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개원한 김해법당 법당에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청아한 목탁소리와 함께 박은주 님과 도반들의 기도소리가 들립니다. 새벽마다 들리는 기도소리는 매일 깨어 있는 수행자의 삶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정진상 수상자인 박은주 님의 묵묵한 정진 이야기를 전합니다.

법당에서 인터뷰 중인 박은주 님
▲ 법당에서 인터뷰 중인 박은주 님

기도는 교회에서만 하는 거 아닌가요?

2004년 봄 해운대정토회 개원 때, 직장 동료인 안혜원 님이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가 있으니 함께 들으러 가자고 권유하였고, 그 때가 저와 정토회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금강경 강의를 일주일에 두 번씩 듣는 동안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불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 당시 종교가 없고 절하는 법도 잘 몰랐던 저는 ‘불교가 이렇게 쉽고 명쾌하며 과학적이었단 말인가!’ 하며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날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는 매번 너무 감동적이고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법문 후 ‘정근과 희사의 시간’이 너무나 낯설어 법문만 딱 듣고 법당을 급히 빠져나오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금강경 강의에 이어 한 달 간의 '수행맛보기'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기도는 교회에서만 하는 줄로 알고 있던 제게 매일 아침의 수행 연습은 너무나 신기한 체험이었고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실은 2004년보다 훨씬 앞서서 정토회를 아예 모르던 시절, 직장동료 박월숙 님이 <깨달음의 장>을 직접 전화 접수해 주어 다녀왔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열무김치를 담아 우리집으로 한걸음에 달려온 그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떠오릅니다.

새벽 목탁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매일 아침 기도를 통해 조금씩 내 삶에 변화가 왔고 여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원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아침밥도 거르고 허겁지겁 출근하던 게으른 제가 매일 아침기도를 하면서부터는 꼬박꼬박 아침밥을 챙겨 먹고도 시간 여유가 생겨 차도 마시고 청소까지 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10여 년 전 가정 법회 시절 엘리베이터 안에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새벽 목탁 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는 입주민의 민원 글이 부착된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바로 다음 날부터 목탁 없이 기도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법당이 없어 가정집에서 수행하느라 이런 불편함도 있었지만, 김해법당 개원되기까지 여러 곳에서 법회 장소를 선뜻 제공했던 많은 신심 깊은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어려운 점은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16년 새해맞이 3천배 정진(앞줄 맨 왼쪽이 박은주 님)
▲ 2016년 새해맞이 3천배 정진(앞줄 맨 왼쪽이 박은주 님)

엄마, 안녕. 잘가요.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는데, 바람을 피워서 어머니와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괴로워했고, ‘너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쏟아냈습니다. 또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는 저를 보시며, 어머니는 “신랑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 며 신세 한탄을 하시곤 하였습니다.

주변에서 만들어준 연줄로 다녀온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 수련을 통해 저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아버지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신세 한탄하던 그 날의 어머니를 생각해 보니,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겪었던 어려움과 서러운 마음을 이해해 드리지 못한 것이 정말 죄송하고 마음 아팠습니다. 어느 날 불쑥 전화해 울면서 그때 엄마 마음 몰라서 죄송하다고 하니 “야가 지금 무슨 말하노? 시끄럽다~마! 내 연속극 본다, 끊어라.”하셨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오십 살도 더 넘은 딸에게 시집가라고 노래를 부르던 어머니에게 “엄마는 딸이 결혼하는 것이 중요해요? 딸이 행복한 것이 중요해요?” 하고 정색하고 묻자, 어머니는 한참을 계시다가 “네가 행복한 것이 더 중요하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 나는 지금 이 부처님 법 만나 참 행복해요.”하니, 그 후론 한 번도 시집가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병석에 누워계실 때 선주법사님의 도움 말씀을 들으며 어머니를 위해 꾸준히 기도해드려서인지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 안녕. 잘 가요~’하고 잘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역 공동체 일원임을 깨닫게 하는 행복학교 경청리포터

저는 지금 통일특위 의병으로 행복학교 진행과 더불어 경청리포터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과 행복을 주제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해보고 지역의 자랑거리나 어려운 점도 함께 나누다 보니, 혼자 사는 제가 이제야 지역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강의를 즐겨듣던 장유의 한 아파트 작은 도서관 관장님을 만나, 장유에서는 장소를 구하지 못해 행복학교를 열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흔쾌히 장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의 수업 후로 참가자가 없어서 관장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행복학교 운영에 나름의 어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체계적으로 잘 짜인 행복학교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이 행복해하며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기쁩니다. 제 자신도 거듭되는 행복 연습과 행복 실천을 통해 놓치고 있던 것들을 자각하게 되니, '이 활동이 참으로 내게 커다란 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강연회 준비하는 주인공
▲ 행복강연회 준비하는 주인공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를 준 인터뷰

지난 10월 말에 우리 법당 희망리포터가 저에게 취재 요청을 했을 때, 가볍게 응하지 못하고 여러 번 거절하며 그를 성가시게 했습니다. 기도 시간에 돌아보니 ‘내가 수행자 맞나? 그게 뭐라고 흔쾌히 응하지 못하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나’ 싶었습니다. ‘남 앞에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여전하구나’ 하고 늦게나마 알아차리고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주어진 질문에 답하며 그 간 이어온 시간을 쭉 정리해 보게 되었고, 옛 추억들이 떠올라 오히려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제야 취재 요청한 희망리포터님이 고마웠습니다. 내게 물어주지 않았다면 지난 시절 함께했던 도반들의 감사함도, 15년 동안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왔던 스스로에 대해서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9-7차 입재식이 있는 날, 상 받는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해서 매우 당황했습니다. ‘내가 왜 상을 받지? 갑자기 왜?’ 하면서 자문해 보니, 그 전 희망리포터와의 인터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법당에서 수행정진 중인 박은주 님
▲ 법당에서 수행정진 중인 박은주 님

