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공양간에서 환한 얼굴과 우렁찬 목소리로 모두를 반겨주는 김순미 님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그 밝은 기운에 없던 에너지도 생겨나는 듯합니다. 김순미 님이 원래 활기찬 사람인가 보다 하지만, 주인공이 처음 정토회에 발걸음했을 때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180도 달라진 김순미 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Q. 처음 정토회에 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시애틀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있다고 해서 아는 분과 함께 가 봤는데, 일반 강연과는 다르게 스님께서는 먼저 질문을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 당시 제 마음에 늘 갈등하던 문제를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은 “우리 남편하고 큰딸이 성격이 똑같아서 늘 싸웁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였어요. 그때 저는 아둔해서 스님이 설해주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지는 불과 몇 년 안되었습니다. 그것이 첫 만남이긴 했지만,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듣던 남편이 먼저 정토회에 가자고 해서 그것이 제 시작이 되었습니다.

평화운동을 이끄는 김순미 님 (시애틀 스페이스니들 아래서)
▲ 평화운동을 이끄는 김순미 님 (시애틀 스페이스니들 아래서)

Q. 많은 도반에게 전해 들은 김순미 님은 처음 뵈었을 때와 지금이 180도 달라진 사람이라고 말하던데요, 본인이 달라진 계기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깨달음의 장>입니다! 제 삶이 어떤 극적인 인생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늘 혼자 인생의 의문, 혹은 풀어야 할 문제 몇 가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걸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혼자서 끌어안고 못 풀고 있다가 <깨달음의 장>에 가서 비로소 그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나는 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칭찬할 때 함께 칭찬하지 못할까?'였습니다. 예를 들면 여덟 명이 그룹으로 있을때 A라는 사람이 B를 칭찬하면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칭찬을 하는데 저는 칭찬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우린 배움으로, 혹은 관념적으로 남들이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해 주고, 남들이 슬퍼할 때는 함께 슬퍼해 줘야 한다고 들으면서 자랐기에 생각은 알겠는데 실제로 제 마음은 그렇게 가지 않았습니다.그게 늘 저한테는 고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지 못하는 저’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판단하지 않고 제 생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실제로 저 사람은 칭찬을 받을만한 사람인데, 제 안의 어떤 고집이 혹은 욕심과 질투심 등으로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런 것들이 제가 다른 이를 칭찬하는 것을 막아버리더라고요. ‘아 그랬었구나 내가 자만과 아집 때문에 지금껏 그랬었구나’. 그 뒤로 그것을 내려놓고 나니 예전에 정말 칭찬에 박했던 저에게 신기할 정도로 주변 모든 사람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며 살고 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되었습니다. 근 30년간 가지고 있던 화두를 깨치게 되어서 날아갈 듯이 행복했었어요.

또 하나, 산다는 것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바꾼 충격적인 경험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맏딸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모든 집안일을 어렸을 때부터 다 하고 살았어야 했고, 그 이후의 삶도 지독히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제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나마 살아가는 것은 다른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순전히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저는 자만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던 거지요. 실제로 저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깨달음의 장>에서 ‘아,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게 내 힘이 아니었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누가 제 머리를 탕!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합니다. ‘아! 내가 숨 한번 쉬고 물 한 모금 먹는 것조차 내 힘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내 힘이 아니었구나’ 하는 경이로움과 함께 저의 자만에 대한 부끄러움이 올라왔습니다. 그 순간 그동안 가졌던 마음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세상과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연꽃처럼 어여쁜 미소의 김순미 님 (오른쪽)
▲ 연꽃처럼 어여쁜 미소의 김순미 님 (오른쪽)

Q. 늘 품고 있던 화두를 해결했다고 하였는데요, 그럼에도 아직 가지고 있는 과제가 있으신가요?

지금은 딱히 과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 제가 불편함이 생기면 그것을 바라보고 ‘아 이런 불편함 마음이 있구나’ 합니다. 이것을 제 마음이라고만 생각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도 또한 이러하겠구나' 하고 바라봅니다. 제 마음을 통해서 세상의 마음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는 기회로 여깁니다. 제가 어떤 상황에 짜증이 일어나거나 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생긴다면 ‘아 이럴 때 다른 사람도 이런 마음이 생기겠구나’하고 그 마음을 배우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지금은 과제는 아니고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그걸 기쁘게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세상 공부 중인 김순미 님
▲ 세상 공부 중인 김순미 님

