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6월 갑작스레 발견된 암 수술과 항암치료에도 '자신의 소중함을 알 수 있게 된 계기'로 생각하시는 중랑법당 김혜숙 님의 수행, 보시, 봉사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봅니다.

친구가 보내준 동영상에서 법륜스님을 만나다

한 친구가 글과 동영상을 매일같이 보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친구가 보내준 글을 보고 내용이 너무 좋아 한참을 읽다가 동영상도 보게 되었습니다. 두 자매가 스님께 엄마가 천당에 계신지 궁금하다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 내용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혼자 배꼽을 잡고 웃으며 그 장면만 수없이 봤습니다. 흰 고무신을 신고 스님이 무대에서 대중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고 묻는 말에 명쾌하고 간단하게 대답해주는 법륜스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을 스님의 동영상을 계속해서 보면서 내가 걸어온 지난 날들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온화한 미소의 김혜숙 님
▲ 오늘의 주인공, 온화한 미소의 김혜숙 님

꿈이 송두리째 뽑혀나간 남편과의 결혼과 이혼

세상 물정 몰랐던 저는 잘생긴 남편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와 아낌없이 주는 성격에 반하여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남편을 본 엄마의 첫마디가 “앞으로 속 좀 썩이겠다!” 였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 줄 모르고 빨리 결혼만 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사이좋게 사셔서 큰 소리 내고 싸운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남자는 다 아버지 같은 줄 알았습니다. 결혼한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고 온 집안을 풍비박산 만들었습니다. 어느 하루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빚쟁이 독촉 전화를 받았고, 어느 날은 빨간딱지가 온 집안을 도배했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일을 벌이고 집에 다 떠넘기고 숨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저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어하고 ‘내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누구한테든 내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고 친정 부모님께도 얘기를 안 했는데 시어머니가 친정아버지를 찾아가서 돈 얘기를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온 몸으로 인생을 배우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험한 소리 한 번 안 하고 살았던 저에게 그렇게 무서운 악마가 숨어 있는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늘 화와 짜증으로 독기를 품고 살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남편을 의심하고 남편과의 대화의 절반은 부정적이었으며 남편의 말에는 귀는 닫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17년을 살았습니다.

그랬던 남편이 여자가 생기자 스스로 집을 나갔습니다. 내가 전생에 지은 빚을 다 갚았는지 인연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스스로 떠나준 남편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내 눈에 심어진 독한 심지가 빠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

즉문즉설을 통한 깨달음 아, 남편도 딸도 힘들었겠구나!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공부도 하고 싶어 야간대학에 등록했습니다. 4년을 개근하며 열심히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을 마치고 나서 또 여유로운 찰나에 스님의 즉문즉설을 접하게 되었고 그 후 2년을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즉문즉설을 많이 보다 보니, 스님의 즉문즉설의 특징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의 잘못을 단번에 지적하지 않고도 질문자 스스로 문제를 깨닫게 이끌어갔습니다. 이 부분이 참 신기했고, 저의 지난 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날부터 ‘아, 내가 무지하게 살았구나’ 지난 인연들에 참회의 절을 시작했습니다. 절을 하다 보니 ‘남편에게도 좋은 점이 참 많구나’ 알게 되었고, 딸과 남편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좋은 점을 말하게 됩니다. 그동안 남편에게 비난하고 지적만 했지 한 번도 칭찬하고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안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딸도 정말 힘들었겠구나!’.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명령적인 저의 말투에 힘들어하면서도 엄마에게 맞추려고 애쓴 딸의 모습을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기도는 나의 힘! ('침'자를 들고 있는 분이 김혜숙 님)
▲ 아침기도는 나의 힘! ('침'자를 들고 있는 분이 김혜숙 님)

불교대학 재수생, 모범생 되다

그러다 2013년 가을불교대학 노원법당 저녁반에 등록을 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생각은 더 복잡해지고 마음나누기는 하기 싫고 일을 핑계 삼아 결석을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마음 한 쪽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출근하면 시간 날 때마다 <스님의 하루>를 빠짐없이 보면서 그렇게 2년을 보낸 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심을 하고 2015년 개원한 지 1년 된 중랑법당 가을불교대학에 재입학을 했습니다.

너무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도 태평양처럼 넓어지고 걸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불교대학 과정에 있는 수행맛보기를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도반들과 아침 5시에 수행을 꾸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큰 원을 세웠습니다. ‘백일기도를 통해 내 꼬라지를 보고 천일기도를 통해 툭하면 딸에게 화내고 짜증 내는 나를 변화시켜보자’.