15년을 이어온 정진의 원동력

정진은 제게 도움이 되고 좋아서 지금까지 이어온 것 같습니다. 매일 새벽 고요한 아침 시간, 늘 함께하는 정겨운 수행 도반들과의 정진은 어느 곳 하나 부족함 없이 충만한 느낌입니다. 오롯이 나를 위한 고요한 한 시간의 집중! ‘아, 놓쳤구나!’ 하는 자각으로 참회하며 스스로 조금씩 변할 때를 알아차리는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과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행 정진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괴로움과 번뇌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바로 수행관점을 놓치고 외부와 상대를 탓하고 있는 나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임을, 곧 나의 수행 정진이 모자라는 탓이라는, 수학 공식과도 같은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행복학교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 행복학교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행복의 지름길, 끊임없는 행복연습과 행복실천

지금까지의 활동에서 인상 깊었던 깨달음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과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전에는 '나는 아무런 연습도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앉아서 잘되기만 바라고 있었구나, 바라기만 하면서 안 될 때는 안 되는 나를 탓하고, 안 되는 상대를 탓하고 그저 욕만 하고 있었구나.'싶습니다. 그저 화가 나 있는 상태로 머물러만 있었습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지도법사님의 법문 말씀이 떠오릅니다. 스님께 비법을 가르쳐달라는 질문자에게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비법! “될 때까지 한다!” 카~그 감동적인 비법 앞에 어느 누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걱정하고 한탄하고 비난하는 그 시간에 ‘연습이나 한 번 더 하자’ 하는 마음을 낼 수 있게 스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힘을 주신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하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네가 뭐 한 것이 있다고 겨우 몇 번 해보고 포기하고 좌절하냐?”라는 스님의 그 말씀에 더 이상의 핑계가 필요 없어져서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될 때까지 한다”는 비법은 스님의 ‘그냥 한다’는 말씀과 같은 말씀이고, 성경에서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와 같은 말씀임을 되새깁니다.

2018년 5월 통일기도 회향(맨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박은주 님)
▲ 2018년 5월 통일기도 회향(맨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박은주 님)

통일의병들과 함께 한 밀양 항일역사기행

요즘은 우리 김해 양산 밀양지역의 통일의병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들을 해 보고 있는데, 연초에 통일의병들과 밀양 항일역사기행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어서 참 뜻깊고 뿌듯했습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의열기념관을 둘러보고, 약산 김원봉 열사의 부인이었던 박차정 의사의 묘소도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시립박물관의 독립운동기념관에도 가 보고, 무안에 있는 신영복 선생님의 묘소도 참배하고 왔습니다. 특히 박차정 의사 묘소 참배 후, 도반들과 무덤가에 같이 앉아 지도법사님의 지난 해 죽림정사에서의 3.1절 법문을 나눠 읽으며 통일이라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를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숙연한 마음을 다잡기도 했습니다.

밀양 의열기념관에서(오른쪽 첫 번째 박은주 님)
▲ 밀양 의열기념관에서(오른쪽 첫 번째 박은주 님)

밀양 역사기행을 계기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2005년 EBS 10부작 <한국독립운동사> 강의를 듣게 되니 '내가 정말 우리 근현대사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고, 도올 선생님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올 선생님이 중국 화북지방 타이항산 항일유적지를 찾아가 밀양 출신의 윤세주 열사의 무덤에서 비석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편히 사는 것이 수많은 순국선열의 헌신과 희생 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박차정 의사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왼쪽에서 두 번째 박은주 님)
▲ 박차정 의사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왼쪽에서 두 번째 박은주 님)

그 한 사람을 구하겠습니다

“이 땅에 고통 받는 중생이 한 사람도 없는 정토세계를 이루겠다”는 이 사홍서원의 첫 구절, 이 첫 구절이 처음 불법 인연 맺었을 때는 엄청나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 받는 중생을 내가 무슨 수로 다 건지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조금씩 가벼워지니 제게 이 서원은 이제 “내게 인연 닿는 괴로워하는 그 한 사람을 구하겠습니다.”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그 고통받는 단 한 사람’을 못 구하겠나' 싶으니 엄청 가볍게 다가옵니다.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하신 법륜스님의 희망편지 내용은 아무리 보아도 감동입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연습이 바로 꾸준히 수행 정진하는 것이겠지요. 내가 이제 행복해졌으니 앞으로는 나를 넘어 우리 이웃, 우리 세상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꿈꿔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수행관점을 잘 견지하고 사회적으로는 주권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이 활동에 꾸준히 함께하겠습니다.
 


법당에서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는 박은주 님!
수행, 보시, 봉사의 삶을 모범적으로 보여줘서 활동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박은주 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집니다. 일요일 오후 따뜻한 온기를 받으며 벌써 봄이 만연함을 느낍니다.

이번 특집 기사를 위해 여러 번의 인터뷰에 기꺼이 응해주신 박은주 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11월에 발행된 박은주 님의 수행담 기사(클릭)도 함께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글_송현숙 희망리포터(김해정토회 김해법당)
편집_조미경(경남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