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 님은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동작법당의 봉사를 몇 년째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아이 셋이서 자기들끼리 저녁을 챙겨 먹어야 하는 날도 있지만 박민아 님은 법당에서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놓칠 수가 없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전단지를 두 손으로 꼭 쥐고

2017년,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휴직을 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 딸은 무기력함과 우울증이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큰 아이를 이해해보려고 상담도 같이 받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아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픈 사람은 아이인데 오히려 엄마인 제가 왠지 모르게 몰려오는 억울함으로 더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정토회’를 알게 되었고, 때마침 불교대학 홍보 전단지를 건네받았습니다. 힘들고 아픈 우리 가족에게 불교대학 공부가 삶의 기둥이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경전반 졸업식에서 박민아 님
▲ 경전반 졸업식에서 박민아 님

학교까지 안 간다는 큰 아이

어느 날 학원 선생님한테서 아이가 학원에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분명 학원에 간다고 하고 나간 아이가 어디를 갔을까?’ 학원을 빠지던 아이는 곧이어 학교도 빠졌습니다.

상담을 받을 때 아이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남편과 저도 함께 상담 센터를 찾았습니다. 남편도 본인은 나름대로 항상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는데 오랫동안 우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딸의 상황을 답답해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자꾸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학교 결석은 잦아졌고 저는 결국 대안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때는 학교를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의 심정을 먼저 헤아려 주지 못했을까요? 오직 졸업을 시켜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대책 세우기에만 급급했던 엄마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큰 아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아이는 한 달여 동안 자신의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력까지 나빠졌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인도 성지순례 중에 박민아 님
▲ 인도 성지순례 중에 박민아 님

‘아이 걱정보다 내 억울함이 먼저였구나!’

법당에서 기도를 하는데 제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큰 아이의 우울함은 어려서부터 계속되었고, 저도 그만 지쳐있었습니다. 기도를 할 때 저의 억울함이 보였습니다. '직장도 열심히 다녔고 시댁에도 잘하려고 노력했고 아이들한테도 남부럽지 않게 해 주었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면서 억울해 했습니다.

저는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려서는 학교를 마치면 집에 돌아와 숙제부터 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를 기준으로 삼으니 아이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도 다시 되짚어 보았습니다. 상담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질문에 눈물부터 흘리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외할머니 손에 자랐던 아이는 “내가 말을 하면 항상 못 알아줬어”하고 상담 내내 울었습니다. 그때 어른들이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저는 늘 팩트(있는 사실)만 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안 간다 했을 때도 대책 세우기에만 급급했고 아이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기보다는 아이의 끼니를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외할머니에게도 우울함이 있었습니다. 큰 아이의 우울함과 무기력감은 둘째 딸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심리 검사에서 둘째 딸에게도 우울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족 전체의 의사소통을 개선해야 했고 특히 엄마인 저와 남편이 더 많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 중에 도반들과 함께 _ 왼쪽에서 두 번째 박민아 님
▲ 인도 성지 순례 중에 도반들과 함께 _ 왼쪽에서 두 번째 박민아 님

엄마 왜 그래요? 엄마 원래 안 그랬잖아요.

건설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지금도 많이 바쁩니다. 야근도 해야 하고 매주 정토회를 나가는 제 삶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가족들을 대하는 저의 태도입니다. 그동안은 아이들에게 일어난 사실 위주로만 말하던 무뚝뚝한 엄마였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말합니다.

제가 부드럽게 말을 할 때면 아이들은 “엄마 왜 그래요? 엄마 원래 안 그랬잖아요”라고 합니다.

큰 아이가 어떻게 변했냐고요? 지금은 대안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한 번은 상담 때 아이가 “원래 있었던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하는 예전의 생각 습관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때 상담 선생님께서 “아이가 학교를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학교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말이에요”라는 말씀을 듣고,

'아, 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연습을 더 해야겠구나! ' 생각했습니다.

지금 큰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됐고, 무기력감을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장 싫어했던 말이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하는 애교 섞인 유행어였는데 이제는 제가 먼저 남편과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한 태도로 다가갑니다.

인도 성지 순례 중에 법륜스님과 함께 _ 박민아님 왼쪽에서 네 번째
▲ 인도 성지 순례 중에 법륜스님과 함께 _ 박민아님 왼쪽에서 네 번째


생활에 변화는 없지만, 박민아님은 분명 변화한 것 같습니다. 박민아님의 눈빛, 손짓, 말투에 실린 다정함이 박민아님의 온 가족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내가 변하고 가족이 변하고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경험! 정토회에서 함께 변화해 볼까요?

글_김은진 희망리포터(서울정토회 동작법당)
편집_권지연(서울제주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