토회 수행자로서 세운 원이 있으신가요?

실은 참회를 하기 전엔 남편이 안중에 없었기에 은퇴하면 인도의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회계를 가르쳐 보고 싶었습니다. 스님께서 항상 해외 봉사활동 중에 선생님들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회계를 가르치면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싶어서 원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남편과 사이가 좋아지니 혼자서 인도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소심한 염려가 생깁니다. (웃음)

2017 스님의 해외강연 봉사 후 (맨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한주희 님)
▲ 2017 스님의 해외강연 봉사 후 (맨 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한주희 님)

희망리포터: 지금 행복하신가요?

네. 행복합니다. 그날그날 걱정되는 일이 있긴 하지만, 다음날 절을 하면서 반성하고 그 걱정 또한 내 바람에서 비롯된 욕심과 불안에서 왔음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히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불행하지 않다면 행복한 거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지금은 복에 겨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수많은 파도가 밀려와도 바다의 관점에서는 한낱 사그라지는 거품에 불과합니다. 다가오는 파도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유연하게 그 파도를 타는 불굴의 수행자!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오로지 수행 정진하는 한주희 님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제자 됨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글_최경선 희망리포터 (샌프란시스코 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