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로 시작되는 조철래 님의 나누기는 항상 밴드 맨 위쪽에 자리잡습니다. 자로 잰 듯한 절 각도와 어김없는 나누기 위치는 반듯한 그의 생활을 대변해 줍니다. JTS 모금 담당과 봉림사지 중창불사 및 통일기도 담당, 토요수행법회 집전을 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행하는 조철래 님의 수행담이 궁금했습니다.

전쟁 반대 1인 시위 중인 조철래 님
▲ 전쟁 반대 1인 시위 중인 조철래 님

Q. 정토회와의 인연은 언제쯤 시작되었는지요?

지난날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화를 잘 내는 편이며 욕심 많고 어리석어 괴롭게 살아가는 자. . 무엇보다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이 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내 생각', '내 고집'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2007년 이사를 했습니다. 집 주변을 산책하는데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더니 이른 아침부터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나도 새벽기도를 하면 어떨까?'하는 호기심과, 종교를 갖게 되면 보다 안정적일 것 같은 기대감으로 108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절의 여러 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기복신앙으로서의 불교에 대해 약간의 미흡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절에 다니던 누님으로부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불교TV 방송으로 방영될 때였는데 스님의 명쾌한 답변이 참 재미있어 TV를 열심히 챙겨 보았습니다. 질문자의 고민이 나의 처지와 비슷한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는 더욱 더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일상사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화나 짜증으로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계속 그 생각에 머물러 고민하여, 괴로움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문즉설을 계속 듣다 보니 마음도 시원해지고 일이 해결되는 것 같았지만 들을 때뿐이라는 문제점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질문자가 해답을 달라 하면 "<깨달음의 장>을 다녀오세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깨달음의 장>을 신청하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게 되었지만 큰 울림이 왔습니다.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안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정토회가 궁금해졌고 그곳을 찾아가야겠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가까운 법당인 마산법당을 물어물어 찾아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법당 입구부터 내부까지 뭔가 내가 알고 있던 절과는 달라 다시 망설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남겨둔 전화번호로 당시 법당 총무님이 집 가까운 가정법회를 알려주었고 그렇게 2010년 봄,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정토회와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정진 후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왼쪽이 조철래 님)
▲ 새벽 정진 후 법당에서 도반들과 함께 (왼쪽이 조철래 님)

Q. JTS 모금 활동, 봉림사지 중창불사와 평화통일 기도에 늘 함께하고 있는데요.

정토회와 인연을 지속할 수 있는 원천은 ‘수행과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봉사 없이는 정토회와의 인연을 지속하기 어려우며, 지속적인 개인 수행 없이는 봉사가 지속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수행법회에 매번 참여하려 결의를 다져도 슬슬 빠지게 되고 게으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즈음 담당자가 되어 한 가지 인연을 이어나가면 제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한 달에 한 번”이라는 말에 끌리고 좋은 일이라 생각되어 'JTS 거리모금'을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마음속으로 이래저래 계산해 보고 제일 쉬울 듯해서 하겠다고 하였는데 첫 번째 모금을 하고 '큰 실수했구나' 싶었습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로 살아가다 보니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아 모금 가는 길이 고역처럼 느껴졌습니다. 거기다 함께 지원해주는 도반도 많지 않아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당시 불교대학을 막 졸업한 아내는 흔쾌히 응해주었고, 엄마가 나가니 심심했던 아이들도 같이 하겠다고 하여 가족이 모금에 함께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모금이 조금 편해지고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남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가슴에 밀려올 때 부처님의 큰 가피를 입었음을 알았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인 조철래 님 가족
▲ JTS 거리모금 중인 조철래 님 가족

‘봉림사지 중창불사와 통일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살기에 연연하여 나라에 대해,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았습니다. 내 것 잃을까 걱정하였지 통일과 분단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통일의병 교육을 받으며 생각의 전환이 왔습니다. ‘나’라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통일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게 여겨져 '봉림사지 통일기도'를 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봉림사지 터에 앉아 기도하며 맞이하는 사계절은 저에게 또 다른 기쁨을 주었습니다. 봄이면 향긋한 봄꽃 냄새에 취하고, 여름이면 산새 소리에 젖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에, 겨울이면 차가운 바람도 상쾌하게 느껴지는 그곳에서 작은 마음 모아 통일을 발원하며 기도합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해지는 그곳에서 마음이 정말 가벼워짐을 느끼며 돌아옵니다.

봉림사지 통일기도 후 한 컷 (왼쪽이 조철래 님)
▲ 봉림사지 통일기도 후 한 컷 (왼쪽이 조철래 님)

Q. 나에게 정토회란 어떤 곳이며 부처님 법 만난 후 일상에서 변화된 모습은?

정토행자로서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지난날을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까?'를 생각하니 한마디로 ‘참 다행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토회는 생활입니다. 아침에 눈 뜨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저녁이 되면 잠을 자듯이 평범한 일생이 곧 정토회입니다. 선택에 따라 하루를 어리석게 살 수도 있고 지혜롭게 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정토회를 만나 지혜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남에게 큰 덕을 베풀지는 못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 지혜로운 삶이 정토회 없이 가능했을까요? 매일매일의 크고 작은 시련들 속에서 담담히 받아들이고 사는 삶은 스승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요? 지금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정토회를 받아들이고 정토회를 만난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8차 천일결사를 회향하던 날 무대에서 법륜 스님으로부터 상을 받던 조철래 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진하는 분께 수여하는 상이었습니다.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이 빛나던 순간이었습니다. 창원법당 확장 이전 불사에도 뒤에서 많이 도와주었다고 총무님이 전해 주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정토회가 유지되고 우리가 불법 공부를 할 수 있구나! 알게 됩니다. 저도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글_안영주 희망리포터 (창원법당)
편집_조미경(경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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