도반 들과 함께 한 1,000 배 정진 ('천'을 들고 있는 김혜숙 님)
▲ 도반 들과 함께 한 1,000 배 정진 ('천'을 들고 있는 김혜숙 님)

수행 정진! 낙숫물이 바위를 뚫을 때까지

여행을 가도 아침 5시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싹 일어나 300 배의 절을 했습니다. 새해에는 3일동안 천 배도 하면서 중랑법당에서 매 월 천 배를 주선하여 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절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300 배를 했습니다. 300 배를 하면 온몸이 땀이 흐르고 개운해졌습니다. 다만 몸은 저절로 움직여져 수행은 잘 되는데 화내고 짜증을 잘 내는 성격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집에서는 딸과의 전쟁을 하루가 멀다 하고 치렀습니다.

딸의 말을 빌리면 "엄마는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너무 이기적이다. 말투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든다. ”라고 말합니다. 거기에 저는 질세라 “엄마하고 오래 살아왔으면서 엄마의 말투를 이해하고 받아줄 줄 모른다.”라고 반박합니다. 말로 딸이 설득이 안 되면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그래도 기도는 놓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엎어지면 땅을 짚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업식을 바꾸기 오죽 어려우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수행정진 하라’ 했겠는가를 마음속에 새기면서 이제야 조금씩 알아차립니다. ‘지금까지의 나, 앞으로의 나, 누가 만든 게 아니고 다 내가 만들고 내가 받네. 행복도 내가 만들고 불행도 내가 만들지 그 누가 만드는 게 아니네! ’여태 행복도 불행도 누군가로부터 받는 줄 알았지 내가 주인 되어 살지 못했다는 것을 정토회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JTS 거리모금도 도반과 함께 (왼쪽 두 번 째 김혜숙 님)
▲ JTS 거리모금도 도반과 함께 (왼쪽 두 번 째 김혜숙 님)

봉사는 나의 힘!

불교대학에서는 개근을, 경전반에서는 정근을 했고,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깨달음의 장>을 다녀왔습니다. 천일결사 입재식에도 꼭 참석하면서 입재와 회향을 통해 스님의 법비를 흠뻑 맞으며 촉촉해진 새로운 마음으로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수행을 주목적으로 두고 봉사, 보시도 틈틈이 해 왔습니다. 봉사는 시간만 되면 자발적으로 달려갔으며 뭐든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JTS거리모금은 오전 근무 마치고 달려갔습니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 봉사나 보시를 거의 한 적이 없었기에 이런 기회가 너무 감사하고 좋아서 빠질 수 없는 행복거리였습니다.

경전반 졸업과 동시에 불교대 담당 봉사도 그냥 “네!” 하고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공부요 내 복 짓는 일이라’ 여기고 더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욕심도 여전하고 화도 여전히 잘 내고 무지하고 어리석어 번번이 넘어지고 있지만 한 전 한 전 저축하면 재물이 불어나듯이 보기에는 여전해 보일지라도 내 창고에 재물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습니다.

암 진단도 2,000배 기도의 가피

2018년 6월, 저는 중랑법당 개원 이래 처음으로 하는 2,000배 철야 정진에 참여했습니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기여서 그 기도는 더 간절했습니다. 그 다음 날 몸에 이상 증후가 느껴져서 간 병원에서 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가을불교대학 담당을 하는 중이었고, 졸업 갈무리를 며칠 앞둔 시기였습니다. 암 이라는 진단을 받고 저도 모르게 2,000배의 가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정진했으니 몸 좀 아끼고 쉬라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돌렸습니다. ‘수술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딸이 임신 중임에도 사위와 함께 수소문해 수술병원과 수술 날짜를 잡는 것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수술도 잘 되었습니다.

도반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행복해요(9-4차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
▲ 도반과 함께라면 언제든지 행복해요(9-4차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

‘나’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수술 후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데 3년 전 불교대학 입학 했을 때, 메모지에다 지금 제일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적고 1년 후 갈무리 때 다시 본다면서 써내라고 했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때 메모지에 적어냈던 소중한 것에 가족과 직장만 있고, ‘내’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누워있게 돼서야 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소중함을 몸으로 직접 체득하는구나!’. 그렇게 스님께서 귀가 닳도록 하신 말씀 “내가 먼저 행복해야 주변도 행복해진다.”, “늘 지금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말씀이 마음 깊숙하게 다가옵니다.

항암 중 머리가 빠져서 삭발을 했습니다. 스님 머리도 해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이렇게 조금씩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두 달만 더 하면 3년 절 개근이었을 텐데…' 병원에 있을 때 아침기도를 못 해서 제일 아쉬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개근'에 집착하는 제 모습이 또 우습기도 합니다.

이제는 욕심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볍게 할 수 있는 만큼 행복하게 즐기면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항암치료가 끝나고 머리카락도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서 수행법회에 나가봅니다. 정토회의 명심문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를 되뇌입니다. 괴롭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고,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내 몸을 쓰다듬으면서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글_강현주 희망리포터(노원정토회 노원법당)
편집_권지연 (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