Q. 김순미 님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20살 넘게 나이 차가 납니다. 아버지가 두 집 살림하셨어요. 제 어머니가 남들이 말하는 첩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아버지가 능력이 없으셔서 어머니가 큰 집의 일까지 나서서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여장부였어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런 가정환경이 제게는 큰 트라우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늘 아버지를 미워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도덕적인 부분을 증오했기 때문에, 절대 그것을 닮지 않으려고 나도 모르게 굉장히 도덕적이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항상 모범생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그것이 남편을 선택하는데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와 닮은 남편을 만난 것이지요.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고 낙태를 하게 되었습니다. 도덕적인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가치관이었던 제게 이런 비도덕적인 일을 하게 만든 사람이 남편이라는 생각에, 그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도 은연중에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저희 결혼 생활에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싸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고집스러움을 남편이 비슷하게 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20여 년은 ‘그냥 사는 거지’ 하고 살았는데, 갱년기가 되니까 20년간 참았던 것이 다 올라오더군요. 저는 어렸을 때도 아버지하고 잘 싸우던 성격이었기 때문에 남편과도 많이 싸웠습니다. 싸운다기보다 제가 제 생각을 자꾸 관철하고 싶은 마음에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남편은 고집은 셌지만, 잔소리를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저로 인해 잔소리도 많아졌고, 스스로 잠재웠던 욱함도 깨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갱년기 6개월은 완전 지옥이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이후에 원망스럽던 제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과 저는 180도 다른 것이 많습니다. 식성이 비슷한 것 빼고는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달라요. 그 사람은 직관적인 사람이라서 바른 말을 많이 합니다. 그 사람이 저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서 그 사람을 통해 제가 할 수 있는 공부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제게 잘해주기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저는 여전히 별로 배우는 것 없이 그냥 살았을 텐데 너무나 다르고 강하니 자연히 제가 배우는 것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칭찬할 수 있게 된 대상에 저희 남편도 포함됩니다. 제 생각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그 사람을 보니 배울 것이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달라서 불편한 점이 있기도 하지만 그 사람도 역시 저로 인한 불편함이 크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저보다 훨씬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존경합니다.

존경하는 남편과 함께
▲ 존경하는 남편과 함께

Q. 김순미 님은 작년 행자대회 때도 오락부장을 맡을 만큼,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때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시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저는 전체 조회 시간에 애국가나 교가를 부를 때 지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때 저는 가정형편도 어려워서 지휘를 배울 수도 없었고 음악에 대한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는 정말 지휘를 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휘하는 아이를 뽑기 위해서 반 아이들 한 명씩 앞으로 나오게 해서 지휘를 시켰습니다. 제 순서가 되자, 저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너무나 쑥스러워서 그냥 대충하고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무언가를 정말 하고 싶은데, 막상 그 순간에 닥치면 못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사람을 많이 의식하는구나' 하는 것은 알았는데, 왜 의식하는지를 모르니까 그걸 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의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몰랐어요. 왜냐하면 저는 남들처럼 공부를 특별하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어떤 재능이 있었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또 선생님이 이름을 알까 모를까 할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제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어렸을 적 가정형편 때문에 시장에 무언가를 팔러 가야 할 때라든가, 어머니가 양장점을 하셨는데 그 당시 교복홍보를 위해 같은 학급의 아이들이 다니는 교문 앞에서 전단을 돌린다던가 할 때 전혀 아무렇지 않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언가를 간절히 하고 싶을 때는 남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서 ‘내가 꼭 잘해야지’하는 생각이 드니까 더 의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해결도 하지 못했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오십 평생을 살았던 것이지요.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것을 알아가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되고, 남들이 말하는 숨겨졌던 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늘 즐겁습니다. 계율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저를 표현합니다. 그런데 옆에서 남편이 “하지마, 하지마~~”한답니다. 부끄러운가 봐요. (웃음)

행자대회 장기자랑 중. 아이디어가 넘칩니다!
▲ 행자대회 장기자랑 중. 아이디어가 넘칩니다!

Q. 타인의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모습에 보는 저희도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앞으로 정토회 활동하시면서 세운 원이 있으신가요? 또 내 미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모습이고 싶으신가요?

지금 이대로! 예전에는 수행하는 과정속에 저대로의 욕심이 있었습니다. ‘정토회는 이렇게 이렇게 되어야 해!’하면서요. 그것에 합당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거나 일이 생기면 제 욕심에 부딪혀 불편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이제는 사람들 뜻에 함께 섞여서 살면 인연대로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딱히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고 '지금 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자!' 정도가 전부입니다.


인터뷰하는 내내 김순미 님의 수행 이야기 속에서 저의 마음도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노래하고 춤추고 싶어도 자유롭지 못했던 마음, 질투와 욕심 속에 남을 칭찬해 주지 못했던 마음, 자신이 잘하고 열심히 해서 세상을 사는 줄 알았던 마음! 같은 마음을 보고 배웁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은 김순미 님은 이제 누구보다도 적극적인 ‘<깨달음의 장> 홍보대사’입니다. 닮고 싶은 그 미소를 그 곳에서 찾을 수 있다면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하는 곳인가 봅니다. 아직 <깨달음의 장>을 망설이는 분 계신가요? 김순미 님 이야기에 이제 결심이 서셨지요?

끝으로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 준 김순미 님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글_박근애 희망리포터 (시애틀법당)
편집_박승희 (해외지부)